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 주체로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자유라고 하는 것은 결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자유, 초인(超人)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유는 단지 소박한 범인(凡人)이 불확실한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관해 고통 받으며 책임질 수 있는 자유만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그 선택의 부정적 결과는 본인의 주의(注意), 정성과 노력에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 우연 또는 운(運)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법은 그러한 우연적 불이익에 대해 보상하지 않으며, 획일적 기준에 의해 어느 한 쪽이 그 모든 위험을 부담하게끔 한다. 예를 들면 채무자위험부담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537조가 그러하다.
실제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운에 의해 좌우된다. 어렸을 때의 사고 한번으로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고, 사소한 경영상의 판단착오 하나로 평생을 일구어온 사업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으며, 그렇게 주저 앉고 나면 많은 경우 재기(再起)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물론 패배자들은 잊혀지고, 승자들은 자기 성공의 모든 이유가 다 자기가 잘났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그렇게 자기 성공의 비결을 설파하는 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고비들을 넘겨 왔으며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에 대해 대체로 무심하거나 기억을 잘 안 하려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불공평들을 적극적으로 떠받쳐주고 정당화해주고 있는 민법상 위험부담의 법리는 필연적으로 그 정당성 자체에 많은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그 법리를 폐지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이라면, 그 모순의 크기만큼 자기 인생에서 성공을 자랑스러워 하는 인간들은 자기 성공에 대해 충분히 겸허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 http://s3.amazonaws.com/pixmac-preview/risiko-gluc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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