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物致知 논쟁


- 이하의 글은 지난 2000년 11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저의 개인게시판 "고담준론"에서 전개되었던 공자의 사상과 格物致知에 관한 논쟁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비록 말귀를 못 알아듣는 엉뚱한 말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여러분들의 건전한 판단에 맡기기 위해 가급적 삭제나 가감 없이 원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


고래 wrote:

방금 내가 학창시절에 소속되었던 어느 학회(고려대학교 법대문학회)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지금 현재 한창 나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오해를 사고 있는 어떤 인물이 공자님에 대한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왔다. 학회 후배들은 아마도 그 인물이 나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아니 최소한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대한 반박을 가급적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어쨌거나 요즘 분위기로는 그런 자리에 내가 글을 쓸 형편이 못되니 답답한 마음을 여기서나 풀어야겠다.

우선 공자가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느니, 공자의 이념은 잘못된 게 없는데 그것을 악용한 이조유림이 잘못된 것이라느니 하는 말이 얼마나 옳지 못한가에 대해서이다.

첫째, 공자의 사상은 사람의 차별을 공공연히 그 핵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라는 말이나 "생이지지자 상야 학이지지자 차야" 어쩌구 하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자는 군자니 소인이니 하면서 사람을 나누어 차별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를 소인배들(키 작고 배 나온 놈?)은 나면서부터 뭘 알지 못해 높고 깊은 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마치 그 원인이 선천적인 데 있는 것처럼 정당화하는 것을 아주 빈번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민주주의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높고 깊은 도라는 것은 이 세상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 소인배들까지도 언젠가는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의 것이어야 하며, 학습을 통해 누구나 객관적으로 습득이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다문택기선 다견이식"), 군자고 소인배고 간에 모든 민중의 이익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천박하게 굴러먹고 자란 사람들... 물론 좋은 집안에 태어나 엄격한 예절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 눈에 보면 엄숙하지도 않고 남 섬길 줄도 모르고 돈이나 밝히고 천하게 보일 수 있다("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진솔하고 소박하고, 땀과 눈물의 가치를 알며,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 어떠한 선천적인 교육의 부족이 있다면 차근차근 가르쳐서 깨우칠 일이지, 그런다고 그들을 소인으로 매도하며 그것이 선천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시종일관 묘사하는 것은("다견이식지 지지차야" "군자이불인자유의부 미유소인이인자야") 한마디로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무례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유여자여소인 위난양야 근지즉불손 원지즉원)"느니 해서 여성까지 차별하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오늘날 남녀평등과 신분평등의 사회에서 frauenfeindlich한 것으로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오늘날의 독일사회에서 공자의 위와 같은 말을 지껄였다간 당장에 Frauenhasser로 찍혀 공직생활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둘째, 공자는 윗사람 말에 말대꾸하는 것이나 정당하게 이의제기를 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반응을 갖고 있다. 공자의 "우경불위"라는 말이나 자유의 "사군수기소의"라는 말을 보면 윗사람의 말에 설령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은 참고 따르고 그러고 나서 그래도 잘못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을 때에야 완곡하게 기미를 보아 간하되, 그렇게 간하는 것도 너무 자주 간하면 욕을 본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전 독일의 문학가 귄터 그라스가 주장한 것처럼 지식인은 언제 어디서건 "아가리를 열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에 의사소통 자체를 차단하는 철학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는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어진 사람은 그 말이 어눌하느니라, 강의목눌"?). 더군다나 공자는 백성에게 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강제하는 것만이 가능할 뿐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으나("민가사유지 불가사지지"), 오늘날 국민들에게 모든 정책과정을 낱낱이 공개하고 그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것이 독재적 사고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공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등하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지독히 비판하고 있다. "군군신신부부자자"라느니 하면서 윗사람은 윗사람답게,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답게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게 말하면 아랫사람은 윗사람한테 언제나 복종만 해야 하고, 윗사람의 자리를 넘볼 생각도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오거하류이선상자"라는 말은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역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항상 굽신거리기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군자무소쟁 필야사호"라 하여 군자에게 싸움은 활쏘기 시합 같은 것만 빼고는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 토론과 논쟁이 없어지고 윗사람 뜻만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현상이 벌어진다. 우리 사회가 좀더 발전하려면 자기 권리와 이해관계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좀 살벌한 상황이 벌어질 지라도 자기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공자의 뜻에 따르자면 그저 윗사람 뜻만 따라야 하는 것이니, 만약 윗사람이 좀 고약하게 군다고 하면 아랫사람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윗사람이 죽거나 떠나기를 바라든가 아니면 집단쿠데타를 계획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그건 "천명"일 테니까~ 아아, 평소 말로 다 풀면 되는 건데, 이 무슨 미개한 짓꺼리란 말인가?).

넷째, 공자는 비합리적인 가족주의를 조장하는데, 이건 건전한 시민의식을 방해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아비가 양을 훔친 것을 그 자식이 가서 고발한 것을 두고 "부위자은 자위부은"이라고 한 부분은 아무리 법도에 어긋난 것이라 하더라도 가족끼리는 서로 감싸주고 숨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인정주의와 가족주의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내부고발자의 지위를 어렵게 하고, 내부비리와 병폐를 발본색원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공자는 최소한의 공사구별조차도 못하게끔 우리의 행동을 방해하는 사상을 우리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건 우리 사회 곳곳에 비합리적인 마피아가 기생하는 근거를 제공하면서, 탈법적인 재벌상속과 북한식의 세습독재가 기승하는 데까지 원인을 만들어주고 있다.

기타 공자를 비판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오늘은 피곤하고 내일 교수면담도 준비해야 하고 하니 이걸로 그쳐야겠다. 그냥 제목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제목 때문에 결국 이런 토론도 벌어지게 된 것 같은데, 난 공자 찬양자의 말대로 "공자가 죽어야"라는 제목이 정말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자는 이미 죽었으니, "공자를 찌그러뜨려야" 정도로 제목을 바꾸는 것이 합당하다.

