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4 19:09:33
김기덕이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탔다. 예전부터 그의 영화인생에 대해 아주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렇게 큰 상을 드디어 받았다니 정말로 기쁘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영화 'Avatar'에서 'Toruk Makto'의 지위에까지 올라선 Jake의 모습을 본 듯했달까? 언제나 비주류로 떠돌면서 경멸과 비난, 그리고 소외와 오해에 시달리던 그가 이제야 그 묵은 한(恨)을 풀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장에서 그가 '아리랑'이란 노래를 부른 것도 그동안 그에게 맺힌 한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그간 김기덕에 대해서는 많은 악평과 비난이 쏟아졌었다. 적어도 국내에서 김기덕은 그가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해서 너무 적은 칭찬만을 받고 살아왔었다. 해외의 영화인들에게서는 그토록 크게 인정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그와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동포들에게서, 그는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대접을 받지 못해왔었다. 국내의 기자와 평론가들은 그의 영화를 인정사정 없이 폄훼하고 모독해댔다. 심지어는 그의 심리적 결함이나 정신적 이상 여부까지 분석해가며 그의 인간성 자체를 비하하고 난도질해댔다. 대부분은 그를 열등의식이나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정신병자나 인격장애자 정도로 취급하였고 그렇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버렸다. 흥행업자들과 관객들도 다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를 줄곧 외면하고 무시해온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나치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규범화해서 하나의 체계 속에 집어넣고, 모든 이들이 그 안에 무릎 꿇고 들어와 편입되고 맞춰가기를 요구하는 '동일성("쟤는 왜 저렇게 혼자 나대?")의 문화'가 매우 강한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기덕처럼 파격과 일탈을 즐기고 개성이 강한 사람은 집중표적이 되기가 쉽다. 정치의 세계는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 치더라도 예술의 세계는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예술의 세계도 똑같이 그러하다. 줄 잘 못 서고, 패거리에 잘 못 끼고, 손 비비는 것도 잘 못하면, 무작정 남 따라하는 거라도 잘 하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면 최소한 힘있는 사람의 입맛이라도 맞춰야 살아남을 것이라는 심리적 강제가 강하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만다.
이러니 다들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데 힘쓰지 않고, 남이 이미 이룩해놓은 것을 달달 외우든가 베끼면서 남 꽁무니 따라다니는 데만 시간을 낭비한다. 모든 것을 골고루 다 잘 해야 하고, 사회 전반의 선입관과 편견에는 결코 도전하지 않으면서, 뭔가 훈훈하고 모범적이고 관습적이면서 전형적인 것을 창출해내야 한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다.
김기덕의 성공은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공방식이 해외에서는 통할 수 없고, 우물 바깥에서는 보편적인 인정을 받기 어려울 것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국내의 기득권자들에게 그의 성공은 더욱 더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그의 성공은 우리에게 더욱 더 큰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다.
김기덕 영화의 핵심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들이 나와있다. 보속(補贖: Satisfactio)과 용서(容恕: Venia)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삶의 우연성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탈출과 초월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선악이분법의 극복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다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내가 그런 것을 다 해낼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김기덕 영화의 핵심은, 인간의 뇌리에 원초적으로 각인된, 보편적 금기 너머의 아주 오래 된, 무질서적 자연성의 세계 내지 초월적 절대미(絶對美)로의 회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문명사회의 확립된 체계질서가 요구하는 항상성(恒常性)의 안락함에 대립하는, 강렬하고도 황홀한 극치적 찰나에의 동경과 그 내적 체험으로의 회귀를 거의 성스러운 제의(祭儀)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하는 데 핵심적 주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김기덕 영화의 기본전략은 이성과 노동에 기반한, 윤리적으로 존엄한 인간형(人間型)의 집요한 해체에 있으며, 성행위장면, 강간장면, 매춘장면, 살인장면이나 대변배설장면의 리얼한 묘사 및 긍정적 형상화로 대표되는 합리성파괴와 윤리성파괴의 시도, 그리고 인간이 갖는 원초적 동물성 및 잔인성의 반복적 강조와 그를 통한 해탈 내지 구원의 가능성 제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들은 부지런히 노동하고(이를 바꿔 말하자면 자연과 성실하게 투쟁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고(이를 바꿔 말하자면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성실하게 심화/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차근차근 재부와 지식을 축적하여 그를 기반으로 더욱 안락하고 여유롭고 풍족한 상태를 확보하고 지속해야 하는 것처럼,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교육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모든 이성적 의지를 초월하여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고 동물적 섹스의 유희에 탐닉하며 광적인 음주가무나 배고픈 예술의 세계에 빠져들거나 싸움을 위한 싸움에 뛰어들어 잔인한 폭력(가학/피학) 또는 성적 합일의 극치적 쾌감을 위해 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 인간은 아주 짧은 한 순간이라도 삶의 분출을 느낌과 동시에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강렬한 황홀경의 체험 내지 인생의 실존적 선택을 항상 원하고 있으며, 어쩌면 거기에 우리 인생의 거룩하고도 성스러운 진실이 있을 수 있음을 김기덕은 그의 영화 속에서 우리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조흐쥬 바따이으 역시 다음과 같이 얘기한 바가 있다:
