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iumsdiskussion

- 이하의 글은 2003년 6월 22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과 그에 대한 손님 여러분들의 몇몇 댓글들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지난 수요일에는 이곳 Hamburg대학교 '법과 경제'연구소에서 오래간만에 아주 흥미로운 단상토론회(Podiumsdiskussion)가 열렸다. Diskussion의 주제는 '유럽계약법(Europäisches Vertragsrecht)... 과연 가능한가', 그리고 여기에 토론자로 나선 사람은 독일전역에 유명한 Max-Planck 비교사법연구소의 소장 Jürgen Basedow교수와 Hamburg '법과 경제'연구소의 소장인 Hans-Bernd Schäfer교수였으니, 정말 볼만한 싸움판이 아닐 수 없었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이런 공개싸움판에 관람료까지도 공짜라니 나는 당연히 내 독일친구들과 함께 내 귀중한 공부시간까지도 희생하고 구경을 하러 가지 않을 수 없었으며, 거기 가서 저녁까지도 굶어가며 토론 전체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이다.

아시는 분들은 거의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Jürgen Basedow교수는 요즘 Hamburg법과대학에서 거의 간판스타급 교수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닌 교수라 할 수 있다. 현재 Hamburg Max-Planck 연구소 소장인 그는 Max-Planck 연구소가 Hamburg내에서 갖고 있는 위상만큼이나 엄청나게 막강한 자금동원능력과 로비능력, 국정참여능력과 제자들 숫자를 자랑하고 있으며, 학문적으로도 매우 활발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어 행정능력과 연구능력 모든 면에서 탁월하기 그지없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중인 교수이다.

Max-Planck 비교사법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Jürgen Basedow교수의 학문적 방법론은 결국 비교법적 방법론이다. 물론 비교법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대개 그렇듯이 Jürgen Basedow교수는 국제주의적 성향도 매우 강하며, '자유화, 국제화'에 대한 신념 역시 매우 투철하다. 특히 국제화에 대한 신념의 부분, 비교법적 방법론이란 부분에서 그는 내 지도교수인 Ulrich Magnus교수와 학문적 경향이 많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내 지도교수인 Magnus교수가 판사를 겸직하는 교수답게 매우 실무적이고 보수적이며 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조용한 스타일에 속한다면 Jürgen Basedow교수는 말에 뻥도 좀 있는 편이고 항상 시끌시끌하게 돌아다니길 좋아하며 행동거지도 매우 리버럴한 멋쟁이 스타일에 속하는 편이시다. 일례로 내 지도교수는 항상 허름한 회색 바바리코트에 다림질이 안된 추레한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넥타이도 없이 지친 듯 비실비실 다니시는 반면(사모님께서 의사로 맞벌이를 하셔서 다림질을 아마 못해주실 것이다 -_-;;), Jürgen Basedow교수는 언제나 말끔하게 다림질된 하늘색이나 분홍색 와이셔츠에 화려한 나비넥타이를 매고서 과장된 동작에 활짝 웃는 얼굴로 천방지축 다니시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기가 미국의 Harvard대학교에서 LL.M.을 했다고 가끔 지나치게 강조하여 학생들의 빈축을 살 때도 많다.