나도 공자라는 인물이 위대한 사상가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적어도 서양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비해 그리 뒤쳐진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상에는 위대한 점이 있는 반면, 비판 받을 점도 나름대로 있는 것이고, 현대적 관점에서 재음미해볼 부분도 있는 것이다. 공자는 "불어괴력난신"했는데, 공자를 찬양하면서 소설에다가 귀신얘기만 잔뜩 쓰시는 어떤 분이 공자가 공격받아서는 안된다고 하길래 그냥 몇자 끄적거려 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한번 다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라는 식의 논리가 Nonplusultra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Text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텍스트 전체를 꼼꼼하게 읽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지만, 이 바쁜 사회에 그 모든 것을 다 읽고 비판할 수만도 없는 것이고, 단순히 지엽적인 부분이 눈에 띄었다 할지라도 건전한 이성에 비추어 잘못된 부분이라면 누구나 아직 텍스트를 다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논리에 따라 비판할 수는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마치 기독교 믿으시는 분이 성서를 아직 다 읽지도 않은 주제에 기독교를 비판하느냐고 하시는 것과 같은데,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비판에 앞서 완벽한 독서를 항상 강요하는 것은 건전한 토론을 막는 폭력(Gewalt)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자기가 먼저 독서를 통해 통달을 했다면, 아직 독서하지 않은 사람에게 원리를 설명해가면서 가장 쉬운 수준에서라도 논의를 진행시키는 성의가 필요하다. 그런 성의도 없다면 아직 토론할 자세가 안돼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2000. 11. 21.




쌩콩 wrote:

안녕 하십니까?저는 오늘(토요일) 저의 졸작 귀신이야기를 법문 학회에 올리려다 "창작게시판"의 문이 열리지 않아 이곳 저곳 쑤석거리다 보니까 참으로 우연히 고래 형님이라는 분이 바로 여기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 리시여 짜증이 나시게 한 점을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에 잠깐 말씀을 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먼저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공자가 말한 소인이란 선천적으로 키 작고 배나온 놈들이 아닌가? 하는 지극히 겸손하신(?)오해 아닌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는 소인이란 군자가 아닌 사람, 즉 무슨 일을 할 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소인이라 하였지 키 작고 배나온 놈을 소인이라 한 대목은 논어(論語) 어느 구석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님의 말씀 중에 -중인이상....또는 생이지지자....- 하는 말씀이 논어 어느 편에 나오는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더구나 한글로 표기를 하셔서...?... 아무튼 공자가 사람을 편협하게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논어 곳곳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급기사인야 구비언(及其使人也 求備焉)하라 (논어 자로편)

이 말이 무슨 말 이냐면?
사람에겐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모두 제가 지닌 능력이 있다. 중요 한 것은 그 능력에 맞게 써야 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또 공자는 두루두루 인화(人和)를 제일 중시했습니다 기욕입이입인(己慾立而立人) (논어 옹야편)무슨 말이냐 면?
자기가 나서고 싶으면 먼저 남을 내세워 주고 자기가 발전하고 싶으면 먼저 남을 발전 시켜 줘라 이것이 인자(仁者)의 도리다 했습니다. 또 님의 말씀 중에 -가난한 집안에 천박하게 태어난 자들은....- 하셨는데 공자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천박하게 태어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공자의 아버지 숙향흘은 일개 가난한 무사 출신이고 공자가 세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그는 홀어머니 손에서 아주 가난하게 컸습니다 여담으로 공자가 17세 때 어느 귀족들의 모임을 구경하고 있을 때
"여기는 사회적으로 귀한 사람만 모이는 곳이지 너 같은 비천한 신분은 올 곳이 못된다"
라고 모욕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 왕조 때 한 명회가 송도에서 경덕 궁 지기를 할 때 '송도계' 원 들에게 멸시를 당한 것이나 비슷하지요?다음 공자는 권위주의자고 여성을 차별했다는 부분입니다. 군자사불출기위(君子思不出其位) 논어 헌문편무슨 말이냐면?
군자란 자기 할 일만 충실하면 되지 남이 하는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라 했습니다.또 군자태이불교(君子泰而不驕) 논어 자로편
군자란 크게 놀되 교만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권위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다음 여성 차별 부분,
공자는 30이 넘어서 50대 초반까지 유랑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들은 별호가 있지요
'상가집 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천대를 받았으면 이런 별호가 붙었겠습니까? 왜냐하면 공자가 가진 높은 학문을 전해주려 각 제왕들을 찾아다녀 보니까 제왕들이 이런 것엔 관심이 없고 여색에만 빠져 있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제왕들은 여색을 멀리 하라고 한뜻입니다 실제로 통치자가 여색에 빠져서 도덕성이 타락되고 나라를 망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음 둘째 부분윗사람과 아래 사람의 의사 소통을 차단했다?
견불견이내자성야(見不賢而內自省也) 논어 리인편
무슨 말 이냐면?
자기보다 못한 자 어리석은 자를 보더라도 자신의 반성의 재료로 삼을 수가 있고 그들이 스승이 될 수도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불치하문(不恥下問) 논어 공치장 편
하라 했습니다. 즉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말라 했습니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비슷하니까 그냥 지나가기로 하고 제일 중요한 네 번째,말씀대로 양을 훔친 아비를 자식이 고발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원리 원칙인 형벌 주의자가 아닙니다. 그의 가르침은 인의에 의한 덕을 중시하고 종평생기서호(終平生其恕呼), 즉 평생을 용서하고 살라는 덕치 주의자입니다. 백성을 통치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무치(無治) 다음에 덕치(德治)아닙니까? 생각을 좀 해보십시오 그까짓 양 한 마리를 훔쳤다고 아비를 고발해서 처벌을 받게 해야 옳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당성이 불순하다고 해서 자기 가족을 당에 고발하여 시베리아 유형을 살리는 맹목적인 공산주의자의 행동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맹목적으로 물컹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관리시절 자기가 사형 선고까지 내려본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공자는 귀신을 부정했다 하셨는데 이것도 전적으로 귀신을 부정 한 게 아니고
"내가 산 사람일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귀신을 알리오"
하는 공자의 지극한 겸손인 것입니다 논어 옹야 편에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즉 무슨 말 이냐면?
귀신, 즉 죽은 조상은 공경은 하되 죽은 사람 중심으로 살지 말고 산 사람 중심으로 살아라 하는 뜻이지요 이것은 당시 조상제사를 지내는데 너무 허례 허식에 치우치니까 이런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이란 상상의 세계입니다. 즉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일어 날수 없는 허구, 가상의 세계입니다.또 한가지 텍스트를 다 읽지 않았어도 비판 할 수 있다?저는 이 대답을 몽테스키외가 그의 저작 "법의 정신"에 쓴 서문의 한 부분으로 대신 할까 합니다.
............여기 한 소원이 있는데 어쩌면 들어 주지 않을 런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한번 읽어보기만 하고 나의 20년의 사업을 판단치 말라는 것이다 이 책 전체를 칭찬하건 비난하건 그 몇몇 구절에 치중치 말라는 이야기다 만약 여러분이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고자 한다면 이 작품 전체를 읽을 수밖에 없다.....저역시 '공자가.....'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님도 말씀하신 데로 책제목이 틀린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여러 가지로 짜증이 나시게 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 드리고요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토론은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2000. 11. 26.



