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동의 민주화혁명(?)에 대해서 나름대로 글을 좀 써보려고 하다가 신학기 준비에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결국 오늘에야 몇 자를 적을 수 있게 되었다. 튀니지발 '재스민 혁명'으로부터 촉발된 근자의 중동 민주화 도미노에 대해서 '수천년만의 전무후무한 사건'이라느니, '아랍 및 이슬람 역사의 대전환점'이라느니 하는 요란한 수식들이 붙고 있고, 이러한 반독재 민주화의 물결이 조만간 중국과 북한에까지 상륙하여 동북아의 정치지형이 변화할 것으로까지 예견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나는 이견을 좀 갖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겨우 이를 정리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나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중동의 최근 연쇄 소요사태는 이른바 '민주화혁명'이라거나 'SNS를 통한 이슬람주민의식의 근대화'라고 부르기에 많이 부족한 감이 있으며, 기껏해야 튀니지 정도나 그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내 나름의 결론이라고 하겠다.
2. 다른 데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튀니지는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튀지니란 나라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은 이미 옛날 로마와 카르타고가 전쟁하던 시절부터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농토가 많고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고, 리비아나 이집트 같은 나라와는 경제적 환경 자체가 많이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튀니지는 각종 제조업과 중소기업이 발달하여 산유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7,400불에 이를 만큼 경제가 상당히 발달한 축에 속한다. 가수 F.R. 데이비드,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 같은 사람이 유명한 것처럼 튀니지에는 프랑스보호령 시절부터 형성된 지식인층, 예술인층과 제법 두터운 중산층이 존재한다. 이들이 튀니지의 반독재 혁명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마디로 튀니지는 '이제 민주화를 할 만한 때가 되었다'는 말을 어느 정도 들을 만한 나라였으며, 이슬람교의 종교적 영향력 못지 않게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력 역시 이곳에서 매우 강했기 때문에 독재자 벤 알리를 타도하는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고, 이것이 안정적인 민주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꽤 높다고 본다.
3. 하지만 튀니지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서구의 문화적 영향력이 충분히 강하거나 경제적으로 중산층의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느냐 하면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전혀 아님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일단 리비아나 알제리는 석유 빼면 그냥 별것이 없는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권력자들이나 재벌가문들은 부유할지 몰라도 중산층이란 거의 존재하지를 않고, 이집트 역시 수에즈운하와 관광수입 빼면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산층이 거의 존재하지를 않는다.
이집트에서 무바라크의 독재정치가 종식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에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군부가 무바라크의 권력세습을 반대하였던 데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본다. 그리고 어차피 이집트는 민중들의 교육수준과 의식수준이 매우 낮고, 그에 비해 민주적인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갖춰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군부가 시민에게 추가적으로 줄 자유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바라크가 거꾸러진다 하더라도 서구식 민주화의 진전은 그닥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4. 바레인에서의 소요사태는 서구식 민주화혁명이라기보다는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종교분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수니파가 소수이면서도 바레인의 정치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니, 그에 대해 다수인 시아파가 불만을 품고 이란 등의 지원을 받아 친사우디의 수니파 권력에 도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론적으로 이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종파싸움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예멘은 원래 하나로 통일되어서는 안 되는 나라들이었지만 1차 대전 이후 서구열강이 멋대로 합쳐놓았던 북예멘과 남예멘이 다시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과정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리비아의 내전 역시 독재자 카다피에 대한 시민민주화혁명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지배부족인 카다피족에 대한 다른 다수 부족들의 독립투쟁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서리비아와 동리비아는 사막을 사이에 두고 800킬로미터나 떨어진 나라로서 부족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대단히 이질적인 나라들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열강들이 둘을 제멋대로 합쳐놓은 게 이제 와서 뒤늦게 탈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 뿐이다.
