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신자유주의, 그리고 실질적 자유에 대하여


勿巖님께/ 물암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 늦어져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저와 물암님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나빠질 줄은 몰랐었는데, 오해와 오해가 겹치다 보니 이런 나쁜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물암님께서도 물론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가정과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굉장히 바쁜 사람입니다. 물암님의 모든 질문에 대해 일일히 답변을 해드릴 여유는 솔직히 없습니다. 그리고 물암님께서 제게 주신 여러 질문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실 물암님께서 제 여태까지의 논문들을 다시 읽어보신다면, 자연스럽게 철회될만한 질문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미 옛날에 충분히 다룬 주제들이었기 때문에, 물암님께서 제기하신 주제가 저에겐 이미 흥미를 상실했거나, 약간 식어빠진 주제일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암님께서 저에게 여태까지 계속 무시당해왔다고 생각하시고, 제가 물암님 앞에서 줄곧 회피하는 식의 태도를 취해왔다고 생각하시는 이상, 절대 그런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님을 일단 말씀 드리겠으며, 제 개인적인 바쁜 사정으로 인해 일을 이렇게까지 지연시킨 것에 대해 물암님께 일단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물암님께서 제 바쁜 처지를 충분히 양해해주시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심전심의 신뢰로써 물암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여태껏 미뤄왔던 것 뿐이지, 결코 물암님을 무시하거나 경멸해서 물암님과의 논쟁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물암님께서 제게 품고 계신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물암님께서 제기하신 여러 질문들에 대해 뒤늦게나마 소박한 답변을 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제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 모든 것을 100%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모로 부족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물암님의 성의에 답하기 위해 조잡한 글을 서둘러 써올리는 것이니, 비록 수준이 낮은 글일지라도, 최대한 너그럽게 읽어봐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제가 볼 때 물암님과 저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해의 대부분은, 물암님께서 생각하시는 '자유주의'와 제가 생각하는 '자유주의'가 상이하다는 점에서 나오는 부분이 꽤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주의'를 '개인의 자유로운 이성적 사고와 자치적 활동능력, 그리고 도덕적 선량함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로 파악합니다. 개인의 능력을 신뢰하고,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개인이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권위주의적 권력에 의한 개입, 강압적이고 관료적인 간섭을 가급적 배제하고, 모든 문제를 가급적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에 믿고 맡겨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자유주의'입니다.


하지만 님께서는 '자유주의'를 '자유지상주의'로 파악하십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든 말든, 남을 착취하든 말든, 무조건 뒷짐 지고 내버려두기만 하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사상', 또는 '부자를 무조건 편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며, 누가 굶어죽거나 말거나 병들어죽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쓴다는 이념'으로 파악하시거나, '국가도 민족도 다 필요 없고, 규율도 훈육도 다 필요 없이, 책임의식도 철딱서니도 없는 날라리 싸가지 개인들에게, 그냥 놀자판 방종으로, 모조리 다 널럴하게 풀어놓고 놔주자는 이념'으로 파악하십니다.


저는 '자유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님께서는 자꾸 저를 '자유지상주의자'로 몰아붙이시니, 님과 저 사이에 대화가 성립되기 힘든 것입니다.


또 님께서는 가끔씩 저를 '신자유주의자'로 파악하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양극화가 되든 말든, 국민정신이 황폐화가 되든 말든, 국민들이 최대의 사치와 최대의 허영과 최대의 소비를 누릴 수 있게끔, 정치, 사회, 문화, 교육적인 모든 영역에 시장경쟁의 원리를 도입하고, 시장경쟁 및 효율성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회영역이 해체,재구성될 수 있도록, 국내기업이 해외무대에서 극강의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특히 금융업계, 자본시장의 통폐합을 중심으로,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전 사회영역에 승자독식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룰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Neo-Liberalist'로 저를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경쟁'과 '효율성'의 가치를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개인의 인격적, 존엄적 가치'보다 더 하위에 놓고 바라봅니다. '진 넘은 바보이니까 퇴출되어야 하고, 이긴 넘이 모든 걸 다 가져야 한다'가 아니라, '이긴 사람이든 진 사람이든 서로의 인격적 가치와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주고 그것을 확대시켜줘야 한다. 절대로 남의 자유를 부당하게 빼앗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자유주의이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삼는 기업을 기본권적 자유의 전형적 주체로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경쟁과 효율성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승자독식의 사고를 강제주입시키고, 개인을 이윤추구의 방향으로 내몰면서 채찍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경쟁과 효율성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자아실현과 안분지족(安分知足)과 격식(格式), 자존(自尊) 등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가치들을 전부 승인하고, 다원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자유주의라고 생각하며, 개혁의 추진 여부 역시, 개인이나 시민사회의 요구에 국가가 따르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좇는 방식으로 추진해야지, 개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국가가 그러한 개혁들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대외개방이나 민영화 같은 것도 일단은 시민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부수적으로 따라오곤 하는 국가주도의 자본시장 통폐합, 빅딜, 구조조정 등의 '덩치 키우기' '몸집 불리기'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기보다 오히려 반대를 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경쟁력제고를 위한 최소한도의 개입'을 긍정하는 '신자유주의'에서는 허용되는 것일지 몰라도, 모든 종류의 인위적이고 특혜적인 개입에 반대하는 '본래적 의미의 자유주의'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경기 호황을 틈타 돈잔치에 나선 영미 투자은행들의 성공을 바라보며 시작된 소위 국가주도의 금융시장 선진화, 사모투자펀드 도입, 그리고 대규모 투자은행 설립 등에 대해서는, 이러한 선진금융기법들과 파생금융상품들의 조삼모사(朝三暮四)적 성격(=땡겨서 쓰도록 꼬셔서 빌려주고 이자를 물리는 성질)을 감안해서라도, 국가가 적절한 규제와 계도는 못할망정, 국가가 앞장서서 이를 도입하도록 무리하게 부추기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건전한 완전경쟁이고 자유시장경제체제일 뿐입니다. 위험한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무한소비와 독점자본이 전횡하는 카지노경제체제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님께서는 저를 분명히 오해하고 계신 것이며, 님께서 제게 퍼부으신 비판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다른 것을 향해서 퍼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제에서, 님께서 제게 열거적으로 질문하신 다섯 가지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답변을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위에서 답변 드렸듯이, 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를 일정부분 반대하며, 그것의 폐해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적어도 국가의 관료적 개입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관치경제의 이념이나 중상주의, 보호주의, 국수주의, 대중주의의 경제철학보다는 신자유주의가 그나마 더 낫다고 보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때에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기도 합니다. 공기업민영화, 대외개방, 규제완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기획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때문입니다.