많은 Hamburg 학생들은 Jürgen Basedow교수를 가리켜서 '전형적인 Hamburger스타일'이라고도 말을 한다. 물론 그 이유는 Jürgen Basedow교수의 독일어 발음이 아주 전형적인 Hamburg의 깍쟁이발음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부사람들의 독일어발음은 우물우물하고 촌스러운 발음이라고 말하고, 북부쪽 발음은 깨끗하고 또렷한 도시형 발음이라고들 말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독일에서도 대표적인 자유무역도시에 속하는 Hamburg의 상인집안 자식들이 대개 그렇듯 Jürgen Basedow교수도 북독일 사람치곤 웃음이 굉장히 많은 편에 속하며, 독일사람답지 않게 의사표현에 재치와 기교를 많이 부리고, 표정이 풍부하며 외교적 수사에 능란하고,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전형적인 Hamburger'라는 말을 듣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다 Jürgen Basedow교수의 우람한 덩치와 장대한 기골,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보행자세와 큰 목소리, 활발한 사교성 등은 거친 바다에서 풍랑과 맞싸우며 컨테이너 가득 물건을 팔아 떼돈을 벌어들이는 Hamburg 해운무역업자들의 남성적인 스타일과 매우 비슷한 것임을 우리는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반면 Hans-Bernd Schäfer교수는 Jürgen Basedow교수와 비슷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북부독일 Hamburg 출신이 아니라 서부독일 NRW출신인데, 인상도 온화하고 독일어발음도 온화하며, Jürgen Basedow교수처럼 억세고 외향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좀 부드럽고 내향적인 스타일에 속해서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대단한 미남자인 Jürgen Basedow교수에 비하면 얼굴은 좀 메주스럽지만,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은근히 지적이고 매력이 있어서 여학생들한테 인기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사실 여기 Hamburg에 유학와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 교수가 내 지도교수인 Magnus교수도 아니고 Hamburg법대의 간판스타 Jürgen Basedow교수도 아닌, 바로 이 사람 Schäfer교수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 그의 법경제학 저서가 Hamburg대학교 법과대학 학생들이 가장 자부심을 갖는 'Hamburg법대 최고의 연구성과물'이라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이유는 그의 초지일관된 법경제학적 방법론의 신선함과 함께, Claus Ott교수와의 오랜 우정에서도 엿볼 수 있는 그의 인간미, 그리고 그가 Hamburg법대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좌파 사회민주주의자 교수라는 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그의 법경제학 교과서 역시도 내가 이곳 독일유학기간 동안 가장 자주 들춰본 책에 속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비록 Basedow교수처럼 화려하게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화제를 끄집어내서 절대로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게 아주 평범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논의를 진행시켜나가는 Schäfer교수의 화법은 정치니 도덕이니 윤리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의 엄숙하고 비장한 모든 당위적 수사들의 허구성을 아주 무덤덤하게 폭로한다는 점에서 사람 속을 후련하게 만들면서도 매우 코믹한 요소를 그 안에 갖고 있는 편이다 (도무지 그런 웃기는 얘기들을 전혀 웃지도 않고 말하는 그의 버릇은 선천적인 개그맨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심각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인지 나도 가끔은 알 수가 없어진다). Berlin이나 Bonn같은 정치도시, 문화도시에서는 학생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살만한, 철두철미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그의 법학논리는 결국 '문제는 돈이다. 쩐이다. 요즘 정치가 아무개가 이런이런 짓을 벌이는 것도 결국은 다 돈~때문에 그러는 것이다'식인 것을 매번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자기가 극단적 자유시장주의자라기 보다는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임을 강조하는 그의 강의가 이곳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공부하고 있는 도시 Hamburg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Hamburg학생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관심은 사실 경제이지, 정치나 철학이 아니며, 동시에 이곳 Hamburg학생들의 좌파적 성향 역시도 오래전부터 매우 뿌리깊게 박혀온 것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지난 수요일의 Podiumdiskussion은 지지난주 주말에 Schäfer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날씨도 덥겠다, Travemünde 해변가에 놀러가서 Tagung을 갖고 'Jürgen Basedow교수와 Ulrich Magnus교수가 요즘 주장하고 있는 유럽계약법의 입법은 아직 시기상조다. 왜냐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거덩~'이라고 발표를 한 것에 대해 Jürgen Basedow교수가 열을 받아서 Max-Planck-Institut 소장이라는 직함의 무게도 아랑곳없이 Hans-Bernd Schäfer교수에게 '어쭈, 그럼 한번 붙어보자'하고 싸움을 건 것이었기 때문에, 장소는 넓은 Max-Planck-Institut가 아닌 Schäfer교수의 홈그라운드 '법과 경제'연구소로 정해지게 되었다 (이 '법과 경제'연구소건물은 옛날에 Hamburg대학 '한국학연구소'가 있던 바로 그 자리이다). 따라서 좁은 토론장에 수백명의 학생들이 일찌감치 몰려왔기 때문에 토론장은 이미 오래전에 자리가 꽉 차버렸으며, 토론시작 10분전에야 자리에 도착했던 나는 멀리서 간이의자를 얻어다가 Jürgen Basedow교수 바로 옆자리에 (불과 몇십cm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토론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는데, 아~ 확실히 Basedow교수가 진짜 잘생기긴 잘 생겼다는 사실을 다시금 바로 옆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싱긋 웃는 게 확실히 스타기질이 있기는 있는 것 같더라~).

