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3년 7월 2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과 그에 대한 손님 여러분들의 몇몇 댓글들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나는 노동법전공이 아니라 민법전공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전문가적 의견을 말한다는 것이 좀 망설여지긴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프랑스 공공노조의 총파업, 독일금속노조의 총파업, 우리나라 철도노조의 파업실패가 연달아 이어지고 그에 대한 꼴통좌파들과 꼴통우파들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대코믹공방전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뭔가 내게도 갑갑한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파업'과 '경제' 그리고 '법'에 관한 나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이건 어쩌면 내가 민법학도로서 법과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조금이나마 드러내는 시도라고도 말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1. 우선 나는 파업이란 것을 그 어떤 경우에도 일단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공익사업이나 국가기간산업 종사자라고 해서 파업을 못하게 하거나, 먼저 국가기관의 심사와 중재를 거쳐 파업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좀 재고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꾸 그렇게 파업을 못하게 하고 파업에 제한을 두려 하니까, 예를 들어 대구지하철폭발물사고 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공공기관노동자들은 - 사실 노동자의 과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모든 책임을 정부나 사업자 쪽에다 떠넘기려 하게 되는 것이다. 왜? 인간은 자유가 있어야 책임도 지려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도대체 노동자들에게 파업의 자유조차도 충분히 부여하지 않고서 일방적으로 사고의 책임만 따져물을 수가 있냐는 것이다. 자기 불평불만을 충분히 주장하지도 못하고 국가가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때문에 무슨 사고가 터진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그 책임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다. 당연히 사고예방에 대한 주의와 책임의식도 희박해지며, 모든 것을 국가나 사회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파업도 할 수 있고, 아프거나 힘들면 휴가도 갈 수 있고, 그렇게 충분히 자유를 부여해야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사고나 불량률 없이 성실하게 일할 동기가 생기고 자기 과실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란 지당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노동자들에게 자유부터 부여하고 봐야 한다. 공익사업이건 국가기간산업이건 노동자들에게도 자기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상당한 무기를 부여해야 노사간에 대등한 정보교환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끝내 그러한 무기를 금지해버릴 경우 노동자들에게 허구헌날 늘어나는 것은 푸념밖에 있을 수 없다. 자포자기가 되어 에라 모르겠다, 건성으로 월급이나 받아먹고 자기 일은 대충 해치우고서 무책임하게 시간만 때우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나라 군대에서 매일 밤낮 건성으로 삽질만 해대는 사병집단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도 그 26개월 긴 시간 동안 거기서 뭣하다 나왔는지 몰라~).
파업을 실질적으로 막아버리고, 대부분의 파업을 불법화해버리면, 단기적으로야 국가경제가 올스톱되는 일은 없으니까 모든 게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일방적으로 사업자 한쪽에게만 칼자루를 쥐어주게 될 경우, 노동자들이 격무에 시달리건, 그 격무때문에 과로가 누적되어 안전점검을 태만히 하게 되건, 이런 사정을 사업자측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들어지게 된다. 이는 곧 대형사고로 이어지며, 그로 인해 생겨나는 비용들을 감당해야 되는 것은 결국 다 일반국민들이 될 수밖에 없다.
