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 Wilhelm von Humboldt
2012-08-01 15:55:03


오늘은 이런저런 자료를 뒤지다가 독일의 교육가인 Wilhelm von Humboldt(1767-1835)의 'Theorie der Bildung des Menschen'이라는 논문을 읽었고, 거기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개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 교육의 의미, 학문의 의미에 관하여 깊은 철학적 사유를 드러내는 문장들이었는데,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면도 물론 없지 않았으나, 우리나라의 교육 전반에 존재하는 문제점, 특히 교육자로서 이러한 모순적 현실을 극복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반성적으로 한번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명문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원문과 번역, 그리고 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주석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Im Mittelpunkt aller besonderen Arten der Tätigkeit nämlich steht der Mensch, der ohne alle, auf irgend etwas Einzelnes gerichtete Absicht, nur die Kräfte seiner Natur stärken und erhöhen, seinem Wesen Wert und Dauer verschaffen will. (모든 특별한 활동들의 중심에는, 그 어떤 개별적 의도도 없이 단지 그의 천성에서 나온 힘을 강화하고 향상하며, 자신의 존재에 가치와 지속성을 부여하려는 이른바 인간이라는 존재가 서있다.)" --> 이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이 없었으면 이 세상은 결코 특별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모든 활동들에는 인간의 적극적 활동들이 개재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인간이 그 천성 자체부터 자기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속성을 부여하게끔 만들어진 존재라는 데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기 삶이 가치 있는 삶이기를 바란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온갖 정성을 기울여 특별하고 기묘한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후대에도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 Daher [...] liegt es ihm nicht eigentlich an dem, was er von jener erwirbt, oder vermöge dieser außer sich hervorbringt, sondern nur an seiner inneren Verbesserung und Veredlung, oder wenigstens an der Befriedigung der inneren Unruhe, die ihn verzehrt. ([...] 따라서 [...] 인간에게 본디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인가를 얻거나 산출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의 내면을 더 좋게 만들고 더 고귀하게 만드는 것에 본래적인 관심사가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그 자신을 갉아먹는 내면적 불안을 가라앉히는 것에 그의 관심사가 있다.)" ---> 물론 모든 인간이 역사에 기억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고 성공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고단한 삶을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진다. 하지만 당대에 실패한 존재가 되고, 후대에 잊혀지는 존재가 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인간의 삶이 무의미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과 결과로 인간의 삶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소유를 획득하고, 특별한 업적을 쌓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인간이 얼마나 더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나 더 고귀한 인간이 되기 위해 애썼는가에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허무와 고독에 몸부림친다. 그 외로움과 공허함을 얼마나 극복했는가에 그 인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고,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가 그 인간의 삶에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Rein und in seiner Endabsicht betrachtet, ist sein Denken immer nur ein Versuch seines Geistes, vor sich selbst verständlich, sein Handeln ein Versuch seines Willens, in sich frei und unabhängig zu werden, seine ganze äußere Geschäftigkeit überhaupt aber nur ein Streben, nicht in sich müssig zu bleiben. (순수하게 그리고 그의 최종적인 목적을 고려해서 봤을 때,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스스로 이해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그 스스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 하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외적 활동은 자기 자신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로 머물게 하지 않기 위한 노력에 다름 아니다.)" ---> 인간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고 이 세상을 앎에 있는 것이다. 남이 알려주는 것을 단순히 맹목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그 핵심적 원리를 깨우쳐서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함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 욕망보다는 정신적 존엄과 자유를 추구하려 한다. 제 아무리 큰 권력과 부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꼭둑각시가 되거나 어릿광대가 되려 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뜻대로 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정의와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세계와 소통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일생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허수아비로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총칼로 위협하고 부와 권력으로 회유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오감의 만족이 아닌 정신적 의미를 위하여 행동하고 투쟁하려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Nur um der zerstreuenden und verwirrenden Vielheit zu entfliehen, sucht man Allheit; um sich nicht auf eine leere und unfruchtbare Weise ins Unendliche hin zu verlieren, bildet man einen, in jedem Punkt leicht übersehbaren Kreis;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잡다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공허하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인간은 모든 점에서 쉽게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원을 만들어낸다.)" ---> 인간이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사유가 너무 제각각이어서 뒤죽박죽이 되거나 서로 연결점을 찾지 못해, 도저히 하나로 엮을 수가 없고 서로 나눌 수도 없게 되는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각자의 지식과 사유를 하나로 엮을 수 있고, 서로 나눌 수 있는 하나의 동그라미를 그리려 한다. 그 동그라미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모든 것이 통해 있어야 하며, 누구나 간단히 일별하여 명쾌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끔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그 동그라미는 갈수록 커지고 그 내부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 외부를 경계짓고 그 내부를 정리해서 연결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작업을 반드시 해야만 하며, 각 개인의 유한한 생명과 능력으로는 이 작업을 결코 완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은 학문과 교육을 통하여 이 작업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과 학문은 인간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고귀하고도 정신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학문과 교육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松下道人
이번에도 KNura가 훔볼트인지 훔암페언지 무슨 되먹지 못한 독일사람 글을 갖다놓고서 자기 멋대로 번역한 다음에 개소리를 지껄여대고 있군요. ㅎㅎㅎ

