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반대시위2 - Genua시위 배경분석


- 이하의 글은 2001년 8월 1일 재독한인 뉴스웹진 "베를린리포트"에 제가 올렸던 기사와 그에 대한 익명의 답글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지난 G-8 정상회담에서 516명의 부상자와 함께 심지어는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경찰이 잘못한 것이냐, 아니면 시위대가 먼저 잘못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비단 유럽 각국의 언론에서뿐만 아니라 이곳 유학생사회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한동안 언론은 이에 대해 이태리 내무부당국의 공식발표만을 신뢰해 마치 일부 과격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저지른 것처럼 보도했으나, 시위대 측에서 그것이 경찰측의 의도적인 공격에 의한 것이었으며, 경찰은 평화시위대의 중심부를 향해 특공병력을 투입하기도 했었음을 차츰차츰 증언하기 시작하면서 시위의 폭력성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검토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우선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날 일요일 아침에 이루어졌던 이태리경찰측의 "번개작전"이었다. 이때 경찰측은 시위대가 묵고 있던 두개의 건물을 습격했는데, 이 두곳의 학교건물에는 "Attac"이라는 과격시위대 집단 뿐 아니라 "Social Forum Genua"와 같은 평화시위대 집단도 함께 유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시위대원들은 "Attac"이건 "Social Forum Genua"이건 상관없이 잠결에 경찰의 습격을 받아 곤봉으로 무수히 구타당하고 머리가 벽에 짖찧히는 폭행을 당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시위대원들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더러는 땅바닥에 완전히 뻗어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짖이겨졌다. 거기서 잠자고 있던 대다수의 시위대원들이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 같은 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는 온건한 사람들이었음을 감안하면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장갑차로 숙소문을 부수고 들어가 이렇게 당장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폭행한 것은 거의 이례적인 일에 속했다. 또 그 자리에서 연행된 93명의 시위대원 가운데에는 독일인이 무려 42명이나 되었으므로, 이미 독일 외무부장관 Fischer는 이에 대해 이태리당국에 해명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러한 공격적 사전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태리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현장에 2개의 화염병과 25개의 칼(그 중 몇개는 식칼), 1개의 방망이, 물안경, 붕대, 고무장갑, 사진기 그리고 생리대(Damenbinde)가 발견되었다면서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 가득한 학교건물을 습격해 잠자고 있던 시위대 전원을 연행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공공연히 '생리대'까지 언급하면서 폭력적 진압을 정당화했지만 (생리대가 그렇게 위험한 물건인가?) 경찰은 빗발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예 대답을 회피하였다.그러자 인터넷공간에서는 경찰의 이러한 과잉진압이 사실상 복수(Rache)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왜냐하면 전날 경찰병력의 대규모투입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국가수반들의 회합에 상당한 지장을 주었기 때문에 경찰수뇌가 자존심을 만회하고 싶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거기다 그 학교건물에는 전날 경찰의 과잉진압 장면을 담은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보관되고 있었다는 점도 그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요소였다.

그리고 경찰이 소위 "검은 블록(Schwarzen Block)"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시위대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경찰은 자기들이 유사시 폭력적인 진압을 하더라도 이를 용이하게 정당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위대 가운데에서 과격한 무리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처음부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봉쇄망을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위대 가운데 일부 과격파들은 시내를 활보하며 이틀에 걸쳐 41개의 상점과 83개의 자동차를 신나게 파괴할 수 있었고, 이러한 장면은 보수언론과 방송에 의해 연일 세계 각국의 뉴스에서 집중보도되었다.