님 말씀대로 이명박 정부는 정부기구 축소, 사회복지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수도권규제 완화, 법인세/종부세/양도세 인하, 금산법 완화, 재벌기업에 대한 출총제 폐지, 자립형 사립고 확대, 공기업 민영화, 건강보험 민영화 등의 정책을 밀어붙인다고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런 점에 한해서는 분명히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위의 공약 중에 정부기구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수도권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의 공약에 대해서는 분명히 찬성하며, 이명박 정권이 이러한 공약들을 임기 내에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위의 신자유주의적 공약들(특히 정부기구 축소 등)과 절대로 맞아떨어질 수 없는 정책들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선공약대로 연평균 7%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일자리 300만개를 만들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정부지출과 정부개입을 크게 늘리면서, 임기초부터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해 고환율을 통한 수출장려정책을 펼치거나,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대규모 토목건설 개발사업 등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러한 고환율정책과 대규모 개발사업의 추진은 물가상승, 단기적 경기과열과 재정적자의 증가를 유발합니다. 특히 대규모 토목건설사업의 추진은 건설업체와 정부 간의 정경유착을 더욱 긴밀하게 하며, 축소하겠다던 정부기구 역시도 결국엔 더욱 비대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로비력이 튼튼한 재벌건설기업과 공기업, 그리고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 등은 이러한 국가개입을 통해서 큰 혜택을 보고, 단기적으로 수출을 늘려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완제품을 수출하는 제조업 부문의 대기업들은 환율이 올라가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여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내수나 대기업하청에 치중하는 중소기업들은 원자재가격상승과 유가상승 등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며, 특히 소비자물가상승은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한 고용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런 토목건설사업은 단기적으로 저학력 미숙련노동자들의 고용을 늘릴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어차피 노동임금이 경쟁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중국, 인도, 동남아의 공장들과는 이런 식으로 어차피 경쟁할 수 없습니다. 또한 대규모 토목건설사업 추진을 통한 단기적 경기부양으로 이루어진 고용은 지속가능성도 없는 고용입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내수와 국내투자를 비정상적으로 늘리면 아무리 수출을 장려한다고 해도 원자재수입이 먼저 늘어서 무역수지는 적자를 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에 맞서서 이명박 정부는 억지로 환율을 올려서 수출을 늘리고 그로써 외환을 늘리려 했는데, 실제로 이러한 환율개입은 원자재값 상승, 유가상승과 맞물려, 엄청난 물가상승 압박과 무역적자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외환은 늘어나긴 커녕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경제위기감이 확산되고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면, 사회가 급격히 불안해지게 됩니다.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면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경기하강을 감수함으로써 일단은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그 반대로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가는 관리하고, 경기는 계속 부양하고, 기업에 대해서는 고용을 강제하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낮은 임금과 더 많은 근로시간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옛날 박정희 시대처럼, 또 1930년대 독일의 Hitler시대처럼, Fashism적 전시경제체제로 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권초기부터 이명박 정부가 계속 보여주고 있는 여러가지 수출장려 정책, 대기업위주 정책과 그로 인한 엄청난 부작용들은 신자유주의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초에 선보였던 무리한 고환율정책과 대운하건설을 필두로 한 여러가지 개발공약들, 그리고 그로 인한 물가상승, 재정적자, 외환증발, 그 이후 무려 30조가 넘는 돈이 투입되었다고 하는 외환시장 개입, 그리고 정부가 소비자물가를 직접 관리한다면서 기업경영에 개입하는 행태, 물가안정과 증시부양을 위해 무리한 저금리정책을 편답시고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압박하는 행태 등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때보다도 더 국가개입주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국가개입주의적 정책들에 비해 이명박 정부가 약속했던 여러가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지금 거의 대부분 물 건너가거나,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유일하게 감세정책만은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를 들면 종부세 개편), 지금처럼 정부지출을 크게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감세만 추진될 경우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적자 문제는 정말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마다 약간씩의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지출을 줄이고 재정적자도 줄이며 전국민이 고통을 분담해가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감당해나간다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체로 모든 경제정책을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방향과 정반대로 하고 있으며, 옛날 박정희 정권때처럼 그냥 인플레를 감수하고서라도 정부재정지출을 늘리고 환율을 올리면, 경기가 부양되고 수출이 늘어난다는 식의 구시대적 발상에만 매달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벌써 60~70대 노인인 이명박과 강만수는 박정희 정권때의 사정과 지금의 사정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은 환헤지와 외환선물거래가 보편화된 시대입니다. 이명박과 강만수는 원화만 하락시키면 수출이 그냥 늘어나는 줄 아시는 분들 같은데, 아마 환헤지나 외환선물거래의 기본개념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출기업들이 미리 파생상품으로 미래에 받을 달러를 다 팔아서 이미 땡겨 썼다는 마인드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권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겉보기로는 신자유주의 정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경제의 시계를 옛날 박정희 정권 시대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을 가진, 성장지상주의 정부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부란, 이런 식의 거친 경제개입을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정부여야 합니다. 정부재정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부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전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저는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패가 곧바로 신자유주의의 종언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2. 갈수록 양극화현상이 심해지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신자유주의는 이제 어떤 이념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물암님께서는 세계화가 양극화를 낳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점점 더 필요해지기 때문에, 우리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개입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재벌들의 힘이 커지며, 그렇게 힘이 커진 재벌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또 사회복지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세계화, 양극화시대에서 신자유주의는 절대로 안되며, 국가개입주의 정당이 영구집권할 수밖에 없다고, 물암님께서는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재벌들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개입주의적 정책을 펴게 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단계적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 국가가 대기업을 견제한답시고 기업에 대한 규제와 간섭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규제와 간섭을 견딜 수 있는 대기업은 살아남지만, 중소기업은 몰락한다.
● 국가가 대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법을 강화하면 할수록, 힘 센 노조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은 살아남지만, 중소기업은 몰락한다.
● 중소기업이 몰락하면 대기업, 재벌기업들은 독점의 결과로 더욱 비대해진다.
● 국가가 대기업의 경영에 간섭하고 고용을 강제하면, 대기업은 비생산적인 인력을 받아들이느라 그만큼 필요한 곳에 투자를 덜하게 된다. 이로써 기업의 효율성과 순익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된다.
● 국가가 수많은 대기업들의 경영에 간섭하고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려니, 국가기구는 업무가 과중하여 점점 더 규모가 비대해진다.
● 경영간섭을 위해서는 채찍 뿐 아니라 당근도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기업에게 지원하는 각종 보조금의 액수도 점점 더 올라가게 된다.
● 이 경우 독점적 대기업은 경쟁보다는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한 로비에 신경을 더 써야 하기 때문에, 기술투자를 게을리하여, 기업의 대외경쟁력은 약화된다.
● 국가의 보호를 받는 중소기업도 경쟁보다는 국가보조금을 받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대외경쟁력 역시 점점 약해진다.
● 설령 독점적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중소하청업체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구조는 양극화로 치닫는다.
● 양극화로 사회가 불안해지면, 대규모 토건사업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위축되고, 경기는 하락하고, 고용률도 낮아진다.
● 한편 비대한 국가기구를 먹여살리고, 막대한 보조금과 토건사업비용과 재정적자를 충당하려니, 국민세금부담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 국민세금부담이 늘어나니,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액수는 점점 더 줄어든다.
●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액이 줄어들다 보니, 민간소비와 민간저축은 점점 더 줄어든다.
● 민간소비와 민간저축이 줄어들다 보니, 민간투자도 줄어들고, 민간투자가 부족하니 경제는 더욱 더 불황으로 치닫고, 국가부분의 비중이 더욱 더 늘어난다.
● 반면에 막대한 정부예산을 주무르는 국가권력자, 이러한 정부예산을 로비로써 받아먹는 대기업 소유자와 국가 공무원, 대기업 간부사원들은 더욱 더 부유해지며, 이런 식으로 양극화 현상은 더욱 더 심화된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개입주의정책이 양극화를 완화시키긴커녕, 오히려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양극화로 인한 단기적 고통을 무릅쓰고 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펴게 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단계적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 국가가 경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면 줄일수록, 국가권력의 특혜로 유지되어왔던 정경유착형 재벌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든다.
● 재벌기업들이 주춤하면, 그 틈을 비집고 창의적인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게 된다.
● 중소기업이 성장하면, 대기업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국내시장에서의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진다.
● 어느 기업이나 국가보조나 로비보다는 경쟁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 국내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속에 기술투자가 늘어나면, 고부가가치상품의 품질이 향상된다.
● 고부가가치상품의 품질이 좋아지면, 수출이 증가하고, 국내기업의 경영수지와 무역수지도 흑자를 이루게 된다. 외환과 해외투자자금이 유입된다.
●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기술개발이 중시되면, 청년들의 고용률이 올라가고, 특히 고학력자들의 고용률이 올라가게 된다.
● 정부는 할 일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우수인력은 정부쪽보다 기업쪽으로 더 몰리게 되고, 정부예산은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의 매출액도 높아지니, 세수가 늘어서, 세율을 낮춰도 재정은 흑자를 유지하게 된다.
● 재정이 흑자를 유지하니 정부는 복지예산을 그만큼 더 늘릴 수 있게 되고, 세율도 그만큼 더 낮출 수 있게 된다.
● 소득은 올라가고 세율은 낮아지니까,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액도 점점 더 늘어나고, 민간소비와 민간저축도 그만큼 더 늘어나게 된다.
● 민간소비와 민간저축이 늘어나니까, 그만큼 민간투자도 늘어나며, 경제는 갈수록 호황이 된다.
● 민간투자가 늘어나니 청년들 뿐만 아니라 장년, 중년층에게도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많아지고, 임금은 상승하며, 사회 전체에는 활력이 넘치게 된다.
● 임금이 상승하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복지가 확대되니까, 양극화와 빈부격차도 완화되고, 출산률도 점점 더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펴면 양극화가 심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양극화가 더 완화된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상 정부재정지출을 가장 줄이고, 가장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폈던 때가 1982년(전두환 정권, 김재익 경제수석 시절)인데, 지금처럼 외환위기로 고생하던 1982년에 재정지출 증가율을 3.5%로 줄인 결과,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긴커녕 7.2%로 솟구쳐 올랐고, 1970년대부터 매년 두 자리 수를 기록하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7.1% 정도로 한 자리 수에 그쳤으며, 국제수지 적자는 25억달러로 줄어드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긴축재정의 정책기조를 계속 유지하였는데, 그 결과 1983년 우리 경제는 10.7% 성장하였고, 1984년에는 8.2% 성장하였습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연평균 10.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3년간 292억 7320만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1조 8380억원에 달하는 재정수지 흑자까지 달성하였습니다. 그 3년 동안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8%, 3.1%, 7.1%에 그쳤습니다.

