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1년 8월 5일 고대 법대문학회 홈페이지 "노땅게시판"에 게재했던 제 가벼운 글과 그에 대한 몇몇 손님들의 반박글,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해명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고래 wrote:
독일에 유학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의 철학자라고 하면 기껏해야 Kant, Fichte, Schelling, Hegel, Schopenhauer, Nietzsche 정도밖에 모르던 나였지만, 여기 유학생활 짬밥이 점점 많아지면서 요즘 나는 정말 독일에 벼라별 철학자가 다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되곤 한다. 특히 최근에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Georg Simmel이라는 철학자인데, 국내에서 그는 Max Weber, Werner Sombart와 함께 사회학이란 학문을 창시한 사람 정도로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Simmel은 독일에서 비단 사회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신Kant학파의 대표적 철학자 중 한사람으로서 Kant철학을 역사철학적인 면에서 더욱 발전시킨 사람으로서도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아직 그의 주옥 같은 명저, 예를 들어 "사회적 차별화에 관하여(Über soziale Differenzierung)"나 "사회학(Soziologie)", "역사철학의 문제(Probleme der Geschichtsphilosophie)", "돈의 철학(Philosophie des Geldes)" 같은 책들을 한 권도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내가 오늘 우연히 읽게 된 "비인에서의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 in Wien)"이란 책은 그의 철학과 인생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나같은 초짜에게는 참 괜찮은 Georg Simmel 입문서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그가 철학적으로 관념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좌파의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그로 인해 그의 사상이 Kautsky로부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잡탕"이라는 욕바가지를 얻어먹었다는 사실 역시도 나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운동판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이었는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선상에 서있는 철학자인 그가 유난히도 비관주의의 가치를 낙관주의의 가치보다도 더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은 내게 참 신선한 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인간을 완전히 불가측한 존재로 보았고, 역사적 과정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요소를 중요시해 모든 결정론을 배격한 사람이었지만, 그러한 관점이 이렇게 어두운 Pessimismus로 나아갈 수 있음은 내가 미처 예측 못했던 바였다.
사실 우리는 컵에 절반만큼 담긴 사이다를 보고 "이렇게 많이 남았네?"라 말하면 낙관주의라 간주하고, "겨우 이것밖에 안 남았어?"라 말하면 비관주의라 간주하는 식으로, 낙관주의냐 비관주의냐의 문제를 개인의 성격문제로 치환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Simmel의 이론에 따르면 비관주의는 절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정신의 발달단계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런 점에서 비관주의는 자기중심적, 환상적 세계인식으로부터 인간이 완전한 과학적 세계인식으로 나아가는 과도기단계로서의 의의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낙관주의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고,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세상은 돌아가고, 모든 불행과 비극도 자기만은 피해갈 것이고, 그렇게 미리 정하신 뭔가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더 범위를 넓혀서 보자면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의미를 갖는 존재이며, 세계창조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확신에 근거하는 사고가 바로 낙관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Nikolaus Kopernikus에 의해 지동설이 주창된 이후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등장하면서 서양인들의 이러한 확신에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조금도 공평하지 않으며, 뿌린 만큼 거두게 하는 것도 아니며, 고민을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다거나 세상으로부터 뭔가 복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착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모질고 교만하고 나태한 사람이 화를 입는 것도 아닌 이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인간의 희망이 이루어지고 이상이 실현되는가의 문제는 오로지 우연에 달려있을 뿐이며, 인간의 모든 인생에서 대부분의 수고는 헛수고이고 대부분의 노력은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그 사실.
그걸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도 해보지만, 그런 허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임을 솔직하게 인정하자는 것이 바로 이 페씨미즘이다. 그런 점에서 페씨미즘은 세계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자기 자아, 옛날부터 줄곧 써오던 왕관이 이제 막 벗겨져 버린 자기 자아를 이 거대한 세계의 무심함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Simmel은 인간의 이기주의가 갖는 모든 힘이 간혹 단 한가지 생각으로 뻗치게 되면서 형성되는 여러 종류의 환상들에 대해 차갑게, 그것은 우리의 연약한 기분과 감정이 만들어내는 헛된 공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낙관주의가 제공하는 모든 환상의 장식들을 걷어내고 이제는 이 세상의 추한 꼴을 간파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 고통에도 압도는 될 수 있어도 최소한 놀라지는 않게 된다는 것이다.
Georg Simmel은 1858년에 태어나 1918년, 6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연과학적인 모델과 카테고리를 철학의 영역에 도입해 사회학이란 학문을 실질적으로 창시한 사람이었고, 또 그만큼 독창적인 천재이기도 했지만, 충분히 이름이 알려지지도 못했고, 더욱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교수자리조차 제때 얻지 못해 평생을 가난 속에 허덕이며 살아야 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당시 독일유일의 저항매체로 알려진 어느 좌파신문에다 무모하고 도전적인 칼럼을 기고하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빌헬름황제 치하의 독일 분위기에서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고, 이방인이었다. 그의 수많은 에쎄이는 Hofmannsthal 같은 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혹심한 검열로 인해 공란으로 인쇄되어 나오기 일쑤였으며, 보수적인 세인들에 의해 손가락질 세례나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언제나, 뭔가 사람의 눈을 열어주는 듯한 힘을 갖고 있어 좋다. 모든 화기애애한 낙관주의, 항상 남을 돕는 일에 애쓸 수 있는 끊임없는 활동력은 이처럼 깊은 허무사상, 자기도 보기가 무서운 치명적인 절망을 동시에 바라보게 할 수 있는 것일 때 가장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낙관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낙관주의가 정말 안정적일 수 없다면 내가 보기에 그 낙관주의는 비관주의의 아래단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여태까지 그 어떤 안정적인 낙관주의자도 내 인생에서 만나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 진정으로 안정적인 낙관주의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는 아마 낙관주의자라 불리울 수도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필경 그는 다만 낙관주의자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낙관주의를 진짜로 믿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내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2001. 8. 5.
어느크리스챤? wrote: 세상에 감사하고 인간을 사랑하십시요.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십시요. 선배님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후배 wrote: 저기.. 저는 글솜씨도 없고 책읽은 것도 없어서 논리적으로 반박은 못드리지만, 선배님들께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계시다는 것은... 선배님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죠?
juno wrote: ^.^ 잘못된 방향?? 그런가요? 그런데 후배님은 누구실까..
죄송 wrote: 좀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제 뜻은, 비관은 바보들이 하는 일이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범사에 감사하면 행복을 얻는다였습니다.
고래 wrote: "죄송"님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네요. -_-;;; 낙관주의의 순진, 유치함과 마찬가지로 비관주의 역시 극단으로 흐를 경우 인간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드리고자 했던 말씀은 낙관주의이건 비관주의이건 우리 인간이 극복해야 할 환상 내지 관념론이긴 마찬가지인데, 비관주의가 낙관주의보다 좀더 진일보된 형태라는 것 뿐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님께 이 말씀도 꼭 드리고 싶네요. ^^ 그것은 바로 님 말씀마따나 범사에도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뭐 그 자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게 맹목으로 흐르면 가장 노예적이고 체념적인 관념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제가 보기에 누군가 구체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며 우리를 도와준 것이 아닌 이상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추상적인 감사함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더군다나 이 세상 일반, 인간 전체에 대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제가 볼 때 너무 작위적인 일입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쓸데없는 욕심과 집착을 줄이고 우리 스스로를 독립된 인간으로 만들어서 남들에게 너무 많이 감사해야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 하겠지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