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비판


- 이하의 글은 저의 대학원 석사과정 4학기 시절인 1994년에 고대법대 건물 1층 학회실 내에 비치된 법대문학회 낙서장 "넋두리"를 통해서 학회 동기인 신진수와 벌인 논쟁기록들을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W.B.S. wrote:

용에는 흑룡, 청룡, 황룡 등이 있다. 흑룡은 적룡을 이기지만, 황룡 앞에는 꼼짝 못한다. 황룡은 흑룡을 이기지만, 청룡 앞에는 꼼짝 못한다. 나는 흑룡이니까 황룡 앞에선 약해진다는 것일까? 그런데 나는 至尊이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도 약해진 적이 없다는 얘기.

흑룡은 최강이고 정력이 절륜이다. 백호는 지속력이 강하고 기교가 좋지만, 한가지 체위만 고집해 여자를 실망시킨다. 흔히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덩치 큰 사람들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복이 심해 아무 쓸데가 없는데... 덩치 크고 싯누런 이빨을 가진 경일이 자네는 용은커녕 지렁이도 안되니, 재수 없고 천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네.

소도욱 망할 년은 후배들에게 거의 쓰레기 같은 책들만 추천해놓고 있다. 그보다는 각종 도덕경 해설서들이나 사랑의 기술, 그리고 예기나 반야심경해설서, 각종 심리학 개론서나 사상의학에 대한 해설서를 권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의 수련은 성서에 나오는 천사장 미가엘처럼 行功法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수준이다. 내 기운을 모으고, 유통시킬 수 있다는 얘기. 나는 매일 내 근육이 툭툭 튀는 게 보인다. 동양사상의 핵심인 생명사상을, 이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원리까지 이해했다는 얘기.

나의 사주팔자는 아주 고귀하고 예민한 형상이다. 남자로서 1급 사주에 해당한다. 이런 사주를 타고나면 심오한 진리를 알아야지,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일찍 가는데... 내가 사서삼경과 반야심경, 사상의학을 이미 오래전에 다 마스터한 것은 내 운명을 어려서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나의 생명선(손금)은 처음에는 일찍 죽는다는 것을 나타냈다. 하나로 이어져 있지 않고 전부 갈려 있다.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얘기. 그리고 20세를 전후해서 새로운 손금이 생겼다. 더럽게 오래 산다는 얘기.

그러나 이자연이의 손금은 이런 형태는 아니겠지?

유난히 貴相인 자연이 - 최진실이 역시 생긴 건 그저 흔히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그저 윤정이 정도의 여자이지만 선천적으로 귀상을 지니고 태어나서, 다른 사람들 눈에 귀하게 보인다. 여자로서는 2급 수준에 해당한다.

귀한 상을 타고난 여자는 귀한 사람에게 시집가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일찍 가는데... 자연이의 생명선이 짧다는 것은 그렇다는 것일까?

Aroma가 때묻은 손바닥을 펴서 손금구경 좀 해볼까 했더니, 때가 많아서 도통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손 씻는데 몇분이나 걸린다고... 선제는 자기 손금이 사시합격형이 아니라고 초장부터 시비를 건다. 나는 결코 선제 손바닥에 낙서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왜 나에게 화를 내는 걸까? 나는 자기의 손금이 맘에 안 든다고 화내는 년이 제일 싫다. 선제 나쁜 년. 원래 그런 년.

일청이, 자기 운명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있나 본데 새파란 만원짜리 한장 들고 미쓰 뽕이 사는 동네에 가서 알아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네는 대통령이 될 리도 없고, 되려고 하지도 않을테니, 그저 밥 처먹고 심심하면 방귀나 읊어대는 게 적성에 맞을 것 같네.

이상으로 운명과 인식구조는 끝.

1994. 9.


경일 wrote:

제목 : 한 반이성적 신비주의자의 못말리는 늘그막 추태에 대하여

(1) 학회에 동물숭배주의자가 있다며?

흔히 인간이 갖는 환상의 가장 유치하고 조야한 형태는 동물숭배 내지는 특정동물과 자신과의 동일시라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혹자는 이러한 동물숭배가 인간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감각적 욕구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감각적 욕구를 자극하는 수단이라고 보여지며, 그것은 비단 동물숭배 뿐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환상과 미혹이 다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욕구에 대한 환상을 가진 동물숭배자는, 기껏해야 인간의 식탁에 고기로 오르거나 아니면 써커스단에서 공을 굴리며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이외에는 그다지 신통한 도움을 줄 수 없는 동물들을,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언젠가 神의 모습을 갖고서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은 그러한 동물신의 선택을 받으신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환상을 가진다. 하지만 그러한 동물 내지 동물에 대한 숭배가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소용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날 때 그 물신적인 대상물(Fetisch)은 금새 붕괴되어 버린다.

(2) 龍이란 무엇인가?

'흑룡, 황룡, 청룡'이니 하는 것도 그러하다. 龍이란 동물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龍이란 동물은 갑작스런 지진이나 산사태 등으로 드러난 중생대 백악기 공룡 익룡 등의 화석들과 인간들의 성적인(sexual) 욕망 내지 신분상승의 욕망 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가상의 동물신으로서, 기본적으로 정력에 넘치는 남성의 성기 내지 지배계급에로의 상승욕망을 상징함에 다름 아니다.