이 시기 전두환 정권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빈부격차는 오히려 꾸준히 완화되었고, 이 시기 전두환 정권은 중산층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거의 펴지 않았지만, 이 당시 국민 절대 다수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시기 전두환 정권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거의 펴지 않았지만, 정규직 고용이 일반적이었고, 일부 직종에서는 종신고용까지 가능했습니다. 이 시기 전두환 정권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거의 펴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우리나라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은 다른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높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정통성 없는 정권이었고, 정치는 무척 잘못했어도, 경제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더 잘했다고 제가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꼭 위와 같지는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업 분야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국가주도의 기업합병과 자본시장 통폐합, 빅딜 등을 통해 기업의 거대화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결국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흘러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실물경제와 상관 없는 '돈 놓고 돈 먹기'의 금융업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고 여기에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이붓는 면이 있어서, 경제 전체가 완전히 투기판으로 휩쓸려들어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노무현의 동북아금융허브론, 이명박의 동북아금융중심지론이 다 이와 같은 경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제대로만 한다면, 적어도 시장을 확대하고, 기업들의 경영을 투명화하고, 일반인들의 창업과 투자를 쉽게 만들며, 재정을 건전화하여, 장기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물가를 안정시키고, 고용을 확대하는 등의 효과는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양극화는 신자유주의로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더욱 완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물암님께서는 국가개입주의로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다시지만, 위의 표에서 보듯이 실제로 국가개입은 양극화를 더 악화시키게 돼있으며, 재벌기업과 국가권력은 물암님께서도 이미 인정하셨듯이, 필연적으로 적대적 의존관계를 형성하여, 쭈욱 보조를 같이 하게 돼있습니다. 국가개입주의 정권이 계속 집권하려면, 재벌기업이 필요악으로서 계속 있어줘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청렴하고 투명한 정부라고 하더라도, 개입을 많이 하는 정부는 대기업과 어차피 짝자꿍이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이는 마찬가지였음.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국가개입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 좌파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도, 재벌옹호론자이고 재벌의 내부거래를 찬성하며, 박정희식의 개발독재를 솔직하게 찬성합니다.)


