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투쟁의 한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게 있다.

인정투쟁의 패배자가 노동의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능력과 진정한 자립성을 확인하고,
그 사이 자립성을 잃어버린 인정투쟁 승리자를
자기 노예로 만들어버린다는, Hegel의 유명한 변증법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Kant에 따르면 자의식(Selbstbewußtsein)은
자신의 자립성을 견지하는 주체적 자아이며,
자신의 내부를 성찰하는 반성적 자아인데,
Hegel에 이르게 되면 이 자의식이
타인에 대해서 스스로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에 대한 의식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진정한 자립성이란
다른 자의식의 인정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자가 타인을 인정하는 폭과 깊이는
각 자의식의 입장에서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만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자의식은 외부에 대하여 인정투쟁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때로는 이러한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정투쟁에서 패배한 자는 그 패배의 대가로
승리자를 위해 노력봉사를 해야 하게 된다.
반면 승리자는 직접적인 생산노동을 패배자에게 맡긴 채
무위도식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패배자(달리 말해, 노동자)는 생산노동의 과정에서,
다시 말해 물질적 대상을 가공, 변형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변형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점차 확신을 가지게 된다.
물질적 대상만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달리 말해, 자본가)와의 관계,
그리고 이 세계 전체를 변혁해야 하겠다는 확신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물질생활의 전체를 노동자에게 의존함으로써
예전의 자립적 자의식에서
퇴폐적인 자의식으로 점차 타락해버린 자본가에 대해
노동자는 어느 시점에서 인정투쟁을 선포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폭력이 수반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법학에서는
이러한 인정투쟁의 방법에 대하여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려 한다.
절대,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는 말라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허용되는 것은 파업과 같은
합법적 쟁의수단이다.
이러한 합법적 범위 내의 인정투쟁을 통해서
모든 인정(Anerkennung)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정투쟁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물리적 힘의 우위가 아니라
시장의 상황과 국민의 여론이다.
만약 시장상황과 국민여론이 노동자측에 동정적이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다면,
노동자들은 이러한 인정투쟁을 통하여
얼마든지 자본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물론 시장상황과 국민여론이 노동자측에 동정적이지 않다면
노동자들은 인정투쟁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움츠러들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법질서가 허용하고 보장하는
인정투쟁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의
쌍용자동차 사태를 보라.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차 같은 소규모 양산 자동차업체의 판매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는데,
노조는 이러한 시장상황을 무시하고
단 한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옥쇄파업 등의 방법으로 외국자본을 압박하여
외국자본의 철수를 더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국유화 등을 정부 측에 무리하게 요구함으로써
국민여론의 외면을 받기까지 하였다.

인정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측에서 지나친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측에서는
이러한 노조의 옥쇄투쟁을
합리적으로 온건하게 해결할 생각은 별로 없이
이를 잔인한 폭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인정투쟁의 한계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의 동영상을 한번 보시기 바라겠다.






이건 거의
진압이 아니고 폭행이다.

쓰러진 사람을 굳이 저렇게까지
계속 폭행해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이미 제압된 사람을 무슨 물건 걷어차듯이
저렇게 걷어차고 짓밟아야만 했는가?

노조도 물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인정투쟁을
지나치게 질질 끌었다는 점에 있어서
잘못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인정투쟁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인정투쟁을 강경진압해버리면
이러한 끔찍한 기억은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깊이 사무쳐
언젠가 더 큰 비극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젠 절차고 뭐고 없이
그냥 모두가
폭력을 사용하는 상황으로 악화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비록 노사 간의 합의가 그 후에 극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이러한 폭력적 진압은 앞으로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자처벌이든, 손해배상이든)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잘 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고
잘 해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시민들이 정부에게 그렇게 잘 할 것을
요구할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정부는
시민을 때리지만은 말아줬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우리 시민들을 때리지만은 말아달라.

강제진압 동영상을 보고 씁쓸한 기분이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댓글 5

익살이
익살이
KNura/ 이렇게 말로만 떠드시지 말고, 실천을 좀 하세요. 노동자들이 그렇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는데, 지식인이라면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서 법적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언제나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댈 뿐이지, 자기 몸으로 부대껴서 뭔가 실천할 생각은 하나도 안 하시는 분인 것 같아, 글을 읽으면서 계속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불쌍하시면, 대학교수직을 걸고 노동부 앞에 가서 단식시위라도 한번 하세요!
松下道人
松下道人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우하하.

