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고통으로부터 평안과 자유가 주어지는 운명을 드디어 받아들이셨다.
돌아가신 직후에는 너무나 막막하고 실감이 나지 않아 슬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그 분의 모습이,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기억으로 뒤늦게 현현하기 시작한다. 원래가 그런 건가보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때는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보다.
인간이 참으로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을 아는 때는,
그 사람과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을 때,
그래서 그 사람을 추억하게 되었을 때인가보다. 그 사람이 어느덧 내 곁에 부재(不在)함으로써 존재(存在)하게 되었을 때.
할머니의 관 위에 국화꽃이 하나 둘 씩 놓이고,
영구차를 따라 할머니께서 색동치마 저고리를 입으시고
하이얀 길을 떠나시는 순간,
하늘에서는 회색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문득 김창완의 노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가 생각이 났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결코 나 한 사람의 것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생토록 온몸으로 증명하고 사시다 돌아가신 할머니.
그렇게 할머니께서는 겨울과 봄 사이의 그 좁고 어두운 틈을 지나, 찬 비에 젖은 몸으로 영영 홀로 먼 길을 떠나셨다.
할머니께서 가신 후, 할머니의 인생을 잔잔히 돌이켜보면서
그 분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비교해보다가 한 가지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인생이 정말로 형편 없고 일그러져 있으며
비겁한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불운한 삶을 사셨지만,
한번도 굴복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으셨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배신감을 안겨준 적이 없으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깨끗하고 당당한 승리자의 삶을 사셨다.
하지만 나의 삶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혼란함의 미학'과 '찌질함의 미학'을 얘기해대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할머니의 숭고한 삶 앞에서
단 한 마디도 그런 말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예민하셨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일관된 삶을 사셨던 할머니.
저는 할머니께서, 항상 저희들 곁에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음 세상에서 저희들은,
반드시 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할머니.
무심했던 저희들을 용서해주시고
이젠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게 쉬세요.
저희는 괜찮으니까, 저희 걱정일랑은 앞으로 절대 하지 마시고,
이젠 영원히, 평안과 자유를 얻으세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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