고래 wrote:

요즘들어 정말 저를 쌩콩이란 인물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단정하고 모욕적인 충고를 하는 내용의 불쾌한 메일을 계속 받아 '쌩콩'이란 이름만 들어도 알레르기가 날 지경인 상태에서 이제는 쌩콩님한테 제 개인게시판까지 침범을 당하고 말았군요. 아니 법문창작게시판에 이어서 제 게시판까지도 쌩콩님께 점령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쌩콩님께 대한 제 개인적인 감정은 가급적 억누르기로 하겠습니다. 설마하니 여기서도 쌩콩님의 글 조회수만 비약적, 폭발적으로 뛰어오르고, 쌩콩님의 글이나 쌩콩님과 관련된 글만이 게시판 아래위를 모두 뒤덮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도 제가 쌩콩님의 글을 일일이 삭제하기에는, 쌩콩님의 넘치는 시간과 정력을 제가 감당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쌩콩님의 주장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될 만한 부분만이라도 간단히 언급하는 대응자세를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걸 두고 또다시 "경일형은 혹시 1인2역으로 자기가 토론상대방역할까지 떠맡는 놀이를 즐기시는 것 아닙니까?"하는 메일을 받게 되더라도 제가 쌩콩님께 걸려든 이상 이젠 엎질러진 물인 것 아니겠습니까?

1) 먼저 "공자가 말한 소인이란 선천적으로 키 작고 배나온 놈들이 아닌가?"라는 오해를 제가 했다고 주장하시는데, 한마디로 저를 바보멍청이로 만들기로 작정을 하신 것 같군요. 혹시 쌩콩님께서 키 작고 배 나온 사람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굳이 논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도 우리가 일상생활해서 소인(小人)이라고 일컬을 때, 이것이 '키 작고 배 나온 놈'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요. 물론 제가 그런 상식적인 정의조차도 모르는 괴상망칙한 싸이코라는 것은, 그래서 '쌩콩'이라는 괴상한 필명까지 만들어 활동한다는 것은, 요 근래 많은 후배님들께서 저에 대해 갖고 계신 견해인 것 같지만.

2) 그다음 공자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공자가 사람을 선천적인 능력에 따라 차별했다는 증거는 논어 여러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옹야편에 보면 "보통 수준 이상인 사람에게는 높고 깊은 도를 말해줄 수 있지만(中人以上 可以語上也), 보통 수준 이하의 사람에게는 높고 깊은 도를 말해줄 수 없다(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는 말이 있고, 자한편에 보면 "같이 공부를 한 사람이라도 같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는 없다(可與共學 未可與適道)"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씨편에 보면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으뜸이고(生而知之者 上也), 배워서 아는 것이 그 다음이며(學而知之者 次也), 실천하는 가운데 어려움을 만나 비로소 배우는 것이 그 다음이고(困而學之 又其次也), 어려움을 만나서도 배우지 않는 것은 백성들이 그러한데, 이것이 가장 낮은 것이다(困而不學 民斯爲下矣)"라 했습니다.

이는 곧 선천적으로 머리 나쁜 놈은 아무리 채석장으로 데리고 가 그 돌을 깨도 안된다는 얘기지요. 돌은 삶아도 고구마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교육의 의의가 어디에 있나요? 보통 수준 이하의 사람에게도 차근차근 지식을 가르쳐서 그를 보통 수준 이상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교육이 아닌가요? 그리고 같이 공부를 한 사람이라도 성과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 협동하고 토론하고 해서 이왕이면 같이 도를 깨우치는 게 이상적인 것 아닌가요? 왜 공자는 그걸 일단 부정하고 봤을까요? 그리고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 생이지지자가 으뜸이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엔 그런 사람은 어차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자기가 실천하는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 배우는 것이 으뜸이 아닐까요?

인생에 있어서도 학문에 있어서도, 남이 말하는 것은 아무리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가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치열하게 고민해서 토해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In der Wissenschaft wie in dem Leben soll man nicht lesen, was andere sagen, sondern soll sagen, was man fuehlt). 그리고 실제로 자기가 완전히 소화해서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는 말이 아직 없는 데도 뭔가 말을 하려고 초조해하는 사람은 결국 평생 아무말도 못하고, 남의 말이나 흉내내다가 끝날 우려가 있습니다(Und wer voreilig etwas redet, ehe er wirklich etwas zu sagen hat, laeuft Gefahr, niemals etwas Rechtes zu sagen). 학문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지만, 실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고 선천적인 두뇌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자는 군자 가운데서도 최상급의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공자 말씀에 따르면.

3) 그 다음 공자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천박하게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고 쌩콩님은 주장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김용옥 교수가 아무리 뭐라고 했다 하더라도, 공자가 천민출신이란 사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공자의 아버지 공숙량흘은 약 2미터의 장신에다가 무공에도 뛰어났던 실력있는 무사였고, 공자는 비록 그의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실질적인 장남이자 외아들로서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고, 이미 20세부터 관직을 얻어 명성을 쌓았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도 별 곤란을 느끼지 않았을테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Wer nie sein Brot mit Traenen ass)로서 팔자 좋게 살아갔겠지요. 그런 그가 논어 이인편에서 보듯 군자는 도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君子懷德 小人懷土), 군자는 법도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君子懷刑 小人懷惠) 말하고, 논어 위령공편에서 "군자는 학업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지 먹고 사는 것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君子謨道 不謨食耕也)"고 말한 것은 당연합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먹어야 합니다(Wenn man arbeitet, muss man auch essen). 누가 빵을 준다는 말입니까(Wer soll ihm denn Brot geben)? 하지만 이에 대해 고상한 금욕적 이론들을 제법 의젓하게 내세우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대개는 상류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독일의 가난한 음악가가 백만장자를 찾아가서 며칠째 굶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 백만장자가 이렇게 얘기했다더군요.

"여보게, 모차르트는 가난 속에 허덕이다가 죽은 것을 모르나(Aber bester Herr, Mozart ist im Elend zugrunde gegangen)?"

