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20대의 비정규직화와 빈곤화)


우석훈 박사와 박권일 기자가 공저한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우연히 손에 잡게 되었다.
역시 장안의 화제가 될 만큼 재미있고 인상적인 대목이 많아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그리고 아주 유쾌하게 읽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다름 아닌 '세대착취'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20대 취업자의 과반수 이상이 비정규직이며, 그들 대부분이 85만원에서 15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리라는 희망도 거의 가질 수 없는 상황,
물론 그 중에 5% 정도는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되겠지만, 나머지 95%는 월평균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
간신히 대기업이나 정부출연기관 등에 안정된 직장을 얻어도 그곳은 또한 인력적체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구세대가 조직내 대부분의 자원을 몇십년간 독차지할 수밖에 없어 자기 마음대로의 뜻을 실현해볼 여지가 전혀 없게 돼 있는 환경,
자영업을 해보려 해도 생산과 유통분야에서 이미 독과점화가 철두철미하게 진행되어(대형할인매장, 프랜차이즈점, 편의점 등등) 조그마한 자신의 가게를 갖는다는 것도 꿈 꿀 수 없게 된 여건,
그래서 2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손님안내나 주차안내, 써빙업무, 아니면 창고관리업무와 같은 그야말로 기계의 부품이나 마찬가지인 단순반복의 일들에 불과한 데,
그 심각한 현실의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이 책은 아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러한 세대착취의 현실에서 기득권 합류의 막차를 간신히 잡아타고 이제는 충분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법도 한 30대(1968년생)의 저자가
20대에게 자신의 춥고 배고팠던 젊은 시절을 무용담처럼 들려주며 니들의 불행은 단지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적어도 우리 386세대는 너희처럼 취직걱정은 안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현재 20대 젊은이들이 처한 생활위기와 인권침해의 현실을 놀랄만한 정의감으로 끈덕지게,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현재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3,480원이지만, 업주들이 불법적으로 떼어먹기 때문에 실제로 알바평균임금은 시간당 2천원 수준에서 결정되는 우리나라의 현실,
심지어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 사장은 손님들이 줄어드는 오후 3~4시에 레스토랑 알바들을 나가 있으라 하고, 알바들은 그 요구에 따라 오락실이나 PC방, 만화방 같은 데서 시간을 때우고 와야 하는데, 당연히 이 시간 동안의 임금은 지급되지 않는 악질적 '꺾기'의 관행,
오랫동안 냄새를 맡으면 암위험도 높아질 뿐더러 뇌와 폐에 치명적 손상을 주게 돼있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험한 주유소 알바를 도저히 놓칠 수가 없는 오늘날의 가난한 젊은이들,
그밖에도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의 입구에서 추운 날씨임에도 헐벗고서 손님들에게 허리 굽혀 몇백번이고 절을 해야 하거나 퍼렇게 얼어버린 상태로 섹시댄스를 춰야 하는 꽃다운 여대생들,
거기다가 이러한 20대 젊은이들을 반겨주는 유일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불법다단계 판매조직에 -알고서도 속아서- 걸려들어 패가망신하는 사례들,
그밖에 성희롱과 성매매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노래방과 유흥업소에서 몰래 용돈을 벌어야 하는 청소년과 20대들,
차라리 오랫동안 알바시장에서 단련된 가난한 집안의 청소년들은 나름대로 대처방법이 생겨서 조금 낫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부모가 알바에 동의해줄 리 없는 부잣집 청소년들은 부모동의서가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불법과 편법에 노출되는 이 현실...
그러는 가운데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물질적 독립은 자꾸만 지체되고, 그러한 젊은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기성세대의 부담은 더욱 더 가중되는 이 세태를
이 책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현실을 방대하게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해법으로서 사교육금지, 대학의 국유화 및 평준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나누기, 종신고용제의 부활, 대기업의 해체, 대형 유통매장의 추방,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지원기금 확대, 지자체의 공공 일자리 창출, 법정최고임금수준의 인상 등등 전형적인 구좌파적 정책수단들을 제시하면서,
20대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요구사항들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들만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에게 짱돌을 던지라고 선동하는 한편으로,
'하지만 20대 너희들은 이미 개인주의화돼있어 도저히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이라며 교묘히 조롱하는 식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사교육을 금지하면 입시경쟁에서 비롯되는 수요는 그대로인 채 공급만 음성화되어, 고액 과외에 접근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교육격차가 오히려 커질 수 있을 텐데,

