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가치의 객관화와 토론예절의 필요성


Wollrab님께/ 작년 겨울에도 제가 Wollrab님께 긴 편지를 드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또 다시 Wollrab님께 이렇게 긴 편지를 쓰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아직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Wollrab님과 저 사이에 과연 어떤 깊은 인연이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제가 Wollrab님께 전생에 풀지 못한 죄업(罪業)이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제가 Wollrab님께 어떤 식으로든 신의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 이러한 오해들이 벌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 성실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중입니다. 홈페이지 운영을 아예 포기했다면 모르겠으되, 그렇지 않았다면 홈페이지 회원 모두에 게 성심(誠心)을 다하여야 했건만 그렇게 못했다는 자성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Wollrab님의 숱한 문제제기에 대해 제가 그때그때 충분한 답변을 드리지 못한 것은 제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에 바빠서 그랬던 것이지, Wollrab님을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단 사람은 자기 직업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Wollrab님을 화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Wollrab님의 거칠고 공격적인 토론자세가 제게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토론예절 같은 것은 거의 무시하고 글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오프를 막론하고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Wollrab님처럼 무례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유독 Wollrab님의 태도만이 제 신경을 거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Wollrab님께서는 세상을 치열하게 살고 계신 분이 맞고, 반권위주의적 신념이 투철하신 분이라는 점만큼은 사실인 것 같으며, 그러한 Wollrab님의 신념만큼은 저도 매우 좋아했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저는 한때 Wollrab님을 그냥 자유롭게 풀어드리는 것이야말로, Wollrab님께 대한 최대한의 배려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너는 너, 나는 나' 식으로 지내는 것도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Wollrab님께서 이곳 게시판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도 장황하나마 Wollrab님의 글에 대한 답변을 해보기로 하였으니, 부족한 글일지라도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시고 읽어봐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세계에 내세울 만한 민족적 가치가 하나도 없는가?]


Wollrab님께서는 아마도 제가 지난번에 '우리에게는 세계에 내세울 만한 민족적 가치가 하나도 없다'고 썼던 것으로 오해하시고서 화를 내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세계에 내세울 만한 민족적 가치가 분명히 있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실체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개인적으로 회의를 갖고 있긴 합니다만, '우리 민족'이 대체로 이런 저런 특성들을 갖는다고 상정을 해봤을 때 그런 것 중에 굳이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본다면, 세계에 내세울만한 민족적 가치가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민족적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세계에 내세울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하나의 광신적 이데올로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이고,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이러한 광신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사물을 바라보다가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최근에 독도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반일민족주의적 열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옳고 너희가 틀렸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는 식으로, 무조건 우리끼리 소리 높여 뭔가를 주장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는 짓입니다. 외부에서도 수긍할 수 있을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우리의 목소리가 더 크다고 해도 세계의 인정을 받기는 힘든 것이고, 그러한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열기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고찰의 노력이 매사에 반드시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Wollrab님께서 '세계에 내세울 만한 우리 민족적 가치'로서 열거하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우리끼리 자화자찬하는 만큼 세계인들이 거기에 대해 똑같이 박수를 쳐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차분하게 자성을 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Wollrab님께서는 지금 마침 독일에 거주하고 계시지만, Wollrab님께서 독일의 지성인들과 맞붙어서 그들을 설득하실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을 민족적 가치에 대해서 갖고 계시지 않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함부로 얘기를 꺼내지 않으시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Wollrab님께서 열거하신 것들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세계최초로 휴머니즘을 주창하신 우리 단군할아버지의 홍익인간 사상

