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4년 2월 13일부터 2004년 2월 23일까지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 "사회적 시장경제"와, 그로 인해서 2004년 2월 24일부터 2004년 3월 9일까지 제 홈페이지 방명록에서 벌어졌던 여러 손님들과의 논쟁글들을 발췌, 요약해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2. 우선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해 우리나라의 진보지식인들이 흔히
착각하고 있는 것들을 여기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사회적 시장경제에 관한 오해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비단
진중권이나 김누리 교수 뿐만 아니라 내가 그동안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이 '사회적 시장경제'하면 흔히 내뱉곤
했던 여러가지 잘못된 견해들을 이 자리에서 한번 낱낱이 반박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2. 1.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혼합한 형태,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진중권이
사민주의를 대략 위와 같은 식으로 설명한 이후 우리나라에 급속히 유포된 '사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짬뽕본질론'은 사실 교육이나 의료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사회화가 많이 실현된
독일, 프랑스 기타 유럽의 경제체제를 일종의 '사회주의적 이상향'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 형태로서
매력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소련의 몰락 이후 의기소침해진 좌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들에게 용기와 의욕을 불어넣기 좋은 면도 있긴 하다. 솔직히 독일 사민주의자들의 경제정책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을 지향하는 식으로 흘러왔다는 것은, 현상을 거칠게만 바라볼 경우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 할 수
있고, 아무리 '사회적 시장경제'를 창안한 것이 좌파 사민주의자들이 아니라 우파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사회적 시장경제'는 우파 기독교민주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좌파 사민주의자나
환경사회주의자들 역시 공통의 경제적 표어로서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김누리 교수가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무상교육을 대학교육, 대학원교육에까지 확대적용한다든가, 의료, 유치원, 주거 등의 비용을 개인의
소득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
사민주의자들과 기민주의자들의 경제모델을 순수자본주의적 경제형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혼합한 형태'로 바라보고,
독일의 경제모델을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름 하에 이를테면 순수자유주의적 경제모델 같은 것과 차별화시키는
것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사민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를 이렇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혼합'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갈 수가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이런 식의 간단한 정의는 사민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시켜버리는 정의로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혼합'이라는 정의를 곧이곧대로 적용할 경우, '사회적 시장경제'에 포함되는 것은 독일의 경제 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소련과 북한
같은 나라들도 초기에 그들의 공산주의적 계획경제가 심각한 생산성 저하의 문제점을 드러내자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해서 상당한 경제발전의 성과를 거둔 적이 있었는데, 이런 소련이나 북한 같은
나라의 경제들도 단지 그들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나 '사민주의'로 쉽게 규정지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소련의 경제학자인 Jewsei Liberman 같은 경우를 여기서 살펴보기로
보자. 그는 공산주의적 계획경제의 비효율로 인하여 추위와 굶주림으로 매일마다 쓰러져가는 소련의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보다 못해 자본주의적 이윤사고의 도입, 다시 말해 생산의 성과에 따른 노동자보수의 차별, 시장의
수요에 따른 생산량조절과 각 생산단위별 산출량비교계산 및 경쟁촉진 등의 시장경쟁시스템 도입을 주장하여 이것이
소련의 경제정책에 대폭 받아들여졌던 적도 있었다. (소련이나 북한 같은 나라들이라고 해서 그 오랜기간 동안
이들이 순수한 공산주의만 추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지 그
나라들도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형태를 지향했던 국가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사회적
시장경제'나 '사민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등소평 이래 중국의 실용주의 경제노선 같은 것도
'사회적 시장경제'나 '사민주의'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리 멀리까지 나갈 것도
없다. 우리 1960~1970년대의 박정희정권때를 돌이켜보자는 것이다. 이때에도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통해 국가주도로 사회적 자원을 재분배하면서 공공성과 효율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진력했는데, 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무엇인가? 소련이 1928년부터 실시했던 중앙집권적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그대로 모방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가 아니었던가? 솔직히 말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국가가
국민경제생활의 주요부분을 다 디자인하고, 국민은 그 국가계획에 따라서 자원을 분배받아 국가의 지시, 명령에
의해 경제행위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런 점에서 박정희정권도 나름대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혼합'을 실현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박정희정권시절의 우리나라 경제체제 역시도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인가?