2. 문제는 이 파업이라는 게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항상 사업자에게는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무시 못할 만큼 큰 손해를 발생시킨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노조에서 파업을 일으킬 경우 그 하청기업 노동자들은 덩달아 일을 못하게 되고, 임금을 제대로 못 받게 되고,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그 대기업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납품해야 살 수 있는 대다수 하청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비단 하청기업들 뿐만 아니라 그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던 다른 대기업들도 대외신용면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므로, 이런 손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보기에, 일단 이런 손해를 방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기업경영자의 수완과 역량에 달린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설령 기업자들 입장에서 보기에 그 파업이 매우 부당한 파업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파업의 비용은 경영위험으로 생각해두어야 한다. 언제든지 파업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한 비상프로그램을 경영자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파업때문에 망할 정도의 기업이었다면 사실 그런 기업은 그냥 망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그동안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관리했기에, 그렇게 파업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게까지 사업장을 방치했느냐 이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위험을 경영자들에게만 부담시키려 하게 될 경우, 노동자들이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사사건건 생떼를 부릴 위험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공기업 민영화'같은 경우는 그 자체로 공기업노동자들에게 당장 불이익이 되는 사안은 아니며, 국가 입장에서는 공기업매각으로 재정을 건전화하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재정적자의 축소로 세금부담을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공기업노동자들이 불확실한 민영화의 공포에 사로잡혀 '국민의 이익'을 명분으로 파업을 일으키고 이를 장기화하여 국민 모두에게 이익은커녕 불편을 초래한다면 이런 파업은 사실 생떼나 어거지로 치부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또한 기업이 이윤이 없어 지금 다 망하게 생겼는데, 노동자들이 임금인하나 정리해고를 거부하고 노동급부를 집단으로 중단하거나, 급기야는 국가에게까지 자기네들을 공무원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면서 무기한파업에 돌입하고 한다면 이것 또한 대책 없는 일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에게는 법적으로 무제한의 파업권을 인정하되 노동자들이 법적인 노동쟁의기본권을 남용하지 않게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기업가들의 해고권 보장이나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고수하는 방법으로 파업권남용을 억제해야 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파업한답시고 일 안한 대신 월급은 당연히 깎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자가 명백하게 잘못해서 파업을 발생시킨 경우라면 '무노동 부분임금'이나 심지어 '무노동 완전임금'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파업기간 중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그 액수만큼을 공제해버려야 한다. 그 임금 깎인 것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느니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에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자기가 그만큼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감옥에 가라는 것도 아니고,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임금만 받지 말라는 것인데 무슨 잔말이 그렇게도 많은가? (사실 우리나라 법원은 노동자들에게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까지도 인정하고 있는 중이다. '불법파업'인 이상 수긍할 수 있는 면도 없지 않지만, 대체 우리나라에는 그 '불법파업'이란 게 뭐 그렇게도 많은 것인지...)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파업의 자유를 법적으로 무제한 부여하는 만큼, 기업가들에게는 해고의 자유도 똑같이 법적으로 거의 무제한 부여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노동자들이 단체로 파업할 경우, 그 파업한 노동자 전체를 기업가가 다 짤라버리는 것을 국가는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기간의 약정이 있다면 모를까, 그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윤창출에 꼭 필요한 노동자들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기업가는 자기 주판알을 충분히 튕긴 다음에 자기 기업의 노동자들을 맘대로 짜를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도 자기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사표 쓰고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어야 하며, 경업금지에 상관없이 동종업체에도 자유로운 취직이 허용되어야 한다 (만약 기업입장에서 이런 결과가 싫으면? 별수 없다. 퇴직금을 두둑히 주고 일정기간 다른 데 취직을 못하게 하든가 그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3. 