Jürgen Basedow교수가 권투선수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Schäfer교수와 싸우는 흉내를 내 학생들을 웃기는 가운데에서 토론은 드디어 시작되었다. 먼저 사회를 맡은 땅꼬마교수 Peter Behrens교수가 "여러분, 이것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원래 법학자는 매우 보수적이고 일국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제화, 개방화에는 반대하는 경향을 갖고 있고, 경제학자는 매우 보편적, 국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제화, 개방화에는 찬성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법학자 Basedow교수는 유럽계약법으로 각국계약법을 통합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법경제학자 Schäfer교수는 이에 반대하고 있으니, 이건 좀 거꾸로 된 거 아닙니까?"하고 재치있는 개회사를 했고 (그런데 오늘따라 Behrens교수는 평소의 unfreundlich한 모습과는 달리 아주 귀엽고 상냥한 모습으로 내게 비쳐졌다. 신장 2m에 육박하는 Basedow교수와 Schäfer교수 두 거구 사이에 키 1m 70cm 정도의 조그만 교수가 끼어앉아있으니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을까?), Behrens교수의 개회사가 끝난 후에는 Basedow교수가 Schäfer교수에게 먼저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 이유는 Basedow교수가 이번 토론의 요청자이며 도전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할 말 많은 사람이 먼저 얘기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니까.

Basedow교수는 특유의 밝고 쾌활한 표정으로 유럽계약법의 당위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미 오늘날 자본투자자들은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자본투하의 가능성을 거의 완전하게 누리고 있다는 점, 인터넷과 컴퓨터 통신기술의 발달로 상품매매에 관한 모든 정보는 이미 국경을 넘어서 유통되고 있으며 이는 자본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있다는 점, 독일기업들도 오늘날 더이상 국내에서만 상품을 생산하고 있지는 않으며, 부존자원이 충분치 않아 수출만이 생존의 수단인 독일의 입장에서 국제무역을 방해하는 모든 법적, 정치적 장애들을 제거하고 불확실성의 요소를 줄여나가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에 속한다는 점, 그러한 점에서 각국마다 상이하게 존재하는 계약법을 최소한 유럽지역만이라도 통합한다면 오늘날 온갖 자질구레한 민사소송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독일기업들과 외국에서의 값싼 상품 및 서비스구입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독일의 소비자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결과 국내외 모두에서 상품의 가격이 더 낮아지며, 상품의 질도 더 좋아지고, 국내외에서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되고, 삶이 더 풍족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Basedow교수는 법학교육의 측면에서도 유럽계약법의 통합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를 했다. 자기가 보기에 독일의 민법, 행정법, 형법이론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정밀하게 발달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다른 나라의 법이론과 직접적으로 비교를 해볼 경우 이론을 위한 이론들이 지나치게 많고, 너무 전통에 얽매여 쓸데없는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거나 현학적이며 번쇄한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UN-Kaufrecht의 입법과 같은, 새롭고 이해하기 쉬우며 영미법과 대륙법의 장점을 절묘하게 조합한 진보적인 입법활동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여기에 독일법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일법학자들의 위상을 유럽내에서 높여주기도 했으며, 이런 쉽고 간단하고 합리적인 법률들은 경제분야에서 거래의 비용(Transaktionskosten)을 줄일 뿐만 아니라 법학도들의 공부부담 역시도 현저하게 줄여주게 될텐데, 아직도 독일법학도들에게 그 엄청난 양의, 쓸데없는 내용의 암기를 강요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비합리적이지 않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Schäfer교수는 Basedow교수에 비해 약간 느릿느릿하게, 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답변을 했다. 국제적 분업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으며, 국제화로 인해 독일의 높은 사회복지수준이 영미의 낮은 사회복지수준과 충돌하여 흔들리게 될 경우 세계화는 '빈곤의 세계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 국가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자본은 이미 자기들끼리 다 합리적 해결방법을 찾아가게 돼있다는 점, 이미 초국적자본들은 나름대로 다 최고급의 변호사들을 채용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상품 및 서비스분야의 표준거래약관을 만들게 해서 그 약관이 사실상 유럽통합계약법의 역할을 수행하며 각국의 민법규정들을 대체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뭣하러 독일국민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비용(Umsetzungskosten)을 들여가며 그런 국가적 입법사업을 벌이느냐는 점, 예를 들어 얼마전에 Hamburg에서 체결된 Air-Bus계약의 경우 이미 최고급의 변호사들이 고용되어 도합 수천장에 이르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그에 관한 모든 법률적 검토를 다 끝내버린 상태인데,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초국적자본들은 이미 국내법률 같은 것은 무시해버리기 시작한지 오래이며, 자기네들 계약에 일어날 모든 문제점들은 미리 최고의 변호사들에게 맡겨서 사전에 다 해결해버리지 않느냐는 점, 실제로 독일의 수많은 사업가단체들은 이미 유럽사법의 통합에 반대성명을 낸지 오래인데, 돈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 일을 뭣하러 우리 법학자들이 김칫국 마셔가면서 열을 올리느냐는 점, 이런 게 모두 다 관료주의적(bürokratisch)이고 중앙집권적(zentralistisch)인 해결방법으로서 효과는 별로 없이 괜히 국민들에게 세비용만 부담시키는 방법이 아니냐는 점 등이었다.