5. 어쨌든 바레인, 예멘, 리비아, 이집트 모두 독재자들을 몰아내거나 몰아내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 나라들의 민도가 워낙 낮고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민주화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게 내 판단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보수언론에서는 중동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이것은 정치혁명일 뿐만 아니라 사상혁명으로서 제3세계 권위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구조 전체를 뒤바꿔놓고 있다는 둥, 여기에 유태인 마이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이 기여한 바 크다는 둥, 북한도 곧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둥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바, 이러한 설레발은 별로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완전히 호도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6. 내가 보기에 중동지역에서는 서구식 민주화가 진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이슬람 과격파 원리주의자들의 힘과 군부의 힘이 더 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알 카에다는 이미 예멘에서 매우 강성한 세력이며, 이번의 리비아 내전을 통해서 뱅가지를 중심으로 한 동리비아 지역에 그 세력을 더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모슬렘형제단을 통해서 이집트에서의 정치적 발언권을 높일 것이며, 이는 이라크에서의 미군철수 및 오바마의 소극적 대외정책과 맞물려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더욱 궁지에 몰아넣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밖에 바레인의 소요로 수니파의 세력이 위축되면서 미국과 친하던 사우디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그 대신 시아파의 중심이며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의 영향력이 중동권 내에서 더 커질 것이라 예견된다. 이집트는 옛날 오스만투르크제국과 동맹했던 나라답게 군사대국 터키의 영향력 속으로 급격히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요즘같은 자원부족 및 경제위기시대에 중동의 석유를 미국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이슬람 원리주의세력과 터키 및 이집트의 군부가 러시아, 중국의 권력집단과 연대하며, 여기에 독일의 극우세력이 가세한다는 시나리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7. 우리나라 역시 더 이상 서구의 기독교제국, 특히 미국에만 다리를 걸칠 것이 아니라, 중동의 이슬람제국과도 매우 친하게 지내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이슬람채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경제계의 압력과 이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대에 mb정권이 갈팡질팡하며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 동남아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국내 이슬람교도들의 숫자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증대된 문화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이를 관용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것 역시 앞으로 쉽지 않게 될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 간의 갈등보다 더 골치 아픈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적 갈등이 유럽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본격화될 것이며, 최근의 중동소요사태는 이러한 갈등을 완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이러한 갈등을 더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8. 물론 나는 중동의 민주화를 매우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역사의 흐름은 결국 자유의 확대와 민주화의 진전에 있다고 믿으며, 세계의 근대화에 서구식 기독교윤리와 미국의 지도력이 기여한 바 매우 크다는 점을 십분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민주화나 자유화라는 게 현실적으로 언제나 그렇게 쉽지만은 않으며, 적어도 최근 중동의 움직임은 서구식 민주화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이슬람세력의 부흥 및 각성에 더 가깝다는 얘기를 냉정하게 하고 싶어서 위와 같은 글을 썼으니 진의를 헤아려줬으면 한다.
베를린에서 최근에 독일 대통령 Wolff 가 \" 이슬람도 독일 문화, 종교의 일부이다\" 이다 라고 했더니 CSU(기사당) 같은 데서는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독일지역의 종교가 되어 본 적이 없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하고 녹생당 같은데서는 진즉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러고 있답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 민주화는 시민들에게 자원분배 과정에서의 동의와 자발성, 투명성을 촉진시키는 환경의 조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노동자와 빈민들의 임금상승요구와 복지요구를 분출할 통로가 계속 차단되므로, 기업가나 경제관료들은 저임노동을 통한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손쉽게 돈 버는 것을 택하여 생산성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치 북한이나 옛 동구권의 예에서 보듯,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는 성장하긴커녕 오히려 퇴보하게 된다. 경제성장이 민주화의 요건이 아니라 민주화가 경제성장의 요건인 거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모범을 가장 먼저 이루어낸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서구적 모델을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역사적 맥락과 자체적인 모델을 갖고서 민주화를 추진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학혁명이나 4.19.의거, 유신반대투쟁, 인터넷을 통한 노무현돌풍 등이 그것이다.
1960년대 초에 박정희의 쿠데타만 아니었으면 보수야당 지도자들과 학생운동 지도자들의 힘만으로도 우리나라에 민주화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로써 경제도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튀니지뿐만 아니라 이집트, 리비아 또한 이름없는 수많은 시위참가자들의 역량만으로도 민주화가 충분히 가능하고 그로써 경제가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가 중산층을 만들어낸다. 이집트와 리비아의 시민들은 비록 학력과 경제력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맨주먹 하나만으로도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충분히 이루어낼 만한 정신적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엔 그렇게 두마리 토끼를 잡는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싶다. 옛날 중세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슬람세계가 기독교세계보다 훨씬 더 민주화된 세계가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도가 아닌 이슬람교도들이 종교적 평화와 사회적 진보를 주도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예를 들면 삼국시대 초기, 조선시대 초기, 대한민국 초기)를 보면, 항상 지배종교의 교체가 있어왔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종교적, 문화적 현실을 보면, 기독교가 지배종교의 자리에서 점차 내려 오면서 이슬람교에 의해 한반도에 또 다른 정신적 도약과 팽창이 이루어질, 과도기적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다 그렇고, 2011년은 그러한 대전환의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우리가 이슬람교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갖는 것도 물론 옳지 않지만, 이슬람교에 대해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대단히 위험하다. 서구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너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슬람은 내가 보기에 앞으로 더 많이 서구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이 지금보다 더 탈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서구의 모델을 계속 참고하고 그 장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이 이슬람세계의 민주화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현실 역시 직시해야 한다.
민주화는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를 위한 경제적 기반이 허물어지거나 군부의 영향력이 증대되면 그만큼 민주화도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소수의 대기업 위주로 경제구조가 재편되면서, 그리고 북한의 도발이 점점 잦아지면서, 시민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징후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물론 너의 견해에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이슬람에 대해 너무 성급한 기대를 갖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