周易을 읽으면서: 升


- 이하의 글은 2002년 7월 22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주역이라는 게 참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한 말들이 많이 나와서 난 요즘 정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잠깐 들쳐서 읽어본 주역의 대목은 64효 가운데서 46번째에 해당하는 '升'이라는 대목으로서, 다름 아닌 보수주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난 오늘 이 대목에서 최근 내 관심사항인 진보와 보수의 대립문제에 관해 많은 시사점과 화두를 얻을 수가 있었다.

주역 64효의 마흔 여섯번째 글자인 '升'은 원래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이 궤의 형상은 마치 나무뿌리가 땅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서, 이것은 진보와 보수 가운데에서 보수를 상징하며, 발산과 표현, 용기가 아닌, 긴장과 절제, 신중을 의미한다. 주역 64효의 서른 다섯번째 글자인 '晉'이 가볍게 발산하는 투명한 태양광선과 같은 형상으로서 진보와 이상, 정의와 진리, 솔직함과 투명성을 상징한다면, 주역 64효의 마흔 여섯번째 글자인 '升'은 보수와 권력, 출세와 음모, 신중함과 불투명성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보수적인 것을 대개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대부분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매사에 확실한 성과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대부분 더 온순하고, 겸손한 데다 복종심이 강하며, 매사를 타인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편에 속한다. 이런 처세는 확실히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대신 이런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로부터 아주 확실하게 귀여움을 받기 때문에 시기를 잘 탈 경우 매우 빠르게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보수주의적인 사람들은 어떤 조직에서 누가 영향력이 강한지를 알아차리는 데 비상한 재능이 있다. 또한 눈치가 빠른 데다 일을 크게 벌리지 않아 사고를 내는 일도 적다. 말수가 적고 타인에게 자기자랑을 자주 하지도 않으며 타인의 기분을 크게 상하게 하는 일도 없으므로, 재미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미움을 타지 않는다. 비록 학계나 예술계에서는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하더라도, 성직이나 관직(특히 법조계통), 기업의 재무팀이나 회계팀 같은 데에 종사할 경우에는 크게 인정받고 출세할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들 보수주의자들은 그러나 성질이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큰 이상도 꿈도 없고 자기 이념도 없이 그저 아래로만 기어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박하고 겸손한 면이야 물론 있지만, 수분을 계속 빨아들이기 위해서는 지저분한 흙 속이라도 계속 파헤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단정한 외양과는 달리 의외로 불결한 면이 많다. 겉보기에는 원칙주의자인 것 같아도, 실제로는 원칙을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그럼에도 잘 발각되지 않는 것은 단지 이들의 눈치가 워낙 빠르기 때문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들 보수주의자들은 강한 자에게 맞서는 일이 거의 없다. 마치 나무뿌리가 바윗덩이를 피해서 구불구불 뻗어나가듯이, 이들은 단단한 것을 보면 자기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피해가버리므로, 강자에게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덤비는 일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일생에 걸쳐 투쟁이나 정면돌파 같은 것을 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조정이나 타협을 명분으로 해서 강한 자에게 아부하며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은 자기 개인의견을 바깥에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고, 자기를 강하게 부각시키지도 않기 때문에, 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도 항상 비굴하게 보이고,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 못한다. 설령 강한 권력을 잡는다 하더라도 워낙 걱정이 많고 눈치에 얽매이기 때문에 권력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며, 설령 이름을 날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그만큼 욕 먹는 것을 두려워해 기회를 다 놓쳐버린다. 따라서 이들은 그러한 울분을 자기 아랫사람들 단속하는 것 내지는 사회에서 돌출행동하는 사람들을 숨어서 비난하는 따위의 일로 풀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이들은 소심하고 무미건조하고 비겁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성실함과 겸손함, 궂은 일을 마다 않는 희생정신 등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마치 밑바닥에서 뿌리가 수분을 흡수해줘야 나무가 자라듯이, 이들은 보이지 않게 사회를 떠받치며 사회가 위로 뻗어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미덕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언제나 대세를 따르고 옛것에 자기 자신을 갖다맞추는 등의 점에서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한결같은 신뢰를 제공한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보수주의자들은 한편으로 엉뚱한 영웅 앞에서 열광하는 버릇이 있다. 더군다나 이들 보수주의자들이 숭배하는 영웅은 실상 전혀 보수주의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자의적이거나 파괴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아주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 영웅은 전혀 조심스럽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으며, 권력을 포악하게 휘두르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좋든 싫든 언제나 강력한 구심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영웅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하면서 그 영웅을 떠받들고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려 하는 데서 자기 일거리를 찾으려 한다.