논어 술이편에 보면 "군자는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넓으며 소인은 항상 근심하고 걱정한다(君子 坦蕩蕩 小人 長戚戚)"는 말이 있지요. 당연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자는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반면 먹고 살 길이 막연한 사람은 아무리 학문이 높고 의지가 굳더라도 세상 살기가 팍팍합니다. 공자는 제후나 대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중년에 유랑생활로 고생도 꽤나 했지만 부유한 제자들이 많이 있어서 적어도 먹을 것에 관한 한 평생 걱정이 없었던 사람이었지요. 그의 눈에 가난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꼴이 얼마나 쪼잔하게 보였을 것인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입니다.

4) 그다음은 권위주의에 대해서입니다. 님께서는 교만하여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것이 권위주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 강한 권력을 틀어쥐고, 그러한 권한행사에 대해 아랫사람들이 그때그때 정보와 해명을 요구할 때 이를 거부하는 것도 역시 권위주의입니다. 논어 태백편에 보면 "백성들로 하여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로 가게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왜 그런가 하는 것은 알게 할 수 없다(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는 말이 있습니다. 또 계씨편에 보면 "천하가 태평하면 예악을 만들고 군사를 내는 것이 모두 임금에게서 나오나(自天子出), 천하가 어지러우면 모두 제후에게서 나온다. 제후에게서 나온 것은 대개 십대를 전해지는 것이 드물고, 대부에게서 나온 것은 대개 오대를 전해지는 것이 드물며, 대부의 가신에게서 나온 것은 대개 삼대를 전해지는 것이 드문 법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공자는 백성을 그저 끌고가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가르쳐서 이해시킬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왕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후나 대부, 가신조차도 왕의 권위에는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중요정책이나 예의범절이 꼭 윗사람에게서만 나와야 하는 겁니까? 개혁도 '위로부터의 개혁'만 개혁일 뿐, 아랫사람이 그런 걸 시작하면 안된다는 무슨 법이라도 있습니까? 하긴 윗사람 자기 권한행사하는 일에 아랫사람이 쓸데없이 간섭하거나 교만하게 굴었다가는 '군자'가 아니라는 말이나 들을 테니, 아랫사람은 그저 윗사람 시키는 대로 그대로 고분고분 따라하는 게 상책이겠지요,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5) 그 다음 공자가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고, 다만 미색을 멀리하라고 했다는 쌩콩님의 주장입니다. 논어 양화편에 보면 "여자와 소인은 같이 지내기가 어려운 법(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이라는 정말로 유명한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쌩콩님의 해석에 따르면 미색을 멀리하라는 뜻이 되겠는데, 공자는 왜 하필 여자라고 하면 미색밖에 떠올리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여자는 그저 얼굴과 몸매로 남자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섹스만을 제공하는 물건입니까?

6) 그 다음 의사소통에 대해서인데 쌩콩님께서는 공자가 자기보다 못한 자 어리석은 자를 보더라도 자신의 반성의 재료로 삼을 수가 있고 그들이 스승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며, 이것은 의사소통을 뜻한다고 주장하십니다.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자, 어리석은 자가 바보짓만 저지르고 다니는 것을 관찰하며, 그걸 자기가 되풀이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과연 의사소통입니까?

논어 자한편에 보면 "나만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라(毋友不如己者)"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주의입니다. 이건 고독의 고통을 극복하고 나아가 그 고독을 좋아할 줄 알아야 한다(Einsamkeitsbeduerfnis)는 의미도 아니고, 세파에 휩쓸려 자기 개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냥 자기보다 천한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해버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런 식의 오만함과 독선적인 태도가 열린 의사소통에서 얼마나 큰 장애가 되는지는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 다음 쌩콩님께서는 공자가 원리 원칙인 형벌주의자가 아니라며, 평생을 용서하고 살라는 덕치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백성을 통치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무치(無治) 다음에 덕치(德治)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통치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는 별론으로 하고, 정치나 법률을 집행하는 데 원리 원칙이 없이 개인의 관용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경우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선량한 일반시민의 신변에 불안이 되는지는 생각해보셨습니까?

쌩콩님께서는 공자가 맹목적으로 물컹한 사람이 아니며, 관리시절 자기가 사형 선고까지 내려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노나라의 사구(법무부장관)를 맡아 섭정할 때, 자기 최고 경쟁자였던 소정묘를 잡아다가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머리가 빨리 돌아가면서 마음이 음험하고, 달변이면서 거짓을 말하고, 추잡한 것만 외우고 다니면서 두루두루 아는 게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런 이유는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한 것입니다. 이런 공자 같은 사람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법무부장관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죽을 사람이 한둘이겠습니까? 아마도 온갖 진보인사들과 조금 튀는 발언을 잘하는 인사들이 줄줄이 단두대에 설 것입니다. 이게 평생을 용서하고 살라는 덕치주의입니까?

8) 그 다음 쌩콩님께서는 그까짓 양 한 마리를 훔쳤다고 아비를 고발해서 처벌을 받게 해야 옳겠느냐고, 이것은 마치 당성이 불순하다고 해서 자기 가족을 당에 고발하여 시베리아 유형을 살리는 맹목적인 공산주의자의 행동과 무엇이 다르냐고 하셨습니다. 무지막지한 과장입니다. 아버지와의 정이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재산도 소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면, 가급적 훔친 양을 돌려주시도록 하고, 만약 그래도 돌려주시지 않는다면 재판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간의 정(情)보다도 더 중요한, 사회정의라는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데, 설마 쌩콩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아들은 거기에 무조건 동참하거나 방조하거나 은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9) 그 다음 쌩콩님께서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인용하시며,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고자 한다면 작품 전체를 읽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고 계시는데, 사서오경을 운운하시면서도 남송시대 이후 중국유학이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신 것 같군요. 남송시대의 유학자 육구연은 '역전'의 이간(易簡)과 '맹자'의 "먼저 대체를 세운다(先立其大)"는 사상을 결합하여, "전주(傳注)하는 데 미련을 두면 도리어 덤불에 막히고, 정밀함에 힘쓰면 도리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다"고 설파했습니다. 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적이나 사변에 일일이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물론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훈고학은 기본입니다. 어떤 사상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Text를 기본적으로 읽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고, 이러한 Text는 반드시 전체문맥(Kontext) 속에서 이해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심지어는 님께서 책제목이 틀린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단정짓고 계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도 책내용 전체를 다 읽어봐야 책제목이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비판하는 주체와 비판을 받는 대상이 함께 중요한 것이지, 외부에서 빌려온 대상이 주체를 압도하는 중요성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외물을 대상으로 엄밀하게 분석하는 방식은 과학적 사고방식의 기본이지만, 이것이 지나친 완벽주의로 흐를 경우 번쇄하고 지리해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지금 독일에서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수많은 독일문헌을 읽고 있지만, 모든 문헌을 100%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는 짓은 하지 않고 있으며, 그런 짓은 여기 박사과정생 중 그 누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설마 님께서는 제게 이곳 독일에서 박사논문만 30년 이상을 쓰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실테죠. 님께서는 설마 어떤 글을 쓸 때 모든 참고문헌의 목차부터 각주, 미주까지를 다 읽고 계시는 것은 아니실테죠.