저도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 국정교과서에서 위와 거의 비슷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홍익인간은 휴머니즘, 인본주의, 인도주의의 시초'라고 배웠고, 또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암기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었던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이 '세계 최초의 인본주의(휴머니즘)' 사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휴머니즘이라고 하면 개인의 인격과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홍익인간에서 '널리 이롭게 한다(generally favour = allgemein begünstigen)'는 뜻은 백성들 개개인이 갖는 고유의 가치를 존중한다기보다는, 백성 다수에게 그냥 이익을 준다는 의미, 그러니까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고양시킨다기보다는, 백성들의 물질적 이익을 도모한다고 하는, 그 행위의 물질적 결과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인간들에게 널리 이익을 준다고 해서 그것만이 좋은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격의 존중이란 그것이 산출하는, 또는 더 나아가 그것이 산출하려 하는 좋은 결과,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해서 그것이 꼭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공자도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라고 했듯이, 이익만 주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개돼지한테 잘해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란 공리주의(功利主義)와 다른 개념입니다. '널리 인간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은 공리주의적 강령으로는 해석될 수 있어도 인본주의적 이념이라 해석되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념을 대단한 휴머니즘적 강령으로 격상시켜 해석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따른, 아전인수식 해석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홍익인간'에서 '익(益)'은 '더할 익'이므로, '사람들을 더하게 한다', '사람들을 늘어나게 한다'는 정도의 뜻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인구의 증가를 추구하는 것은 신석기 시대 부족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이므로, 이러한 욕심은 단군조선에만 특유한 것도 아닙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함께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었던 이화세계(理化世界)의 이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그냥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의미인데, 이것은 그냥 자연과학적 인과법칙에 따라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에 가까운 것이지, 인간 개개인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개인들이 도덕적 완성을 이루고 주체로서 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는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전제국가의 이념으로서는 적합할지 몰라도 인간존중과 휴머니즘에 입각한 민주국가의 건국이념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이념에 따라 2천년간 존속했다고 하는 고조선왕국은 엄격한 민족차별과 계급차별을 기반으로 한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에서 제대로 인간 취급을 받은 것은 지배민족인 배달족에 국한되었으며, 홍익인간이란 그러한 배달족을 이롭게 한다, 또는 배달족의 숫자를 늘린다는 의미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은 人, 평민은 名, 천민은 口라고 불렀습니다. 평민과 천민은 그러니까 온전한 인간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왕(단군)이나 지체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 아내, 첩, 신하, 노비 등을 함께 묻는 순장(殉葬)의 풍습까지도 있었습니다. 인권이라고는 아예 개념조차 없었던, 아주 무시무시한 사회가 고조선사회였던 것입니다.

물론 고조선을 무섭고 부끄러운 나라라고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가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등에 비해 훨씬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의 나라가 이미 인본주의적 이념에 따른 인권국가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식의 발상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매우 위험한 역사왜곡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2. 세계역사에 유일무이한 철인국가로서 무려 오백년이나 지속하였던 백의민족의 나라 조선왕국

얼마전에 조선의 유교적 전통을 맹렬하게 비판하셨던 Wollrab님께서 느닷없이 조선을 '세계역사에 유일무이한 철인국가' '무려 오백년이나 지속하였던 백의민족의 나라' 등으로 찬양하시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Wollrab님의 사회주의적 역사관에 따르자면 조선은 그냥 '무능한 왕실과 탐관오리들의 해피랜드'였으며, '과도한 농민수탈과 계급착취로 양반들의 호의호식을 지탱한 나라'에 지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Wollrab님께서 사회주의적 역사관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갖고 계신다 하더라도 조선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기가 힘든 나라입니다. 조선은 병자호란 이전에 사실상 명나라의 속국이었고,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으므로, 오백년 역사를 통해 주권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는, '오백년 내내 민중들의 고혈을 쥐어짜 외세에게 갖다바치기 바빴던 나라'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조선의 거의 모든 왕들은 자신들을 "짐"이라 부를 수도 없었고, 그냥 "과인"이라고 불러야 했을 정도로, 명나라의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세우는 데 별로 도움이 된 바 없는, 우리 역사상 최악의 왕조였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왕조였습니다.