이렇게 한 사람의 영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다 보수주의자가 되어, 기존의 질서를 수호하고, 권력자의 웬만한 잘못은 그냥 다 넘어가주면서, 사회 전체를 위해 자기 자신을 오로지 희생하는 식으로 이 세상이 돌아갈수만 있다면 참 좋을 터인데, 이 세상에는 꼭 이런 질서가 갖는 문제점을 고치려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진보주의자들이 다수 존재하게 마련인 법이다. 보수주의자들이 겸손과 신중을 중요시한다면,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은 정의와 진리를 중요시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영웅은 단 한 사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진보주의자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건방진 진보주의자를 볼 때마다 눈이 확 뒤집히는 듯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아무리 떼로 몰려가서 호통을 치고 훈계를 해봤자, 진보주의자들은 그 사고구조가 보수주의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논쟁을 해보면 대체로 보수주의자들은 진리의 요건을 너무 높게 잡고서 실리 및 세력관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대세론이나 현실론을 들고 나오게 마련인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진리의 요건을 비교적 낮게 잡고서 이치대로 따져서 곧이곧대로 가자고 이상론과 원칙론을 들고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에, 서로간에는 대화가 잘 안 통하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 간의 싸움이 항상 끊이질 않는다. 보수주의자가 축축한 나무뿌리라면, 진보주의자는 활활 타는 불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진보주의자는 필연적으로 보수주의자를 말려죽이게 돼있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필연적으로 진보주의자의 불꽃을 꺼뜨리게 돼있다. 따라서 둘 간의 충돌과 갈등은 어차피 막을 수 없는 것이며 화해와 공존도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때 보수주의자가 승리를 위해 진보주의자를 흉내내어 나름대로의 일관된 이념을 만들고 이상을 쫓아가려 하게 될 경우, 보수주의는 마치 나무장작처럼 습기를 잃고 메마른 것이 되어 진보주의자들의 뜨겁게 타는 불똥에 타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보수주의는 언제나 흐릿한 감정과 애매한 현실로 승부해야지, 일관된 이념과 드높은 이상으로 승부하려 할 경우 필연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의 논리싸움에 말려들어가 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를 흉내내어 똑같이 감정론 및 현실론으로 맞대응하거나 인간적으로 어떻게 타협해보려 노력하게 될 경우, 진보주의는 마치 비구름에 가려진 태양처럼 아무것도 밝게 비출 수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진보주의는 언제나 이념과 이상을 바탕으로 승부해야지, 개인적 사정과 사회적 통념에 근거해서 문제를 풀어가려 할 경우 필연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감정적 회의론이나 악의적 말장난에 말려들어가 인신공격이나 실컷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진보주의자는 원래 인간이성에 대한 신뢰와 미래를 향한 이상을 신봉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어떤 보편적 이성이나 미래사회의 꿈이 아니라 기존의 선입관과 고정관념, 편견 등이 잡탕으로 혼합된 어떤 감정 같은 것만을 좇는 사람들이다. 그런 복잡성과 혼란성, 불투명성이 보수주의의 생명이며 보수주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수주의자가 그렇게 축축한 물기와도 같은 음험함과 모호함을 포기하고서 진보주의자처럼 밝은 신뢰와 투명한 합리성을 추구하게 될 경우 수많은 우파 이론가들처럼 진보주의의 햇볕에 금방 말라죽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된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진보주의자에 맞서 똑같이 이념대결 및 논리대결을 벌이려 해서는 안된다. 항상 현실론만 되풀이하고 겸손 및 사과만 요구하면서 규범이나 당위가 아니라 단순한 감정 및 관습, 또는 말장난이나 말꼬리잡기로 대항하고 나와야 한다. 자기 주장을 어떤 이념의 틀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고, 겸손이나 너그러움, 현실일반이나 사회통념을 주제로 놓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보주의자를 재단함에 있어서도 이성과 논리의 틀이 아닌 품성, 인간성 등의 틀로 재단하고, 가급적 논리적 공격보다는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이 좋다.

