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1년 9월 10일 재독한인 뉴스웹진 "베를린리포트"에 제가 올렸던 기사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지난 44년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져온 SPD의 아성 Hamburg이 요즘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1998년 연방총선에서는 SPD에게 50,6%의 몰표를, Grüne에게도 7,8%의 표를 몰아주어 독일연방에서도 가장 확고한 SPD의 아성으로 평가받아온 Hamburg이 이번 9월 23일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 CDU와 극우정당 Schill의 손아귀에 떨어질지도 모르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Hamburger Morgen Post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SPD의 지지율은 37,07%, Grüne의 지지율은 11,99%에 불과하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49,06%에 지나지 않아 좌파의 압승은커녕 선거승리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반면 보수정당 CDU의 지지율은 25,26%이며, 극우정당 Schilly의 지지율은 12,04%, 그리고 이들 우파연합과 연대할 것으로 보이는 자유주의정당 FDP의 지지율은 7,88%에 달한다. 이 세 정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45,18%. 여기에 앞으로의 선거운동기간 동안 우파들이 몇 퍼센트의 지지만 더 획득하면 충분히 SPD와 Grüne의 좌파 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어쩌다가 Hamburg-SPD가 이 지경까지 몰락하고 말았는가? 현재 시장직을 맡고 있는 Ortwin Runde는 사실 얼굴은 비록 사기꾼같이 생겼지만 지금까지 별 무리 없이 시장직을 수행해온 것으로 주위로부터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Hamburg의 실업률을 무려 30%나 경감시켰으며, Hamburg의 시재정을 적자상태로부터 구해냈고, 얼마전 에어버스 A380을 Hamburg에 유치함으로써 수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앞으로 모든 직장여성들이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Hamburg 시내에 더 많은 탁아소를 설치토록 하겠다는 그의 공약 역시도 많은 이들에게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SPD의 지지율이 급락했는가? 무엇이 Hamburg에서 갑작스런 우파의 득세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는가? 그 원인의 한 가운데에는 최근 거의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다고 전해지는 Hamburg의 치안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근래 시내에서 연달아 일어난 강력범죄 사건, Hamburg 중앙역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마약거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얼마전부터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Hamburg의 외국인 숫자와 맞물려 Hamburg을 많은 순혈(?) 독일인들에게 "더러운 도시"로 여겨지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많은 Hamburg 시민들은 술자리 같은 데서 이제 노골적으로 SPD정권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SPD는 Hamburg에서 그동안 너무 오래 정권을 잡고 있었고, SPD의 관료들은 무사안일에 빠져 있으며, 마치 독버섯처럼 시청 내에 번창해서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고. 반면 Hamburg 내에서 웬 외국인들은 이렇게 많아진 것인지. 이제 그동안 유럽 최고의 부자도시라 불리우던 Hamburg은 이들 더러운 외국인들로 인해 Amsterdam과 함께 유럽 최고의 시궁창으로 변모해가고 있다고. 불과 5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때만 하더라도 Hamburg 중앙역 앞에서는 이토록 많은 인간쓰레기들과 외국인들을 볼 수가 없었다고.
이런 여론을 틈타 지금 이곳 Hamburg에서는 "북유럽의 하이더 (Haider des Nordens)"라 불리우는 극우 정치가 Ronald Barnabas Schill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최근 지지율을 16%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던 이 과격한 남자는 Hamburg이 오늘날 투견, 디스코텍, 깡패, 마약거래상의 수도가 되었다면서 Hamburg을 독일연방내 범죄의 중심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를 포함한 우파연합(Bürgerblock)이 승리할 경우 Hamburg시정부의 내무부장관이 될 것으로 내정되어 있는 이 전직 판사가 꿈꾸는 것은 Hamburg을 München이나 Stuttgart보다도 더 깨끗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마약거래는 뿌리뽑혀져야 하고, 모든 범죄적인 외국인들은 시로부터 강제추방되어야 하며, 청소년범죄자들은 격리수용되어야 하고, 마약중독자들은 매일마다 강제로 구토제를 복용해야 한다.
Schill은 공약한다. 이번에 우파가 집권할 경우 Hamburg시에는 약 2,000명의 경찰병력이 증원될 것이라고. 물론 그는 그 정도의 치안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약 1억 5천만 마르크의 사회복지예산을 삭감하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그는 입버릇처럼 "kriminelle Ausländer raus"를 외쳐대는데, 과연 외국인들이 다들 범죄적이라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외국인들 중에서도 범죄적인 외국인만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외국인들이 범죄적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Schill은 원래 심리학도였다. 그 뒤 전공을 바꾸어 법학을 공부한 뒤 우수한 성적으로 Hamburg 형사지법 판사에 임용된 Schill은 한동안 지극히 평범한 판사로서 자기 업무에 충실했다.
그가 갑자기 이상한 판결을 내리기 시작한 것은 5년전 어느 인도인이 불법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죄로 그에게 2년 6개월 형을 언도한 때부터였다. 그 후 그는 남의 자동차에 장난삼아 상처를 냈다는 이유로 어느 행인에게 마찬가지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했으며, 동료의 탈옥을 도우려다 붙잡힌 어느 소년에게는 검사가 겨우 1,000마르크의 벌금형을 구형했음에도 불구하고 1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가 "무자비법관(Richter Gnadenlos)"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1997년 그는 야만적인 살인범(bestialische Tötungsdelikte)과 외국인에 의한 촉탁살인(Auftragsmorde durch ausländische Killer)에 대해서는 사형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Hamburg 법무부장관이었으며 현재는 독일연방 헌법재판관인 Wolfgang Hoffman-Riem은 이렇게 논평하기도 했다. "그는 정말 대책이 없는 인간이다. 판사가 되어가지고서 세상에 사형제도 도입을 주장하다니. 그것도 특히 외국인에 대해서! 나찌시대 기요틴의 부활이란 말인가?"