그 뿐만 아니라 좀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국가는 노사관계, 아니 나아가 경제문제 전체에 가급적 개입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대부분의 노사쟁의가 기업과 노동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와 노동자간의 문제로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나는 이 모든 게 여태껏 우리나라 정부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경제문제, 노사문제에 너무 많은 개입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도무지 심판자 또는 협조자 역할에 만족해야 할 정부가 너무나 많은 독점권과 허가권, 승인권, 사전심사권을 경제부분, 노사부분에 대해서 갖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내 생각에 국가와 정부는 해고요건 엄격하게 정하고, 최저임금 설정하고, 산별노조에서 정한 단체협약에 강제력을 부여하고, 사기업을 국영화하는 방향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차라리 강력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서 일반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보장과 교육,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데 주력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은 경우 기업들에게 해고하지 말라고 해고하지 말라고 괜히 윽박질러댈 것이 아니라, 그 대신에 부자들로부터 세금 많이 걷어서 30세 이상의 무직자, 실업자들에게 남녀 불문하고 노동자건 사업자건, 부자건 가난뱅이건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한달에 100만원씩 동사무소에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계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기업가 입장에서는 노동자들 해고 못하고 인건비때문에 골치를 썩느니 차라리 세금 많이 내는 게 더 속편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00만원이면 100만원, 그냥 직업만 없고 수입만 없으면 그 사람 머리수대로 생계보조금 액수를 일률적으로 지급하고, 그 이상 금액을 계산하고 요건 정하고 뭐하고 골치 아프게 법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거 계산하고 심사하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엄청난 비용이며 공무원들에게는 불필요한 재량을 부여하여 부정부패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공무원은 그냥 돈과 장부만을 관리하고 장부에다 사인 받고서 무소득자들에게 달달이 돈 100만원만 지급하면 된다. 아니 그것도 이왕이면 컴퓨터에게 맡기고 컴퓨터가 자동지급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재정을 절약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료서비스는 거의 공짜가 되어야 한다. 도대체가 집안 식구 가운데 단 한 사람만 암에 걸렸다 하면 온 집안이 풍지박산나고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이런 놈의 나라가 대관절 어떻게 제대로 된 나라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감기치료 같은 사소한 질병에 대해서는 그 요금을 스스로 물게 하되, 암치료나 큰 수술비용 같은 것은 보험재정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지불하게 해야 한다. 교육문제도 그렇지만 특히 의료문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미래가 불안해서라도 더욱더 일자리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의료서비스의 완전보험의무화는 노동시장의 활력을 위해서도 거의 필수적인 정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계보조금 일률적으로 지급하고 의료서비스를 거의 공짜로 만드는 대신에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생존권' 어쩌고 하면 그냥 그 입을 바늘로 꿰매버... 리는 것은 너무하지만, 하여튼 그런 소리가 나오면 그냥 무시를 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해야 노동자들에게 제발 더 이상 응석 좀 부리지 말라고 정부 입장에서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는 것이다. 기업가들이 니네들 쓰기 싫어서 짜르겠다는데 짝사랑도 유분수지 왜 노동자 너희들은 그렇게 막 엉기려고 하느뇨? 생존권문제때문에 그런다면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에서 지급하는 생계보조금 100만원 갖고 집안에서 책이나 읽고 사시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된다. 월 100만원이 너무 적다고? 나같으면 월 100만원 갖고도 충분히 쾌적한 생존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도 나는 대충 그렇게 살고 있다.) 만약 그 생계보조금이 너무 적다면 다른 데 취직해서 다시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해고가 쉬운 만큼 취직도 쉬울테니 직장 얻기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가들에게도 그렇게 무제한적인 해고의 자유를 부여하는 대신에 기업가들이 보조금 달라고 앵앵댈 경우 그 기업가들의 입을 공업미싱으로다가 다다다다~ 박아버려야 한다. 수출진흥보조금이니 무역진흥보조금이니 기술개발보조금이니 연구지원보조금이니 하는 것들... 왜 국가가 너네 기업들 그런 것에까지 다 신경을 써줘야 되느냐 이것이다. 수출이나 무역이 잘 안되면 내수시장을 개척하거나 국내시장을 개방해서 외국애들 지들이 알아서 기어들어와 무역을 하게 만들면 된다. 국가가 수출무역을 지원하지 않아도, 시장만 개방되면 팔릴 물건은 결국 다 팔리게 돼있다. 기술개발이나 연구지원할 돈이 다 떨어지면 그냥 옛날 기술로 물건을 만들면 된다. 아니면 사양산업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기업문을 아예 닫도록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런 것에까지 국가가 국민들 혈세를 걷어서 다 지원을 해줘야 하는가? 그런 거 지원하려면 요건 정하고 심사하고 온갖 절차를 다 거쳐야 하는데, 그럴려면 국회의원, 공무원 나으리들한테 로비 들어가고... 그런 게 다 관료권과 정치권의 부패를 유발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4. 하여튼 내 생각은 이렇다는 것이다. 파업은 풀어주고, 그 대신 해고도 풀어주고, 사회보장은 최저생계보조에만 집중하며 요건을 단순화하고, 산업보조금과 기업보조금은 삭감하고... 그런데 만약 내가 이런 소리를 꼴통우파들에게 해댄다면 그들은 내게 뭐라고 할 것인가?