(3)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四柱八字라는 것도 다른 게 아니다.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등에 대한 동물숭배의 잔재가 근거 없는 숫자장난과 결합되어 만들어진 유치한 사기술이 곧 四柱로서, 지구가 둥그런지 네모난지조차도 모르던 암흑의 이조시대에조차도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혹세무민하는 미신이라며 믿지 않았을 만큼, 우리 민족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신용을 잃을대로 잃어버린 점쟁이놀음에 다름 아닌 것이 곧 四柱라고 난 이미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4) W.B.S. 그는 반이성적 신비주의자이다!

그런데 요사이 法 文 낙서장 '넋두리'를 추하게 장식하고 있는 W.B.S.학형의 '龍虎論'과 일련의 '손금 관상 사주론'을 읽고 있노라면, 단순한 문학적 비유나 심심풀이 장난의 범위를 넘어서, 그 반이성적 신비주의의 방종이 수인한도를 초과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에 대해 W.B.S.는 Tertullianus의 "理性에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眞理이다(verum est guia absurdum est)"라는 A.D. 2세기적 경구를 다시 내세우며, 자신은 세속적 이성을 이미 초월했다는 궤변을 농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노라면 도무지 Vedas의 신성함을 입증하기 위해 자기만이 읽을 수 있도록 그것을 기록해둔 인도 브라만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에 대한 진실한 고려라곤 손톱만큼도 염두에 둠이 없이, 자기도취의 신성성만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려 하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도도 그의 글 속에는 없음을 금새 발견하게 된다.

(5) 동양사상이란 무엇인가?

소도욱 학형이 추천한 도서목록에 대해 '거의 쓰레기'라며 '각종 도덕경 해설서'들이나 '사랑의 기술', 그리고 '예기'나 '반야심경해설서', '각종 심리학 개론서'나 '사상의학에 대한 해설서'를 추천한 것도 그렇다. 아마도 자신이 아는 척할 수 있었던 유일한 주제인 동양철학들(그것도 대부분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음)에 대해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사실로부터 무척 고통을 받았던 모양인데, 경쟁에서 빼앗긴 자신의 고객들에 대한 신용회복을 위해 W.B.S.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성실한 후배가 어렵게 고민하여 골라놓은 도서목록에 대해 '쓰레기'라고 욕하며, 그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나 의심스러운, 어려운 서적들을 지리하게 나열하는 일 밖에 없었던 것 같다(그의 단순함과 우매함은 위와 같은 동양철학서적들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동양사회는 존재하여 왔으며, 동양철학이란 것도 결국 그 동양사회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신주단지처럼 아끼는 동양사상이란 것이 여러 경우 동양세계의 여러 인간억압적 국면에 어떻게 적응하고 야합해 갔던가를 그가 안다면, 그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6) 생명사상이란 무엇인가?

거기다 그의 '생명사상'에 이르면 우리는 그의 무지함과 후안무치적 천박함이 어떻게 명백한 비겁으로 변질되어 가는가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는 그 자신이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것, 즉 단순히 굴종하고 타협하는 삶으로 지나치게 그를 근접하도록 위협하는 역사적 비극의 앞에서 도망쳐서는, 자신의 나약한 현실순응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생명사상'을 설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연히도 현대인의 건강과 생명이 처해있는 위기적 상황(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 가계지출 및 의료비, 의료자원의 지역분포비, 산업재해 등)에 대해서는 일언에 반구도 언급해주지를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지 그것 자체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7) 예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 지금으로부터 약 6년전, 그러니까 89년 하고도 3월, 나와 W.B.S.가 法大文學會에 갓 들어왔을 때를 회상해보면,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냉엄한 진리에 그저 가슴만 뭉클해질 따름이다. 당시 우리 89학번 신입생들 중에서 단연 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냈던 이는 다름 아닌 W.B.S.와 김상우였다. 하지만 둘 중에 더욱 돋보였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W.B.S.였던 것 같다. 상우는 사실 '에로티시즘의 Pt당파성'이니 '건강한 문학에 병적으로 집착하자'느니 하는 다소 헷갈리는 듯한 말로 선배들과 동기들의 신뢰감을 많이 까먹었던 측면이 있었던 데 비해서, W.B.S.는 학기초부터 高大新聞이 주최하는 무슨무슨 문학상엔가에도 당당히 당선되는 등 일찌감치 그 예술적 소질에 있어서 타고난 영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정이 가지 않던, 그런 낯설기 그지 없던 법학관 건물 주변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며, 우리 89학번 동기들은 얼마나 '존재의 갈증'에 몸서리쳐야 했던가? 그때 우리의 눈동자는 얼마나 맑고 깨끗한 어떤 것이었던가?

(8) 제발 정신 좀 차리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란다. W.B.S.여! '至尊'이라는 허황된 자만심에서 벗어나 이젠 제발 자신을 客觀化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딱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그대는 일생동안 오직 느끼기만 하고 산 사람 같다. 그대가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같은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주지 않는다.

그대는 분명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못한 機智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대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이론적 엄밀성과 논리적 객관성을 외면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대는 그대의 그 귀중한 機智를 그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다 바보로 만들려는 기도에 허비해 버리며 늙어가게 될 것이다.

199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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