사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20세기초 제2차 산업혁명(테일러리즘 혁명) 이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대규모의 국영기업 또는 재벌기업을 주축으로 하여, 독일과 미국에서 확립된 경제체제로서, 관료엘리트들과 거대재벌들, 거대노조들, 군인들이 결탁하여 경제 전체를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으로 재편성하고, 이에 기반하여 19세기말까지의 소규모 자본경제에나 적합했던 영국식 자유방임주의적 경제체제를 극복하고, 자본집약적, 노동집약적 테일러리즘의 효율성을 최대한 살려서, 무한히 증가된 제2차 산업, 제조업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경제패권과 군사패권을 장악했던 경제체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이룩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대규모 재벌기업과 국가엘리트들 사이에 긴밀한 유착이 이루어졌으며, 노동자들에게 최고의 의사결정권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에게도 이러한 국가주의적 통합의 움직임에 적극적인 참여권과 지분권을 인정했던, 독특한 시스템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면, 소련이나 중국,
북한, 박정희 정권시절의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도 일으켰다가는 어디 수용소나 교도소 같은 데 끌려가
국가반역죄로 치도곤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겠지만, 독일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공기업 노동자들이 아닌 한 그런
파업은 법적으로 허용이 되며, 그러한 노동자들의 불만에 대해 전사회가 관심을 갖고 연대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분위기이다. 또한 소련이나
중국, 북한 같은 나라에서는 개인이 자동차 한대를 갖는 것조차도 그 개인의 당서열이나 출신성분, 공훈,
계급에 따라 국가의 지시와 허가, 여론의 눈치 등의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서 인민 전체의 동의와 승인에
따라서만 그 점유가 허용될 수 있지만, 독일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개인이 자기 소득범위에서 자동차를
비싼 것으로 사거나 싼 것으로 사거나 아니면 아예 자동차 없이 살거나, 전봇대로 이를 쑤시거나 뭐하거나,
그것은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게 된다. '사회적'이라는 말보다는 어쨌거나 '시장경쟁'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경제'라는 단어가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도 '사회적'이라는 말이 들어가기는 한다. 하지만 소련이나 북한 같은
공산주의국가에서처럼 교육이나 의료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타 모든 것을 국가가 전적으로
관장하고 이를 인민에게 무상으로 베풀면서, 그대신 국가가 일일이 인민의 노동을 강제하고 감독한다는 발상 같은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체제에서 절대 허용될 수가 없게 돼있다. 비록 국가주의적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대규모 기업, 대규모 노조, 국가관료기구 위주의 경제체제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 비록 형식적으로나마 - 민간 경제주체의 주도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사회적 시장경제가 교육 및 의료를 인민에게 무상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국가에게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국가에서처럼 모든 교육가들이나 의사, 약사들이 교육, 문화, 보건,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제각기
사회주의적 공동체건설을 위해 복무하며 국가나 기타 고권적 기관의 지시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 독일교육체제의 기틀을 쌓았던 Humboldt의 주장대로 국가는 오로지
일반교육(Allgemeinbildung)의 문제에만 전념해야 하고 그 이외의 모든 부분은 교육기관의 자치나
교육가의 양심에 전적으로 맡겨져야 하는 것이 독일교육의 기본적인 원칙이며, 의료분야에서도 의사들이 환자수나
진료건수에 따라서 민간의료보험회사에 대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 뿐이지 의사들이 국가로부터 고정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시장경제'가 마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혼합'으로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함께 동등한 차원의 기본원리로서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나 '사민주의'를 빌미로 하여 옛날 박정희식의 관치적 계획경제, Stalin식의 국가독점
사회주의경제체제를 다시 불러들이거나, 시장경쟁의 기본적 질서를 뒤흔드는 위험한 집단주의적, 공산주의적
발상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절반 가까운 부분을 군대식으로
조직시켜버리는, 군사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의 형태로 '사회적 시장경제'체제가 변질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시장경제'를 기독교민주주의가 아닌 '사민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볼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성격을 더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사민주의'는, 비록 처음에 사회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민주주의적 형식으로 달성한다는
의도로서 출발한 이념이긴 해도, 지금의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이미 원칙적으로 폐기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둬야 할 것이다. 벌써 1959년 Godesberger Programm 이후로 유럽에서
'사민주의'나 '사회주의'는 사실상 자유주의 쪽으로 대방향전환을 이룬지 오래이며, 독일사민당의
Godesberg강령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유로운 소비선택과 자유로운 직업선택 (Freie
Konsummwahl und freie Arbeitsplatzwahl)' 그리고 '언제나 경쟁이 지배하는
자유시장(freien Markt, wo immer wirklich Wettbewerb herrscht)'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오늘날의 '사민주의'는 이제 단순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이 아니라 사실상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사회적 요소를 약간 보완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민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보다도 더 자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이라고 봐도 틀린 소리가 아니다. 예를 들면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취업허가정책이나 외국인 이민정책에 있어서 좌파 사민주의자들이 취하고 있는 개방정책과 우파