이번에 데모에 참가한 수십만 시위대원들을 보수언론에서 "세계화반대자(Globalisierungsgegner)"라 칭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시위대원들 대다수는 사실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를 보다 넓은 차원에서 추진하자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는 데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세계화가 일방적으로 강자의 이익만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반대할 뿐이지 전세계가 하나된다는 이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세계화반대자라기 보다는 "세계화비판자(Globalisierungskritiker)"라 불리우는 것이 더 합당했다. 그들은 마치 다국적 자본가들 만큼이나 아주 세계적인 범주에서 계획하고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통한 국제적 연대와 상호정보교환이 없었으면 이번과 같은 대규모 시위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국제기구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민주적인 개혁만을 주장했을 뿐인 것이다.

시위대가 아무런 이유없이 그저 감상적인 충동에 의해 시위에 나선 것처럼 언론에 의해 보도되고 있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유럽의 좌파들은 최근 그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너무나 많은 객관적인 근거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1990년대 말 이미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새롭게 절대적 빈곤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거리에 넘쳐나는 노숙자와 실업자의 물결은 이미 우리나라만의 현실이 아니다. 이에 대해 독일의 Schröder와 프랑스의 Jospin을 중심으로 한 유럽내 좌파정상들이 자본흐름과 외환거래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개혁을 약속했지만, 이러한 개혁은 전세계 금융자본의 조직적인 로비에 부딪쳐 결국 좌초되고 말았다.

그밖에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영국의 Cayman군도, 네덜란드의 Antillen, 리히텐슈타인 또는 홍콩 같은 면세무역지대는 차츰 세계경제의 블랙홀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곳 세금의 오아시스(Steueroasen)지역에는 벌써 5조 달러의 민간자본이 유입되었고, 이미 독일 한 국가에서만도 매년 100억마르크의 돈이 이곳으로 빠져나가는 중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유럽각국의 좌파정부가 제동을 걸려 했지만, 이미 커질대로 커진 초국적 금융자본의 힘은 각국정부가 그러한 부유층의 특권을 박탈할 수 없게 욱죄고 있었다.

그밖에도 갈수록 비대해져가는 미국의 영향력 속에서 지난 미국대선에 보수파인 George W. Bush가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더욱더 유럽 좌파들의 위기감을 부추기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때 미국은 남한에 대해 긴급자금을 지원해주면서, 남한정부의 채권국가이던 7개 서방선진국가가 남한의 채무에 대해 그 어떤 연대책임도 부여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한경제 혼자서 다 뒤집어쓰도록 못박은 적이 있었다.그 결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민노동량을 자랑하며 서방시장에 가장 값싼 중질의 상품을 가장 부지런히 내다판 죄밖에 없는 이 조그맣고 착실한 나라는, 단지 1997년을 전후해서 한보, 기아사태 이후 너무 많은 단기금융을 받아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경제주권을 박탈당한 채 대부분의 알짜기업들과 알짜국부들을 미국, 일본, 유럽각국의 다국적 자본에 헐값으로 내다팔고, 국민의 4분의 1 가까이를 갑작스런 빈곤과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유럽의 좌파들은 자기 일처럼 분노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씨가 착해서 그런지 그냥 이 모든 게 김영삼과 김대중이 잘못했겠거니 그들만 욕해버리고 만다.)

물론 유럽이라고 해서 절대 사정이 좋은 게 아니다. 뿌리깊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전통을 갖고 있던 독일이지만 지난 7년간 국민총생산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배분되는 몫은 52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무려 10퍼센트나 그 비율이 떨어졌다. 반면 전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기업과 자본에 대한 세금경감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벌써 1995년만 해도 유럽의 기업들은 그 10년전보다 40퍼센트나 세금의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더 끔찍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경제격차가 더욱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까지만 해도 전세계 상위 20퍼센트 인구가 벌어들이는 1인당 소득은 하위 20퍼센트 세계인구가 1인당 벌어들이는 소득의 30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은 78배로 그 격차가 더욱 더 벌어진 상태이다.

