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法



언젠가부터는
고민이라는 게 점점 엷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고민이란 걸 많이 해봤자 이 세상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
세상엔 사람도 많은데, 그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 가운데
단 한 사람, 나 하나의 고민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냉정하게 말해, 나의 상황, 나의 처지, 나의 관점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나 한 사람만의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백 사람, 천 사람의 고민, 생각이라 해도 다 그렇다.)
아무리 자신의 절박한 문제라고 해도
남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그리 절박한 문제일 수가 없는 것이며,
그럼에도 그 절박함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것에 대해
이젠 구차하거나 궁상스럽게 느끼기 시작할 때도 되었다.
'왜 나의 생각에 대해 사람들이 그토록 공명해주지 않는가?'하고 화를 내는 것도
이제는 어리석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이것이 우리 모두의 진리이고 정의이다'
'이것이 나에 대한 당신들의 의무이며
당신들에 대한 나의 의무이다'하고 외치는 거
이젠 재미 없다는 입장이다.

그보다 더 나의 흥미를 돋구는 것은,
기실 나와 별로 관련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나,
그 사람들이 그에 관해 거짓말 같은 거 보태지 않고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나,
하는 종류의 문제이다.
(나와 관련 있는 문제는 이제 내게 있어서 거의
기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속한다.)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 있을 때에,
이 세계의 복잡미묘함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오히려 흥분과 기쁨을 느낀다.
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르면 다를수록,
그 사람의 생각에 대해 더욱 더 큰 흥미를 갖는다.


나는, 지금의 세계에서,
만물이 더욱 더 개인화, 상대화되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절대적 사실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관이 조합되어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지금 이 정권, 가령 대한민국 대통령 mb라는 사람의 성격,
그리고 진보의 방식 등이 그렇게
간단히 규정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당신들도 결국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요즘은 미디어법을 가지고 다들 난리인데,
그것도 그까짓게 뭐 그다지 대수랴,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과 신문사들이 방송업계에 진출한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방송업계를 단박에 장악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다양한 콘텐츠 개발능력을 갖췄다고?

그 구린 조중동이 과연 신세대들의 입맛에 맞는,
'간지나는' 방송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감각이 진짜 하루 아침에 확 만들어질 수 있을까?
돈질만으로 정말 그게 될까?

혹시 미디어법은 그들에게 불쌍한 물주노릇만 하라고 할 뿐,
실질적인 이익은 오히려 방송업계의
밑바닥 실무진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사실 나는 더 많이 갖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의원 전원 사퇴한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는 것도,
약간은 오바라는 생각까지 드는 게 바로 그때문이다.

진보진영이 실력만 탄탄히 갖추고 있다면,
개방과 경쟁을 꼭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건 학회 후배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최근에 백기완 선생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백선생 고향 앞바다에 어릴 적 작은 집게가 살았는데,
그 큰 바닷가에 조그만 집을 끌어 안고 그 속에서 만족하면서
모든 것을 가진 양 사는 집게 앞에서,
백선생이 나와라~~~ 나와라~~~ 고함을 치면
더더욱 무서워 소라껍질 속으로 숨어 드는데,
그런 집게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편협한 이데올로기와 법의 두터운 보호막에 안주하면서
진지를 구축하고 자기네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려는 집게정신은
바로 우리나라 '진보좌파'들이 떨쳐내야 할 구습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법 하나만으로 정말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와
'방송의 공영성'이 위기상황에 몰리게 될까?

오히려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판을 더 키워서,
더 크게 먹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 사고를 갖지 못한다면,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실력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시민들도 그렇게 녹록한 사람들만은 아니다.
'진보'건 '보수'건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해내는 쪽에게,
결국은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 가진 것만큼
제대로, 정직하게 평가받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현실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해
고민이 엷어진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님을 안다.

하지만 고민이 엷어진다고 하여,
모든 것에 대해 체념하고
무감각해지는 단계에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다.


옛날 일본의 전공투(全共鬪) 세대처럼,
이상이 끔찍히 좌절된 경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극한의 배신감을
느껴본 것도 아니다.

무기력, 무감동, 무관심 같은 건
아직 나의 주제어가 아니다.


다만 내 주변의 여러 상황들에
감정과 선입관을
개입시키려 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태도가,
최근에 내 주변에
여러 종류의 불협화음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댓글 6

