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0년 12월 23일 저의 개인게시판 "고담준론"에 올렸던 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방금 Seraphine라는 여자애의 생일파티에 다녀오고 그 파티장에서 울려퍼지던 John Lennon의 "Happy Christmas (War Is Over)" 노래가락에 취해 이 글을 쓴다. 최신곡에 맞춰서 춤도 많이 추고 술도 많이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지만, 지금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 순간 내 귓전을 울리는 것은 오직 이 노래 "Happy Christmas (War Is Over)"일 뿐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이 노래를 머나먼 타국땅 독일에서 또 이렇게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기분으로 듣게 되다니...
이렇게 귀에 익은 노래소리를 들으면 내 옛날의 여러가지 모습이 되살아나는 것을 어쩔 수 없게 된다. 지금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저 먼 옛날의 위험한 향기. 그때 난 얼마나 밤새도록 몸서리쳐지는 괴로운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그때 내가 중얼거렸던 말은 무엇이었던가? "이렇게 괴로워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이러한 번민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겠지. 그때는 나도 슬프면서 동시에 조용한... 기쁨을 느끼게 되겠지."
그러나 한 불꽃이 다른 불꽃을 멸망시키듯 나는 또다른 번민의 포로가 되어있는 것을 느낀다. 나의 정신은 번민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아니 나의 정신이 번민을 욕구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를 이토록 번민케 한 그 대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로부터, 또 나를 책망하고 학대한 이 잔인한 번민으로부터 종국에는 대체 무엇이 남게 되는 것일까?
John Lennon의 "Happy Christmas (War Is Over)"를 들으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가수 John Lennon의 일생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고독한 마음으로부터 인류 대가족으로 이르는 길을 끊임없는 자신과의, 그리고 세상과의 투쟁을 통해 타개하려 했던 이 위대한 가수. 그리고 그가 겪었던 즐거움과 괴로움, 예술의 충족.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지상에서 사라져가고, 내 마음으로부터도 도망쳐버린 숱한 과거의 추억들을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의 아픔도 머지 않아 언젠가는 덧없는 옛날의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임을 믿는다.
그래, 나는 물론 오해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책임이었고, 그렇게 오해를 받는다는 것도 때로는 내게나 그에게나 괜찮은 것이었다. 비록 오해를 받더라도 그로써 오해하는 사람의 새로운 가능성을 자극하게 될 테니까, 괜찮다, 난 괜찮다. 난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다(Ich habe genug). 그대는 그대 자신을 돌보면 될 것이다(Du: rette Dich !).
거룩한 20세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와 다가오는 21세기의 첫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의 짧은 생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한때 내게 마음을 열어준 수많은 눈길들과, 나에게 상처를 입힌 수많은 정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그대들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은 내가 못난 탓이었고, 그로써 혹시라도 그대들을 풍요롭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내 망상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약하고 꼴사나운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대들과의 난투를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자연스럽지 않을지라도 난 화내지 않기로 했다. 화를 내봤자 누군가를 걱정시킬 뿐으로 나를 낫게 하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우리 모든 전쟁을 중지하기로 하자. 그리고 우리가 잠시나마 각자의 삶과 서로의 삶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되었던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로 하자. 나는 그대와 다르다. 그대도 나와는 달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싸웠고,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빛을 맛볼 수 없을지라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 아늑할 수 있었음을 절대 잊지 말도록 하자.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고 있다. 두려움을 갖지 말자. 백인종에게나 황인종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부유한 자에게나 모두 공평한 크리스마스이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도록 하자. 그리고 서로에게 기쁜 성탄과 새해를 축복할 수 있도록 하자.
So this is Christmas
And what have you done
Another year over
And a new one just begun And so this is Christmas
I hope you have fun
The near and the dear one
The old and the young A very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And so this is Christmas
For weak and for strong
For rich and the poor ones
The world is so wrong And so happy Christmas
For black and for white
For yellow and red ones
Let's stop all the fight War is over, if you want it
War is over, if you want it
War is over, if you want it
2000. 12. 23.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