Wollrab님께서는 조선을 '세계역사에 유일무이한 철인국가'로 부르시지만, 사실 조선의 선비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철학공부에만 온전히 심취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화담 서경덕 정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TV사극 같은 것을 보고 조선왕조를 '국왕이나 권신의 강제가 아니라, 선비들이 형이상학적 식견으로 공론을 산출하고, 왕은 그에 따르던, 민주적인 시스템과 이상주의적 전통이 유지된 왕조'라 착각하시는 것 같지만, 실제의 조선은 대의명분이나 도학정치의 이상보다도 가문의 연고가 더 우선시되던 나라였고, 사색당쟁도 실제로는 명분을 위해서라기보다 가문과 지역 간의 주도권다툼을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의 당파는 모두 가문에 따라서 갈라졌으며, 조선시대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선비들도 가문이라는 문화적 결속과 경제적 결속의 장막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벼슬자리에 심어준 문족(門族)들에게 상납하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이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당파싸움에 날을 지새웠습니다. 지방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탄탄한 경제력을 갖췄으면서도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일부 선비들은 방대한 연구저술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러한 개인적 학문활동이 국정에 반영된 일은 거의 없었고, 이들 역시 편협한 당파싸움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설령 조선의 지배계급이 유교적 도학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철인(哲人)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철인국가'란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사실 욕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Platon이 그의 저서 'Politeia'에서 말한 '철인국가'는 철인계급-무사계급-상인계급, 하는 식으로 인간들 사이에 계급차별이 존재하던 국가였으며, 민주주의가 부정되고 비범한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정치가 좌우되던 국가였습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적 국가관으로 바라볼 때 결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국가였고, 이것은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밖에도 Wollrab님께서는 조선왕조가 무려 오백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것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시는 것 같지만, 이것은 조선왕조의 학문적, 관료제적 시스템이 우수해서라기보다는, 조선왕조가 이시애, 홍경래 등이 일으킨 민란을 아주 잔인하고 확실하게 진압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서라면 심지어 외세를 이용하는 것도 불사할 정도로 쓸개 빠진 나라였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간 것이라고 보실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때 선조가 즉각 왕도를 비우고 백성들을 버려둔 채 명나라에 원군을 청한답시고 의주로 도망가버린 것이나, 병자호란때 청태종이 항복하는 인조의 비굴한 모습을 보고 저런 한심한 자가 왕위에 있으면 적어도 청나라의 뒤통수를 칠 일은 없겠다고 안심하여 조선을 멸하지 않은 것, 동학란때 동학군에 가담한 조선 백성들을 학살하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인 것 등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비굴하게 오래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것이 꼭 가치 있는 일인 것만은 아닙니다.


3. 오천년 역사 동안 단 한번도 외국을 침략해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전통

사실 단 한번도 외국을 침략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꼭 그렇게 자랑스럽게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외세에 주눅 들어, 좁은 땅덩어리에 갇힌 채, 외부진출은 꿈도 못 꾸고 살았다는 것, 내가 나를 직접 짓밟지는 못하니까, 나는 착해야 하니까, 니가 나를 짓밟아다오, 나는 너의 종이 되겠다, 하고 벌벌 떨며 남들에게 호구 노릇, 동네북 노릇이나 해주고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말로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었다면, 적어도 다른 민족에게 죄를 지은 적은 없는 것이니까, 그것을 높이 평가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한결같이 '오천년 역사 동안 단 한번도 외국을 침략해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전통'이라고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우리 민족은 원래 기마민족이고 전투민족이었기 때문에, 단군 이래 적어도 2천년 이상은 약탈경제를 유지하고 살았던 게 사실이었을 것이며, 기마민족이건 농경민족이건 간에 원래 국가의 본질 자체가 '정복을 통한 통합과 전쟁단위의 결성'에 있느니만큼, 우리 민족이 단 한번도 외국을 침략해본 적이 없다는 주장은 현실과 매우 거리가 먼 거짓말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요즘들어 정수일 같은 사람의 연구에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그의 책 '고대문명 교류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고대에 흉노족, 선비족, 여진족(말갈족), 몽고족과 사실상 같은 민족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사실을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민족은 치우천황(蚩尤天皇)때부터 중원천하를 짓밟으며 수없이 많은 약탈과 학살을 거듭하며 살았던 민족이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고구려는 만주지방의 여러 소수민족을 침략하여 복속시켰고, 백제 역시 중국 산동반도와 동부 해안지방, 일본 등지를 침략하고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지속적, 체계적으로 착취해왔습니다. 발해 역시 만주지방에서 수없이 많은 침략전쟁을 벌였고, 심지어는 조선 같이 약했던 나라도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서북으로는 바이칼호에서 동북으로는 사할린까지 진출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다 베트남전쟁 당시에 우리 군인들이 베트남 양민들을 무수히 학살했던 전과 등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과연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이 맞는지는 정말로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약했으니까 침략을 '못한' 것이지, 강하기만 했다면 침략을 백번 천번 하고도 남았을 민족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독도문제때문에 완전히 흥분하여 지금 당장 일본열도를 침공해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 열혈애국네티즌들의, 소위 '南伐論'을 보십시오.)