얼굴 두껍고 수완 좋은 Basedow교수와는 달리 손가락을 덜덜 떨어가며 아주 힘들게 토해낸 답변이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답변이었기 때문에 나는 Schäfer교수에게 다시금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시익 웃으면서 다시금 공격을 퍼붓는 Basedow교수는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전혀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Basedow교수의 반론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외국시장에서의 매상이 늘어나야 독일 국내기업들의 지불능력도 높아지고 고용도 더 늘어나고 사회복지수준도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 그리고 독일의 사회복지수준만 중요하고 다른 나라의 사회복지수준은 중요하지 않은가? 유럽의 모든 법률들이 통합되면 오히려 다른 나라의 사회복지수준이 독일수준으로 올라올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사업자단체들의 반대성명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쓸 것이 없다. 그들은 일국수준의 단체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국수준의 사고밖에 하지를 못한다. 국가로부터 보조금 받아먹으면서 자기들끼리 담합을 유지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생각밖에 못하는 겁많은 독일기업들이 주로 그런 단체에서 목청을 높이면서 보호와 후견을 요청하는 것 아닌가? 독일에서도 제대로 된 기업들은 그런 사업자단체 같은 데서 비싼 저녁 먹고 노닥거리는 데 관심이 별로 없다. 법률을 단순화, 투명화, 합리화해서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간분야, 변호사업계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 국가와 학계에서 해줘야 하는 일이다. 특히 프랑스 같은 나라의 기업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프랑스법이 자기들 나라 기업과의 계약서에 먼저, 우선적용되어야 한다고 자존심을 세우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돈많은 대기업에서야 최고의 변호사를 사서 쓰니까 그런 법률문제에 걱정이 별로 없다지만, 조그마한 중소기업들은 외국기업과 거래할 때 항상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런 중소기업들을 좀 더 편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않고, 변호사들 돈 벌 거리들만 만들어주려고 그러는가?