기민주의자들이 취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쇄국정책을 한번 비교해보시라. 원래가 자본주의는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노동력의 이동과 자유로운 국적변경, 노동시장의 개방 등을 추구하게 돼있는데, 우파 기민주의자들이
'주도문화(Leitkultur)' 운운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독일내에 체류하거나 취업하는
것을 막으려 들고 태생적인 게르만혈통의 독일인들에 대해 더 많은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부여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반면에 좌파 사민주의자들은 어떻게든 더 많은 외국인들의 취업과
이민을 허용하려고 하면서 혈통적 민족개념을 부정하려 애쓰고 있는 것을 한번 지켜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좌파와 우파 가운데 어느쪽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더 자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지, 어느쪽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더 국가계획주의적이고 국가개입주의적인지가 명백히 드러나게 되지 않는가? (* 물론 좌파
사민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일종의 '조합주의(Korporatismus)'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파들의 '사회적 시장경제'보다 더 국가개입주의적인 면이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사민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혼합한 형태'라고
어중찌리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사실상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보장하는 형식적 자유 위에서 국가관료기구와 대기업, 거대노조의 실질적 패권이 포괄적으로 관철된 경제체제'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엄밀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교육이나
의료, 육아, 노후복지 등에 있어서 여태껏 실현돼왔던 독일의 포괄적 사회복지시스템은 사실상 사회적 시장경제
특유의 '민.관 공동 경제계획'의 산물이며, 그러한 대규모 생산과 대규모 소비의 안정적 순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2.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는
기독교민주연합의 수상 Ludwig Erhard가 1947년에 창안한 것으로서 노동운동의 요구가 유럽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에 의해 기독교적 사랑과 결합한 결과이다?
위와 같은
식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아름답게 미화하며 신봉하는 김누리 교수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실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얘기가 되겠지만, 위의 두번째 명제도 틀린 것은 마찬가지이다. 원래 '사회적 시장경제'를
창안한 사람은 독일의 제2대 수상 Ludwig Erhard가 아니라 대표적 친Nazi 경제학자인 Alfred
Müller-Armack이었고, Alfred Müller-Armack이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처음으로
창안한 때 역시도 1947년이 아니라 Nazi가 집권하던 때인 1933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시장경제'는 태생적으로 Nazi의 민족사회주의적 통제경제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제원리였고,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사회적(sozial)'이란 말 역시도 유감스럽지만 기독교민주연합의 근본정신을 이루는 기독교적
'사랑'이나 '사회연대'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Nazi의
'민족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의 잔재임을 부정할 수가 없게 돼있다.
물론
Nazi의 패망 이후 독일인들은 철두철미한 전민족적 각성을 통해서 Nazi의 잔재를 청산하려 노력하였고,
그로 인해 사회적 시장경제의 구체적 이념에서도 옛날의 Nazi가 줄곧 강조해대던 민족패권이나 민족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자유나 창의가 2차대전 후 더욱 더 강조되기 시작하였던 것 역시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다. 또한
Alfred Müller-Armack이 아무리 '사회적 시장경제'를 창안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질적인 정치구호로 만들어 독일경제에 실현했던 사람은 Alfred Müller-Armack이
아니라 독일의 제2대 수상이었던 Ludwig Erhard였다고 할 수 있으므로 전형적인 Nazi주의
경제학자였던 Alfred Müller-Armack만을 가지고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비판할 수는 없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Alfred Müller-Armack과 마찬가지로
1930~1940년대 독일 Nazi당원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Ludwig Erhard가 (원래 CDU
인간들은 거의 전통적으로 Nazi Hitler당의 잔당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어떤 성향을 지닌
경제학자였는가를 살펴본다면 우리의 생각은 다시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1939년에 Ludwig
Erhard가 발표한 "Einfluß der Preisbildung und Preisbindung auf
die Qualitat und die Quantitat des Angebots und der
Nachfrage (수요와 공급의 질과 양에 미치는 가격형성과 가격구속의 영향)"라는 논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 데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Wenn wir das Gesagte auf die heutige
Preispolitik beziehen, so kann das nur heißen, daß auch
diese nur als ein Mittel zur Erfullung wirtschaftlicher
Zwecke im Hinblick auf die Erreichung nationaler Ziele
verstanden werden kann. Nur dieses Ziel als der letzte
hochste Wert vertragt eine derart hohe sittliche Bewertung,
wie sie durch das Wort 'gerecht' zum Ausdruck kommt [...]
