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부여 (꿈을 꾼다는 것)
1.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헛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시간성을 비시간성으로
엮어내고 인과법칙을 발견하려 하는
모든 서사는 허구이거나
강박관념에 불과하다는 얘기들,
이미지와 실재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들이 다 그렇다.
하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약하고
자기중심적인 짓이긴 하다.
자기가 멋대로 만들어놓은 액자 속에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집어넣는다는 것이
따지고 보면
얼마나 사악한 짓이란 말인가?
이러한 짓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통
Slavoj Žižek이 쓴 '환상의 돌림병'에서처럼
결국 예기치 못한 이미지의 굴레에
도달을 하게 되고,
계속 새로운 것으로 옛것을
대체하려 노력하지만,
새로운 것에서도 또 다시
예전의 나쁜 이미지를 발견하거나,
의미와 실재 사이의
괴리를 또 다시 발견하게 되고,
절망하며 지금의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다시 찾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게 된다.
이따금 반성을 해도 그것은 찰라일 뿐
기본적으로는 전혀 발전이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2. 하지만 의미와 실재가
어차피 동일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
비시간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은
어차피 같을 수 없으며,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이 의미의 굴레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날 수가 있게 된다.
내가 독일에서 배운 것이 단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꿈, 인간의 의지,
또는 인간의 의미부여행위가
그 결과와는 상관 없이
존귀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중심성을 벗어나고,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타자에 대한 적대성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만 있다면,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의 실재가 어떠했는가,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와는 상관없이,
그 의미를 부여한 행위는
나름의 가치를 지닐 수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법학이 미국의 법학에 비해
공리주의를 배격하고,
이상주의에 더 치우치는 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실재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세워지는
선한 의지,
그 자체라는 것이다.
(만일 선의지의 절대적 가치가
단지 그 결과로부터만 도출된다면,
이런 결과를 낳는 다른 물질적 원인들도
동일한 절대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의지의 주체이자
자유의 담지자로서 인간이 갖는
존엄성의 전제에 반한다.)
3. 물론 송하도인처럼 이러한 전제를 부정하는 자들도 존재한다.
그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못한다.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며,
다른 인간을 물질적 욕망이나
욕구의 대상으로서만 바라보려 한다.
그는 모든 인간을
적대적으로, 회의적으로만 바라보고 산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자체에
냉소를 보내고 있거나
심지어는 공포심을 가지고 산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세상에 대한 조소나
타인에 대한 경멸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겠지만,
사실은 본인 자신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4. 얼마전엔 숙대 앞길을 걸어내려가다가,
인순이 아줌마의
'거위의 꿈'이란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사를 곱씹어 들으면서
송하도인 이 친구에게는
복잡한 철학적 가르침보다
그냥 이 평범한 유행가 가사를 들려주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노래를 들으시려면 아래의 동영상에서
플레이버튼을 클릭하시기 바람)
되풀이 하는 말이지만,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에 의해 좌우된다.
(Es hängt alles vom Vertrauen zu den Menschen ab).
편협함, 즉 공포에서 비롯되는 귀결은
미련 없이 버려야만 한다.
(Man muß die Intoleranz, die Folge der Furcht, aufgeben).
그리고 인간에게는 희망과 꿈이
물질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Man darf nie vergessen, daß Menschen
Wunsch und Traum nötiger brauchen als Materielles).
그것은 바로 사회국가의 정신..... 인간은 개체로서는 오로지 유아적인 존재로 남을 뿐이며, 오로지 공동체와 국가를 통해서만, 사회적 이성을 통해서만 선의지를 실현하는 성숙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숭고한 공동체적 정신입니다.
고래님께서는 \'기본적 인간도덕\'을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오로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유아적인 도덕에 해당될 뿐이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화며, 보수세력들의 사회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아주 전형적인 지배이데올로기의 맹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래님께서는 실재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고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법경제학적 관점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실재\'와 \'결과\'를 분석하는 학문의 관점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실재 결과 사이에 개입하는 물질적 요소를 분석하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 경영학일텐데, 그런 것을 과연 제대로 알면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시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래님께서는 독일에서 공부를 제대로 안하셨고, 이론적으로도 모순덩어리일 뿐인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실재나 결과랑 상관 없이
자기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두려움이 없이
다른 인간을 믿는 사람.
저는 왜 자꾸 그런 사람으로 허경영 총재님만이 생각날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