그 뒤로 Schill은 자기가 판결을 내릴 때 방청석에서 기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명의 방청객을 3일간의 구류에 처했으며, 그에 대해 Hamburg 검찰들이 항고하자, 그 항고서면을 구류기간이 끝난 3일 뒤에야 접수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동료들이 그를 직무유기로 고소하여, 그는 현재 대법원에서 벌금형 판결을 받을 위기에 놓여있는 참이다.
그는 항상 주장한다. Hamburg은 좌파 정치가들로 인해 오늘날 범죄의 메트로폴리스가 돼버렸다고. 그런데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Schill의 주장과는 달리 지난 30년동안 Hamburg시에서 범죄율이 뚜렷하게 증가했다는 징후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성범죄율은 지난 68혁명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성(性)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이래 오히려 매년 지속적으로 뚜렷하게 감소해왔으며, 기타의 범죄율도 늘어나긴 커녕 대체로 줄어들어왔다.
그래서인지 Hamburg대학의 범죄학 교수 Fritz Sack은 이번 Hamburg지방선거에서 치안문제가 최고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근래 독일이 전에 없이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보수층 사이에 형성된 막연한 불안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세제와 연금제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독일 보수층들의 불만이 엉뚱하게도 외국인범죄자에 대한 분노로 폭발해,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는 범죄율이 독일인들 사이에서 마치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설령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큰 범죄가 몇 건 Hamburg에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범죄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런 문제를 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나 외국인 추방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회복지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단순히 범죄자들에 대한 강경책만 구사할 경우 범죄수법이 더 잔인해지거나 범죄조직이 더 대형화할 위험이 있으며, 더구나 Hamburg경제에서 벌써 큰 몫을 차지하게 되어버린 외국인 노동자들의 반독일 감정을 자극할 경우 순혈 독일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더 큰 충돌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특히 그동안 Hamburg은 좌파가 장기집권하면서 극우폭력에 관한 한 거의 완벽하게 안전한 도시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우파가 Hamburg에 집권해서 거의 공공연하게 외국인적대적 정책을 펼칠 경우 이로부터 마치 자기 세상 만난듯 더 힘을 얻게 될 Hamburg 인근의 스킨헤드들이 앞으로 Hamburg시내에 진출해서 아주 본격적인 대 외국인테러를 자행하게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스킨헤드들과 외국인들 사이에 백주 대낮에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질 가능성까지도 존재한다.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 소위 우파 자유주의자 집단인 FDP의 행보는 아주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SPD와 Gruene로부터 버림받아 Hamburg 시정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해온 FDP는 이번 기회에 CDU, Schilly 등에 빌붙어 모처럼 숙원을 풀어보려 했지만, 중앙당에서 Guido Westerwelle 등이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Schill 같은 극우주의자와 연정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못박고, 거기다 Hamburg-FDP의 영원한 돈줄이라고 할 수 있는 Hamburg의 산업자본가, 무역자본가들이 절실하게 값싼 외국인노동력을 필요로 해, Hamburg-FDP가 CDU, Schilly와 손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었다.
그러나 일단은 정권에 참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손익계산을 마친 Hamburg-FDP가 얼마 전 확실하게 CDU 편에 붙어버림으로써 전황은 좌파들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 이건 Hamburg 좌파들에게도 약간의 책임을 돌릴 수가 있는 것이, 그동안 좌파들이 Hamburg에서 너무 쉽게 계속 집권해오다보니 좌파들 사이에 예전의 순수함은커녕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독일의 진정한 좌파는 오히려 München이나 Bayern에 가봐야 찾을 수 있다. Hamburg의 좌파들은 모두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다. Hamburg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우선 좌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란 말까지 나오게 된 것도 이런 상황맥락 속에서 이해할 측면이 있다. 물론 이런 식의 말은 마치 "한국에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오직 경상남북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으며, 반면 한국 전라남북도의 진보주의자들은 모두 기회주의자에 출세주의자들일 뿐이다"란 말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편견을 유발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물도 고이면 썩게 마련'이란 말과 같이 한편으로는 참 귀담아 들어둘 고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Hamburg-SPD가 한번 혼쭐 나봐야 한다손 치더라도, Schill 같은 인간이 Hamburg의 내무부장관이 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8월 27일에는 가수인 Marius Müller-Westernhagen, Udo Lindenberg, 배우인 Hardy Krüger, 작가인 Ralph Giordano, 그리고 함부르크 Schauspielhaus주인인 Tom Stromberg, Thalia-Theater주인인 Ulrich Khuon, 함부르크국립극장 총음악감독 Ingo Metzmacher 등의 예술인들이 총연대해서 "Hamburg에 Schill을 비롯한 우파가 집권하게 될 경우 Hamburg의 전통적인 세계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9월 7일 금요일에는 PDS의 Gregor Gysi가 Hamburg에 찾아와 Gänsemarkt에서 연설회를 가졌고, 이 자리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서도 수백명의 인파가 자리를 메워 그의 연설을 경청했다. 그들 앞에서 Gregor Gysi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그 어떤 경우에도 재산의 안전이 인간존엄의 불가침성에 우선할 순 없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확보 없이 치안정책만 강화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잘못된 분배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외국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폭발되는 것은 우리가 최고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번에 Schill을 막느냐 못 막느냐의 문제는 비단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 독일연방 전체에 민주주의가 파괴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
200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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