gerade deshalb muß die mit dem Recht der aktiven
Preisbildung ausgestattete Marktbehorde fast zwangslaufig
auch die Moglichkeit eines weiterreichenden Eingriffs in die
Erzeugungssphare der Betriebe (z.B. uber die Gliederungen
der gewerblichen Wirtschaft) zugestanden erhalten.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것을 오늘날의 가격정책과 연관시킨다면, 이것은 단지 이러한 것도 민족적 목적의 달성을 감안한 경제적
목적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음을 말하게 될 뿐이다. 오직 이러한 민족적 목적만이 최후이자
최고의 가치로서 그것이 '정당한' 것으로 표현되는 바처럼 그러한 종류의 높은 도덕적 가치평가를 담당한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가격형성의 권한을 갖는 관청은 거의 강제적으로 경영체의 생산영역에
대해 광범한 개입권을 보유해야 하는 것이다.)" (* Ludwig Erhard, Einfluß
der Preisbildung und Preisbindung auf die Qualitat und die
Quantitat des Angebots und der Nachfrage, in: Georg Bergler/
Ludwig Erhard (Hg.), Marktwirtschaft und
Wirtschaftswissenschaft, Berlin, 1939, S. 62-79)
어떤가?
명색이 기독교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는 사람이 '민족적
목적(nationale Ziele)'을 최고의 목적으로 추켜세우지 않나, 정말 막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론 Alfred
Müller-Armack 역시도 이러한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적 문제점을 보여준 것은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그는
유럽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김누리 교수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유럽 계몽주의'의 관련에 관한 견해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여실히 증명한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념이 처음으로 정립되었던 것으로 유명한 Alfred
Müller-Armack의 1933년도 저서 "Staatsidee und Wirtschaftsordnung
im neuen Reich (새로운 제국에 있어서 국가이념과 경제질서)"라는 책을 읽어볼 경우 우리는
Alfred Müller-Armack이 얼마나 반계몽주의적, 국가사회주의적, Hegel주의적인 인간이었으며,
얼마나 Nazi 특유의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있던 인간이었는가를 확인하고서 정말이지 경악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Der Sinn dieser
Wirtschaftsordnung liegt durchaus im Dynamischen. Ihre
Aufgabe ist nicht, ein unverandertes Schema festzulegen,
eine bestimmte Aufteilung zwischen staatlicher und privater
Sphare. Sie soll die Bedingungen fur die weitere Entwicklung
des Volkes sichern. Ihre Inhalt empfangt die
Wirtschaftsordnung durch die neue Staatsidee. Diese selbst
ist dynamisch, sie ist ein auf die Idee des Volkes
verpflichteter Geschichtsaktivismus. (이러한 경제질서의 의미는 철저히 동적인
것에 있다. 그 임무는 국가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고정된 구분과 불변의 도식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경제질서는 새로운 국가이념을 통해서 그 내용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것 자체는 동적이며, 그것은 민족의 이념에 대해 의무를 갖는 역사적
행동주의이다.)" (* Alfred Müller-Armack, Staatsidee und
Wirtschaftsordnung im neuen Reich, Berlin, 1933, S.