물론 Schäfer교수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계속 손가락을 가늘게 떨면서, Schäfer교수도 한치의 물러섬 없이 반론을 계속했다: 그래, 좋다.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통합법률을 만든다고 하자. 그런데 모든 통합법률에는 '일반규정'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마련인데, 그 일반규정이란 것을 과연 어떤 식으로 만들 것인가? 독일의 '신의성실(Treu und Glauben)'에는 예전부터 축적된 판례도 있고, 독일사람들이 그 'Treu und Glauben'이란 말을 들으면 '아, 무슨 얘기를 하는구나'하고 다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없애고 예를 들어 영미법의 'honesty in fact in the conduct or transaction concerned' 'a duty of good faith in its performance or enforcement' 같은 것을 일반규정으로 삼는다고 하자. 그럼 독일사람들이 그게 무슨 소리인 줄 아느냐? 그래, 좋다. 독일법에도 영미법에도 나오지 않는 전혀 중립적이고 새로운 일반규정을 만들어 그걸 새로운 유럽계약법에 집어넣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일반규정을 판사들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그 용어선택과 해석에 관해 발생하게 될 엄청난 국가간 이견들을 조정하려면 정말이지 수많은 기간과 노력들을 필요로 하게 될텐데, 그 비용들이 다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물론 각국간에 법률들이 달라서 급부장애시에 예기치 않은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도 대기업은 자기들이 변호사를 사서 그러한 비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일반국민들은 그런 의사소통문제때문에 설령 가끔 몇만원 정도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냥 거래위험으로 간주하고 넘어갈텐데, 왜 굳이 그런 돈 들어가는 사업을 꼭 벌여야 하는가? 그리고 국제사법은 그냥 폼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이미 조약을 맺어 각국의 국제사법규정들을 통일한지가 오래되었는데, 각국의 계약법규가 충돌할 경우 섭외사법으로 해결해도 충분한 것을 왜 굳이 유럽계약법까지 만들어서 중앙집권적으로 관료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같은 학자들 연구비 더 받아내고 제자들 연방정부에다가 취직 더 많이 시키려고 무리하게 주장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하여튼 이런 식으로 토론이 꽤 오랜 시간 진행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토론장소가 Schäfer교수의 홈그라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학생들의 대다수는 압도적으로 Basedow교수의 편을 들었다는 점이었다. 왜? 그 이유에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Basedow교수가 초두부터 '유럽계약법이 만들어지면 학생들의 공부부담이 줄어들 것이다'라는, 독일법대생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달콤하기 그지없는 공약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_-;;; 우리나라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독일법대생들도 독일민법의 그 수많은 복잡한 규정들을 다 외우는 데에 이제 거의 다 넌더리를 내고 있는 수준인데, 그 상황에서 간단명료한 유럽계약법이 출현하게 된다니, 이 아니 독일법대생들 입장에서 쾌재를 부를 일이 아닐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토론회를 보면서 내가 인상깊게 생각했던 것은, Basedow교수가 옳고 Schäfer교수가 옳고 하는 것을 떠나서 독일교수들이 저렇게 학문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토론에도 매우 능하다는 사실, 또 그렇게 수많은 말들을 서로 쏟아부으면서도 절대 화를 내는 일이 없이 상대방에 대해 단 한마디도 모욕적인 말을 내뱉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 (특히 Basedow교수는 자기가 아주 날카롭게 비판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얼굴에 웃음기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민감한 치고받기 싸움을 햇병아리 학부 1학년생까지도 다 와서 볼 수 있도록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다는 사실과 토론이 끝나고 난 후 서로 웃고 악수를 하면서 아무런 감정의 앙금 없이 헤어진다는 사실 등이었다. 그리고 사회자인 Peter Behrens교수는 평소 Basedow교수랑 더 친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리 없이 매우 중립적으로 사회를 잘 보았으며, Basedow교수와 Schäfer교수 둘 다 사회자가 부여한 발언시간을 거의 큰 오차 없이 잘 지키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여튼 독일사람들... 규칙 지키는 거 하나는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