설령 우리가 주도적으로 다른 국가를 침략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덕적 반성에 의해 민족 전체가 반전사상(反戰思想)을 가져서, 그러한 각성이 외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내부의 피지배계급에 대해서까지도 평화의 자세로 대하는 민족전통으로서 굳게 확립된 것이 아닌 한, 그리 자랑할 거리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민족도덕 내지 민족문화와는 무관한 것으로서, '세계에 내세울만한 민족적 가치'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4.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이것도 많은 분들께서 잘못 알고 계신 부분인데, 제가 볼 때 '금속활자'를 우리 민족이 세계최초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흔히 한국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몇 백 년을 앞섰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활자 제작에만 초점을 맞춰서 볼 때 그런 것일 뿐입니다. 고려는 분명히 금속활자를 세계최초로 만들었고, 그 금속활자로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이란 책을 인쇄했습니다만, 그것을 대량으로 인쇄하거나 빠른 시간 안에 인쇄하지는 못했고, 그런 데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활자틀이 밀랍고정방식이라 활자가 제대로 고정되지를 않아서 인쇄를 몇 장 하고 나면 활자가 삐뚤삐뚤해져버렸기 때문이고, 활자를 활자틀에 심은 다음에, 그 위에 먹칠을 하고, 그 위에 종이를 얹고, 그 종이를 솜뭉치로 두드려서 한 장 한 장 떼어내 책을 만드는 방식이 많은 시간을 요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고려의 금속활자는 한자(漢字)만을 찍어냈을 뿐이었습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한자 대신에 한글로 대량인쇄를 하면 백성들이 널리,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의 한자 활자는 20만 자 내외로 주조됐습니다. 당연히 그 20만 개나 되는 활자들 중에서 적합한 활자를 찾아 밀랍 활자틀에 활자를 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런 책을 찍어낸다 하더라도 민중들이 그 어려운 한자책을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려/조선시대의 금속활자는 중국의 목판인쇄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이러한 현실은 세종대왕 때에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한일합방이 이루어질 때까지도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민중들은 구한말까지 목판본 한글심청전 같은 거나 겨우 구해서 읽었을 뿐입니다.)

Gutenberg가 위대했던 것은 금속활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활자를 탄탄히 고정시키는 활판을 만들어냈고, 그 활판에 잉크를 묻히고 그 활판을 종이에 찍는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한꺼번에 이루어지도록 인쇄기, 인쇄공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Gutenberg가 인쇄기를 만들어냄으로써 고가의 귀중품이었던 책이 민중들에게 값싸게 대량보급되었고, 독일의 Martin Luther가 그 인쇄기를 가지고서 라틴어 성서가 아닌 독일어 성서를 대량 찍어냈기 때문에, 민중들의 지적 수준이 귀족들에 육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서양에서는 종교권력과 세습권력의 힘이 약해져서 결국에는 시민계급이 전제정과 대토지귀족계급을 타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금속활자만 가지고 있었을 뿐, 인쇄기를 가지지는 못했기 때문에, 일제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유럽인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역사적 경험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목판처럼 금방 썩지는 않는 금속활자를 가졌다는 것 뿐, 그것을 사용한 일은 구한말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단순히 박물학적 가치만을 가질 뿐, 그 이상의 역사적 가치는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5.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 한글

이것도 제가 보기엔 과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한글'은 매우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창제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한자의 모양을 본따서 네모칸 안에다 글자 하나를 다 몰아넣으려는 무리를 부린 데다가, 한자음을 정리하기 위해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아이들이나 외국인의 입장에서 배우기가 그리 만만한 글자는 아닙니다. 초성, 중성, 종성으로 모아쓴다는 개념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양친구들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누구나 실감하실 것입니다. 존대말 가르치는 것보다 받침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또한 자음이 너무 빈약해서 영어의 f, z, r, v, th, ch 등을 표기하지 못한다는 심각한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음이 완전한 것도 아니어서 프랑스어의 -eu, -ail 등에서 나오는 발음도 표기하지 못하고, 'ㅡ'음절을 고집하다보니 자음을 짧게 내뱉고 끝맺는 서양인 특유의 발음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장음과 단음을 제대로 구분해주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한글예찬론자들은 흔히, 1996년에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모여 학술회의(언제나 그렇듯이 그 학술회의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음)를 가졌는데, 거기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 는 식의 확인되지 않는 주장을 펼치시곤 합니다. 하지만 다른 건 그만두고, 자음의 빈약성때문에라도 한글은 세계공통문자가 되기 힘든 문자입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아프리카에 한글을 공용문자로 쓰는 나라가 흔하다, 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리시기도 하지만, 한글은 아프리카어 특유의 설타음을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도 공용문자가 되기는 힘든 문자입니다.

