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5월 이맘때가 되면
눈부신 햇살 아래 붉게 피어오르는 장미꽃들을 보며
1871년의 5월과
1980년의 5월을 생각하게 된다.
1871년 5월 프랑스 빠리는
프로이센에 계속 항전할 것을 주장하던
다수의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행정과 치안을 장악한 상태였으며,
극심한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낮에는 토론으로,
밤에는 축제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은
나름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이센군을 피해 베르사유로 도망쳤던 프랑스 정부군이
다시 돌아와 빠리를 공격하자,
꼬뮌은 위기에 처하였다.
1871년 5월 21일부터 5월 27일까지
피의 일주일(La Semaine Sanglante)로 불리는 기간 동안
정부군과 꼬뮌군 사이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대부분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노동자들과 시민들로 이루어진 빠리 꼬뮌군은
정부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무참히 무너졌고,
이후 빠리 시내에 난입한 정부군에 의해
빠리 시민 약 2만~5만명이 학살되어
쎄느강은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1871년 5월 28일 저녁
뻬르 라쉐즈에서 마지막 항전을 하던 147명의 꼬뮌병사들은
정부군에게 잡혀 정식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모조리 총살당했다.
꼬뮌 병사들의 시신은
그들이 총살당한 벽 아래로 그대로 내던져졌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빠리 꼬뮌의 벽은
꼬뮌 병사들이 총살된 바로 그 자리이다.
1980년 5월 17일,
전남 광주에서는 비상계엄군이 각 대학을 장악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하였으며,
이에 분노한 전남대 학생들과 비상계엄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5월 18일,
계엄군과 공수부대원들은 시위 학생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여
죽는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민가나 관공서로 피신하는 학생들을 추격하던 군인들은
민간인, 부녀자들까지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광주시 외곽으로 피신하기도 하였으나,
군대는 탱크까지 동원하여 이들을 거의 모두 체포하고 사살하였다.
이에 성난 학생들과 가족을 잃은 시민들은
힘을 합쳐 계엄군에 저항하여 계엄군이 시민군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시민군은 계엄군을 시내에서 몰아내고 전남도청을 점거하고,
경찰서 등에서 총기를 탈취하여
광주라는 도시를 시민군의 휘하에 두었다.
하지만 계엄군의 반격이 다시 시작되었고,
3공수, 7공수, 11공수 등 특전사부대와
20사단, 31사단 등 정규군 2만여명은
광주시내를 포위하였으며,
교수, 변호사,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5.18. 수습대책위원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민군의 최후 거점인
전남도청으로 밀고 들어갔다.
5월 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은 완전히 포위됐으며,
도청 안에는 200명 남짓한 시민군들이 남아 있었는데,
최후의 순간,
그들은 항복하거나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끝까지 죽음을 피하지 않고
결사항전을 택했다.
그리고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광주민중항쟁 최후의 전사들은
그날 모두 목숨을 잃었다.
송하도인 같은 친구는
"사회주의자들의 투쟁 같은 건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사회주의자에 속하건 자유주의자에 속하건 간에
이렇게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의 자유를 누린다고 믿는다.
얼마 전에 나의 동료 권재문 교수가
"5월, 그날이 다시 오면!"하고
노래를 부른 것도 있고 해서
옛날 일을 한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프랑스건 대한민국이건 수십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과 번영이 찾아왔다는 점이지요. 파리 코뮌 이후 프랑스는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온 국민이 너무나 잘 먹고 잘 살아서 이 시기를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를 정도였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보이는 평화로움과 여유 역시 이러한 경제적 여유를 반영하는 거입네다. 우리 대한민국도 광주사태에서 좌파들을 확실하게 짓밟은 다음에
세계 경제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지요. 우리 민족 역사상 1980년대 만큼 온 국민이 배 뚜들기며 잘 살았던 시대가 전무후무합네다. 이렇듯, 전두환은 좌파들을 다룰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고,
그런 과단성과 결단력을 통해서 우리 민족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전두환이야말로
민족 역사상 최고의 영걸 중 하나라고 제가 높이 평가하는 거입네다. 러시아에서도 푸친이 칭송받는 것도 전두환과 비슷한 이유에서 칭송받는 거이지요.
총체적 난국에다, 미국에서 온 \'경제전문가\'들의 난행으로 인하여 경제는 완전히 파탄되고, 마피아들과 유태인 올리가르히(구소련 말기에 국영기업체들을 싼값에 불하받아 억만장자가 된 무리들) 에게 모든 게 집중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푸친의 영도 하에 어떻게 얼음집에서 나왔느냐 하면,
짓밟아야 할 것을 짓밟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입니다.
러시아의 인구는 소련 멸망 당시 1억 5천만 정도에서 현재는 1억 4천만 정도로 감소하였지요. 출생률이 낮아 20년 후에는 1억 2천만 정도로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옐친에서 푸친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어마어마한 숙청이 이루어졌으며,
반체제인사들이나 체첸반군들에게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작살을 내는 등 본때를 보여주었고,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보드카를 싼값으로 공급하여 더 빨리 죽게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살아 봐야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푸친 정권의 \'질서유지\'이며 \'복지\' 였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욱 더 교활해지고 더욱 더 야비해졌으며 금전적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카자흐, 우즈벡, 타지크, 투르크멘 같은 곳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일어났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두고 가야 발전이 있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며, 러시아는 이런 과정을 겪어서 부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했던 일도 대략 푸친과 비슷하며,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러시아보다 수십년 먼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노동자든 전라도 출신이든 뭐든, 불평불만세력들은 눈에 보이는 즉시, 시범케이스로 단단히 찍어서 아주 확실하게 짓밟아버린다는 게, 국가발전을 위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제가 누차 강조하는 게 바로 그것때문입니다.
파리코뮌이나 광주사태에 대해 얄팍한 감상에나 젖어있는, 여기 KNura 백경일이 같은, 소위 진보 좌빨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 작자들인지는 이래서 두말할 나위도 없다는 거이지요. 진보에게는 죽음을, 좌파에게는 파멸을, 그러한 전제에서만이 국가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며,
제가 보기에 이명박 정권이 얼마전까지의 경제위기상황을 일찍 탈출하고 지금과 같이 지지율을 극적으로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최근의 용산사태를 확실하게 진압하여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네다. 아랫것들은 모름지기, 그렇게 좀 거칠게 다루어줘야 합네다. 앞으로 이명박 정권이 더욱 더 힘을 얻게 되면,
KNura 같이 교묘한 가면을 쓰고 암약하는 진보 좌빨 성향의 교수들은 모조리 대학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며,
대한민국은 그러한 변신을 통해 조만간 세계의 패권국으로 도약하게 될 거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지도자가 교체된 2007년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극적으로 가른 해로 기록될 날, 머지 않았습니다. 놈현의 죽음을 보고, 저는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