Hegel이란 인간이 정말로 그런 소리를 했다고는 하나, 이거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입니다. 돈많은 주인은 나태해져서 언젠가는 타락하지만, 돈없는 노예는 열심히 힘을 길러 결국엔 주인을 노예로 만든다? 우하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아니합니다. 윗분이 끌어내려지는 것은 윗분들끼리의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이지, 아랫것들에게 끌려 내려오는 일은 저얼대 없지요. 다만 윗분들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아랫것의 손을 잠시 빌릴 수는 있어도, 결국 아랫것의 그 손은 어림없이 잘려지고 윗분들의 세상은 이어지는 겁니다.
松下道人
松下道人
힘이 있으면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번 가려진 우열은 영원하지요.

한번 우열이 가려지면, 최소한 그 우열이 정해진 때에 있었던 지도자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절대로 그 우열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저의 오랜 경험에서 본 사실입니다.

역전의 묘미도 역전시킬 건덕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승자가 병신이 아니라면 미리미리 역전의 싹을 철저히 도려내버리지요. 그래서 최소한 승자가 살아 있을 때는 절대로 패자는 역전시킬 수가 없게끔 만드는 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했어도 \'후회 없다\' 이렇게 입을 놀리는 자들은, 뇌가 어디 소풍을 멀리 멀리 간 사람입니다. 져도 진 줄 모르고 뺏겨도 뺏긴 줄 모르며 당해도 당한 줄 모르니, 이런 멍청이들은 확실하게 노예로 만들어진 거입니다. 이들에게 어울리는 건 그거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우핫하.
松下道人
松下道人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누구는 뭘 해도 순풍에 돛 단 듯 하고, 누구는 작은 것이라도 먹기 위해서 줄 서서 기다려야 하거나, 남의 것을 쳐서 빼앗아야만 간신히 뭘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끝까지 골치아파진다고 하는 거입니다.

가진 게 없으면 몸을 사리게 되고, 가진 게 많으면 여유가 있어서 더욱더 크게 지르게 됩니다. 잘못 되더라도 커버해 줄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한번 잘못 되면 끝인 사람과 기본적으로 생각 자체가 다르니 스케일도 커지고 여유도 생겨나며,

결국은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 현실이고, 아무것도 없이 하나만 가진 사람은 그 하나조차도 결국은 빼앗기는 것입니다.

좌절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겪어 보면 더 매너도 좋고 밝으며, 호감을 갖기 쉽습니다. 좌절을 많이 겪었을수록 뭔가 그늘이 있고 음습함이 있으며, 외부에 대해 뭔가 기가 죽어 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움츠린 자세를 하고 타인을 밀어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피해의식을 기본적으로 못 벗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승작용, 하강작용이 일어나며, 인맥 만들기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맥이 없는 사람은, 단 하나의 인맥을 만들려고 해도, 수십배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어려서부터 주눅들고 자란 트라우마가 상당한 데다, 자기 기반 자체가 워낙 약해, 변변찮은 인맥조차 순식간에 끊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문을 타고 나면, 도움 되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하는 법도 자연적으로 알게 되고, 한 사람 잡으면 굴비 엮듯이 차례로 걸려들어가게 되니 순식간에 풍성한 인맥을 자랑케 되어, 노력 안 해도 주욱주욱 잘 나가는 거입니다.

순풍에 돛 달던 사람들이 좌절을 겪기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심 바라고, 그래서 Hegel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운운 지껄여대지만,

현실은, 한번 순풍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평생 좌절 없이 즐겁게 살다 가고, 아무도 그들을 못 건드리게 돼있는 겁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같은 게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松下道人
松下道人
그런데 폭력적인 방법은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 우하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게 나오면, 무조건 폭력경찰부터 투입해서 버로우시킵니다. 우리가 선진대국이라 알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다아 마찬가지이지요.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이런 원칙에서 저얼대로 예외는 없고, 설령 좌파가 집권해도 공권력의 폭력진압, 이것만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기득권의 생명줄이기 때문이지요. (노무현 집권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때는 뭐 노조파업에 공권력 폭력진압이 없었는 줄 아십니까? 우하하.)

반면에 노동자들에게는 저얼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며, 만약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면, 백배 천배로 갚아주는 것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는 거입니다. 이것은 미국도, 영국도, 독일도, 일본도, 다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알지 못하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KNura는,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사기꾼기질이 다분한 건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ㅎㅎ 아마 본인도 이번에, 스스로 감당 못할 망발을 내뱉었다는 거, 언젠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입니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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