이런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한때 유럽 좌파들은 각국에 좌파정부만 세우면 다 문제의 해결이 될 줄 알았었다. 일단 자기들끼리 열심히 단결하고, 개혁적인 정치가들을 키우고, 그들을 위해 유권자기반을 다지고, 그래서 일국적으로나마 권력의 포스트를 쟁취하면 상황은 점차 나아질 줄로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힘을 합쳐 1990년대 말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좌파정부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Tony Blair는 좌파의 가면을 쓴 우파였으며, Gerhardt Schröder나 Lionel Jospin 같은 비교적 좌파 정치가다운 정치가들 역시도 자본유출과 투자회피의 위협 앞에서 전세계 다국적 투기자본의 위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들이 좌파적 개혁을 실천했다고 하더라도 그 즉시 독일과 프랑스는 외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져서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진보적 개혁을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좌파들은 전세계적 연대 이외의 다른 방법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초국적 자본 앞에서는 아무리 시위를 벌여봤자 그들 자본가들은 어차피 자기들에게 공적인 권한 같은 게 없다고 발뺌해버리면 끝이다. 그러므로 다들 각국의 로비스트들로부터 엄청난 요구사항을 떠안고서 무거운 어깨로 회담장에 모인 각국의 정상들이라도 붙들고서 보다 인간적인 자본주의, 보다 인간적인 세계화를 위해 읍소하고 시위하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이 언젠가 도래하리란 것은 이미 Jürgen Habermas도 "후기국가적 정세(postnationale Konstellation)"란 표현으로 예언한 바가 있었다. 이제 일국의 단위에 집착하는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이다. 즉 모든 결정권한이 일국의 의회로부터 초국가적 기업집단으로 넘어간 이상 "구두정치(Verbalpolitik)와 현실정치(Realpolitik) 간의 괴리"는 점점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의 경제학자 Robert Wade도 영국의 "Economist"지에서 이미 이렇게 예견한 바가 있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계속 커지다가는 전세계가 평화지대와 소요지대로 양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 결과 다수의 실업자와 분노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정보화기술을 수단으로 해서 힘을 합치고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이제는 분배문제가 전세계적인 의제로 놓여져야 하는 때라고.

그런 긴장된 상황 속에서 좌파와 우파간에 제노바에서의 일대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파들은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좌파 시위대를 어떻게 하든 감상적인 과격집단으로 몰고 가려 했고, 그들의 그러한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태리 내무부가 임명한 "특별검사관(Superinspektoren)"들에 의해 "경찰측의 근거없는 폭력"이었다는 결론이 오늘 내려지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좌파와 우파간의 문제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도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이며, 우리들에 대해 모든 것을 결정하면서도 우리들의 참여는 배제하려고 하는 "그들"의 권력이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인간은 시장경제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이다. 투기적 시장경제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고, 그것을 정부기관이 공적으로 제어하지 못할 때에는 여기에 시민사회가 개입하는 것이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다. 이제 전세계적 부는 시장경제의 카지노에서 당첨된 몇몇 수완가들에게 뿐 아니라 모든 대중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하는 때가 왔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도 그러한 범위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면 더이상 제노바에서 있었던 바와 같은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들 시위대원들의 대다수는 감상적이고 과격한 폭도가 아니었다. 그들 대다수는 냉철하고 평화적인 비판가들이었다.

2001. 8. 1.



빈정대기 wrote: 독일 정보를 빙자로 주사파들의 구호 등 정치 선전장을 꿈꾸는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여성 wrote: 생리대가 여기서 왜 나오죠? 거기 집착하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여성2 wrote : 고래님이 쓰신 글들 성향을 볼때 이번에 생리대를 언급하신 것도 조금은 여성들을 자극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과민반응일 수도 있겠지요.

!!!휴 wrote : 전혀 자극 받진 않는데 나는 ..부러워서 그러겠죠? 그리고 신경쓸 일도 아니구요.

고래 wrote: 생리대를 처음 언급한 것은 이태리경찰 대변인이었고요. '여성'님께서 자꾸 생리대, 생리대 언급하시니까 저도 갑자기 여자가 되어 생리가 뭔지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까지 지금 드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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