Jini0101
Jini0101
현재 추진되고 있는 언론 관련 정책의 종착역은 아마 이곳 유럽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태리라고요... 베를루스코니가 민영방송을 장악한 채로 총리까지 돼서 제일 먼저 한게 국영방송 RAI의 이사진을 자기 사람으로 바꿔버린 거라죠? 스포츠-언론-재력의 3박자 공수주가 척척맞아돌아가는 나라가 아닐 수 없죠... 쩌업...
1stwhitewhale
1stwhitewhale
Jini0101님께/ 베를루스코니는 강성의 독재자라기 보다는, 연성의 희극적 캐릭터에 지나지 않으며, 그동안 이태리 좌파들이 삽질해온 것의 반사이익을 계속해서 누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태리의 언론계 지형을 보면,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제국이 매우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채널은 대부분 오락과 엔터테인먼트에 치우쳐져 있고, 뉴스나 정치적 언급은 제한을 받고 있거나 공신력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태리 사법부가 워낙 썩어있기 때문에 베를루스코니 같은 사기꾼이 그 정도로 활개를 치는 것이지, 법집행만 제대로 된다면 베를루스코니도 감옥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고, 그의 미디어제국도 붕괴는 시간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공영방송들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의 미디어법이 의외로 그들에게 적절한 채찍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디어법의 국회 통과과정이 과연 법적으로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미디어법의 규정내용 그 자체는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Jini0101
Jini0101
저도 베를루스코니라는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별로 높게 평가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가 지금의 미디어제국을 구축한 과정이라든지, 이태리 정-관-종교계의 뿌리깊은 기득권 카르텔을 살펴보면 최소한 중단기적으로는 이태리가 우리의 반면교사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나와있는 이태리 친구들도 요즘 이태리 정치 이야기하면 그냥 말 돌리더군요..-_-;

최근에 느끼는 건 규범의 내용이 아무리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마인드가 잘못되어 있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건데요, 최근의 이태리의 사례도 그런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松下道人
松下道人
KNura가 또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였군요. 뭐?

<b>시민들도 그렇게 녹록한 사람들만은 아니다</b>? <b>'진보'건 '보수'건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해내는 쪽에게, 결국은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b>? 우하하.

제가 볼 때, KNura 같은 넘은 아예 그런 선동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대개의 경우 좌파 선동가들은 \'국민은 위대하다\' \'민중의 힘\' 이런 걸로 사람들을 낚습니다. 그런데 국민이니 시민이니 민중이니 하는 것들이 정말로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KNura가 말한 것처럼 녹록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제가 오랜 역사 공부에서 얻은 경험의 결과는,

\'시민의 녹록치 않은 힘\' 같은 건 없다는 거입니다. 좌파 선동가들이 일시 각성을 시켜서 끓어오르게는 할 수 있지만,

결국 시민들은 오래 가면 지쳐서 생업으로 돌아갑니다. 즉 다시 \'순대 채우는 일\' 로 돌아간다 이 말씀입니다.

그럼 시민이란 작자들은 어떤 작자들일까요?

시민이란 작자들은, 그렇습니다. 그저 소떼처럼 목적 없이 쓸려 다닐 뿐인 종자들입니다. (이걸 가장 잘 아는 자들은, 사실 우파들이 아니라 좌파들입니다. 하지만 입으로는 \'시민들의 힘\'을 이야기하지요. ㅎㅎㅎ)

따라서 시민들의 순대를 채우거나, 아니면 시민들 중에서 필요없는 순대들을 터뜨려 버리거나,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해낸 사람만이 오랫도록 역사에 남고 잊혀지지 않는 거입니다.
松下道人
松下道人
박정희나 전두환은 두 가지 모두를 해냈고, 또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 나라 대한민국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지요.

반면에 좌파 지도자들 가운데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인민들의 순대는 못 채웠어도

필요없는 순대들을 터뜨려 버리는 것 하나만은 확실히 했던 쪽에 속합니다. 하긴 김정일은 자기에게 충성할 사람들에게만 배급을 주었지요 (즉 그들의 순대를 채워 줬습니다).

적어도 김정일은 이미 30대에 계모를 쳐내고, 자신이 권력을 취한 경력에 발맞추어 필요 없는 자들을 걸러낼 줄은 알았으며,

그래서 DJ가 김정일을 \'식견 있는 지도자\' 라고 씨부렸고,

한겨레를 비롯한 우리나라 소위 진보언론들은 거기에 맞장구를 쳐주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지요. ㅎㅎㅎ
松下道人
松下道人
좌파들이 그토록 목을 매고 방송법 통과를 무효화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 다 그런 이유들때문입니다.

언론과 방송을 장악한다는 게, 시장원리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시민이란 자들은 언론과 방송에서 뇌까리는 대로 졸졸졸 따라올 수밖에 없는 소떼들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인간이란, 존엄하지 않고,

짐승들처럼 워워 잘 몰기만 하면, 김정일도 김일성도 \'식견 있는 지도자\'라 부르며 모두가 따르게 돼있다는 거입니다. 한번 쇄뇌되면 배를 곯아 죽을 지경이라도 끝까지 따르지요. 하하하하.

우파건 좌파건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의 엘리트가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고, 반복적으로 쇄뇌시키면, 시민들은 그걸 믿고 그대로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방송법은 통과되었고, 울 나라 언론과 방송은 앞으로 우파들이 틀어쥐게 되었으니, 이제 좌파들의 설 자리는 없어졌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ㅎㅎ

그런데 KNura는 이런 원리도 모르고,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고 있군요. 그래서 제가 KNura를 가리켜,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거입니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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