40)
"Der Historismus stellt die
einzige große Gegenbewegung dar, die versucht hat, die
Vernunftwelt der Aufklarung bis in die Wurzeln der
anthropologischen Grundlagen zu zerstoren. Er richtet ein
neues Bild des Menschen auf: der Mensch als geschichtliches
Wesen. Von hier gewinnt er den Zugang zu einer neuen
Staatsidee. (그 역사주의는 계몽의 이성세계를 아주 그 인류학적인 뿌리에 이르기까지 분쇄하려고
시도하는 유일하고도 거대한 반작용이다. 그것은 역사적 본질로서의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정립한다. 이로써
역사주의는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가는 통로를 얻게 된다.)" (* Alfred
Müller-Armack, Staatsidee und Wirtschaftsordnung im neuen
Reich, Berlin, 1933, S. 13)
"Er
(der Staat) fordert sogar nochmals den monopolistischen
Zusammenschluß in den Syndikaten, aber unterwirft sie durch
die Korporationen seinem Einfluß. Um das der
Monopolsituation fehlende Gleichgewicht aus staatlichen
Kraften, wo der Markt versagt, neu herzustellen. (국가는 심지어
다시금 기업들의 공동판매카르텔 속에서 독점적인 결합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디케이트는 협의체를 통해서
국가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다. 시장이 실패한 곳에서 독점적 상황이 없는 균형을 국가의 힘으로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 Alfred Müller-Armack, Staatsidee und
Wirtschaftsordnung im neuen Reich, Berlin, 1933, S.
53)
물론 Nazi Hitler시절의 민족사회주의경제체제가 반드시 국가독점자본주의나 소련,
북한식의 국가독점사회주의와 동일시된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당시 독일의 Hitler정권은 생산수단의 대부분을
국유화하지 않고 민간의 손에 남겨두었으며, 심지어는 전쟁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군수산업분야 역시도 민간부문에
여전히 남겨두었고,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카르텔이나 신디케이트와 같은 담합행위를 하더라도 국가가 이것을
즉각적으로 해체해버리기 보다는 이러한 독점이 국가적, 민족적 이익에 따라 적절한 시장균형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영향력만을 행사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사실 Hitler의 집권이 철저히
국민의 동의에 의한 의회민주주의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처럼, 이 당시 독일기업들의 자본집중과
자본집적, 그리고 담합행위 역시도 국가가 폭력적으로 강제했다기 보다는 민간기업의 자율적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졌던 면이 상당히 큰 것이었다. 국가나 Nazi당이 대기업 가족들의 단결과 협동을 유도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독일의 대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담합하고 협의하고 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대기업연합의
독과점경제체제가 형성되었던 측면이 컸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기업가들이 그때 Nazi에게 바쳤던
열화와 같은 충성과 Nazi의 완전고용정책 및 사회보장정책에 대한 전폭적인 협조 역시도 당과 국가가 그들
기업가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강제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업가들의 자발적인 민족주의적 열정과 사회안정을
소망하는 애국심, 그리고 그 대가로 국가가 베풀어준 따뜻한 배려와 보호, 금융지원과 국정참여의 보장 및
그러한 정경유착체제 속에서 보장받게 된 기업가들의 경제적 안정감과 높아진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되었던 만족감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Nazi 특유의 정경유착체제와 노사협조체제는
국가와 대기업들 그리고 거대한 노조집단이 당시의 광적인 '민족사랑' 분위기 속에서 서로 너무나 쿵짝이 잘
맞아서 이루어졌던 것이지, 어느 한쪽이 강압적으로 짓눌러서 그러한 독일특유의 대기업, 거대노조, 강력한
민족주의정부의 연합체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대기업중심적이고도 정경유착적인
자본주의경제체제의 특징은 오늘날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도 계속 유효한 부분이다. 국가는 대기업에 대해
광범한 보조금과 세제지원, 재고매입 등의 혜택을 베풀어주고, 대기업은 그에 대해 노동자의 의료보험료나
사회보험료를 노동자 대신 보험회사에 납입해주면서, 노동자의 임금도 국가가 지시하는대로 높게 책정해주고, 그에
대해 국가는 더욱 더 그러한 대기업들에게 보조금과 세제지원, 재고매입 등의 특혜를 베풀어주고, 동시에
경제정책 역시도 대기업의 요구대로 독과점을 최대한 촉진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중소기업이나
외국기업이 시장에 발을 붙이기 힘들게끔 국가가 보호해주는 것 등등이 오늘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나 옛날
Nazi시절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공통된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그 뿐이랴? 독일수상이 외국의
정상과 회담을 벌일 때에도 대기업의 요구에 따라 대기업의 세일즈활동을 대신 펴주고 (세일즈외교라고 하나?),
그 대신에 국가와 정부는 대기업에게 더욱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과 사회보장혜택을
더 늘려주도록 유도하는 현실 등을 보고 있자면 지금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오히려 옛날의 Nazi시절보다도
더 천박해지고, 국가와 대기업, 그리고 거대노조 간의 밀착관계도 더욱 심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오늘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옛날 Nazi시절만큼의 폭넓은 국가개입이나
광적이고 역동적인 단합정신, 역사주의나 민족주의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 Nazi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어쨌거나 '사회적' 요소보다 '시장경제'의 요소를 훨씬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누구이더라도 지금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들여다보면 아무래도 국가사회주의적