그밖에도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한 것은 집단으로 움직이면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이다. 어차피 보수주의자들은 걱정만 많이 할 뿐이고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걱정거리를 줄여주는 최고의 비결은 그저 다수의 뜻을 따르고 그 분위기에만 쫓아가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때는 집단 속에 들어가거나 집단의 위력에 편승해서 활동하게 될 때이다. 왜냐하면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보통 자기 개인의 신념에 따라 만인에게 맞설만한 용기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수주의자들로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런 집단적 분위기가 별로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적당한 때에 발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보수주의적 분위기가 이미 다 지나가버렸는데도 옛날에 많은 사람들이 다 한 것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계속 따라서 거품을 물었다가는 오히려 혼자서 진보주의자들에게 역공을 당할 수가 있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결과지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급적 느림보 거북이걸음을 걷도록 노력해야 함도 잊어서는 안된다.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므로 이따금 샛길로 새기도 하고 중간에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어차피 결승선까지 도착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마련이지만, 보수주의자들은 대개 결과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므로 샛길로 새는 일 없이 결승선에 바로 도착하게 돼있기 때문에, 걸음이라도 느리게 걸어서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약 보수주의자들이 느린 걸음을 걷지 않고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만 달려가게 된다면, 출세속도야 빨라지겠지만,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진보주의자들만큼 명확한 주관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세계관만 빈약해지고 천박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진보주의자들은 사물을 명쾌하게 보고 자기 생각이 확고한 대신, 관심의 폭이 너무 넓은 사람들이므로, 가급적 걸음을 빨리 걸어서 빨리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결과물을 내고 출세하는 속도야 빠르지만, 사물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확고한 생각이나 주관 같은 것은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만큼 더 다양한 관심과 함께 여유있는 사색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색의 과정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이 나름대로의 인간적 양심과 사고의 일관성까지 획득하게 된다면, 그는 진보와 보수의 틀을 뛰어넘는 탁월한 이념가가 될 수도 있다. 마치 Hayek처럼 신자유주의 같은 사상을 설파하면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보수주의자들에게 지적 양심이나 논리적 일관성 같은 것은 관심 밖의 사항일 뿐이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대다수의 여론이나 관습,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출세일 따름이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자기 감정과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세상의 흐름을 가장 잘 따라서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고만 노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은 자기가 진보와 보수의 틀을 이미 뛰어넘었다고 착각하는 버릇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자기에게 편리한 일이며 자기 책임감도 면해주는 일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생각 속에서 수많은 악의 근원적 출발점이 되는 보수주의자들의 눈먼 충동은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자기가 보수적임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에게 단지 감정적으로만 호통을 치려 하기가 일쑤인데, 그러면서도 보수주의자들은 자기가 뭣때문에 화를 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升은 元하고 亨하니 用見大人하되 勿恤하고 南征하면 吉하리라.
彖曰, 柔以時升 巽而順. 剛中而應 是以大亨. 利見大人 勿恤 有慶也.
南征吉 志行也.
象曰, 地中生木升. 君子以順應 積小以高大.
初六 允升이니 大吉하니라.
九二 孚乃利用 이니 无咎리라.
九三 升虛邑이로다.
六四 王用亨于岐山이면 吉하고 无咎하리라.
六五 貞하여 吉하면 升階리라.
上六 冥升이니 利于不息之貞하니라.

200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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