10) 마지막으로 님께서는 공자에 대해서 매우 해박하신 듯한데, 주자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오늘의 글은 주자가 자신의 토론상대방들에게 보낸 편지의 말미에 항상 붙여두었다고 하는 관용구로 인사를 갈음하기로 하겠습니다. 너무 인터넷만 하지 마시고, 다른 생산적인 일에도 똑같이 몰두를 해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사실 님같은 분과의 온라인토론은 제게 아름답다기 보다는 왠지 짜증스럽게 느껴져서요. 그럼,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원컨대 학식이 밝은 당신은 그 점을 반성해보시기를...(願明者之反之也)"

2000. 11. 26.



쌩콩 wrote:

논어 이야기는 자꾸 해봐야 또 배구공처럼 넘어 올 것은 뻔하고.....

고래 형!!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양을 훔친 아비를 자식이 고발해야 당연하다니요? 물론 아비라도 사람을 죽였다면 그것은 문제가 다르겠지요
고래형께서는 법을 공부하시는 분이라서 그러시는 지는 모르지만 법 이전에 아름다운 인간 정신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 가요?
이런 것이 올바른 인성 교육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느 현직 검사가 한 이야기 중에....이분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수원지검의 청소년 문제에 밝으신 강...!?...무슨 검사이시던데.....?.....아무튼....이분 말씀 중에,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를 예방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 초등교육부터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것이다"
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고래형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공자가 죽은 것은 이미 기원전에 죽었고
'공자가 좀 찌그러져야 나라가 산다'
하셨는데 공자 본래의 아름다운 유교 정신은 이미 이사회에서 좀 찌그러진 것이 아니고 겨우 몇 권의 책 속, 그것도 지독히도 손이 가지 않는 책장 속에서나 숨만 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이젠 이것의 부활이 있어야 됩니다.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전 유럽 의로 퍼져 중세 봉건적 억압으로부터 의 탈출, 신 중심의 무지에서 인간중심의 깨달음으로, 그때까지 교황 중심의 억압에서 자연 중심의 사상으로 발전한 르네상스처럼 이 땅에는 전통유교의 재생만이 애시당초 태어나기를 선하게 태어난 사람본래의 인간성을 회복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작금의 이 세상에서는 양을 훔친 아비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비와 어미를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지른 빗나간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재산 상속 문제로 아비를 죽인 현직 대학 교수가 있었습니다.이대로 가다가는,
획죄어천무소도야(獲罪於天無所禱也)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조차 없다.
맹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2000. 11. 27.

희망편지 wrote:

고래의 글과 쌩콩님의 글을 슬쩍슬쩍 읽으면서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그 둘의 논쟁의 바다에 나의 삐딱선을 띄울 수 있을까 걱정이지만 나몰라라 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고,더욱이 내가 크리스찬이라는 이유도 약방의 감초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우선 먼저 공자주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종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용되는 유교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의 조선왕조 60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오던 교리(?)이다. 즉 그 유교란 것이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적 행동의 잣대가 되어 현실생활의 선을 긋는데 사용된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성경, 불교에서의 불경, 공자주의에서의 논어 맹자가 아무리 교리적으로 뛰어나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현실적으로 민중들의 ?속에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살아있는 진실이 아니고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난날 공자주의가 우리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들기 보다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얼마나 민중들을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억압하며 부자유스럽게 했는가?

쌩콩님의 공자주의의 복귀라는 견해는 우리 사회의 어떤 종교단체든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라 본다. 분명 기독교의 성경이나 불교의 불경(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참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할 것임)속에서도 다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고, 우리 삶의 건강성 확보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공자주의를 운운할 때면 '술은 새부대에 담으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건 이미 공자주의 실험은 조선왕조 600년으로 끝이 난 것이고, 그 내용적인 것들은 100년밖에 안된 한국기독교 성경에도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철저하게 한국땅에서의 한국적인 기독교 성경의 적용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어떠한 공자주의의 교리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서양에서 이미 수천년간 이루어진 성경의 해석의 넓이와 깊이로 다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희망편지 방준식

2000. 11. 28.



쌩콩 wrote:

방 준식 님께

참으로 좋은 글 읽었습니다.
제가 지금 법문 창작게시판에 연제 하고 있는 저의 졸작 (MMM.....)에서 주로 하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님이 말씀하시는 이조 적 공자주의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림의 소굴인 서원을 과감히 철폐한 흥선대원군을 화자로 등장시켜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한반도에도 르네상스(재생)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것은 본래의 공맹입니다.
이조에 잘못 전수되고 소위 수탈계급인 세도가들에 의해서 잘못 악용된 공맹은 결국 이조를 망친 것입니다 사농공상 중에서 공상을 천시하고 문무(文武) 중에서 무를 하대해서 국방력이 약화되어 결국 나라를 망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폐해가 본래의 공맹이 그렇게 가르쳤을 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조선 왕조의 가장 취약 점 이었던 경제와 과학 분야입니다. 이것은 조선 왕조 뿐만 아니라 당(唐)나라 이후의 중국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당(唐)대의 중국은 당시 세계의 최강국이었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때 가 바로 중국에서는 공맹사상의 최 전성기였습니다. 이때 공맹이 붐을 이룬 중요 원인이 측천무후가 귀족문벌의 득세를 막기 위하여 과거(科擧)시험을 통해 일반인들을 많이 등용시켰고 자연히 이때 이 시험을 통해 유교적 교양 관료가 많이 진출했습니다.