물론 국민들의 머리가 단순하다면,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저학력자라면, 박정희식, 개발독재식의 국가개입주의가 자유시장주의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경제학적으로는, Arrow-Debreu의 일반균형이론(general equilibrium theory)에서 말하는 완전정보가정이 맞을 경우,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체제가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체제보다 더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소위 Taylor-Lerner Theorem).

하지만 2008년 현재의 한국사회처럼 국민 대다수가 복잡한 두뇌의 소유자이고, 고학력자인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라면, 개발독재와 국가개입주의보다는 자유주의가 훨씬 더 사회적 효용을 크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민첩성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고, 정보에 있어서도 국가가 민간에 비해 더 우위를 점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물암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세계화 이후 많은 나라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개입을 하고 인위적인 기업통폐합을 추진해서 대기업을 키워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국가권력의 개입만 없었다면 세계화는 실제로 양극화와 별 상관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 실제로 대기업은 외국의 대기업들로부터 견제를 더욱 심하게 받는 반면, 몸집이 작고 의사결정이 빠른 중소기업들은 날쌘돌이처럼 틈새시장을 찾아 더욱 활개를 칠 수가 있게 됩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이 더욱 더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는 이를 위해 시장개입과 정부지출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만 한다면 세계화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양극화현상이 심해지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아니 더 정확하게는 자유주의가 이념적 정당성을 지닐 수도 있다고 제가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위와 같습니다. 국가개입주의는 양극화현상을 완화시키긴커녕 오히려 심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개입주의 정당은 물암님께서도 인정하셨듯이 자기네들의 계속적인 집권을 위해서라도 대기업을 계속 키워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3. 자유주의가 시민대중들에게 '형식적 자유'만을 보장할 뿐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국가가 실질적으로 뭘 해주겠다고 하는 것을 굉장히 의심쩍게 바라봅니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실질적으로 뭐가 더 자유롭다는 것은 사람들 관점에 따라서 다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형식적인 기준이 그것보다 더 명확하며 공평무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인 것은 각자의 마음 속 문제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들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까지 국가가 다 헤아려서 보장해줄 것을 약속하기는 힘이 듭니다. 예를 들면 '형식적으로는 월급도 잘 주고, 법적으로는 지킬 것도 다 지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분위기가 굉장히 차가운 직장'이라고 하면, 이것은 각 개인들이 마음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자기네들이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지, 국가가 어떻게 간섭을 해서 고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 형식적으로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보니, 아무것도 자유롭게 할 것이 없다고 하면, 국가는 일단 그 개인이 자유의 기본전제(기본적인 의식주 환경과 최소한의 생활비)를 갖췄나 못 갖췄나, 그것만 살펴서, 만약 개인이 그것을 못 갖췄다면 빨리 도와주고, 만약 개인이 그것을 이미 갖췄다면, 일단 물러서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 기본전제는 국가가 챙겨줘야 하지만, 그 이상의 문제, 즉 삶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실질적 자유는 그러한 것입니다. 아무리 억만금을 쌓아두고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실질적으로는 자기가 그렇게까지 자유롭지는 않다고 느끼며, 우리가 유토피아에 살고 있지 않은 한, 누구나 다 실질적으로는 자기가 불행하고 억압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경우에 국가는 개인에게 도움을 주고 간섭을 하려 하기 보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아무런 간섭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개인이 국가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강제명령을 받을 때 가장 실질적으로 자유롭다 하더라도, 국가는 개인에게 절대로 그런 종류의 개입과 간섭을 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나 다 실질적으로는 자기 혼자만이 피해자이고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자기 스스로가 이러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게 국가는 더 놔둬야 하고,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더라도 그 개인이 자생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국가는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실질적인 것 하나하나까지 국가가 다 도와주려 해서는 안됩니다. 국민들의 버르장머리만 더 나빠지게 됩니다.

