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請求)라는 단어에 대해서


청구(請求)란 무엇인가? 법적인 의미에서 청구는 특정한 상대방에 대하여 일정한 작위 또는 부작위의 요구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구(要求)를 한다는 것은 특정의 상대방에 대하여 강제적인 압박을 가한다는 뜻이고, 거기에 대해서 법이 이를 보장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만약 상대방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청구권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그 급부의 이행 내지 손해배상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은 따라서 싫든 좋든 그 요구에 응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어감과는 잘 맞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청구(請求)란 한자의 어의상으로 '부탁하고(請) 바란다(求)'는 의미이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해 강제력을 갖고서 압박을 한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나에게 청구를 한다고 하면, 나는 '그래. 내 담당이니까 나한테 청구했겠지. 그래. 까짓거 해주지. 물론 내 재량이고, 내 권한이고, 내 맘이긴 하지만...'하고 생각하기가 쉽다. '청구'란 말 속에 들어있는 '청한다' '부탁한다' '구한다'는 약한 뉘앙스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약 그 청구가 적법한 청구였는데 내가 그에 응하지 않았으면, 나는 재판을 받고 이행강제나 손해배상의 강제에 걸려들게 된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청하고 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명령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그런데 청구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행이 강제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먼저 청구가 적법한 청구여야 하고, 그 이행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행이 강제되지는 않는다. 법적 원인 없는 청구라면 배척될 것이고, 적법한 청구인데 이행이 불능하다면 손해배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청구를 했다는 이유로 체결되지 않았던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의제되는 경우가 있다. 일방의 청구권행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약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대차관계에서 부속물매수청구(민법 제646조)가 그렇다.

이 경우 청구권은 실질적으로 청구권이 아니라 형성권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청구권을 청구권으로 보나, 형성권으로 보나, 실질적인 결과는 같다. 이행이 가능하다면 이행이 강제될 것이고, 이행이 불가능하다면 손해배상이 강제될 것이다. 다만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약간 차이가 날 뿐이다. (청구권은 이미 있는 계약관계에서 청구권이 나오는 것이고, 형성권은 아직 없는 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갑자기 만들어서 거기에서 청구권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도품의 선의취득에서 도난피해자가 선의취득자에게 2년 이내에 도품의 반환청구를 하면서 지급한 대가를 배상하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민법 제251조). 이 경우 도품반환의 청구는 강제력이 있는가, 없는가? 당연히 강제력이 있다. 선의취득자는 싫든 좋든 도품을 반환해야 하고, 그 대신에 도난피해자에게 지급한 대가의 배상을 청구하여야 한다.

도난피해자 측에서 지급한 대가의 배상만 이루어진다면, 선의취득자는 도품의 반환을 거부하지 못한다. 만약 거부한다면, 반환의무의 이행이 강제되거나 손해배상이 강제된다.

물론 이는 '청구'란 말의 일상적 어의나 어감과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법적 효력은 일상적 어의나 어감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 정의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선택한 댓글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