그들은 아마 내게 이렇게 외쳐댈 것이다. "지금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노동자들에게 무제한의 파업권을 인정하고 모든 파업을 합법화한다면 국가신용도는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노동운동가들 같은 사회불안세력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면 국가법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총파업을 공권력으로 진압하지 않는다면 반자본주의세력들이 곧 내란을 일으켜 국가체제를 전복하게 될 것이다!" "국가경쟁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국가주력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지원을 절대 없앨 수가 없다!" "기업과 산업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발상은 다 빨갱이적 발상이다!" "국가의 적절한 통제와 관리와 감독이 없는 무조건적이고 일률적인 최저생계보장제도는 놀고 먹으려는 게으름뱅이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노사문화는 가족주의 문화이다. 반민족적, 반국가적, 반공동체주의적 개인주의문화, 서구식 노사문화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등등...
하지만 거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국가신용도? 자율적인 노사질서만 만들어진다면 국가신용도 같은 건 좀 떨어져도 상관없다. 국가법질서? 파업의 자유조차도 보장하지 않는 법질서라면 폭삭 무너져내리는 게 더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국가체제 전복? 소수 소외집단의 생존권조차도 보장 못하는 국가체제라면 전복을 당해도 싸지 뭐! 국가경쟁력 유지? 국민에게 혜택도 안 돌아오는데 국가경쟁력만 높여서 뭐하냐? 국가주력산업에 대한 보조? 대체 뭐가 국가주력산업인지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데? 게으름뱅이 양산? 별로 생산적인 활동도 없이 막대한 로비자금만 받아처먹고 있는 관료나 정치인들을 양산하기 보다는 차라리 속편한 게으름뱅이들을 양산하는 게 더 낫다. 걔네들은 일도 안하지만 그 대신에 남들 못 살게 굴지도 않아. 반민족? 반국가? 반공동체주의? 그런 거 다 쓸데없는 거야. 넌 여자랑 뽀뽀할 때도 국가와 민족과 공동체주의를 위해서 뽀뽀하니?
물론 꼴통좌파들도 내게 이런 말을 해댈 것이다. "무노동무임금이라고요? 그건 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자본의 논리가 아뇨?" "자본가들에게 무제한적인 해고의 자유를 인정하라니... 당신 신자유주의자 아뇨?"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했소?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사회화는 우리 좌파들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금과옥조의 철칙이 아뇨?" "시장메카니즘을 살려야 한다니... 전형적인 상업자본의 앞잡이로구만!"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무시하고 사회보장과 복지국가라는 타협의 환상에만 매달리고 있다니... 전형적인 쁘띠개량주의자이구료!" 등등...
그러나 이에 대한 나의 답변도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본의 논리라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논리도 자본의 논리라면 난 자본의 논리를 백번이라도 지지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신자유주의라고?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라도 좀 제대로나 실현이 돼봤으면 하는 게 내 소망이란다.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사회화? 그럼 국가로부터 달달이 배급표만 받고 살아봐라. 국가가 허용하고 시키는대로만 하고 사는 게 얼마나 갑갑한 일인지 알 수 있을테니... 상업자본의 앞잡이? 시장자율은 곧 인간에 대한 신뢰야. 국가통제는 곧 인간에 대한 불신이지. 인간에 대한 신뢰가 인간에 대한 불신보다 더 좋은 것은 그만큼 정보비용과 관리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세상에 국가관료조직과 군대조직만큼 비용을 낭비하는 조직이 있는 줄 아니? 쁘띠개량주의자라고? '누가 뭐래도 절대 타협은 없다'고 말하는 애들이 가만 보면 제일 먼저 타협하고 제일 먼저 자본과 권력 앞에 설레발치더라~.