뭐요? 인간은 자기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 ㅎㅎㅎ

그 가치를 부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면서 불쌍한 양민들을 사기쳐서 삥 뜯은 권력자, 지식인들의 숫자가 부지기수입니다. 가치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가치입니까? 그냥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살면 되지. ㅋㅋ


인간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의 허무를 극복하고 싶어 한다고요? 근데 그 방법이 오로지 학문과 교육에만 있는 거라구요?

아무리 지식이 많고 제자가 많고 역사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 자라 하더라도 그걸로 시간과 세월의 허무를 극복하지는 못하는 겁니다. 시간과 세월의 허무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따로 있지요. 그건 아이를 낳는 것, 그것도 가급적 많이 낳아서, 내 핏줄이 대대손손 이어지게 하는 것 그뿐입니다.

물론 애를 많이 낳는다고 해도 돈이 없고 힘이 없으면, 낳는 족족 남의 집 머슴살이나 하다가 죽거나 남의 봉 노릇이나 하다가 죽을 뿐이지요.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고 그냥 남의 손가락질이나 받다가 죽는다 이 말이예욧! (심지어 더 끔찍한 경우는 남의 먹을것이 되어 남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거입네다. 역사학자들이 제대로 다 안 밝혀서 그렇지, 옛날 큰가뭄이 나거나 해서 대흉년이 찾아오면, 인간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경우는 흔했고, 특히 힘없는 어린아이들은 그냥 어른들에게 산채로 잡아뜯겼습니다. 아이를 열둘을 낳아봤자, 그 많은 아이들을 지킬 힘이 하나도 없으면, 대흉년이 찾아왔을 때, 이웃들에게 순식간에 도축되고 열두 아이가 통째로 바베큐 구이가 되어 비적들 뱃속으로 들어가는 게 일도 아니었다 이거에요. 푸하하하하하하)

그러니까 아이만 많이 낳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이 많아야 하고 힘이 쎄야 하는 거에요. 그런데 학문과 교육은 그런 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아니합니다. 차라리 태껸이나 창검술을 익히는 게 낫고, 장사를 배우거나 권모술수를 연마하는 게 낫지, 학문과 교육은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에여.

아무리 지식이 많고 제자가 많고 역사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 자라 하더라도 아이가 없는 자는, 아이가 있다 하더라도 돈과 힘이 없어서 제대로 된 배우자와 결혼을 시킬 수 없는 자는, 노새와도 같고 라이거와도 같아서, 희망이 없는, 송장과도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 말이에욧!
2012-08-03
17:11:27




松下道人
학문이란 거... 본질이 뭐 그런 겁니다. 따분한 절간이나 수도원 안에서 왕고참 승려들이 따로 할 일은 없고, 그래도 꼴에 아랫것들한테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신은 뭔가' '신의 뜻은 뭔가' '정의는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우주는 무엇인가' 하고 노가리 까던 것을 아랫것들이 채찍으로 맞아가며 밤새워 받아적고 정리하고 해서 책으로 맹글어준 거로부터 비롯된 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나마 자연과학이라고 하면 실생활에 도움이 되니까, 특히 부자들의 삶을 더 안락하게 만들어주고, 전쟁에 나가서 더 많은 적병을 죽일 수 있게 해주니까, 그나마 쓸모가 있다고 할 것이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나부랑이 같은 것들은 전부 고상하고 어려운 단어를 줄창 써놓아서 그렇지, 사실 파 보면 전부 말장난이나 농담 따먹기에 불과한 거입니다.