국가가 개인들에 대해 형식적인 자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자유까지 다 보장해줘야 한다면, 개인은 국가에 대해 사사건건 손을 벌리게 될 것이고,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의지를 하게 될 것이고, 국가에 대해 너무나 많은 기대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입장에서 형식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그 기준이 명확해서 보장해주기가 쉽지만,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그 기준이 수천억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아무리 최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이 모든 실질적 기준들을 다 고려하고 일일이 사정들을 다 봐가며, 자유를 보장해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 실질적 기준들을 다 파악하려고 한다면, 국가는 수천억개의 CCTV를 설치해서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들을 다 개인별로 몰래 감시해서 그 자료를 보관, 분석해야 하고, 각 개인의 머릿속에 칩을 다 집어 넣어서, 그의 의향을 매일 낱낱이 체크, 분석해야 합니다. 개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국가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다 알아서 세심하게 챙겨주고, 다정다감하게 알아봐주고 해야만, 개인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때에는 개인이 국가로부터 심한 닥달을 받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국가가 구속하고 억압해줘야만, 그때에 개인은 실질적으로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를 위해서라도 국가는 모든 개인에 대해서 항상 완벽한 정보를 갖고 개인들의 삶에 깊숙하게 개입을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어버이 수령 국가'인 셈.)

사회주의 국가는 각 개인들을 위해 국가가 친엄마아빠, 즉 '어버이'가 되겠노라고 흔쾌히 약속합니다. 형식적 자유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유까지, 그러니까 요람에서 무덤까지, 돈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주고, 따뜻한 마음을 잃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주고, 참여의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참여의 의지를 주고, 삶의 즐거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삶의 즐거움을 주고, 행복감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행복감을 주고, 고상한 취향을 잃은 사람에게는 고상한 취향을 주겠노라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토피아 속에 편입되기 위해서 각 개인은 국가기관에게 자기 형식적 자유와 형식적 기본권을 대부분 양도해버려야 합니다. 국가의 어린 아이 내지는 꼭둑각시가 되어 국가의 감시와 명령 속에서 살아가야 하게 됩니다. 국가기관에게 "당신은 나를 맡아주시오. 당신이 나의 어버이, 아니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내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모든 걸 다 지정해줘가면서, 나를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주시오."하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은 일시적으로 안락감을 느끼게 되겠지만, 얼마 못가 삶의 무기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무기력감을 상쇄하기 위해 국가에 대해 더욱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떼를 쓰게 될 것이며,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시기와 질투를 표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형식적인 것이라면 모를까, 실질적인 것이라면 전혀 공평하게 해줄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실질적으로 더 많이 배려해주고, 누군가에게는 실질적으로 더 적게 배려해줄 수밖에 없게 돼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고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국가가 설령 실질적으로 아주 완벽하게 똑같이 배려해준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하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는 국가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불만을 품게 돼있습니다. 이럴 경우 각 개인은 더욱 심한 분노와 박탈감 속에 빠져들게 되며, 자기 모든 불행을 국가탓으로 돌리고,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자기책임을 회피하고 국가책임으로 돌리게 됩니다. 자기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탓을 하는 노예적 성향의 인간으로, 수동형의 인간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 전체가 남탓을 하는 분위기, 부정적인 분위기로 빠져들어 삐걱거리게 될 경우, 그 국가는 세계무대에서 영원히 2류국가 취급밖에 못 받게 됩니다. 자유주의 국가들에 비해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체로 전세계에서 2류국가 취급을 받아왔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저는 국가가 시민들에게 '형식적 자유'만을 보장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 자유'는 개인 각자가 알아서 찾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까지 국가가 개인에게 보장해주려 해서는 안됩니다. 뭐든 남이 챙겨줘서 갖게 된 것에서는 자유도 보람도 행복도 결코 느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보람과 행복은 자기 마음이 절로 하는 것, 자기 스스로의 고생과 노력으로 이룩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기 인생의 모든 행복과 불행은 다 자기탓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도 합니다.