"Ce que révélait la violence extérieure du sacrifice était la violence intérieure de l'être aperçue sous le jour de l'effusion du sang et du jaillissement des organes. Ce sang, ces organes plein de vie, n'étaient pas ce qu'y voit l'anatomie : seule une expérience intérieure, non la science pourrait restituer le sentiment des Anciens. Nous pouvons présumer qu'alors apparaissait la pléthore des organes gonflés de sang, la pléthore impersonnelle de la vie. A l'être individuel, discontinu, de l'animal avait succédé, dans la mort de l'animal, la continuité organique de la vie, que le repas sacré enchaîne dans la vie communielle de l'assistance. Un relent de bestialité subsistait dans cette déglutition liée à un jaillissement de vie charnelle, et au silence de la mort. Nous ne mangeons plus que des viandes préparées, inanimées, abstraites du grouillement organique où elles apparurent d'abord. Le sacrifice liait le fait de manger à la vérité de la vie révélée dans la mort. (제사가 외적 폭력인 것과 마찬가지로, 피의 흘림과 성기의 팽창으로 나타나는 애정행위는 내적 폭력에 해당한다. 그 피, 그 넘치는 생명력은 해부실에서 보이는 그것과는 다르다. 오로지 내적 체험만이 이러한 고대인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으며, 과학은 이러한 감정을 되살릴 수 없다. 제물을 바치는 중에는 피가 솟구칠 듯이 성기가 팽창하며, 비인격적인 생명력이 솟구쳐 오른다. 개별적이고 불연속적인 몸뚱이의 동물이 죽으면 성체배령식이 행해지는데, 참관자들은 그 의식을 통해 생명의 유기적 연속성을 부여받는다. 영성체를 삼킬 때 나는 냄새는 육체 내에서 삶의 분출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죽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보통 고기가 처음 나타났을 때 이를 단순히 따로 떼어 양념과 요리를 한 후에 먹을 뿐이다. 그러나 이 영성체 의식은 죽음 속의 생명이라는 진실을 드러내는 의식이었다.)
C'est généralement le fait du sacrifice d'accorder la vie et la mort, de donner à la mort le rejaillissement de la vie, à la vie la lourdeur, le vertige et l'ouverture de la mort. C'est la vie mêlée à la mort, mais en lui, dans le même moment, la mort est signe de vie, ouverture à l'illimité. Aujourd'hui, le sacrifice sort du champ de notre expérience : nous devons substituer l'imagination à la pratique. Mais si le sacrifice lui-même et sa signification religieuse nous échappent, nous ne pouvons ignorer la réaction liée aux éléments du spectacle qu'il offrait : c'est la nausée. (제사의식은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끼게 하며, 죽음에서는 삶의 분출을 느끼게 하고, 삶에서는 죽음의 무게, 죽음이 주는 현기증과 죽음의 서곡을 느끼게 한다. 삶은 죽음과 뒤섞여 있으며, 죽음은 삶의 표징이자 무한에로의 열림이 된다. 오늘날 이러한 제사의식은 우리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상상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사의 의미와 그것이 지니는 종교적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광경이 주는 혐오감마저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역겨움이다.)" - Georges Bataille, L'érotisme, 1957, p. 101.
그렇다. 조흐쥬 바따이으도 명확히 지적한 바와 같이, 김기덕의 작품세계는 이처럼 철저히 역겨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기덕은 이러한 역겨움을 끊임없이 보속(補贖: Satisfactio) 및 용서(容恕: venia)라는 주제와 연결시킨다. 창녀에게 수녀의 복장을 입히기도 하고, 살인자를 산꼭대기의 부처님처럼 보이게도 만들며, 악덕 사채업자를 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로 보이게도 만든다. 그런데 이에 관해 거부감을 표시하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즉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김기덕이 국졸의 학력이라 하여, 대개 그를 아주 무식한 사람일 것으로 지레짐작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각종 일간지 또는 영화주간지와 인터뷰를 한다든가 할 때 그가 사용하는 언어들은, 국내외 어디에서 하는 인터뷰이든, 대단히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언어들임에 누구나 놀라게 된다. 예를 들면 "언어로 위장되고 구조화된 약속들이 지켜진 적은 없다" "내 영화들은 비판하지 않는다(Meine Filme kritisieren nicht)" "잔인성과 아름다움은 내적인 연관성 속에 위치한다(Brutalität und Schönheit stehen in einem inneren Zusammenhang)"는 말 등이 그러하다.
그러던 차에, 이번의 수상으로 그동안 그를 무시해오던 국내의 관객과 평론가들이 제대로 한방 먹은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후련하고도 통쾌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번의 수상작 '피에타'는 나도 아직 보지 못한 상태이지만, 조만간 '피에타'라는 영화를 보고나면 그에 관해서도 몇마디 글을 써볼까 생각중이다.
https://livrariapiggle.dwwe.com.br/produto/lerotism-georges-bataille.html
22:20:22