옛날 승려들 가운데서도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고 능력 있는 부류들은 그런 학문인지 뭔지 그딴 짓 안 하고 절간이나 수도원 밖 여염집에 예쁘고 괜찮은 아가씨 꼬셔서 사생아를 낳아 후대를 노렸을 것입니다. 어떻든 자식은 낳아야 자기 핏줄을 살릴 수 있을테니까요. ㅎㅎ

그러니까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한가한 질문이나 할 겨를이 없다 이거입니다.

부와 권력을 만들어낼 재주가 잼병이고 세파에 부대끼며 투쟁할 만한 능력이나 용기도 없는 것들이 꼭 절간이나 수도원 같은 데 숨어들어 '내 인생은 뭔가' 하고 돌아보면서 엉뚱한 짓들을 해 대기 시작하는 거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의미나 가치 같은 게 어디 있습네까?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고, 본능대로 먹고 자고 섹스하고 번식하는 거에 불과하며, 공짜로 살아갈 수 없으니 힘들게 일하고 공부하고 하는 거이지, 일이 좋아서 일하는 사람, 공부가 좋아서 공부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이거입니다.

구케으원들도 할 수만 있다면 지겨운 의사당에서 의미없는 정쟁이나 남발할 게 아니라, 업자들 데리고 골프나 치면서 유유자적하는 걸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의사당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재선이나 더 높은 목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힘있는 구케으원들도 그럴 지인데, 보통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나마 그 직장이 돈이 되기 때문에, 혹은 출세하기 위하여, 일하기 싫지만 하는 거입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네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나마 대학교가 그런 찌질이들에게 월급도 주고 수당도 주고 하기 때문에, 하기 싫어 죽겠지만 짤리기 싫고 자식들 굶기기 싫어서 강의도 하고 논문도 쓰고 그러는 겁네다.

인간이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면 인생의 의미나 가치를 논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인생의 의미나 인간의 가치란 없기 때문입니다. 없는 의미나 가치를 괜히 찾으려는 거는, 날개 없는 짐승이 날개를 달고 날아 보려고 절벽에서 점프하는 것과 같다 이거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
2012-08-03
17:29:50




松下道人
지금은 그나마 세상이 좋아져서 학자, 교육자 이런 것들이 인간대접을 받지, 불과 몇 백년 전만 하더라도 학자, 교육자 이런 것들은 인간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것들이었습니다.

권력과 돈을 갖고 있는 통치계급들은 뭐 언제나 피지배계급들을 현혹하기 위해 구라와 말장난을 잘 칠 수 있는 전문나팔수들을 필요로 했지요. 이런 건 고대국가 시절엔 제사장, 중세엔 승려나 사제집단들이 이런 일을 담당했습니다. 기런데,

이런 제사장이나 승려, 수도승들은 결혼하지 못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얼굴마담들이 말빨로 인기를 끌어모으면 주인들한테 개길 수 있으니, 그런 것들에게 명예라는 개뼉다귀는 던져주되, 자손을 남길 권리는 박탈한다 이것이었지요. ㅎㅎ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버로우된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건지는 일단 싸움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귀족이나 부르주아계급들은 자손, 특히 아들들이 많아서 패밀리로 덤벼드는데, 종교계급에게는 패밀리가 없으니 확실히 믿을 자가 없고 그러니 권력싸움에서 상대가 되지 아니하엿습니다.

그리하여 종교계급들은 대부분 세속권력자들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밟혔지요. 어차피 자손 없이 버로우 될 운명이니, 세속권력자들에게 일단 기싸움에서부터 밀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건 근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로서...

옛날 악스포드나 캠브리지 대학의 경우 교수들은 결혼하지 못한다는 불문률이 있었고, 빠리대학이나 이태리대학들도 대부분의 교수들이 신부들이었으므로 그냥 다 고자새끼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근대 지성사를 장식한 대부분의 교수들이 독신이었다는 사실로 간단히 확인될 수 있는 거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 (영국의 경우 로크, 홉스, 애덤 스미스, 데이빗 흄, 아이작 뉴턴이 다 독신이고, 프랑스의 경우 파스칼, 데카르트, 루소, 볼테르, 독일의 경우 라이프니쯔, 칸트, 니췌, 비트겐슈타인... 뭐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ㅎㅎ)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요. 그래서 학자, 교육자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는데, 그만큼 대학교도 그냥 다 세속화가 되었다고 보면 될 거입니다. 요즘 학계는 그냥 세상에서 제일로 더러운 곳이고, 정치판도 세상에 그런 더러운 정치판이 있을 수 없지요.

