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이행의 항변이 상계의 항변을 절단한다는 것에 관해서
서양사람들은 인간관계와 계약관계를 칼같이 이분(二分)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간관계와 계약관계를 그리 잘 구분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독일의 어느 보험회사에서 잠깐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 직원들이 퇴근시간 이후에 단 1분의 잔업도 하려 하지 않으며, 아무리 동료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도 계약상 자기가 맡은 일 이외의 잡무에는 전혀 손을 대려 하지 않고, 남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결코 충고나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 반면, 자기가 계약상 처리하겠다고 확언한 직무에 대해서는 아주 철두철미하게 달려들어 처리하는 것을 보고,
그 무자비한 행동방식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왜 그러한가?'하고 물어보면 그 답은 아주 뻔한 것으로서, '계약은 계약이니까...'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처럼 계약이란 게 개인간의 인간관계 속에서 일반적인 활동지침에 불과하며, 때에 따라서는 지켜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만약 이번에 지키지 못했다면 나중에 다른 걸로 갚아도 되는 것이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변경될 수도 있는 것이란 생각을 서양인들은 거의 갖지 않는다는 사실... 그런 칼같은 서구적 사고방식에 나도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적잖이 당혹하였다는 것이다.
민법학에서 동시이행의 항변을 통하여 상대방의 상계를 저지할 수 있다는 관념도, 그러한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지만, 서양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A가 B의 회사를 사들이면서 10억 원의 대금을 지불하기로 하였는데, 만약 그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회사의 인도만을 청구한다면, B는 그 전에 A로부터 5억 원의 돈을 빌린 적이 있다 하더라도, 10억 원 전체에 대해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서양인들의 생각인데,
이렇게 지난번의 계약관계와 이번의 계약관계를 하나의 인간관계 속에 용해시켜 한데 묶어 처리하지 않고, 양자를 별개의 계약관계로서 칼같이 구분하여 처리한다는 관념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저 계약은 저 계약이고, 이 계약은 이 계약이며, 그게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전자와 후자는 다른 맥락에서 성립한 이상, 양자를 명확히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번 계약에서 발생한 채무와 이번 계약에서 발생한 채무는 원칙적으로 별개의 견련관계에 놓여 있다. 지난번 계약에서 발생한 채무는 지난번 계약에서의 반대급부채무와 묶여 있는 것이고, 이번 계약에서 발생한 채무는 이번 계약에서의 반대급부채무와 묶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계약에서 발생한 채무가 이번 계약에서 발생한 반대급부채무와 동시이행의 견련관계에 묶여 있다면, 다른 계약에서 발생한 채무를 가지고서 그 견련관계를 풀어버릴 수는 없다고 본다.
(물론 매도인의 매매목적물인도의무만이 변제기에 도달하였고,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는 아직 변제기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매수인이 상계를 항변한다 하더라도, 매도인은 동시이행을 항변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이 경우 매도인은 상계를 저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대여금반환채무와 대금지급채무 모두가 쌍무계약상의 견련관계에 묶여 있지 않고, 각각 자유롭게 풀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 법원은 이에 대해 어떻게 판결을 내리고 있는가? 우리나라 판례도 독일 판례를 그대로 따라가는 이상, 동시이행의 항변권으로 상계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고 판시한다(大判 1975.10.21, 75다48). 다시 말해 상대방은 일방의 동시이행 항변권이 붙어있는 채권으로 (그것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 경우에 상계를 허용하면 동일한 쌍무계약 내에서 양 채무 간의 견련성이 상계에 의해 파괴될 것이라 보기 때문에, 상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수인에게 매매목적물의 인도를 거절하면서 매매대금의 지급과 매매목적물인도를 동시에 이행하자고 매도인이 항변하고 있는 경우, 매수인이 예전에 매도인에게 빌려준 돈과 매매대금을 그럼 상계해버리자고 항변한다면, 매도인은 그 상계의 항변보다 동시이행의 항변이 더 우선함을 매수인에게 주장함으로써, 상계의 항변을 배척할 수 있게 된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서양인들은 어쨌거나 그렇게 처리한다.
그리고 민법에서도 특히 채권법은 매우 국제적인 법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이 처리해버린다. 이게 물론 논리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겠지만, 법감정에는 맞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칼같이 절단해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긴 서구 자본주의사회의 법논리 가운데서 우리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 것이, 어디 이것 하나 뿐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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