이러 던 것이 송 대 이후부터 이것이 퇴색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즉 본래 공맹의 능률과 실질이 점점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공맹은 책상머리의 학문으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그 원인이며 당시 송대의 사회적 배경까지 설명하려면 상당히 기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우리 이조의 공맹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이때 만들어진 소위 신유학(新儒學)이라는 이름의 성리학입니다 이것이라도 제대로 전수를 받았으면 이조가 괜 찮았 을 건데 이것을 제대로 전수시키려고 했던 서경덕이니 율곡 퇴계 주욱 내려가서 소위 실학파들 반계, 성호, 연암, 다산......등등은 힘을 쓰지 못 했습니다 또 본인들 대 부분이 그 당시의 정치판이 하도 더럽기 때문에 벼슬들을 원 하지 않았고....뭐...이런 것은 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냥 제가 말하는 순서 상 꺼내 놓는 것이니까 이해를 하십시오

공맹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이 저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봅니다 이것은 대학 팔 조목의 하나인데 대학 경문 편에 나옵니다

즉, - 격물치지(格物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

이 조목에서 격물치지, 성의정심, 은 이조의 잡놈의 유림들이 쏘옥 빼 버리고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만 가지고 이조를 주물러 온 것입니다 왜 그랬을 까요?
바로 우민화(愚民化) 정책입니다. 여기에 대한 것을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저의 졸작을 한번 봐 주시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격물치지는 무엇일까요 이게 굉장한 과학+철학입니다 화담 서경덕이 이것만 연구하는데 평생을 연구하였지요. 이 간단한 네 글자 속에 물리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철학, 형이상학, 형이하학, 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격물치지를 기초로 하여 서경덕이 연구했던 기(氣)를 전재로 한 우주관은 서양의 현대 물리학 보다 무려 470년이 앞선 것이라고 오래 전에 서울대학교의 화학과 교수로 계셨던 이 종진 박사란 분과 고려 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 경탁 님이 사상계 잡지에서 대담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님은 잘 아실 줄 믿습니다만 혹 격물치지에 대해서 잘 모르시면 문자검색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알기 쉽게 나오더라고요

제가 공맹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실사구시(實事求是), 주옥같은 인성교육, 그 외 무궁 무진한 덕목들, 이런 것을 제대로 찾아서 현대의 우리와 접목시키자는 뜻으로 제가 졸작MMM......에서 주장하고 공맹이 얼마나 훌륭한 학문이었고 철학이었나를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님의 말씀대로 이조의 공맹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마땅하지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다니요? 큰일나게요 이런 주옥같은 공맹과 서양의 능률이 잘 조화를 이룬 것이 손문의 삼민주의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장개석에 의해서 정치 도구화되니까 결국은 제대로 본래의 뜻을 이루지 못 했지요 그러나 장개석이나 리콴유의 독재는 크리스탈 같은 깨끗한 독재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래도 공맹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길지요? 그럼 이만......

쌩콩 드림

2000. 11. 28.



고래 wrote:

쌩콩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유학자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 게시판에서 난장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글을 읽고 킬킬 웃기도 하고, 과연 그같이 '큰 인물이 될 사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장문의 글을 게재해야 할 만큼 내 게시판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마치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님 전도사업을 위해 비기독교 신자들을 '사탄'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갖은 비난을 퍼붓듯, 그는 나를 아주 "양을 훔친 아비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비와 어미를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지른 빗나간 유학생" "재산 상속 문제로 아비를 죽인 현직 대학 교수" 등으로 비유하면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조차 없다(獲罪於天無所禱也)"는 공갈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 비난을 받을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사실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실지 모르는 나의 아버님께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는 나에게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지는 모르지만 법 이전에 아름다운 인간 정신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쌩콩이란 사람만큼 아름다운 인간정신을 갖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이유가 그가 말한 것처럼 내가 법을 공부했기 때문이라면 이 땅의 모든 법대생들에게 내가 다 민망한 일이다. 그는 내게 "이것이 올바른 인성교육이 아닌가 한다"고 말한다. 쌩콩한테서 난데없이 인성교육까지 받게 되었으니 고마워서 그에게 수업료라도 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사서오경에 박식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그에게 일개 법대생인 내가 조금이나마 사서오경강의를 좀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국문과, 사학과나 철학과에 다니는 내 위대한 선배님들에 비하면 나의 사서오경 실력이란 것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도무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유가철학을 왜곡하고 다니면서도 전통유교의 르네상스적 재생을 외치는 그에게는 나같은 천학비재한 사람이라도 좀 가르칠 것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선 당대의 중국이 공맹사상의 최전성기였고 그덕분에 당시의 중국이 세계의 최강국이 되었는데, 송대 이후 공맹의 능률과 실질(격물치지)이 쇠퇴하여 중국이 몰락하게 되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에 대해서이다. 이곳 서양사가들도 19세기 초반까지는 중국이 서양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문명의 중심이었으며, 송나라, 명나라와 청나라 등은 문화적, 경제적으로 서양을 훨씬 앞지르고 있던 나라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특히 송나라는 군사력의 취약함(militärische Schwäche)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상 비교적 안정된 내치와 강남의 풍요로운 경제력으로 민생이 제법 안정되어 있던 시대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당대의 중국이 과연 공맹사상의 최전성기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원래 당나라 시대를 일컬어 이백과 두보로 대표되는 중국 시문학의 최전성기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공영달로 대표되는 당대의 유학이 과연 사마광, 육구연, 주희, 왕수인으로 이어지는 송대의 유학을 능가하는지는 아무도 쉽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당대는 비단 유가 뿐만이 아니라 현장이 인도에 다녀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불교문화가 꽃피었던 시기였고("서유기"라고 읽어보셨을까?), 도가는 물론 심지어 조로아스터교까지 성행했을 정도로 종교적 똘레랑스가 나라 안에 폭넓게 확립되었던 시기였다.