한글은 미학적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요즘 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 경박한 표음문자가 아닌 표의문자로서 한자(漢字)가 갖는, 철학적이면서도 회화적인 매력, 그 운치 있으면서도 심층적인 압축미의 매력은 우리 한글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옛날에 국한문혼용을 하던 일간신문들이 일제히 한글전용으로 바뀌면서, 그 후로 신문지면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크게 반감된 것을 누구나 기억할 것입니다. 더구나 한글은 우리 단어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漢字語)들의 본래뜻을 제대로 표현해주지도 못합니다. 국한문을 혼용하면 문맹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자(漢字)와 히라가나, 가따까나를 혼용하는 일본의 문맹률도 한국 못지 않게 매우 낮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라기보다, 그냥 굉장히 독특하고, 구조에 있어서 과학적인 체계성을 지닌, 그냥 다른 민족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문자 정도일 뿐입니다. 한글이 세계에서도 가장 우수한 문자이고 세상 모든 발음을 다 표기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그냥 애국애족심의 발로이며 사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외국어 발음이 매우 많으며, 외국인의 입장에서 배우기가 그리 쉽지 않은 문자가 바로 우리 민족의 한글입니다.


6.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해군제독이셨던 이순신 장군과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이순신을 매우 훌륭한 해군제독이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해군제독'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Trapalgar해전으로 유명한 영국의 Nelson보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더 뛰어나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Nelson의 승리는 프랑스의 독재자 Napoleon을 결국 무너뜨리게 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고, 그 후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하였던 반면에, 이순신의 승리는 망해야 마땅했던 조선왕조를 300년이나 더 지속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 그 후로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역사가 진보하거나, 이순신의 후임 장군들이 이순신의 전략전술을 훌륭히 계승하여 조선에 대양해군을 건설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순신의 엄청난 개인적 능력이 더 큰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이순신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당시 우리 지도층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수치로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민족은 똑똑한 개인이 있으면 그를 계속 신임해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기, 모함하고, 고문하고, 백의종군의 치욕이나 주고, 그 똑똑한 개인이 죽어버리면 다시 이전의 카오스 상태로 돌아가버리는, 대책없는 민족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하는 것도 역사적으로는 확인된 바가 없는 사실입니다. 거북선이 철갑선인지 장갑선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며, 배에 철판을 붙여 방어력을 강화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먼저 나왔고, 일본에서 먼저 실현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대항해시대'라는 컴퓨터 게임에도 일본 시나리오 부분에 오다 노부나가의 철갑선이 나옵니다. 역사적으로도 포르투갈 신부가 오다 노부나가의 철갑선을 보고 놀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북선이 설령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순수하게 철로만 만든 '철선'이 아니라 나무로 된 선체를 철로 둘러씌운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게 인류 역사에 혁명적인 발명품은 못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무거운 쇠로 배를 만들 경우 가라앉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목선은 아무리 철갑선이라도 강도와 내구성, 규모, 제조비용 면에서 철선에 비해 엄연히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최초로 철선이 제작된 것은 1818년에 영국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선박은 획기적으로 강도와 내구성이 좋아졌고, 대형화, 복잡화되었으며, 제조비용도 싸졌습니다. 이미 영국은 1830년대에 수백 척의 철선을 제조하였으며, 일본은 1860년대부터 철선을 제조해내기 시작하여 1880년대에는 일본에 통신사로 간 조선 귀족들이 일본기술로 만든 철제 증기선을 한번 타보고 거의 혼이 빠질 정도가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1900년대에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하였으며, 1940년대에는 자체 기술로 항공모함들을 만들고 미국과 태평양의 패권을 다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그 밑에서 일본의 지배만 받고 있다가, 1966년에야 겨우 우리 자체의 기술로 제대로 된 철선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었다고 자랑한다는 것이, 세계인들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초라한 일인지를 여기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7.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을 자랑하며 이웃나라 일본에도 그 하이테크를 전수한 도자기기술