실질적 자유는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 자기 노력을 통해서, 자기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 스스로가 자의식을 확립하고 정신적 해방의 통과의례를 거쳐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실질적 자유를 찾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이러한 상태를 이루는 것이 정의와 공평을 이룩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자유주의로서는 여성인권과 아동인권, 노동인권을 보장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는 인권이란 것도, 일단은 개인 각자가 알아서 챙기는 것이지, 국가가 이를 챙겨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동, 장애인, 노인이야 인권을 스스로 실현할 만큼의 정신적, 신체적 능력이 부족한 존재이니까, 국가가 더 우선적으로 보호를 해줘야 하는 것이 물론 당연하겠지만, 여성이나 노동자라면 자기 인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성이나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설정해놓고, 그들을 다른 인간들보다 더 불쌍한 존재로, 더 우선해서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며, 그들의 인생을 망치는 처사라고까지 봅니다. 인권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인권'이란 '인간'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권리이지, '여성'이기 때문에, '노동자'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권리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사람들의 특수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국가가 다른 사람들의 개별적 인권을 제약하는 작금의 여러가지 국가적 활동들에 대해 깊은 우려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상품화하는 내용의 광고방송은 그리 품위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여성에게 심적으로 불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이를 도덕적으로만 비난할 뿐, 법적으로 금지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제약하지 않기 위해서는, 천박한 취향도 나름대로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하고, 이것이 여성이라는 한정된 인적 범위의 특수한 감수성보다도 더 중요한 법익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여성정치인이 부동산 불법투기를 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더 받아 (남자라면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수사받지 않았을텐데도) 수사를 받고 결국엔 쇠고랑까지 차게 된 경우, 여성계 인사들에게는 이 일이 엄청난 여성인권침해일 수도 있겠지만, 국가는 이를 일종의 정치적 스캔들로만 봐야 할 뿐이지, 법적으로 이를 인권침해로 봐서는 안됩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여성정치인을 용서해주기보다는, 남성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똑같이 강도 높은 수사를 가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개입주의적 국가라면 이 경우에 적극적으로 형사절차에 개입해서 여성정치인을 사면한다든가 할지 모르겠지만, 이 경우에 자유주의국가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여성정치인이 이 경우에 자기 여성인권을 실현하고 싶다면, 자기가 알아서 실현하든지 말든지 할 문제입니다.

성폭력이 아무리 여성들에게 심각한 여성인권침해의 문제로 대두된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성폭력범죄혐의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항상 정확하게 범죄자를 가려내는 것도 아니고,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사람도 많습니다. 설령 그가 진범이라고 할지라도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로 낙인찍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범죄(예를 들면 절도나 사기 등)에서는 안 그러는데 유독 성폭력범죄에 대해서 실명공개를 해야만 한다는 당위도 없습니다. 이런 실질적인 문제는 개인 각자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2001년엔가 운동권 진영에서는 운동권내 성폭력 가해혐의자 실명공개라는 어마어마한 폭거를 단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위 '여성인권'을 주장하시는 분들께서는 성폭력 가해혐의자들에 대해서 양심의 자유에 현격히 반하는 사과문을 쓰도록 강제하셨고, 성폭력 여부는 피해자 주관에 따라 결정하며 사실조사는 필요가 없다는 급진적인 성폭력 개념을 주장하기도 하셨고, 사적 보복 및 인민재판의 형태로 일련의 사건처리를 진행하기도 하셔서 저를 완전히 경악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국가에서는 아무리 여성인권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도 인간인 이상, 분명히 인권을 갖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잔악무도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를 간단히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해버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들인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성' 수천만명의 인권이 가해자 한 사람의 인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의 권리라 할지라도 자기네들의 집단적 인권(예를 들면 '여성인권')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고, 일말의 고민없이 얘기를 하시는 분들께서는, 아무리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대표하는 유명인사님들이라 하더라도, 극우 Fashist랑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여성인권침해라는 것도 보편적인 관점에서 이것이 인정될 수 있을 때에는, 국가도 개입을 해야 하고, 그러한 인권의 보장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예를 들면 전세계에 1,200만 명이 넘는 성매매여성들의 강제노동 같은 경우, 이는 여성인권의 문제임과 동시에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성들에 대한 호주제적 차별이라든지, 직업선택상의 차별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보편성의 관점에서도 얼마든지 인권침해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국가도 여성인권을 보장해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아무리 중대한 인권침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에는, 그것은 쉽게 인권침해로 인정되기가 곤란합니다. 성폭력 혐의자 실명공개의 경우,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가해사실 입증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국가가 혐의자의 실명 및 몽타쥬를 언론에 공개해버리게 되면, 여성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자기네들을 위해 법치국가적 원칙을 수정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게 될 것이고, 이런 식으로 국가의 법원칙은 계속 무너짐과 동시에, 여성들은 국가에 더욱 의존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각종 시험, 채용절차에서의 여성쿼터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역시 여성들을 돕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성들을 오히려 망치는 처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노동인권침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문제라든가, 혹사와 강제노동과 체불임금으로부터 노동자를 구제해주는 등의 문제라면 충분히 보편성의 관점에서 '인권침해'의 문제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노조에 대한 가입강제와 파업에 대한 면책특권 등을 '노동인권'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노조를 특권집단화한다든가 하는 것은, 자유주의국가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로 이들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로 보고, '불쌍한 사람들'로 봐버리면서, 그들의 권리를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 봐버리면, 노동자들은 국가에 대해 계속 손을 벌리게 되고, 또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자 기저를 형성하는 존재로서, 중세농경사회에서의 농민들처럼,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경제적 토대로서의 의의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노조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해서는 됩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 노조가 자기네들의 기득권 보호에만 치중해 기업과 국가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고,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하면서 하청기업의 근로자와 지역 상공인, 자영업자들을 희생시킨다든지, 노조의 재정을 위해 취직장사를 하고 리베이트를 받아먹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른다면, 이를 '노동인권'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는 그냥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리고 요즘같이 실업률이 높은 시대에 '노동자'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는 사실상 '기득권'으로 불리게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특수성과 예외성을 자꾸 인정해주려 하다 보면, 다른 법적 주체들도 자기네들에게 예외를 인정해주도록 요구하게 되는 것을 국가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게 됩니다.