과거(科擧)시험이 정착되고 유교적 교양 관료가 많이 진출한 시기는 오히려 송대로 봐야 옳다. 송나라의 문화는 흔히 서양의 르네상스문화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복고적인 성격이 송대문화의 큰 특징을 이루는 까닭이다. 신유학이라고도 부르는 주자학 역시 일종의 사상부흥운동이라 볼 수 있는 것은, 당나라때까지의 훈고학이 경전의 자구를 해석하는 데만 치중하여 민중과 유리되었던 반면 송대의 주자학은 원시유교로 되돌아가 공맹의 정신을 올바로 파악하여 민중에게 파고들자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쌩콩은 당나라때 공맹이 붐을 이뤘으나, 송대 이후부터 이것이 퇴색하기 시작해 본래 공맹의 능률과 실질이 점점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공맹은 책상머리의 학문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우리 한반도에도 르네상스(재생)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것은 본래의 공맹이라고 한다. 르네상스가 인간중심 그리스-로마문화의 재생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송대의 유학이 바로 그 인간중심 원시유교의 재생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쌩콩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도 어쩌면 이렇게 반대로, 뻔뻔스럽게 왜곡할 수 있는 것인지 나 자신도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가장 중요한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해서이다. 쌩콩은 이것이 당나라때에 붐을 이룬 것인데, 송대 이후로 쇠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치 대학과 격물치지의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쌩콩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원래 "대학"이라는 책은 당나라때만 해도 "논어"나 "맹자" 같은 반열에 끼지도 못하던, 그저 "예기" 중의 한 편으로 내려오던 책으로서, 맹가의 제자인 낙정극이 썼는지 아니면 순황의 영향을 받은 진대의 유학자들이 엮었는지 그 저자조차도 불분명한 평서에 불과했음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이걸 송대의 주자(朱子)가 비로소 건져내어 "앞의 한 단락은 공자의 말을 증참이 기록한 것"이라고 저자를 확정하고, 논어, 맹자, 중용과 함께 "사서"로 묶어, 그 중요성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대학"은 주자(주희)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인데, 주자가 대학의 차례를 바꾼 것은 세군데, 글자를 바꾼 것은 한군데, 그리고 새로 써넣어 보완한 글자는 134글자에 이르니, 그를 최소한 '대학'의 공동저자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럼 쌩콩 말에 따르면 공맹을 쇠퇴시켰다는 주자가 왜 그토록 '대학'에 목을 매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쌩콩이 그렇게 좋아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때문이었다. 원래 유가철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인격수양론인데, 기존의 유학이 공맹 이후 지나치게 성의론에 치우쳐서 비약과 초월을 용인하는 등 비과학적인 경향을 띠게 되자, 이에 문제점을 느낀 주자가 죽은 공자를 '대학'을 통해 다시 부활시켜 그로써 지식론을 크게 보강하려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격물치지(格物致知)'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수양과 행위의 논리를 명실상부하게 그 첫머리에 놓여있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바라보려 노력했고, 그 노력은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등의 말을 '대학' 내에 보충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주자는 결국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유학의 핵심원리로 격상시킴으로써, 기존의 심성론적 유가철학을 새롭게, 외재하는 이치의 파악을 기본으로 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이조유림들은 이러한 신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세종대왕때를 보면 알 수 있듯 눈부신 과학적 성과(한글창제, 측우기 등)를 조선초기에 이룩할 수 있었다. 양명학이나 실학, 북학 같은 것들도 이러한 주자학의 연구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기반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굉장한 과학+철학이라면서, 이 간단한 네 글자 속에 물리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철학, 형이상학, 형이하학이 다 들어 있다는 둥, 이 격물치지를 기초로 하여 서경덕이 연구했던 기(氣)를 전제로 한 우주관은 서양의 현대 물리학 보다 무려 470년이 앞선 것이라는 둥 하는 얘기는 모두 뜬구름 잡는 허황한 얘기들일 뿐이다. 유학이란 학문은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고도의 정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는 우수한 점이 있었을 지 모르나, 그 모든 탐구성과를 인간적인 의미로 윤색하기에 과학의 독자적 성장은 사실상 가로막았다고 볼 수 있는 학문이다. 이게 인성교육(?)에는 크게 공헌했을지 모르나 객관으로서의 자연을 주된 탐구대상으로 하는 과학에 기여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내포하는 사유라는 것이 구체성, 실체성, 개별성에 즉응하여 이치를 궁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어도, 이것을 다시 추상화, 논리화, 보편화시켜서 수학적 논리적 이성으로 다시금 전개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심지어 우리나라 근대 실학자들의 저서를 읽어보더라도 방대한 지식의 나열 이상의 체계적인 사변이나 논리적인 명변을 찾아보기는 힘든 데서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쌩콩이란 사람에 대해 내가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것쯤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기 본명을 숨기고 이상한 필명을 만들어 남의 게시판을 헤집으며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테러리스트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이미 여러 번 겪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개 법대생이 기본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유학지식조차도 무시하고서 마치 자기가 진정한 유학자인 양 으시대며 인성교육을 시키겠답시고 인터넷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그의 작태를 볼작시면 나는 그에게 최소한 자기가 그렇게 훌륭한 학문이라고 떠드는 유학만이라도 제대로 공부를 하고서 그렇게 설치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자님을 믿건 예수님을 믿건 자유이지만, 사람이 학문을 논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도로 지켜야 할 기본덕목은 자기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 고통스러운 탐구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얄팍하게 몇줄 읽은 것만 가지고 절대진리인 양 선전하고 다니면서 거기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 횡포를 부리는 자세는 결코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공자님께서도 몇마디 좋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말을 쌩콩에게 들려주며 오늘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알거든 안다 하고(知之爲知之) 모르거든 모른다 하여라(不知爲不知)."

2000. 11. 28.



쌩콩 wrote:

고래형!!
언패이출자역패이입(言悖而出者亦悖而入) 대학전 10장

무슨 말이냐 면 ?
말이 남에게 거칠게 나가면 자기에게로 거칠게 돌아온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고래형이 함부로 말을 하시건 어쩌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기로 하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형이 말씀하신 대로 사이비 유학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아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지적 드리고 싶은 것은 문장 작성 요령이 없으시군요 문장이란 간결하면서도 핵심만을 꼭 집어서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형의 문장은 우선 장황하고 진짜 집어내야 할 것 은 제대로 작성을 못 하는군요 또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용하고....

형의 말씀 중에 송대와 당대의 문화를 비교하시면서 송 대가 유학의 전성기였다 하셨는데 맞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그 탄탄한 문화의 기초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당(唐)대에 선행 되었고 그때 정지 작업을 잘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조선조의 요순시대라는 세종조 때의 탄탄한 기반을 그의 아버지인 이 방원이 닦아주었듯이.....

