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1년 9월 25일 재독한인 뉴스웹진 "베를린리포트"에 제가 올렸던 기사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때 지식인, 예술가, 학자집단들의 집중지원에 힘입어 우파들과의 지지율격차를 10% 가까이 따돌리는 것처럼 보이던 좌파정당 SPD, Grüne가 지난 9월 23일 있었던 Hamburg 지방선거결과 각각 36,5%, 8,5%라는 형편없는 득표율을 기록, 각각 26,2%, 19,4%, 5,1%의 지지율을 올린 CDU와 극우정당 Schill, 그리고 FDP에 석패하고 만 것이다.이번의 우파승리로 Hamburg는 44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Bremen과 함께 한때 좌파의 아성이라 불리우던 Hamburg의 사회주의적, 개방적 분위기도 갑작스런 변화의 바람을 타게 되었다. 물론 SPD는 36,5%라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득표율로 여전히 Hamburg 내에서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4년전 독일내 그 어느 녹색당보다도 많은 득표율(13,9%)을 올렸던 Hamburg-Grüne가 몇년전의 내분후유증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이번에 8,5%로 지지율이 급락함으로써, Hamburg좌파는 끝내 과반수 달성에 실패하였고, Hamburg 시정은 우파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되었다.
Hamburg-SPD의 시장후보 Ortwin Runde는 앞으로 CDU, FDP를 연정에 끌어들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CDU, FDP의 반응은 지극히 차갑기만 하다. 이미 CDU의 시장후보 Ole von Beust는 Berlin에서 Angela Merkel, Volker Rühe, Laurenz Meyer, Roland Koch을 비롯한 당수뇌와의 협의를 통해, 극우정당 Schill과 연정하는 데 있어서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약속받은 상태이다. 4년전 3,5%의 득표율로 Hamburg 시의회에서 단 1석의 의석조차 얻지 못했던 Hamburg-FDP는 이번에 5,1%로 간신히 5%를 넘겼지만, 그 약간의 의석만으로도 킹메이커로서 톡톡히 몸값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Hamburg-SPD가 "어떻게든 Schill의 입각을 막기 위해" 중도정당 FDP와 적,녹,황의 '신호등연정(Ampelkoalition)'를 만들어서라도 정권을 유지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FDP의 자유주의적 당풍을 감안하면 Schill과 같은 극우주의자와의 연대는 말도 되지 않고, 그보다 SPD와 연정을 이루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미 FDP의 중앙당수 Guido Westerwelle는 이번에 Hamburg-FDP가 극우주의자 Schill과 연대할 경우 연방차원에서 FDP의 당 정체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미 Hamburg-SPD의 시장후보 Ortwin Runde는 선거전에 박쥐정당 FDP와 연정을 하지 않기로 공언했었고, Hamburg-FDP의 당수 Rudolf Lange 역시 Hamburg-SPD와의 연정을 거절하겠다고 아주 명백하게 선언한 바 있으므로 Hamburg에서 신호등연정의 가능성은 매우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유럽내 모든 좌파 지식인들에게 공포를 자아내며 Hamburg의 Haider라 불리우던 광적 극우파 Ronald Schill이 19,4%라는, 누구도 예상못한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가위 충격적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CDU, FDP와 연정을 약속한 극우주의자 Ronald Schill은 이번 정권교체 이후 Hamburg시의 내무상에 취임할 예정인데, 내무상에 취임할 경우 경찰인원을 증대하고 범죄적 외국인을 추방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현재 독일내 그 어느 도시보다도 외국인비율이 높은 Hamburg에서 이렇게 공공연히 외국인적대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무려 19,4%의 지지를 얻어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Hamburg내에 내국인범죄자도 많은 상황에서 유독 외국인범죄자에 대해 더 강한 적대감정을 드러내고 Hamburg를 München, Stuttgart만큼이나 외국인 적은, 깨끗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의 발상은 분명 황당한 것이고 극우나찌를 연상케 하는 것이지만, 그는 어쨌거나 19,4%의 지지를 얻었으며, 이번 선거 최고의 승리자로 떠올랐다 (특히 이번에 뉴욕테러범이 대학생으로서 공부한 지역인 Harburg에서는 거의 30%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음).