사실 세계적으로 중국도자기나 일본도자기를 알아주는 만큼, 우리나라의 옛 도자기들을 그렇게 많이 알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빛깔은 정말 훌륭한 것이라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훌륭한 고려청자의 기술이 조선에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조선백자의 기술 역시도 일본에는 전수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히 맥이 끊어졌다는 점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사기그릇, 질그릇 같은 것들만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었을 뿐, 옛날과 같이 아름답고도 우수한 도자기를 만들만한 기술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한국도자기의 김동수 전무가 1973년에 육영수 여사의 특별지시를 받아 영국의 Bone China에서 전수받은 도자기술로 오늘날과 같이 꽤 괜찮은 본차이나 도자기를 생산하게 되었고, 광주요(廣州窯)라는 기업에서 옛날 우리나라 도자기를 본딴 전통 도자기를 만들고 있긴 한데, 이것들이 아직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Wollrab님께서는 혹시 독일의 고급 도자기 가게를 들어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들어가보신다면 금방 아시게 되겠지만, 유럽의 도자기 기술은 이제 우리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 이미 올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국에는 Bone China가 있고, 독일엔 Meissen이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Habiland이 있고, 덴마크에는 Royal Copenhagen이 있습니다. 다들 우아하고 품격 있으며 귀한 도자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전통이 수백년씩 되고, 그 전통이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다들 거기에 엄청난 자부심들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함부로 한국의 도자기 기술 얘기를 꺼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일본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해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도자기 기술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서 화려하게 꽃피운 반면에, 정작 우리 자신은 우리의 도자기 기술을 지켜내지 못한 채 소멸시켰으므로, 그것 역시도 우리 입장에서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는 도자기 기술에 관해 좀 더 와신상담하고 칼을 갈아야 할 입장이며, 섣불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이니 어쩌니 떠들어댈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8. 루이지애나 흑인보다도 더 구슬프고 깊이 있는 우리 특유의 恨의 문화

글쎄, 1980년대 쯤엔가 언젠가, 이화여대 교수 이어령씨가 우리 민족을 '한(恨)과 신바람의 민족'이라고 지칭하면서, 대부분의 우리 문화는 한(恨)으로 정의 내려지고 한(恨)이야말로 우리 한국 전통의 정서라고 주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인즉슨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도 있고, 그 밖에도 '한(恨)이 맺혔다'거나 '한(恨)을 풀어야 한다'거나 하는 말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한(恨)의 문화' '한(恨)의 미학'을 가진 민족이며, 그런 관점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신바람'과 '신명'도 설명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물론 '아리랑' 같은 노래를 듣거나 '서편제' 같은 영화를 볼 때 저 역시도 뭔가 콧끝이 찡해옴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우리 민족에게 한(恨)이 그렇게 많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나라 지도층들이 우리나라 민중들, 특히 여성 민중들에게 그렇게 많은 한(恨)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은 바깥에 대고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이 못되는 것입니다.

한(恨)이란 것이 별 것이 아닙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분석적으로 음미하면 자기연민(self-pity)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밝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쌍하게 여기고,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신세한탄을 하고, '복 없는 놈(년)'이라고 스스로 자학을 해가며,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동정과 위로를 갈구하는 식의 삶입니다.