국가는 보편적인 인권만 지켜주면 됩니다. '여성인권'은 여성들이 알아서 자기 힘으로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고, '노동인권'은 노동자들이 알아서 자기 힘으로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런 특수한 인권까지 보장해주려고 하게 되면, 그 특수한 인권의 주체는 그 특별한 혜택에 취하다가 점차 그 혜택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는 온 국민들이 그 수렁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것은 국가가 그러한 특수인권들을 보장해준다면서, 실제로는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자립능력을 빼앗아가게 됨과 동시에, 법치국가적 원칙을 점점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물암님께서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런저런 지적이나 조언을 해주시는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까지 잘못을 인정할 생각은 없으며, 무릎을 꿇을 상황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암님께서 잘못하셨다 하더라도, 제게 잘못을 인정하시라거나 제 앞에서 무릎을 꿇으시라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모두가 함께 배워나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오류를 함께 시정해나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어쨌든 저는 님과의 소중한 인연을 가급적 파괴적인 방향이 아니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저의 입장에 대해 님께서도 이해를 해주시고, 님과 제가 서로 배우면서 커가는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저의 노력에 대해, 님께서도 협조해주실 것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댓글 10

勿巖
勿巖
무려 열흘이나 걸려서 쓰신 답변의 수준이라고 하는 게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소 귀에 경을 읽는다는 심정이고, 또 한편으로는 쥐새끼도 죽기 전에 찍소리는 한번 내고 죽는다고 했지만, 고래님의 이번 글은 \'찍소리\'치고는 너무 약했으며, 그 수준도 거의 측은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Garching
Garching
흐음..... 신자유주의는 실물경제와 상관 없는 \'돈 놓고 돈 먹기\'의 금융업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고 여기에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이붓는 면이 있어서, 경제 전체가 완전히 투기판으로 휩쓸려들어갈 가능성도 있기에 좋지 않은 것이라..... 이 대목을 읽고 보니, KNura 이 녀석도 간이 워낙 작아서, 앞으로 큰 돈을 벌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금융\'이 위험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니... 실제로는 \'금융\'이 뭔지를 알아야 남의 돈을 크게 먹고 떵떵거릴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하긴 미국의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로 뭘 원하느냐 물었을 때, 상당수가 \'햄버거\' \'통조림\' \'스파게티\' 같은 싸구려 음식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아는 음식은 그저 이런 싸구려들 뿐이었기 때문이지요. 저승 가는 식사로 적어도 랍스터 정도는 불러야 하는데, 햄버거가 뭡니까, 햄버거가. 하긴 시야가 그거밖에 안 되니 사형을 당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어서 결국 죽는 것이겠지만요.

이래서 \'고기를 먹어 본 사람만이 고기맛을 안다\' 고 하는 거입니다.
Garching
Garching
결혼시장에서 재벌집안 출신에 억대연봉의 섹시한 미녀가 나타나도 \'부담스럽다\' 하고 차버리는 우매한 남자들(대개는 개천에서 벼락출세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도 다 그들 깜냥이 그 정도밖에 안돼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 수준이 그런 여자들한테 많이 딸린다 하더라도, 오히려 뻔뻔스럽게 들이대고 무조건 올인 들어가서 먹어버려야 하는 건데, 간이 콩알만한 남자들한테는 그런 여자들이 그저 부담스러운 것이며, 이래서 \'깜냥\'이라는 게 있다고 하는 거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이지요. 지 돈은 물론 남의 돈까지 크게 뺏어먹을 수 있는 깡이 있어야 살아남는 거입니다.
Garching
Garching
미국의 이번 금융위기를 지켜볼 때에, 역시 \'이득을 보는 놈들은 그전부터 판을 크게 벌리던 놈들뿐이고 가난한 집에서 싸구려나 먹고 커온 넘들은 한계가 있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다우지수가 수백 포인트씩 널뛰기 하는 동안, 가난한 개미 투자자들은 크게 죽었지만 옵션을 잘 알던 \'큰 손들\' 은 그 위기상황 중에도 크게 먹었습니다.

기실 폴슨의 \'구제금융\' 도 무너지는 거대 은행들과 부유한 유태계 투자기관들을 위한 것이지 일반인을 위한 거는 아니며, 돈이 돌게 하여도 윗동네에만 돌게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고,

현재의 상류층은 금융위기가 오건 뭐가 어떻건 더 크게 부유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세금상승과 기타 비용지원 축소로 더 팍팍해지게 만들자는 작전이었기에, 개념이 있는 여러 의원들이 재선을 위해 반대하고 나온 것이지요.
Gar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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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복잡한 금융수단은 일반인들에겐 알려져 있지도 않아요. 그래서 공부해도 소용 없습니다. 기본 천만 달러, 기본 5천만 달러 되는 투자계좌나 헤지펀드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1천 조 달러가 넘는 파생상품 시장도 만들고 그런 겁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수제비, 라면이나 끓여먹고 살던 넘들의 머리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요컨대, 규칙들을 그 윗분들(손이 큰 넘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들은 손해 안 보는 구조가 돼있고, 여기서 당하지 않으려면 깡을 보여서 윗분들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금융기법의 복잡성이 너무 심해져서 요즘은 윗분들 중의 일부가 손해를 볼 수도 있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한번 윗분들의 세계로 올라가면,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계속 살아가게 되는 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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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상을 모르고 라면이나 끓여먹으며 \'안분지족\'하는 것들은 그렇지요. 당장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소주 한 잔과 화투판으로 그날 번 돈 다 날립니다. 아랫것들 중에서도 원래는 윗세상에 속해봤어서 윗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것들은,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으나 해보기라도 해야 하므로, 작은 확률에라도 펀드,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데에 올인 들어가고 그러는 거입니다. \'금융\'을 알기 때문이지요.

평생 착취나 당하고 살 종자들은 당장 배가 고프면 자기 집이나 땅이 아무리 나중에 귀해질 것 같아도 지금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헐값에 팔아버리고 합니다. 물론 이익은 싼 값으로 그것들을 산 돈 많은 자가 다 처먹게 돼있지요.