작년에 내 지도교수인 Ulrich Magnus교수와 Reinhard Zimmermann 교수 사이에 벌어진 '법은 문화와 더 관련이 있는가, 언어와 더 관련이 있는가'에 관한 논쟁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Podiumsdiskussion이 아닐 수 없었으며, 옛날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선후배간에 논쟁이 벌어지면 꼭 멱살잡이에 주먹다짐까지 가고 서로 철천지원수 사이로 관계가 순식간에 악화되어오던 모습만 봐오던 나로서는 이런 cool한 논쟁의 광경들이 참 부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논쟁하는 동안 아주 치열하게 자기 할 말 다 하고 상대방의 말에 대해 아주 악착같이 의심하고 반박하고 하면서도 형식적인 예절을 철저히 지키고 절대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들의 학문적 인격적 내공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하는 게 충분히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독일이란 나라가 아주 옛날부터 이렇게 토론을 잘하는 나라였느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토론이나 논쟁은 오히려 앵글로색슨애들이나 프랑스애들이 제일 잘하는 것으로 이미 18세기부터 정평이 나있었으며, 그것은 그 나라들 특유의 살롱문화가 토론이나 논쟁의 인프라를 굳건히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 어떤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좀 극단적인 얘기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재미있고 명료하게만 얘기를 해주면 그에 맞서서 다른 사람이 반대편의 얘기를 해서 균형을 맞추고 그런 의견대립들이 살롱에 활기를 불어넣는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면서 원래 토론문화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지만, 독일은 사실 그러한 전통이 별로 없는 편인 나라였다.

19세기 후반 Bismarck시기까지만 해도 독일은 자유로운 시민사회의 성장은 철저히 저지당했었고, 의사표현의 자유(Redefreiheit) 같은 것도 거의 인정되지 않던 나라에 속했다. 심지어 1940년대까지만 해도 Hitler같은 독재자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독일의 상황에서 대다수의 학자들은 철저한 정치적 불능상태, 벙어리상태에 놓여 있어야 했기 때문에 독일의 이론들은 지극히 내면화, 사변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경향은 물론 어떤 논리를 끝까지 파헤칠 수 있는 철저성을 부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감을 잃고 자연스러운 내적, 외적 균형을 상실한 채 오직 이론을 위한 이론에만 치우치는 독일학문의 극단적 관념성과 불투명성을 결과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발은 또다시 극단적인 실천철학인 Marx의 유물철학을 불러오기도 했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문제를 갖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의 학계는 이미 옛날 19세기의 '신성한 탐닉'이나 '무상의 환희'를 보장해주는, 현실로부터 고립된 성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2차대전후 68혁명을 거치면서 독일에는 영국이나 프랑스를 능가할 만큼의 건전한 시민사회가 급격히 형성되었으며, 이로써 학문 역시도 더이상 예전처럼 현실에 대해 절망이나 체념, 달관만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진리를 자기 자신에게 내재화하는 데만 그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사상을 자기 주위의 긴박한 현실문제(예를 들면 이번의 유럽계약법 제정문제)에 대한 해석이나 삶의 실천에 적용하면서 그 사상의 적용범위와 결함부분을 분별하고, 그 결함부분을 유효히 극복하려는 노력이 학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중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 가장 유효한 수단은 토론이나 논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므로, 독일학계에서도 토론과 논쟁은 이론과 실천 사이를 매개하는 최상의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독일의 19세기에 더 가까웠으며, 그런 점에서 독일의 18~19세기 근대철학이 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높은 관심을 얻었던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인터넷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옛날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볼 수 있던 자유로운 담소문화, 살롱문화가 제법 확실히 정착될 계기를 얻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내겐 가끔 들곤 한다.