5. 이렇게 좌파니 우파니 명칭만 달리할 뿐이지 꼴통이기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는 두 집단들이 인터넷에서 갑론을박하며 싸우고, 나 같은 사람에게는 똑같이 '무정부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자'라며 맹공을 퍼붓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나에게 뭐랄까... 참으로 갑갑한 일이 아니될 수 없는 듯하다. 그렇게 파업을 꽁꽁 틀어막기만 해서 뭘 어쩔려고 그러시나? 그렇게 총파업전선으로 하나되기만 하고 계급적으로 연대만 하려고 해서 뭘 어쩔려고 그러시나? 국익은 무엇이고, 사회적 약자는 또 무엇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국익과 사회적 약자의 기준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모두가 내게는 다 부질없게만 보일 뿐이다 이 말씀이다. 어허~ Theodor W. Adorno가 그렇게 말했던가? '실천이라는 이름의 작위적 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자연과 인간의 편에 서고 싶다'고... 나도 그처럼 국가개입과 국가통합의 작위적 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시장과 자율경쟁과 개인해방의 편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다. 국가개입과 국가통합에는 좌파적 국가배려와 공동체적 이상도 있다고? 좌파적 국가배려이건, 우파적 국가통합이건 다 마찬가지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좌파=국가배려, 우파=국가통합'식의 낡은 굴레를 벗어나서 비교적 느슨하고 유연한 생각으로 파업사태를 바라보는 것이 그러니까 내 요즘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
2003. 7. 2.
유토피아 wrote:
꼴통 국가주의보단 무정부주의가 횔 낳죠 암암^^
고래 wrote:
무정부주의... 얼마전에 저는 반국가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프랑스영화 'Le Professionel'을 TV에서 보았어요. 사실 Luc Besson의 헐리웃영화 'Leon, The Professional'도 그러한 무정부주의적 허무의 전통을 잇고 있는 영화죠. ^^ 아, 'Le Professionel'을 생각하니까 Ennio Morricone의 'Chi Mai'가 다시 듣고 싶어지네요...
jake wrote:
고래님 견해를 지지합니다. 어느덧 자유주의자가 되셨네요.^^ 그런데 그런 입장을 대변할 만한 정치세력이 한국에는 거의 없는 듯.
무정부주의라면 아나키즘인가요. 아나키즘의 주류는 사유재산제도를 인정 안하지 않나요. 물론 미국에는 아나코-캐피탈리즘이라는 독특한 흐름이 있긴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고래님의 견해는 자유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고래님은 좌파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이제 많이 벗어나신 것 같은데요. (저야 원래 '사회적 연대'의 이름으로 '대동단결'을 외치는 구호를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사람인지라...^^)
저는 얼마 전부터 고래님의 글을 탐독 중인 독자입니다만, 현재의 고래님의 견해는 과거에 비해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래 wrote:
제가 자유주의성향에 가깝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이미 10년전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죠. 다만 자유주의자들이 국가의 필요성과 국가의 권력독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 데 반해 저는 약 6~7년전부터 국가주권을 상대화하고 지방자치단체나 국제기구에 국가주권을 점차적으로 이양하는 지방화, 세계화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구요. 자유주의자들이 평등의 문제나 기타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인 데 반해서 저는 자유주의 일원론을 지양하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Egalitarismus)가 다원적으로 공존하며 자기구실을 해나가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무정부주의는... 글쎄요. 저도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정부와 국가기능을 축소하려 한다는 측면에서는 그쪽 성향이 많기는 한데, 아직 저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하기는 힘들죠. 저는 소유권과 상업이윤, 사법권과 경찰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좌파냐, 우파냐 하는 측면에서 보면, 저는 아직도 권위적 독재정권이나 인종주의, 외국인차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국가발전이나 경제발전에 대한 환상, 기타 강자동일시에 집착하는 모든 우파적 사고에 반대하기 때문에 아직은 좌파적 가치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성진 wrote:
고래님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요즘 국제경제법에서 많이 논의되는 주제중의 하나가 최빈개도국들에 대한 특별대우를 어떻게 해줄 것이냐의 문제인데 최근 EU-미국의 천문학적 농업보조금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서 상당히 재미있게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반세계화진영도 최근에는 '자유무역철폐'보다는 '공정무역질서 실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좀더 세련된 투쟁(?)을 전개하고 있구요. 저의 정치적 성향도 고래 형님이랑 비슷한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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