대학을 국유화하고 평준화하면서 자율성과 책임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교육·연구의 다양성은 위축되고 행정통제와 형식적인 실적평가에 매달리는 관료주의가 더욱 강화될 텐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임금체계와 고용조정 제도를 함께 손보지 않으면 기업은 신규채용 축소와 외주화로 대응하여 기존 취업자와 노동시장 진입자 사이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텐데,

일자리 나누기를 고용창출의 만능 해법으로 삼고 종신고용을 경직적으로 보장하면 인력의 재배치와 산업구조의 전환을 어렵게 만들어 버릴 텐데,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규제한답시고 대기업 생산조직을 해체해 버리면 시장의 공정경쟁을 회복하려다가 오히려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 공급망 통합에서 발생하는 효율성까지 훼손하게 될 텐데,

대형 유통매장을 배제하면 지역상권의 매출은 보호할지 몰라도 물류 효율과 가격경쟁이 약화되어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고 기존 종사자들의 실직이 늘어나며 전직 비용이 커질 텐데,

중소기업과 자영업 지원을 성과평가와 종료조건 없이 확대하면 회생 가능성이 낮은 사업체도 연명하게 되고 생산성 향상보다 정부보조금 확보에만 몰두하는 풍조가 만연해질 텐데,

지자체의 공공 일자리를 사회적 필요와 채용의 투명성에 대한 검증 없이 무작정 늘리기만 하면 민간고용이 줄어들게 되고 지역 정치세력이 국민의 세금으로 토호세력을 먹여 살리는 정실주의와 정경유착이 판을 치게 될 텐데,

법정최저임금을 생산성과 노동시장의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급격히 올리면 근로시간 단축과 신규채용 축소, 근로 자동화와 물가 인상 등을 유발하여 노동자 실질소득이 오히려 더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할 텐데,

이러한 행동 변화와 비용의 전가, 정책의 작동 조건에 대한 검토는 생략한 채 금지·국유화·해체·보장·지원이라는 간단한 표어와 여러 사람 골로 보낼 해결책만 제시하면서, 정작 청년들에게는 “너희는 혁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대안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할 책임을 청년들의 의지 부족으로 떠넘기는 셈이다.

 

어쨌든 놀랍도록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가득차 있으며
앞으로 거의 10년 동안은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담론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을
지금 이 시기 20대 남녀 대학생들 뿐 아니라,
2007년 젊은 사회과학자들을 위한 필독서로 추천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안정성(stability)에 매달리게 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앞으로 이 책이 우리나라에 몰고 올 폭풍을 생각해보건대,
이것 참 큰 일 났구나 하는 걱정도 아울러 해보게 된다.

 

 

https://cover.bookoob.co.kr/1/1/org/241611_org.jpg

댓글 3

Wollrab
Wollrab
참... 간만에 들어왔는데..... 납득할 수 없는 글이네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안정성(stability)에 매달리게 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란 대목..... 요즘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안정성에 매달리게 된 게..... 청년실업사태와 비정규직실태때문이란 것을 알고서도 그런 말씀을 또 하시는 건가요? -_-;;;

그리고 솔직히 우석훈 박사님께서 제시하신 해결책들은..... 다 옳은 것들이 아닌지...... KNura님은 이 책이 묘사하는 현재의 청년실업 실태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신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석훈 박사님의 해결책이 잘못됐다고 하시고..... 그러면서도 우석훈 박사님의 \'88만원 세대\' 이 책을 필독서라고 추천하신다니....... 이게 참 오락가락.. 뭐하시자는 건지....
Wollrab
Wollrab
아마도 KNura님께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본데...... 그렇게 했다간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해지고..... 기업의 독과점화는 더 진행되고...... 사무자동화와 생산기지 해외이전으로 국내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더 진행되고..... 20대들이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는 현실은 더 심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요?

해결책...... 20대 실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져서..... 기득권층들로부터 그들의 부와 권력을 빼앗아오는 것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게 솔직한 상황인데..... 대체 KNura님께서는 이 해결책이 왜..... \'여러 사람 골로 보낼 해결책\'이라시는 건지.....
Wollrab
Wollrab
제발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와.... 철학적 심화를 이루시기 바라겠고요..... 본인의 세계관이 얼마나..... 우리 현실을 전도해서 투영하고 있는지..... 반성해보시기 바라겠네요......

고매한 학자연이나 하면서...... 그냥 지식욕, 독서열..... 지적 호기심이나 진리에 대한 욕구만 가지고...... 자기가 이 사회에서 맡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시는가 본데...... 이 세상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한 실천이라곤 없는 인식의 발전이..... 과연 소용이 있는지...... 본인을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나..... 쓸모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을 좀 해보시구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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