물론 옛날 우리나라 운동권사회에서는 '살롱좌파'란 말이 매우 모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 학자건 운동가건 간에 토론과 논쟁을 외면하고서 자기 이론이나 실천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옛날의 우(愚)를 계속 범할 경우, 한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복잡하게 잘 꾸며진 이론의 미궁을 지어 그 안에서 자기랑 뜻을 같이 하는 소수의 특권적 신도들과 안주하게 되거나, 집합성만이 관철되고 개인의 자유로운 소수의견이 함몰되며 전체의 광기와 서열의 권위에만 휘둘리는 강압적 실천의 폭력에만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론과 실천이 자연스럽게 결합되고 서로 검증될 수 있는 계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독일의 교수들 역시도 그냥 토론 없이, 논쟁 없이 살아가면 자기에게 편하다는 사실을 어디 몰랐겠는가? Basedow교수와 Schäfer교수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그들도 이미 자기 저서도 있고 자기 직위도 있겠다, 우리나라처럼 이미 자기가 이룩해놓은 것을 가끔씩 학술지 같은 데에 발표하고,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자기 이론만 주입하는 식의 강의를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학생들로부터 존경받으며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자기 학술적 연구성과를 다듬고 또 다듬는 데에만도 시간이 모자라 죽을 지경인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걸핏하면 이런 Podiumsdiskussion을 갖고 여러 어린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면서 스타일을 구기는 모험을 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자기 이론이 아주 간단하게 부정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공개토론을 벌이면서, 아직 햇병아리인 대학 1학년 학생들이 아무 개념없이 마구 던지는 질문에도 쩔쩔 매면서 답변하는 곤욕을 치러야 하는가? 결국 그들도 자기 권위보다는 자기 사상의 현실적 적용여부와 그에 대한 검증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독일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직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돼라' '윗사람이 시키는대로 그냥 복종해라' 같은 교육에 길들여져가는 답답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화와 토론보다는, 그냥 나이로 힘으로 권위로 밀어붙이며 거칠게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문화를 곱씹어보며, 그러면서도 인터넷공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정착될 가능성을 보이는 이상적 토론환경들을 떠올려 보면서, 하루빨리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이런 Podiumsdiskussion같은 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지금 유럽통합이 힘차게 진행되면서 국경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심지어는 법제도까지 점차 하나로 통합되는 와중에서 Hamburg법대에 전통적인 법학방법론이었던, 비교법적인 방법론과 법경제학적인 방법론이 앞으로도 더욱 더 힘을 얻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쩐지 내가 다니는 학교PR을 너무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 이번은 그 두가지 방법론이 거대한 충돌을 일으켰지만, 서로가 자기 역할을 뒤바꾼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경우 이 두가지 방법론은 충돌하기 보다 서로 결합하기가 쉬운 것이며, 요즘은 그 누구도 법학이 이제 일국적인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고, 그 누구도 앞으로 법학이 예전처럼 경제학 기타 사회과학의 영향으로부터 마냥 독립된 지위만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게 된다.

영미법이나 프랑스법에 대해 아직 일천한 지식밖에 갖고 있지 못하며, 법경제학에 대한 공부도 아직 부족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다시금 분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여튼 앞으로 유럽사법이라는 새로운 법영역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그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새삼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이번의 Diskussion자리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했다. 만약 유럽계약법이 언젠가 정말로 통합제정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우리나라 법학계와 변호사업계는 그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충격에 휩싸이게 될런지, 그리고 우리나라 법학계가 그에 관한 준비를 과연 착실하게 하고는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도 새삼 의문을 갖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나 역시도 그에 관한 대비를 잘하고 있는지 반성을 해보게 되었던 자리였다.

하긴 나같은 유학생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 법학계, 그 확실한 철밥통을 꿰차고 계신 우리나라 교수님들께서 뭐 그런 문제에까지 굳이 신경을 쓰실 필요가 있겠는가? Schäfer교수의 입장에 따르면 그러한 준비는 자본이 다 알아서 하게 돼있으니 (예를 들면 삼성그룹 법무팀이나 김앤장법률사무소 같은 데서 자기네들 고용변호사들 유럽에다 연수시켜서 다 자발적으로 준비하게 될 것이니) 내가 굳이 우리나라 교수님들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 결론은 뭐냐? 하면 '나 하나라도 잘하자'라는 것이 되겠다. 남들 신경 쓸 것 하나도 없고 그저 내 발등 위의 불이나 끄면서 살자~는 것이다. 나야 Hamburg대학에서 민법공부를 하고 있으니 비교법과 법경제학을 필수로 해야 된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비교법과 법경제학을 필수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03. 6. 22.


성진 wrote:
CNN에서 매일 방영하는 "Crossfire"라는 토론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가장 미국적인 Debate프로그램으로 꼽을 수 있는데 마침 워싱턴 DC에서 생중계를 하는 터라 몇번 구경간 적이 있었죠. 위의 Podiumsdiskussion같은 학술적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토론은 이렇게 즐겁고 치열하게 하는 거다라는 걸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바깥에까지 이 프로그램이 중계되는 거 같지 않아서 조금 아쉽더라구요.

고래 wrote:
아... Crossfire... 저희 집에도 CNN이 나오는데, 꼭 한번 챙겨서 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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