요소보다는 자유주의적 요소가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금방 인식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개인의
자유권적 기본권이 더 확대된 측면이나 노동자의 파업권과 같은 기본적 권리들이 오늘날 독일내에서 더 많이
보장된 측면을 보게 된다면 오늘날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그렇게 Nazi의 잔재라고 금방 매도할 수만은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김누리 교수의 말처럼 '기독교민주연합의 수상 Ludwig Erhard가 1947년에 창안한 것으로서
노동운동의 요구가 유럽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에 의해 기독교적 사랑과 결합한 결과'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처음 창안한 사람은 Ludwig
Erhard가 아니라 Alfred Müller-Armack이었으며, 설령 Ludwig Erhard가 '사회적
시장경제'를 창안한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Ludwig Erhard건 Alfred Müller-Armack이건
둘 다 1930~1940년대 Hitler정권에 보통사람들 이상으로 더 유난히 협력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들로서
유럽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에 반했던 사람들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에 유학나온 한국유학생들은 다들 기독교적 신앙심들이 워낙 깊다 보니까 독일의
우파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과 그 당의 정치인들에 대해 '기독교적
사랑'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이것도
크나큰 착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민주당 출신의 독일 제2대 수상이었던 Ludwig
Erhard는 실제로 그의 저서 속에서 '기독교적 사랑'을 언급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그 대신 '국가의
고차원적인 목적'이나 '국가이념' '국가의 발전'을 수도 없이 강조하였던 국가주의 경제학자, 경제관료였다고
봐야 옳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Ludwig Erhard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있어서 실제로 중요했던 것은
'국가의 융성'이었지 '기독교적 사랑'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무엇보다도 Ludwig Erhard는 독일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나 인권이 파괴되고 있는 것에 완전히 무관심했다는 점에 있어서 보편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성질을 띠는
기독교정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특히 그가 1969년에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유혈사태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자유시장질서만 확립될 수
있다면 군사독재정권이 계속 무력으로 집권하더라도 무방하다고 말했던 것은 (1969년 4월 16일자 SZ
참조), 그가 민주주의적 인식은 고사하고 해외의 인권문제나 종교적 양심의 문제에 관한 인식에 있어서도 얼마나
한심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충분히 짐작시키고도 남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당시 브라질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시민과
대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던 중이었으며, 심지어는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에게도 정권이
잔혹한 탄압을 펼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Ludwig Erhard가 브라질의 좌파 학생들을
비난하며 브라질의 폭력적 군사독재정권 편을 들었다는 사실은, 그가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소양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기독교적 사랑'조차도 갖고 있지 않은, 단순히
민족주의적이고 자국경제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정도의 편협한 정치인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고 생각이
될 뿐이다. 다시 말해 김누리 교수가 그토록 찬양해마지 않았던 '사회적 시장경제의 창안자'라는 이 사람
Ludwig Erhard 역시도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는 정치인이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지금 다시 잠이 몰려오고
있는 관계로 나머지 내용은 추후에 다시 올리기로 하겠다. 다음번에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정말로 대립되는가?'와 '정말 사회적 시장경제는 오늘날 좌파 진보주의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해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_-;;
2004. 2. 15.
jake wrote:
고래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사이 좋은 쿵작작 연합체의 바깥에 놓이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jake wrote:
그래서 실업자 운동을 중시하는 좌파들 중에는 '사회적 임금'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제 느낌으로는 고래님의 생각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더군요.
jake wrote:
저는 고래님의 글들을,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초적 생활권(최저 생계비, 의료 등)을 보장하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국가 간섭은 필요 최소한도로 줄이자는 관점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만...
jake wrote:
그런데, 거친 항의를 하셨던 그 분이 지적하셨던 공동결정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제도의 취지와 현실은 어떠한지...
고래 wrote:
제 부족한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님 부탁대로 독일식 공동결정제도에 대해서도 제 명확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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