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어떤 선배랑 밤 새워서 술을 마시다가, 내가 문득 '학자로서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가'하고 묻자, 그 선배가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권력과 명예와 부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연구원자리나 교수자리를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학위가 꼭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연구업적이 있을 필요도 없다. 어학적 소질, 인문학적 소양, 전문적 지식이 많을 필요도 없고, IQ가 일정수준 이상 될 필요도 없다. 학자는 그냥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만 갖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요건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이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첫째, 지적(intellectual)이어야 하는데,
지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그냥 느끼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인간이다. 사람이 현실과 타협하며 살려면 어느 정도는 무식해야 할 필요도 있건만, 이런 사람은 자기 무식함에 대해서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인간에게는 권력이 주어질 리도 없고, 돈이 많이 붙을 리도 없다. 권력도 돈도 없이 지식만 쫓으며 사는 사람을 환영해줄만큼 이 세상이 그렇게 관대하거나 여유롭지는 않다. 생각이 많은만큼 삶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결벽적(fastidious)이어야 하는데, 이건 그거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어느 정도 구정물을 삼키면서 살아가는 걸 다 당연하다고 보건만, 자기 혼자 세상에 타협 않고 살겠다는 것이다.
옛말에 '맑은 물엔 고기가 살지 않지만, 더러운 물엔 고기가 많이 산다'고 했다. 결벽적인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그저 깨끗하고 깔끔하게만 처리하려 한다. 그런 사람 주위에 친구가 남아날 리가 없다. 외롭게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진솔(honest)해야 하는데, 참을 참이라 말하고, 거짓을 거짓이라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게 괜히 회부된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윗사람의 비위를 맞출 줄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윗사람들의 미움을 타게 돼있다. 결국 말 한 마디, 글 한 줄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
그리고 진솔함이란 포장하지 않음, 꾸미지 않음을 말하는데 이는 곧 초라함, 지루함, 유치함, 만만함을 뜻한다. 참말보다 거짓말을 백배 천배는 더 좋아하고, 참말보다 거짓말을 훨씬 더 높이 보는 세상에서 진솔함의 가치가 대강 어느 정도인지 알만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는 번뜩여야 하는데(conspicuous), 이것은 조용히 묻어가는 편안하고 무난한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 평범함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인데, 이 세상에 혼자 튀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고, 모난 돌은 반드시 정을 맞는다 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찌 현명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학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식을 정제해야 하고, 그 정제된 지식을 후세에 전하는 신성한 사명을 떠맡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실적 관점으로 보면 쓸모 없는 인간으로 치부되고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게 된다.
물론 그러한 덕목을 방기하고서 일시적 부귀영화를 누리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학자들은 동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몇십배 몇백배의 비난을 더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를 가리켜 예술가 이상으로 어려운 직업이라 한다.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은 이렇듯 학자에게 있어서 곤고하고도 지난한 덕목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러한 기본적 삶의 태도만 잘 견지할 경우, 학자들은 쓸데없는 노력이나 무리를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자기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거라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보다 이 요건이 학자들에게 그리 불리하지는 않다.
최근에 나는 몇 편의 논문을 읽었고, 그 중 한 두 편에서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여러 편의 논문에서는 '과장된 감수성의 대세추종적 천편일률' 내지 '정치적 편협성의 아전인수적 일장설교'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소재나 문장력, 그리고 논문의 분량과 필자의 명성 등에 있어서는 후자의 논문이 전자의 논문보다 훨씬 앞섰다. 하지만 전자의 논문은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에 충실한 논문이었고, 후자의 논문은 그렇지 않은 논문이었다.
나는 이 경우 전자의 논문이 후자의 논문보다 더 가치 있는 논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학문의 진보와 발전은 다른 그 어떤 가치보다도 그러한 '지적 결벽성의 진솔한 번뜩임'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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