물론 민족 전체가 다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그런 식으로 평생을 살다가 죽어도 됩니다. ("우리네 인생살이 그렇게 가는 게지~♬")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것은 끈끈한 공동체문화라기보다는, 애초에 다른 사람의 위로와 격려 같은 보상을 받기 위해 시작된 자기비하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슬슬 짜증나게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어지는 감정적 보상이 점점 더 감소하게 되어, 나중에는 혼자 우울증을 겪거나, 아니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사고를 치고 그 끝마무리는 흐지부지하는 양상으로 모든 일이 흘러가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민족적 차원에서 일어나게 되면, 건설적인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뒷전이고, 모두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 축적하다가, 이따금씩 그것을 풀기 위해 오버해서 설치고 냄비처럼 식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며, 그런 식으로 모두 다 평생을 감정에만 휘둘리며 응석/땡깡이나 부리는 유아적 정신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감정을 물론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자기 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를 다 용서하는 쪽으로 순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인간승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힘으로 그러한 성불(成佛)의 과정을 견고하게 완수해낸다는 것은 사실 무리이며, 우리나라 '한(恨)의 문화'에 있어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선 아리랑'의 노래가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한(恨)의 문화'는 자기에게 상처 입힌 자에게 그냥 '발병이 난다'고 저주를 퍼붓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하며 자기 신세를 슬퍼하는 정도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특유의 恨의 문화'는 제가 볼 때 결코 자랑할 만한 민족적 가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 정신문화 발전에 기여할만한 것이 될 수도 없고, 이런 식의 자기연민적인 '恨의 문화'나 고수하고 살아가다가는, 밝고 당당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덤벼오는 서구에 정신적으로 영원히 종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恨의 문화'는 그냥 '과거에 그런 것이 있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되는 것이지, 절대 우리의 민족전통으로서 유구히 계승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님께서 열거하신 수많은 다른 민족적 가치, 민족적 자랑거리들과 마찬가지로 '恨의 문화' 역시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들여다보면 그만큼의 대단한 가치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며, 우리나라 대중들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허무맹랑하게 과장되어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설령 그것이 아주 대단한 가치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운동' '홍익인간' '한글' '금속활자' '고려청자' '이순신' '거북선' '독도' '정신대' 등의 말만 나오면 갑자기 다들 뇌세포가 정지되고 입에서 거품 물고 마음에도 없던 애국애족심들이 마구 솟아나곤 하는 게 우리나라 대중들의 특징이긴 하지만, 자기가 직접 노력하고 땀 흘려서 이룩하고 성취해내지 않은 것에 대해, 그냥 자기 조상이 해낸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장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근거로 남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려 하거나 투쟁심을 가지려 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분주의와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각 개인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오늘날의 근대화된 사회에서 더 이상 허용되지도 않는 일일 뿐 아니라,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리 건전한 습성이 아닙니다. 원래 아무것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고, 자기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사람들만이 민족 내세우고 애국심 자랑하는 법입니다. Wollrab님께서는 개인주의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군대나 조폭사회에서라면 개인의 존엄이나 개인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 조직 내 배반이 되고 이기적인 것이 될지 몰라도, 민주화된 사회 내에서는 개인적 가치가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가치의 진정한 총화가 국가의 이익, 민족의 이익, 나아가 세계의 이익에 이어진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밖에 제가 독일에 다녀온 것에 대해 Wollrab님께서는 '마치 상국(上國)에나 온 것처럼 끊임없이 찬탄만 거듭하고 아쉬운 소리나 하고 다니시다가 귀국하신 모양'이라고 비아냥대셨지만, 저도 나름대로는 제 학문적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기 위해 독일을 찾아간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라겠습니다. Wollrab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결코 독일의 개노릇을 하러, 독일에 있는 학자들에게 아양을 떨러 독일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들을 떠나서 제가 Wollrab님께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부디 단정적, 독선적이고 공격적인 어투, 타인을 규정지어버리고 낙인찍어버리고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는 식의 못된 토론자세를 고쳐주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Wollrab님께서 독일에 어떠한 목적으로 가계신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학문적 목적으로 유학을 가신 것이라면, 그런 식의 언어습관은 반드시 버리셔야만, 머리가 맑아지고 대인관계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학문을 하는 자는 언제나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하고,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지위 고하에 상관 없이 모든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예(禮)와 경(敬)의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정치판 모리배들의 폭력적인 언어습관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인신공격과 상대방에 대한 욕설을 자제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뜻을 무조건 악의로만 해석하고, 무차별적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결국에는 상처를 남기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감정을 소모하여 서로의 정신적 발전을 지체시키게 됩니다. 특히 이곳은 어린 여학생들도 많이 와서 들여다보는 공간입니다. 입에서 나오는대로 함부로 말씀하시던 여태까지의 태도를 고치시고, 사고를 전개함에 있어서도 부디 학문적인 객관성을 조금만 더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또 '민족'의 이름만 들이대면 모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의 태도 역시 가급적 빨리 버려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윗글에 대한 Wollrab님의 반박글:
[re] 민족의 배반자 노릇 하시는 것도 이젠 지겹지 않으신가요?


댓글 2

Wollrab
Wollrab
인신공격과 욕설을 한 것은 좀 유감입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KNura님의 글을 읽고 나면 자꾸 욱, 하는 것이 느껴져서....... 읽는 사람들이 욕나오게 하는 X같은 것이 KNura님 글에는 원래 좀 많다고 생각합니다....
Wollrab
Wollrab
그런데 KNura님의 \'학문적 문제의식\'이라고 하는 게..... 이번 글을 읽어봐도 역시 독일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를 자꾸 깔아뭉개는 문제의식으로밖에는 생각이 안 되네여...... 옛날에 \'붉은 악마\' 욕했다가 다구리 당한 피해의식이 아직도 남아서.... 사사건건 우리나라를 악의적으로 험담하고 깎아내리는 글밖에는 못 쓰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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