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生老病死하고 물건이 成住壞空하며 緣起하는 그 원리



법제사적인 연혁이나 비교법적인 근거 같은 것은 분명하지만,
법이론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 그런 규정들이 많이 있다.
도대체 이런 법규정은 왜 있는 거지, 하는 법규정이다.

그 규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건 법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규정 자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법경제학적으로 이런 규정들의 존재의의를 분석하며,
나 역시도 그러한 학문적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경제학적으로 분석해봐도 이런 해명들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반드시 경제적인 존재라고만 정의할 수도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은 정치적 존재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가? 그것도 사실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임대차의 최장존속기간을 20년으로 정하는 민법 제651조의 규정을 보자.
무주물선점, 유실물습득, 매장물발견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252조~제254조를 보자.
대체 이런 규정이 왜 있는가?
단순히 역사적인 이유때문에? 아니면 사회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아니면 인간존엄을 실현하기 위해서? 아니면 얄팍하게도 입법자의 결단때문에?

한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지 못해 고심해왔는데,
최근에는 이런 쪽으로 생각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물건이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그 원리.
그리고 만인만물이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시간 속에서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에 의해 관계를 맺고,
각자 열반의 성취를 향해 목적지향적 성숙과정을 밟아간다는 대전제.
거기에서 근원적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인격신의 역사적 경륜과
창조적 의지를 믿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만인과 만물이 절대자와 직접적 상관 없이 각자의 법칙에 따라
성숙 및 열반의 과정을 종말 없이 무한히 밟아나간다는 이 불교적 발상 자체가 난센스일 것이다.

반면에 그 어떤 목적지향성도 발전가능성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무상하기 그지 없는 것으로 바라보는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만인과 만물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소소한 집착이나 의지 등을 그것 자체로서 긍정하고
이를 한 칸 한 칸 발전시키며 목적의식적으로 승화시키려 한다는 프로테스탄트적 발상 자체가 억지스럽고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법(法)이란 것은,
절대신, 절대이성, 절대정신이 휙하고 휘두른 한 칼에 의해서 모든 것이 간단히 해명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때그때 입법자의 결단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과 모든 물건에 대하여
그의 정신, 그의 육체, 그의 본능, 그의 노력, 그의 정성, 그의 시간 등을 전부 생각하여
예의를 차리고 서로 아껴주며,
특히 인간은 주인됨, 권리의 주체가 됨을 지향하고,
물건은 주인에게 소속됨, 권리의 객체가 됨을 지향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위치가 서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이를 무상(無常)하다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 자체로서 긍정하고
그것이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른 길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그 정신을 삼는다.


요약하자면 육체의 원리, 물질의 원리에 대한 긍정.
다만 이것을 목적지향적으로 승화시킨다는 것, 그것이 법(法)이라는 얘기이다.

(예를 들자면 민법 제27조 이하에서 실종선고의 제도를 둔 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사람에 대해 미련 갖지 말고
산 사람들은 산 사람들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규정을 둔 것이다.
민법 제804조에서 약혼해제사유, 제840조에서 재판상이혼사유를 둔 것도
더 이상 약혼관계나 혼인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한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두 사람을 강제로 헤어지게 하여
각자 새 인연을 찾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아 그러한 규정을 둔 것이다.
민법 제536조에서 동시이행의 항변권제도를 둔 것은
인간이 떡을 먼저 받은 때와 아직 떡을 받지 않은 때 사이에
마음의 차이가 있음을 받아들여서 그러한 규정을 둔 것이다.
민법 제651조에서 임대차의 최장존속기간을 20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물건이 그 속성상 주인 곁을 너무 오래 떠나고 싶지 않아 하며,
만약 그 물건이 20년 이상 방치된다면 주인에게서 그 마음이 떠남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규정을 둔 것이다.
그리고 민법 제245조에서 점유취득시효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物各有主의 법칙에 따라 어떤 물건을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갑자기 종이쪼가리 하나 들고 와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물건을 오래 쓰고 있는 사람에게 대항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러한 규정을 둔 것이다.
민법 제252조에서 무주물선점, 제254조에서 매장물발견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유가 비슷하다.
모든 물건은 주인을 필요로 하고 진정한 주인에게 귀속되기를 갈망하는데,
주인 없는 물건은 어차피 사람들 눈에 띈 채로 살았으며 그저 주인 없는 것이 가장 서러웠기 때문에
자기를 먼저 발견한 사람보다 자기를 먼저 가져버리는 사람에게 귀속되려 하는 것이고,
매장돼있는 물건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서러웠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가지는 사람보다는 자기를 먼저 발견해주는 사람에게 귀속되려 한다고 보아서
그런 규정을 둔 것이라 보면 간단하다.
단순히 '인간존엄'이나 '사적 자치'나 '입법자의 결단'만 가지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원리들이 여러 법규정들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릴 적에는 나도 모든 것이 자본주의의 문제,
혹은 제국주의의 문제, 독재체제의 문제일 거라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그것이 인간 자체의 문제,
혹은 물건 자체의 문제, 그리고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일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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