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과 토마스 만


- 이하의 글은 2001년 7월 15일 고대 법대문학회 홈페이지 "노땅게시판"에 게재되었던 저의 가벼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어제는 한학기 농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북부독일은 여름학기가 7월중순에 끝난다) 여유 속에 모처럼 인터넷으로 한국신문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이런저런 기사를 읽다가... 난 또다시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설가 이문열이 또 다시 정치관련 글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었다. (경~사 났네~ !)

언제부터 이문열이 우리나라 비판적 지식인의 선두주자가 되어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가 동아일보에 다시 써놓은 글과 그를 옹호하기 위해 소설가 이인화가 조선일보에 써놓은 시론, 그리고 소설가 복거일이 등이 발언한 내용을 주욱 훑어보니,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저항문인들을 무더기로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최근에는 Kongo라는 나라에서 신문에 정부비판적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로 56명이나 되는 문필가가 독재권력에 의해 감옥으로 잡혀들어가 고문받고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 이제 곧 이문열, 이인화, 복거일 등도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도 받고 그것을 경험으로 주옥같은 저항소설들을 남기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사실 이문열, 이인화만큼이나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은 세계문학사에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도 없다. 이인화는 이문열을 Thomas Mann에 비유했다는데, 만약 이인화가 최소한 나만큼이라도 무식했다면(-_-;;;) 나찌의 박해를 피해 소련에 망명했다가 그곳 소련에서 강압적 관료적 문화정책을 비판한 죄로 유배되고 비참한 생을 마친 독일의 Herwarth Walden과 이문열을 비유하는 것이 차라리 더 격에 맞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Thomas Mann은 공공연한 동성애자로서, 이문열이 동성애자에 비유된다는 것은 이인화나 조갑제 같은 극렬보수주의자들 입장에서 사실 기겁하고 팔짝 뛸 일이었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미 7백여년 전에, Thomas von Aquin은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유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자유로운 의지만은 빼앗을 수 없다." 아마 이 말을 요즘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나 이문열 같은 인간들은 즐겨 인용하고 싶어할 것이겠지만, 내가 볼 때 이 말이 그리 완전한 명제일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누차 증명을 해온 바다.

예를 들어 시리아의 유명한 문필가 Nizar Nayuf 같은 사람을 보자. 이미 수차례의 고문과 수형생활로 절름발이신세가 된 그는 최근에 또다시 독재권력에 의해 납치되고 린치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시리아 정보기관의 범죄사실에 대해 침묵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전세계에 언론자유의 수호자, 저항문인으로서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자유로운 의지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용기있게 함으로써 의의를 갖는 것이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엄살 떨면서 피난처로 삼으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원래 자유의 말살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국가적으로 탄압받을 때 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냥 막연하게 자기가 그리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인들때문에 좀 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좀 심한 과장이 된다. 그런데 이문열이나 이인화는 최근 보수언론을 옹호하는 지식인에 대해 시민들이 줄기차게 비난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만 가지고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언론탄압이라 몰아붙이면서 심지어는 중국 문화혁명식의 홍위병 동원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이문열과 이인화가 신문에다 글 쓰는 것을 강제로 막는 사람도 없고, 정부도 그걸 가지고 무슨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그들을 감금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항의전화, 욕설메일, 게시판에 인신공격 메시지를 많이 받아 그들이 그것때문에 자기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반박문 쓰기)을 자꾸 하게 된다는 것 정도인데, 그런 정도의 수난은 나같은 피래미도 이미 수없이 당해본 적이 있다.

물론 자기 정체를 익명의 아이디 속에 숨기고서 특정인을 향해 쏟아붓는 욕설이나 인신공격 등이 결코 옳거나 떳떳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인터넷공간에서 그런 파리떼같은 자들에게 정말로 심한 인신공격을 당할 경우 그대들이 그에 대해 그냥 차분히 법적으로 대응해도 이 나라에서 시민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걸 갖고 굳이 그대들을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대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우리나라 정부와 법원도 그런 법적 절차가 요청될 경우, 그대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든 아니든 그대들의 시민적 기본권을 옹호해주기 위해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시대는 그대들이 평소 그토록 찬양해마지 않던 동양적 봉건왕정시대, 민족주의적 군부독재시대가 아니라 평소 그대들이 그토록 경멸해마지 않던 서구적, 개인주의적 시민민주주의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대들이 정말로 자기 주장과 정당성에 자신을 갖고 있다고 할 경우 그렇게 과격한 네티즌들로부터 당한 모든 수모는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낱낱이 수집해서 인터넷공간에 아예 더욱 크게 공개해버려도 무방할 것이다. 그대들이 정말로 옳은 입장에 서있었다면 몇십년이 지난 뒤에 역사는 그대들을 그 당시에 올바른 행동을 했던 자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뭐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탄압이네 자유말살이네 엄살은 떨고 난리들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이 모든 일을 정부가 배후조종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예를 들어 김지하, 김남주와 같은 저항시인들이 벌써 10여 년전에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옥고를 치르고 있던 그때 당신들은 과연 무슨 일을 했단 말인가?

하긴 이문열이나 이인화 같은 연약하고 이기적인 문학가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러시아의 시인 Alexander Herzen은 이미 19세기에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우리 문학가들은 의사가 아니다. 우리 문학가들은 그 자체로서 고통이어야 한다."

그렇다. 그대들은 그 자체로서 고통이어야 한다. 설령 남들이 보기에 별로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대들이 고통이라고 엄살부리면 그게 고통이 되는 것인데, 아니 그대들은 위대한 문학가로서 이미 이 범속하고 수준낮은 세상을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을텐데 거기다 인신공격에 욕설메일까지 받으면 얼마나 더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되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그대들의 쓰라린 고통과 그 우국충정을 십분 이해하고 싶다. 그렇게 평소 남의 고통엔 둔감하고 자기 고통엔 민감하기 이를 데 없던 그대들이 빗발같은 욕설메일과 인신공격 메시지의 고통을 이겨내고 원래는 그대들이 전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그 '언론의 자유(?)'를 위해 앞으로 계속해서 투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아, 만약 이문열이 진짜 독일의 문호 Thomas Mann처럼 시민권 박탈에 국외추방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하긴 그대들은 진짜 그렇게 안 당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냐고 목청을 높이겠지만, 그렇게 미리 상상하며 고통받는 그대들의 모습은 얼마나 더 불쌍한 것이란 말인가? ^^

200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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