뭐 이런 진부한 역사적인 것이야 이 게시판에 들어오시는 손님 들 수준이면 다 잘 아실 것이니까 형처럼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한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하지도 않은 소리를 억지로 끄집어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 당(唐)대에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나왔다고 했습니까? 당대의 그 진취적 기상의 원동력이었든 유학이 능률과 실질이 빠져나가고 태평 성대에 빠진 송대의 유학자들에 의해서 책상머리의 이론에 치우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지요 이런 이야기야 역시 진부한 이야기니까 고만 접어 두기로 하고 내가 가장 중요시한다는 격물치지에 대해서만 말씀을 올리기로 하지요

화담 서경덕은 여기에 흠뻑 빠져 당대의 미녀 황진이의 육탄 공세에도 꿈적도 하지 않고 오직 격물치지만 연구 한 사람입니다 또 퇴계와 고봉 기대승은 격물 치지에서 파생된 리(理)와기(氣)가 일원론(一元論)이냐? 이원론(二元論)이냐를 가지고 무려 8년 동안이나 서신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대 유학자답게 지극히 사제간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아름다운 토론이었습니다 고래형처럼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런 서경덕의 우주론은 서양의 물리학 보다 무려 470년이 앞선 다는 말은 어제도 말한 것처럼 한때 최고 지성인의 잡지 사상계의( 1958년 3월호 P87-95P) "철학인 과 과학인의 대담" 이라는 목차에서 당시서울 대학교의 이종진(李 鍾珍)박사와 고려대학교의 김 경탁(金 敬琢)박사가 무려 4시간을 토론하면서 화담 서경덕의 격물치지를 극찬하였습니다. 이 책을 가까이 계신다면 좀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바로 그 대목만 여기에 옮긴다면,

김 경탁 ::
그러면 中性子 陽子 電子 같은 기본적 알맹이 즉 素粒子의 절대질량 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이 종진::
그렇습니다 즉 이 알맹이들이 위치 에네르기의 변형 또는 결합 에네르기가 흩어져서 우라늄원자의 분별 할 때와 같이 막대한 에네르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화담 선생의 기(氣)를 단지 에네르기로 보지 않고 물질 원자 이전의 형태인 여러 에네르기가 단위를 가지고 있는 중성자 전자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과학에서 겨우 알아낸 사실을 화담 선생은 470년 전에 벌써 알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랬습니다.

고래형의 말씀대로 한다면 이 당대의 석학이신 이 두 분의 박사님이 뜬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로군요

고래형!!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좀 겸손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제야 알겠군요 고래형이 후배들에게 왜 그렇게 욕을 먹는지.....

2000. 11. 28.



고래 wrote:

쌩콩은 "당대의 그 진취적 기상의 원동력이었던 유학이 능률과 실질이 빠져나가고 태평성대에 빠진 송대의 유학자들에 의해서 책상머리의 이론에 치우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당나라가 송나라에 비해 대외적으로 보다 활발하게 국위를 과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원동력이 과연 '유학'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리고 당나라때까지의 유학은 능률과 실질보다는 성의론(誠意論)과 같은 주관적 수양 중심의 철학이었으므로, 이 수양의 도구로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내세운 송대의 유학자들이 당대의 유학자들보다 더 능률과 실질에 충실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번 글에도 내가 누누히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태평성대에 빠진 송대의 유학자들에 의해서 책상머리의 이론에 치우치기 시작했다"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송대의 문약은 유학자들때문이 아니라 송태조 조광윤이 오대 부장들의 횡포에 염증을 느껴, 제위에 오르자 마자 군인을 억압하고 문관을 우대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송대의 왕안석과 같은 개혁적, 참여적 유학자를 당대에 볼 수 없고, 송대의 악비와 같은 문무겸전한 구국영웅적 유학자 역시 당대에 볼 수 없다. 심지어는 주자(朱子) 역시도 악비와 함께 당시 화친론자였던 재상 진회에 맞서 금나라와의 일전불사를 주장했던 기개있던 주전론자였다. 만약 이런 사람들까지 "책상머리의 이론에 치우친" 사람들로 본다면, 화담 서경덕이나 퇴계 이황까지도 '책상머리'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밖에 쌩콩은 한때 "당(唐)대의 중국은 당시 세계의 최강국이었다. 그때가 바로 중국에서는 공맹사상의 최전성기였다"고 주장했었는데, 이렇다할 사과 없이 슬쩍 주장을 바꾸고서 어물쩍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 "송대가 유학의 전성기였다 하셨는데 맞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그 탄탄한 문화의 기초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하고 견강부회식 어거지를 쓰고 있으니, 이렇게 지적으로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자가 어떻게 스스로를 퇴계나 고봉에 비유할 수 있단 말인가? 퇴계나 고봉이 이런 말바꾸기를 하였던가?

그리고 쌩콩은 한때 최고 지성인의 잡지 사상계(1958년 3월호 P87-95P)에서 당시 서울대학교의 이종진(李鍾珍)박사와 고려대학교의 김경탁(金敬琢)박사가 무려 4시간을 토론하면서 화담 서경덕의 격물치지를 극찬하였다고, 이 당대의 석학이신 이 두 분의 박사님이 뜬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를 한 거냐고 묻는데, 나는 지금으로부터 42년전 이승만 정권때 그분들이 방담하시면서 그 정도의 이야기를 나눈 것에 대해 무슨 비난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예를 들어 사상계 편집장이었던 장준하 선생께서 그 당시 "모든 통일은 선하다"고 하셨다는데, 이건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나찌즘이나 군사적 획일주의에 버금갈 만큼 큰일날 얘기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겠다고 믿는다.

화담 서경덕의 一氣恒存說은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나 질량보존의 법칙을 연상케 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 이는 화담 서경덕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송대의 유학자 장헝취(張橫渠)에게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점이다. 50년대 당시 중국의 현대유학자들에 의해 이 장헝취가 미국철학계에 소개되면서 미국철학자들이 장헝취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을 보고 현대물리학이 겨우 알아낸 사실을 900년전에 중국에서 벌써 알고 있었다며 놀랬다는 식의 말이 나왔다. 석가여래의 "한방울 물에 구억마리 벌레가 있다네(一摘水九憶蟲)"하는 말을 갖고 현미경도 없던 수천년전에 인도에서 현대생물학을 앞지른 세균연구가 있었다는 황당한 발표도 중국학계에서 그때 막 나오고 그랬다. 우리 이종진 박사님과 김경탁 박사님께서 그런 때에 언뜻 화담 서경덕을 떠올리신 것은 정말 탁월한 민족애에 바탕한 것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마 이 두분의 말씀을 가지고서 쌩콩이 오늘날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굉장한 과학+철학이라는 둥, 이 간단한 네 글자 속에 물리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철학, 형이상학, 형이하학이 다 들어 있다는 둥, 이 격물치지를 기초로 하여 서경덕이 연구했던 기(氣)를 전제로 한 우주관은 서양의 현대 물리학 보다 무려 470년이 앞선 것이라는 둥 떠들어댄 것 역시 탁월한 민족애에 바탕한 것이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이종진 박사님이나 김경탁 박사님보다도 더 과격하고 선정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쌩콩에게 민족애가 더 투철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여지고... (혹시 이 주제를 가지고 "네이춰"지에 논문 한편 발표해볼 생각은 없는가? 내가 독일교수님들을 통해 주선해줄 수도 있다.)

200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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