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ape of my Heart

- 이하의 글은 2000년 12월 3일 저의 개인게시판 "고담준론"에 게재했던 제 가벼운 수필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나는 운동을 대개 아침에 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주로 하는 운동이란 것은 30분간 팔굽혀펴기 했다가 윗몸 일으키기 했다가 런닝머쉰 달렸다가 태권도 발차기 했다가 하면서 그냥 단순하게 땀을 빼는 것이다. 대개 그럴 때는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켜놓고 뮤직비디오 음악을 듣는데, 그때문인지 요즘 나는 음악 듣는 취향이 옛날의 록 일변도에서 아주 다양한 잡식성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자주 느끼고 있다.

물론 잡식성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재즈를 갑자기 즐기게 되었다거나 한다면 고급스럽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하필 옛날에는 경멸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던 10대 소녀 위주의 틴아이돌스타 애들 노래까지 즐겨 듣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뭐 뮤직비디오라는 게 원래 그런 애들 위주니까). 하긴 비틀즈도 옛날 60년대 초반에는 틴아이돌스타였지만 말이다.

며칠 전에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Backstreet Boys가 나와 라이브로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자기들 노래 "Shape of my Heart"를 불렀는데, 여기 독일 같으면 열여섯살 열일곱살 먹은 여자애들이나 들을 법한 이 노래를 그 자리에서 팔굽혀펴기 하면서 단번에 외워 하루종일 중얼거리게 되었으니, 나도 정말 나이가 10대 후반 정도로 줄어들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이 노래의 후렴부분 "Lookin' back on the things I've done / I was trying to be someone / Play my part / and kept you in the dark / Now let me show you / the shape of my heart"은 유치찬란한 가사의 극치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얘네들 화음이 너무 좋아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그 멜로디가 내 뇌리에 강렬하게 틀어박히고 말았다. "Shape of my heart"라고 하니까 괜히 Sting의 "Shape of my heart"도 덩달아 떠올랐고, 난 예전에 눈물겹게 보았던 영화 "Leon"에서 문맹의 고독한 킬러가 자기 생에 어느 순간 끼어들어온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악당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도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장면이 생각나서 그날 윗몸 일으키기를 침대 위에서 2백번 하고 우유도 큰 잔으로 두 잔이나 마시고 학교에 갔다는 것이었다.

오늘 토요일 아침은 독일 날씨로는 보기 드물도록 화창하고 맑아서 언제나처럼 대여섯시간씩 시내, 특히 알스터 호숫가 주위를 홀로 산책했는데, 시내에서는 Weinachten Parade를 하네 뭐네 하면서 예쁘게 생긴 독일처녀들이 위에는 빨간 고깔모자에 산타복장, 아래 하반신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타이즈를 입고 거리를 행진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저 Backstreet Boys와 Sting의 "Shape of my heart"만을 번갈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And if I told you that I loved you / You'd maybe think there's something wrong / I'm not a man of too many faces / The mask I wear is one..."

노래 속에 사회적 메시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적당히 어떤 애는 예쁘장하게, 적당히 어떤 애는 터프하게 생겨가지고, 여자애들한테 "날 만져줘. 난 이 싸움을 이길 수 없어. 날 구해줘"를 호소하는 이 틴아이돌 5인조 그룹 에쵸티... 아니 Backstreet Boys. 하긴 Sting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가수인가? 그의 노래도 약간 시적이긴 하지만, 민중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미래를 생각케 하고 힘을 불어넣어준다는 그런 록음악을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가 부른 "Shape of my heart"의 후렴도 그저 "I know that the spades are the swords of a soldier / I know that the clubs are weapons of war / I know that diamonds mean money for this art /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에 고작인 것 아니던가? 그는 자기 마음의 불꽃을 남에게 전달하기 보다는 그 순결성을 자기 내부에 숨겨두는 일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Er scheint mehr darum bekuemmert, die Reinheit seiner inneren Flamme in sich zu bewahren, als sie anderen mitzuteilen). 한마디로 그의 음악은... Rock 치고는 너무 귀족적(aristokratisch)이다.

그러나 오늘 화사한 햇볕이 내려쪼이는 Neuer Wall과 Binnen Alster를 산책하면서, 기묘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상점엔 무턱대고 들어가 혼자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문득 민중에게 일세기 후나 이십년 후에는 어쩌면 유익한 것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에는 그들을 단지 들뜨게 만들거나 애태울 뿐인 그런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짓을 하느니 차라리 그들에게 적당히 감미로운 기쁨이나 던져주고 아부나 해주고 비위나 맞춰주고 달래는 게 더 나은 짓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다못해 몇분만이라도 자기의 불행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저 심심풀이 오락이나 듣기 편한 칭찬, 발라드, 댄스뮤직이지 진실이 아니다. 우선 나부터서도 요즘엔 Backstreet Boys를 아무 생각없이 그저 좋다고 듣지 않는가?

진실의 부담을 견딜 만큼 튼튼한 허리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극히 드물다(Nur selten sind die Menschen, deren Rueckgrat stark genug ist, die Wahrheit zu tragen). 그런 그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차라리 몇겹의 장막으로 나를 덮고 기묘한 귀족적 정신을 흉내내어 나를 밀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또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땐 달콤한 사탕이나 몇알 쥐어주고 웃음지으며 돌려보내야 한다. 그러면 혹시 아는가? 그들이 온갖 과장과 단순함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나를 찬양하게 될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별로 유익한 것으로 생각지는 않지만(ohne an die Nuetzlichkeit meines Tuns zu glauben) 습관에 의하여(aus Gewohnheit), 또 정신의 건강법으로서(aus geistiger Hygiene)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 내가 맡은 분야를 어떻든 꾸준히 파고들 줄은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온갖 기반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쪽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 다른 쪽 손으로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지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럴 바엔 적당히 예쁘장하게, 때로는 적당히 터프하게 나를 꾸미고, 특히 여자들을 향해 "날 만져줘. 난 이 싸움을 이길 수 없어. 날 구해줘"를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나저나 Backstreet Boys를 우리나라의 에쵸티와 비교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아무 생각 없는 애들이긴 하지만, Backstreet Boys는 그래도 애들이 실력이 있는 애들이기 때문이다. Backstreet Boys는 아트 가펑클의 사촌인 루이스 펄먼이 철저히 라이브가창력을 검증해서 가려 뽑은 애들이고 그 중에 케빈이란 친구는 특히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도 꽤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이 우리나라의 립씽크그룹 에쵸티에 비견될 수는 없다. 아까 내가 그들과 에쵸티를 헷갈렸던 데 대해서는 Backstreet Boys의 팬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하고자 한다.

200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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