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승인된 의존성이다


- 이하의 글은 2001년 7월 23일 고대 법대문학회 홈페이지 "노땅게시판"에 게재되었던 저의 가벼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요즘은 정신적으로 꽤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주말마다 비전공서적 한권씩을 빌려서 맹렬한 속도로 읽어치우는 썩 괜찮은 습관이 붙었다. 이번 주말엔 Alasdair MacIntyre의 "의존의 승인(Die Anerkennung der Abhängigkeit)"이란 책을 빌려 읽어보았는데, 물론 모든 문장을 다 일일이 읽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유익했다고 나름대로 자평하게 될 만큼 만족스러운 책으로 여겨졌다.

현대의 도덕철학자 중에서 가장 노회한 도발적 논객으로 소문난 미국의 철학자 Alasdair MacIntyre는 이미 "미덕의 상실(Verlust der Tugend)"이란 책으로 전세계에 그 신랄한 분석가로서의 악명을 드높이 날린 적이 있는 사람이다. 얼핏 보기에 온갖 개념상의 모순과 혼란을 날카롭게 집어내는 그의 분석벽은 고루하고 궤변적인 것 같이도 보이지만, 그의 짓궂고 장난기 어린 문체 속에는 온갖 신선한 발상이 넘쳐 흐르며,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감각이 드러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민첩한 사유능력이 얼마나 기발한 결론들을 열매맺고 있는지 보려면 우선 그의 Aristoteles해석을 음미해봐야 한다. 그는 미셸 푸꼬의 권력비판을 도덕철학의 새로운 요소로 끌어들이면서, 심지어는 Feminismus까지도 Aristoteles와 중세도덕철학의 관점에서 풀어내 Aristoteles철학과 중세도덕철학을 현대적으로 복권시키고 있다.

그는 근대 이후의 도덕철학이 인간의 허약함(Gebrechlichkeit)과 동물성(animalische Natur)을 간과한 데서 그 결정적 오류를 범해왔다고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허약하고 동물적인 속성이 인간의 삶 속에 승인되는 한에 있어서, 모든 도덕의 스펙트럼은 확장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인간은 더 좋은 삶을 서로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가끔은 강해지고 가끔은 약해지면서 다른 인간들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서로에게 가끔은 아무런 대가의 기대 없이 무조건적 배려와 협력을 베풀고 때로는 그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 비대칭적인 의무부담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에서 말미암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 마치 우리 인간과는 언어능력이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왔던 짐승들이 서로 그러는 것처럼 - 자기가 받건 받지 않건 상관 없이,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마는 그런 존재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여태껏 우리가 가져왔던 인간도덕의 기준은 근원적으로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왜냐하면 여태껏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해왔던 근거는 사실 "넌 이만큼 받았는데도 왜 그만큼밖에 못 주느냐" "넌 그만큼밖에 못 줬는데도 왜 이만큼씩이나 받으려고 하느냐"하는 식의 대칭적 기준에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Descartes 이후 Heidegger를 넘어 Habermas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철학은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언어능력을 그 최우선 근거로 삼아왔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실천이성을 위한 토대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MacIntyre는 이런 언어능력의 차이가 인간과 짐승을 질적으로 구분하고 그것을 계급적으로 차별하는 데 있어서 그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종래의 도덕관에 따르면 의미론적으로 차별화된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면 인식내용을 자기주장화하거나 확신하는 능력을 가질 수가 없다. 다시 말해 그는 대상을 대상으로서 개념화할 수 없고, 따라서 환경을 인식적으로 거리지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이성능력이 갖는 언어의존성의 테제에 대해서 MacIntyre는 여러가지의 반대논거를 제시한다. 나무 밑에서 고양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개,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훈련지시를 이해하는 돌고래 등등. 이런 반대논거를 통해서 MacIntyre는 고등 포유류의 경우 우리가 이성능력으로 생각해왔던 여러 능력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무 밑에서 고양이를 기다리는 개는 나무꼭대기에 고양이 비슷한 녀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 인식에 바탕해서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행동의 이유는 개념적 확신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어떤 반성적인 구조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실천이성의 전제로서 생각해왔던, 감각기관을 통한 현실세계의 범주화 만큼은 그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성이란 것이 이미 언어의 전단계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며,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자연인과성(Naturkausalität)과 자유(Freiheit)의 심연적 차이가 아닌, 단지 비언어성과 언어성의 경과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 뿐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MacIntyre는 우리 인간의 이러한 동물성, 특히 인간이성의 동물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가운데에서, 서로의 차이에 기반한 가장 적정한 정도의 배려를 상대방에게 제공하자는 식의 새로운 도덕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창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욕구를 그 자체로 승인하고 그것을 포괄하는 형태로서의 목적설정이 오늘날의 도덕철학에는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MacIntyre가 인간 스스로를 자기비판하고 자기고백하는 그 지평 위에서 여성주의적인 도덕론 역시도 그 정당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간주관적인 Give & Take의 네트워크 속에서 대칭적이고 등가적인 교환만으로는 인간적 생존이 불가능한 많은 여성, 장애자 기타 소외된 인간군들이 존재함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반성적 능력을 뛰어넘는 "승인된 의존성의 도덕(Tugenden der anerkannten Abhängigkeit)"을 상상해볼 수 있다. 성격적으로 유전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나 상이한 존재들인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비대칭적 의무부담을 전제한 사회구조는 필연적이며, 심지어는 아무런 자치적 판단능력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도 그런 구조 속에 편입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것은 도덕철학을 넘어서 정치철학에 관계된 문제이지만 분배의 정의(Verteilungsgerechtigkeit)까지도 여기서 완전히 재검토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정한 기본적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만 일정한 권리와 혜택을 분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브앤테이크의 상호행동영역 속에 편입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인간으로서 자기반성적 자치의 근거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MacIntyre의 도덕론은 확실히 획기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승인된 의존성의 도덕"에서 다분히 포괄적으로 이익을 보게 되는 듯한 여성, 장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과연 약육강식으로 대표되는 동물세계의 환유를 통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성을 단순히 획일적으로 뭔가 결핍된 존재로서 언제나 남성들의 배려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 역시 동의하기가 힘든 부분이며, 그러한 의존성의 승인이 누구의 의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지의 부분도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

어쨌든 MacIntyre의 이번 신간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신좌파들의 도덕관과 정치관을 철학적으로 특이하게 정당화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일독할 가치가 많은 명저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철학은 비단 여성주의문제 뿐 아니라 노동문제, 사회보장문제 그리고 나의 전공인 민법학의 기본원리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공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것이다.

우리나라 지성들도 맨날 1960년대 미셸 푸꼬나 1980년대 위르겐 하버마스만 팔아먹지 말고 MacIntyre 같이 오늘날 새롭게 떠오르는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그 지적 조명을 비출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언제나처럼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항상 20~30년씩 뒤쳐져서 서양의 지적 유행을 따라가다가는 언제쯤 우리가 전세계적인 지성의 토론마당에 당당히 참여할 그날을 가져볼 수 있을지 나는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2001.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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