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성실(信義誠實)과 승냥이 이야기



요즘 나는 민법학에 관련된 내용들을 어떻게 하면
문학이나 우화 등의 형식을 빌어 학생들에게 잘 설명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최근에는
불교우화집 'Jataka Tales'라는 것을 읽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승냥이 이야기(Jackal Story)'라는 것이 민법학의
'신의성실(信義誠實)' 원칙의 필요성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옛날 카시국 근처에 승냥이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승냥이 아내가
"붉은 생선이 먹고 싶어요"하고 승냥이 남편을 졸랐다. 남편 승냥이는
"그래요, 내가 구해오리다"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갔다.

그런데 승냥이는 헤엄을 잘 못 쳤기 때문에
좀처럼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강 상류에서는
수달 두 마리가 물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처음에 수달 한 마리가 큰 붉은 물고기를 발견했으나
그 물고기는 너무나 큰 데다 힘도 셌기 때문에
수달은 좀처럼 그 물고기를 강가로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수달은 또 다른 수달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둘이 힘을 합쳐서
그 큰 물고기를 강가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문제는 물고기의 분배였다.
둘 다 맛있는 머리 부분을 탐냈기 때문에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이 물고기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입에 물었잖아.
내가 당연히 머리를 차지해야 해."
"아니지. 너는 이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물었고
나는 머리부분을 물었으니까 내가 머리를 차지해야 해."

둘의 주장은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때 승냥이가 다가와
그 다툼의 조정을 맡았는데,
그 조정의 결과
승냥이는 다툼을 조정한 대가로
그 물고기의 몸통을 차지하게 되었다.
어느 수달이 물고기의 머리부분을 차지했는지는 알 수 없고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어쨌든 두 수달은 win-win game이 아니라
lose-lose-game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니까
"다툼이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다른 이야기를 더 덧붙일 수도 있다.

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다.
두 수달은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순식간이나마 서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둘 사이에는 특별한 구속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구속관계를 형성하였다면
두 수달은 그 관계가 끝날 때까지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계약이 끝날 때까지 둘은 서로를 믿어야 하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사이 좋게 일하는 데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이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둘 다 최선을 다해야
둘 다 win-win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또 좋은 기분으로 만나서
또 다시 공동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하고
서로를 상처 입히고
상대방이 가져선 안 된다고 여겨지는 것을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만을 갖고서는
서로가 애초에 가졌던
계약상의 목적,
특별한 관계의 목적을 제대로 실현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엉뚱한 승냥이에게
어부지리나 주고 말 뿐이다.
그만큼 '관계' 자체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주인과 손님 간의 관계로 만난다는 것도 그렇다.
서로 욕하고 싸우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서로에게서 뭔가 부당한 것을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인터넷 공간에서
귀한 만남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모든 만남과 인연,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서로가 양보하고 배려하고 사이 좋게 함께 하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민법 제2조에서 이야기하는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원칙이다.
이러한 윤활유가 없이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지탱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댓글 1

eccentricer
eccentricer
민법을 공부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고작해야 \'신의성실\' 밖에 주워섬기시질 못하는군요. 그런데 그거는 잘 모르시겠죠. \'신의성실\'보다 더 위에 있는 게, 헌법에서 얘기하는 \'공공복리\'라는 거... 공동체의 목적으로서의 공공선과 사회복지와 사회정의가 \'신의성실\'보다 더 위에 있다는 거...

위의 얘기에서도 그렇죠. 잘못은 수달(민중)의 양식을 빼앗아간 승냥이(권력가)에게 있는 것이지,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다툰 수달에게는 잘못이 없죠. 그런데도 주인장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이 모든 게 수달끼리 서로 다투었기 때문이라며, 힘 없는 수달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죠.

싸우지 말고 살자, 서로 희생하며 살자는 부처님 말씀이 결국은 그거죠. 기득권들이 민중들을 기만하고 자기 기득권을 지키며 민중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영원무궁토록 배 뚜들기고 살기 위한 표어죠. 맨날 빼앗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민중들이 희생을 거부할 권리, 싸울 권리조차 빼앗긴다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긴 힘들죠.

주인장님도 저한테 논리에서 밀리니까, 결국엔 양보하고 배려하고 살자, 싸우지 말고 살자, 이런 보수적인 얘기로 도피하는 것 같은데, 참 불쌍하다는 말밖에는 안 나오죠. 자기가 질 것 같으니까 이젠 모든 게 귀찮다, 이건가 본데요.

민법을 공부하는 분들은 이래서 시야가 좁다고 하는 거죠. 양 당사자 간의 관계밖에 생각할 줄을 모르고, 공동체의 문제, 국가의 문제, 사회적 약자의 문제 같은 거는 생각도 안 해볼려고 한다는 거죠. 애들도 싸워야 키가 크고, 사회생활도 투쟁 속에서 알아간다고 했는데, 마치 둘만의 관계에서 모든 게 끝나는 것처럼.

주인장님은 본인이 자유주의자라고 했는데, 정말로 자유주의자라면, 제가 여기서 무슨 주장을 하든, 공격을 하든, 그걸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걸 그 자체의 논리로써 논박하셔야 옳죠. 이렇게 양보와 희생의 교리를 설교하며 권위로 내리누르려 하시는 것은 진짜 비겁한 회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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