이렇게 Hamburg와 같은 대도시에서 노골적인 극우주의가 폭넓은 시민적 동의를 얻어냈다는 것은, 비단 그동안 독일에서 가장 외국인우호적이고 세계개방적인 도시로 불리우던 Hamburg가 이제 독일에서 가장 극우적이고 외국인적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독일 극우주의가 드디어 독일정치 전면에 확고한 거점을 얻어냈으며, 더이상 비합법,비공개적 조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합법,공개적 조직으로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다음 연방총선에 Hamburg의 Schily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극우정당이 20% 가까운 득표율을 올릴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는 것 역시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Schill 같은 극우주의자가 비단 Hamburg 뿐만 아니라 독일 전국에서 외국인관리에 가장 직접적 부서인 내무부를 장악하고 외국인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낼 경우, 그럼으로써 독일인들의 반외국인정서를 더욱 공고히하고 그것을 더 확산시킬 경우, 독일내 대외국인폭력은 더욱 노골화되고 일상화될 공산이 크다. 뿐만 아니라 Schill의 정치적 성공은 독일내 모든 정치가들의 우경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SPD의 당핵심들은 점점 약해지는 Grüne를 압박하며 수많은 외국인우호적 정책들을 폐기할 것이며, CDU 정치가들은 점점 극우주의자 Schill을 닮아가며 대외국인 강경책과 민족주의적 구호들을 주창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랍인과 터키인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노동자들과 그 자녀들은 독일 내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물론 무조건 비관만 할 것은 아니다. SPD 중앙당은 Hamburg-FDP와의 연정을 실현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Hamburg-SPD 시장후보 Ortwin Runde의 목을 침으로써 Hamburg-FDP의 체면을 세워주고 Hamburg에서 적,녹,황의 신호등연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설령 Hamburg-FDP가 예상대로 CDU, Schill과 손잡는다 하더라도 워낙에 이질적인 집단인 데다 40여년동안 집권의 경험도 없었던 이들이 화목하고 무난하게 정권을 이끌어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원래 배신에 능한 기회주의 정당 FDP는 언제든지 CDU, Schill과의 연정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Hamburg-CDU의 시장후보 Ole von Beust 역시 Schill과의 연대가 꼭 기꺼운 것만은 아니다. CDU가 비록 우익정당이라고는 하지만, Schill이 주장한 바와 같은 성범죄자 거세정책 등은 도저히 기독교적 관념에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무자비한 체형을 받아들이게 되면 Hamburg-CDU는 그들이 그동안 그토록 경멸해오던 아랍인이나 전근대적 야만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Schill의 지지율은 CDU와 별 차이가 안 날만큼 너무나 높다. 그런 상황에서 잔뜩 기고만장해진 촌뜨기 Schill 1인에게 질질 끌려다닌다는 것은 CDU의 정치엘리트들에게 썩 내키는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권을 SPD에게 양보하거나 SPD와 대연정을 구성하는 것이 더 속편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이번 선거가 좌파의 참패로 끝났다는 점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는 꼭 Grüne만 참패한 것도 아니다. 몇년전 Gruene에서 갈라져나온 녹색당 근본주의파 Regenbogen은 아예 의석확보에 실패했고, PDS 역시 Hamburg시의회진출에 실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거의 몰락에 가까운 끔찍한 패배를 당한 Grüne는 그렇지 않아도 아프간전 참전문제, 이민법 개정문제 등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연방차원에서 힘이 부치는 상황이었는데, 이번 참패로 더욱 더 발언권이 약해지게 되어 당분간 좌파정책은 독일 내에서 실종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Grüne를 아주 만만하게 보기 시작한 SPD는 정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FDP에 접근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독일정치는 더 우경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Hamburg지방선거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독일정치에서 최고의 화두는 별로 적절치 못하게도 치안문제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며, 독일내 외국인들은 싫든좋든 독일의 치안을 위협하는 위험물 취급을 받게 될 것이 예상된다. 이제 독일 내 좌파 지식인들은 그저 뉴욕테러참사의 후유증이 독일정치에서 빨리 가셔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광풍이 지나갈 때까지 독일좌파들은 그저 자유주의자들과의 비굴한 타협이나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지난 뉴욕테러참사가 오히려 유럽내 좌파들의 입지를 강화했다는 식의 분석 따위는, 이번 Hamburg지방선거 결과를 보았을 때, 완전히 쓰레기통에 던져넣어 버려야 할 것이 확실해지는 듯하다.
200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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