고기를 먹어 본 사람만이 고기맛을 알듯이, 금융도 그러한 것입니다. 돈 놓고 돈 먹기도 큰 돈을 굴려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지, 안분지족의 도에 세뇌당한 넘들은 금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눈만 멍청하게 멀뚱멀뚱 뜨고 큰 구찌를 놓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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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도 그러했습니다. 영국은 자본력으로 여러 나라들에게 돈을 주어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계속하게 했지요. 이것은 영국의 해군력과 인도에서의 착취, 청나라와의 아편거래로 얻은 이익으로 인한 거이었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당시 청국은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고 영국과 프랑스를 합해도 경제규모가 청국만 못하였음),

반면에 프랑스는 그런 금융기법이나 자본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재래식으로 전비와 물자를 조달했고 (지금도 프랑스의 자본시장은 발달하지 못해서, 남한과 삐까삐까 하다고 합니다. 금융으로 유명한 도시들은 전부 다 미, 영 라인에서 세운 도시들이지요),

왕들은 돈 받아서 전쟁하지만, 죽어나는 건 백성들 뿐이었습니다. 반면에 금융을 알고 있던 영국은 자신의 전쟁을 - 금융을 통해 - 남을 시켜서 치르게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그 전비는 인도의 들판과 청국의 아편굴에서 조달되었습니다.

국가지도자들이 금융에 밝으냐, 밝지 않으냐, 하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금융에 밝고, 돈 놓고 돈 먹기에 능한, 남의 돈을 크게 뺏어먹어도 뻔뻔한 자를 지도자로 두면, 그 밑의 백성들이 고생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밑에 있는 자들이 고생한다는 거입니다.
Gar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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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건 뭐건 간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안분지족이 뭐가 어떻고, 카지노경제의 도박성이 뭐가 어떻고......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 지껄이며 도덕론이나 읊어대는 책상물림들은 금융문제에 대해서 위험하다고 멀뚱거리기만 할 뿐 아무 안목도 없는 쓸모없는 눈깔이나 달고 다니는 종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쓸모없는 눈깔은 차라리 바늘로 찔러 버리는 거이 훨씬 더 낫지요.

승자독식체제의 천민자본주의가 위험하니까, 안분지족의 도나 누리고 살어? 하여튼 이런 소리 하는 인간들이 사기는 또 잘 당해요. 부자는 사기당할 위험을 무릎쓰고 매사에 올인해서 판쓸이를 하는 기질이 있어야지 부자가 되는 거입니다. 위험을 기피하는 인종들은 오히려 가만히 있다가 엄청난 사기를 당하게 돼있지요. 한마디로 이렇게 소심한 것들은 가문이나 국가의 장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인 거입니다.
Wollrab
Wollrab
Garching=송하도인/ 거참....... 송하도인님께서는 이번에도 개념 없이 왔다갔다 하는 글을 써주셨네여.......

지난번 어떤 글에서는 \'깡통계좌에 올인하는 무뇌아들을 위해 흘려줄 동정의 눈물은 없다\' 이런 글을 써주시더니만.......

\'부유한 명문가들은 절대로 \'올인\'을 하지 않는다.\'
\'적절한 분산투자와 리스크관리가 부유한 명문가들의 롱런비결이다\'
\'그가 윗분들의 세계에 속하느냐 아니냐는 그가 쉽게 올인을 하느냐, 아니냐로 판갈음할 수 있다\'는 둥......

그렇게 안전지향적이고...... 전재산 들이부어 올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판적인 글들을 써주시더니만........ 이번엔 또 논조가 확 바뀌어버리셨네여........ =_=

부자가 되려면 사기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매사에 올인해서 판쓸이를 하는 기질이 있어야 된다니..... -_-;;

그리고 미국과 영국이 앞으로 금융때문에 망할 것이며.......

앞으로는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같이 금융보다 실물에 투자해온...... 대륙국가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니만.........

이번엔 또 금융이 역시 최고다........ 미국, 영국은 금융으로 세계의 강자가 되었다...... 미국, 영국 같이 돈 놓고 돈 먹는 나라의 지도자처럼 살아야........ 그 밑에 사람들이 고생을 안한다....... 이런 쪽으로 논조가 확 바뀌어버리셨네여........ =_=

KNura님은 그래도 생각에 체계성과 일관성이 있으신 편인데....... 송하도인님께서는 너무 왔다갔다 하시고....... 생각에 체계가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는 건 디게 많으신 것 같은데........

이것도 정말........... 가방끈이 짧으셔서 그러신 것인지..... -.,-;;
허정
허정
사람은 언행을 보면 그 사람을 평가 할 수 있다.
인간이란 항상 너와 내가 존지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건전한 인간사회를 유지시키는 현명한 방법임을 오랜 역사를 통해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즉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도 존중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언행은 외향적으로 나타난 사람의 품성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항상 언행을 조심하도록 어른들은 타이른다. 옛 어른들로 부터 귀가 따갑도록 듣던 말이 생각난다.
언행으로 나타난 여섯가지 천한 상이다.
1. 남들이 흉을 보는지 욕을 하는지 모르고 떠드는 수치를 모르는 사람.
2. 자신이 능력있다고 스스로 내세우는 사람
3. 옆 사람은 곤란을 겪는데 오히려 웃으며 딴청을 부리는 사람.
4. 무슨일이든 확실하지 않고 나갈지 들어올지를 분간 못하는 사람.
5. 남이 안되는걸 바라면서 헐뜯는 사람.
6. 자기 자랑할 것 없으니까 남을 팔아서 돋보이려고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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