요즘 대학교에서 교수를 해먹는 넘들도 다들 학문적 능력이 있어서 교수를 해먹는 게 아니라 정치를 잘 해서 교수를 해먹는 거고, 정치를 못하는 넘들은 학교에서 짤리거나 왕따신세를 못 면한다고 보면 백퍼센트 정확할 거입네다.


제가 보기에 KNura가 제자들에게 "나를 본받으라~"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학문에 헌신하고, 교육에 충실하고, 이런 것이 저얼대 아닙니다.

그보다 KNura는 제자들에게 남들이 한쪽 방향으로 쏠려가는 동안 틈새를 보고 남들이 파고들지 않는 곳에 몰빵을 하는 본인의 음험한 재주를 본받으라고 해야 더 말이 될 거입니다. 푸하하하하하

옛날 일본 전국시대에 센노리큐(千利休)는 대부분의 똑똑한 친구들이 다들 무예만 단련하고 병서만 탐독하는 동안, 전혀 엉뚱하게 다도(茶道)를 공부해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똑똑한 애들이 영주들의 가신이나 무장으로 들어가 전장에서 부대끼며 그곳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죽고 도태되는 동안, 센노리큐가 몸담은 다도계에서는 똑똑한 애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경쟁도 별로 치열하지 않았으며 칼과 활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센노리큐는 비교적 쉽게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띌 수 있었던 것이지요. ㅎㅎㅎ

그리고 그때는 시절이 워낙 살벌하던 시절이라, 피에 물들어 짐승처럼 살아가던 무사들에게 뭔가 정신적인 것이 필요하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센노리큐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무라이들에게 다도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를 주었고 그 무식한 것들이 '문화인' 이라고 스스로를 착각할 수 있게끔 절묘하게 구라를 잘 풀었습니다. 그렇게 약을 팔아댄 결과, 본인의 희소가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결국엔 귀족까지 되었다는 건데, 만약 센노리큐가 칼을 쥐고서 병서를 연구했다면 그만큼 시대를 잘 타긴 어려웠겠지요.

그로 인하여 결국 히데요시가 발끈하자 자살까지 하게 되지만, 아직도 센노리큐의 자손들은 세 갈래로 갈라져 일본에서 계속 다도를 가르치며 귀족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동기들이 대부분 현장으로 쏠려 박터지게 경쟁하고 고생 직싸리 할 동안, 학문의 길을 파고든다 어쩌구 하면서 비교적 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좋은 직장을 잡은 데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KNura의 음험한 재주에 비견될 만하다 하겠습니다. 제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푸하하하하하하하
2012-08-03
17:54:02




랑이아빠
센노리큐가 다도를 공부한 것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그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술을 배울 것인가, 다도를 배울 것인가 고민할 정도로 다도는 이미 일본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도계에 똑똑한 애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경쟁도 별로 치열하지 않았다는 너의 얘기 또한 사실과 전혀 다르다. 센노리큐의 스승인 기타무키 도찐의 휘하에만 해도 얼마나 많은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센노리큐가 두각을 나타내는 게 쉬웠겠느냐? 정식으로 일본 역사서를 읽기 싫다면 최소한 일본 역사만화 '효게모노' 같은 거라도 좀 들춰보기 바라겠다.
2012-08-05
00:39:48




eccentricer
효게모노는 저도 읽어봤는데, 그 만화를 봐도 그 당시 다도를 공부한다는 것은 좀 기이한 진로에 속한 것이 맞았습니다. 무사집안의 자식이라면 당연히 무술을, 장삿꾼 집안의 자식이라면 당연히 장사를 배워야 했고, 다도를 공부하는 사람의 숫자는 정말 극소수였다는 거죠. 센노리큐는 장삿꾼 집안의 자식이었는데 난데없이 중이 된다고 했다가 또 갑자기 다도를 배웠으니, 당시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진로를 잡은 게 맞긴 했습니다. 법대출신으로 고시를 보지 않고 특이하게도 독일유학을 떠났던 주인장님과 충분히 비견할만하다는 거죠. 그리고 주인장님 말씀대로 정신의 힘이 그렇게나 위대하다면, 센노리큐가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그렇게 찍소리도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그것부터 좀 설명을 해보셔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도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약한 사람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2012-08-12
00: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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