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2년 7월 11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최근 한국경제에 대해서 인터넷공간에서 이러쿵 저러쿵 아는 척하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경제에 있어서 심리적 요인을 필요이상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으로 생각이 된다. "경제는 잘 된다고 하면 잘 되는 것"이라는 둥, "희망을 가지면 경제는 잘 되게 돼있는데 자꾸 패배주의를 강요한다"는 둥 하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경제는 어차피 합리적,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므로 미래에 대해 크나큰 희망을 품고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고 살다 보면 경제는 잘 풀리게 돼있는데 왜 자꾸 어두운 이야기를 하느냐는 둥의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 근거로서 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Chicago대학 Robert Lucas교수의 말, '경제정책은 심리학'이라는 말이나 '경제는 심리'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정말로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경제는 정말 심리인가? 나는 물론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심리는 정말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심리와 경제는 서로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긍정적인 심리는 경제에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부정적인 심리는 경제에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Robert Lucas교수를 비롯하여 세계의 그 어떤 유명한 경제학자도 그런 식의 멍청한 말을 한 적은 없다.
사실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세계역사상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옛날 Adolf Hitler 밑에서 제국경제상을 지내다가 나찌패망후 CDU정권때 뒤셀도르프와 뮌헨에서 은행가로 활동했던 Hjalmar Schacht 같은 사람이 "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와 민족경제(Volkswirtschaft)를 hochwertig하게 만드려면 민족 전체가 Herrenvolk의 일원으로서 자부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고 등을 갖고서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1930년대 독일경제를 정말 눈부시게 발전시키면서 독일국민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내뱉었던 여러 말들을 돌이켜보면 최근 베를린리포트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사이트에서 소위 민족주의 경제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논객들과 얼마나 유사한 말을 했었는지를 우리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반면 Chicago대학의 Robert Lucas교수가 말한 경제심리학은 무엇이었던가? 경제학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Robert Lucas는 John Frazer Muth의 합리적 기대이론(Die Theorie der rationalen Erwartungen)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합리적 기대이론이란 게 무엇인가? 모든 경제주체는 궁극적으로 볼 때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정보를 다 나름대로 optimal하게 이용하게 돼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경제정책가가 아무리 그들을 현혹시키려고 해봤자 경제주체들은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결국엔 다들 자기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게 돼있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 경제의 본질이 좋으면 경제전망에 대한 심리도 좋고 본질이 나쁘면 심리도 나빠야 합리적이라는 것이지, 그저 좋아진다고 해서 좋아지거나 나빠진다고 해서 나빠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그가 말한 '심리'란 경제주체인 국민이 영리하기 때문에 정부가 어떻게 하면 실제로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꿰뚫고 있다는 뜻에서의 '심리'인 것이지, '경제는 나빠진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나빠진다'와 같은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의미에서의 '심리'가 아니다. 물론 그런 식의 주술적 경제심리학을 예를 들어 몇년 전 우리나라의 김우중("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같은 사람이 내세우기도 했었는데, 그의 그러한 무대뽀적인 낙관주의가 과연 어떤 결과를 그의 개인기업 및 우리나라 경제에 몰고 왔었는지는, 다들 이미 알고 계시는 바일 것이다.
내가 볼 때 심리는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은 본질과 부합될 때에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본질과 부합되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심리라 하더라도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옳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의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면서 국민들에게 계속 낙관주의적 심리를 유포하려 했지만, 그 말을 정말로 믿었던 경제주체들은 모두 된서리를 맞고 파산해야 했던 반면에, 그 말을 믿지 않고 비관적인 전망에 따라 합리적으로 경제행위를 했던 부유층들은 오히려 돈벼락에 환호성을 올릴 수 있었음을 돌이켜봐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경우 우리나라의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는 생각을 갖는 분들이 많으신데, 내가 보기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언제나 저해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도 결국은 상황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예를 들어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를 약간 부정적으로 보지만, 2000년~2001년에는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편이었다. 상황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시각만을 갖는다는 것도, 알고 보면 굉장히 미련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경제에 대해 소위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내세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은 시각과 심리 같은 것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떤 시각을 갖고서 우리나라 경제를 바라볼 것인가는 각자가 자기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문제이지, 거기에 민족주의니 사대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를 개입시킬 필요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이 아무리 높더라도, 물건을 제대로 팔지 못하거나 수입을 지나치게 많이 하게 되면 국가경제는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제는 심리'니 하는 말로 이런 현실을 애써 덮어두려 한다면 그런 시각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는 것임을 다들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2002. 7. 11.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