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네 권을 펴서 냈다. 내가 뭔가를 알아서 써낸 책은 아니고,
그냥 그 과정 자체가 발견의 연속과도 같았던 것을
대충대충 덩어리로 만들어서 내놓은 책이다.
책의 내용은 시종일관 뻔뻔하다.
"그래서 이게 다야?" 싶기도 하다.
학문적 완결성과 이론의 치밀성에 대해 내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었다면,
아마 이런 책들을 함부로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체념하고 무감각해지고
내 생각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쌓이지 못하는,
그러한 상태를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다.
그 이외에는 별 다른 제작의도도 없었다. '나도 이제 저서가 있다'는 사회적 과시를 하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혐오스러웠기 때문에
책을 아주 인디펜던트하게 만들었다. 메이저 출판사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인디펜던트하게.
(물론 아버지와 동생의 도움을 매우 많이 받긴 하였다.)
그리고 글 속에서 파격적으로
포장과 장식을 많이 했다. 쓸데 없이 했구나 싶을 정도로.
잘 나도 나이고 못 나도 나이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나 자신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도
너무나 자신만만한 일이 아닌가.
그러한 의미에서 글 전체적으로
대중적인 척을 굉장히 많이 했다. 물론 나 자신이 그다지
대중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걸을 알고서 치기를 부린 것이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 저서로, 나 자신이 제법 충분하다고 여기거나
내 학문에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것,
그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언제나 처음의 그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그 자세를.
다만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변화를 위한
작은 문을 열어젖혔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허영과 상투성, 두 악마가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책 네 권을 펴낸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이 두 가지 악덕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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