14:31:44

그 이상은 더 말하고 싶지도 않네요... ㅠ
17:37:52

참.. 글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27

maria님께/ 저의 보잘것없는 글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4:26:57

요즘 아무리 민주화된 인터넷세상이라고 그러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미래가 있는, 존경받는 나라가 되려면, 학문을 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그 명예를 존중해줘야 하는 겁니다.
더구나 주인장님께서는 대학교수이신데, 이렇게 중책을 맡고 계신 분께 다들 무슨 어린애 취급하고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는 걸 보면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진짜 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통섭을 지향하고 대중들에게 학문적 토론의 문호를 개방하고 널리 학문을 전파하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분께 이렇게 욕을 퍼붓는 나라가 도대체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냐 이 말입니다.
주인장님께서 대학교수이시면 옛날 조선시대의 사성(司成) 벼슬(종3품?)에 해당하는 거고, 그런 직위에 있는 분께서 홈페이지를 운영하신다면 여긴 조선시대의 신문고 앞마당이나 공개강학소 앞마당에 해당하는 곳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엄숙한 곳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상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뭐가 되겠어요? 옛날로 치면 곤장을 수십 대씩 맞고도 남을 짓들을 하시는 겁니다. 맨날 주인장님께만 잘못했다고 뭐라 하시지 말고, 여러분들께서 지금 얼마나 우리나라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계시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이 홈페이지 주인장님(사실 이 호칭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교수님이라고 불러드려야죠. 이것도 엄연히 공직명칭인데, 우리나라에서든 어디에서든 엄연히 관직을 갖고 계신 분들께 공공장소에서 그 관직명칭을 안 불러드리면 그건 엄청난 실례죠)께서 몸소 권위주의를 버리시고 모든 네티즌들에게 편안하고 격의없이 대하시니까 다들 그걸 이용해서 아주 작정을 하고 모두 상스러운 짓들을 하고 계시는데요.
정말 신사숙녀로서의 기본예절들도 안 갖추신 거 같습니다. 다들 나이깨나 드신 분들 같은데, 여러분들 아들딸도 그런 식으로 상스럽게 키우실 겁니까? 여러분들께서 부모로서 상스러운 행동을 하면 자식들도 그걸 그대로 따라서 본받게 되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들 그런 행동이 자식들에게 하나도 안 갈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께서 이런 짓들을 자꾸 하시면, 여러분들의 자식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의전(儀典)'이나 예절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모르는 아이들로 무식하게 커가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 자식들이 그런 꼴로 크기를 바라십니까? 예의도 범절도 상관없이 그냥 무조건 돈만 잘 벌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발 여기는 다시 오지 말아주세요. 돈 버는 사이트, 스트레쓰 푸는 사이트나 기웃거리시고 이런 깨끗한 홈페이지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나라의 학문적 미래가 무너지고, 여러분들 집안에 깨끗한 면학과 예절의 기운대신에 더러운 무례와 범죄의 기운만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웬만하면 가만히 참고 있으려고 그랬는데, 도대체 몇년이 지나도록 무례한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이렇게 대중들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하며 아무런 대가 없이 노력하시는 분께 다들 감사해 하긴커녕 오히려 돌을 던지고 분탕질을 치는 것 같애서 우리나라 인터넷문화의 발전을 위해 저도 작심을 하고 나섰습니다.
22:00:58

하여튼 春龍님 댓글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상념이 스치네요. 김기덕 감독이 개싸이코라고 하셨는데,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도 궁금하구요. (뭐 기준 같은 거 없이 말씀하시는 분 같긴 합니다만... ㅋ)
그 다음 문장은 김기덕 감독이 성폭행 연쇄살인을 찬미했다는 얘기신지, 하아....
다른 분들은 제쳐놓고 제 개인적 의견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김기덕 감독 영화를 보며 걍 "이런 일도 세상에 있다"는 얘기로만 받아들였는데요.
그렇다면 春龍님께서는 갱영화나 느와르영화의 예술성도 인정 안 하신다는 얘긴 건지...
가령 어떤 영화관객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고서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칭찬을 하면, 그 분은 내 자식들이 근친상간을 해도 좋다는 얘기를 한 것이 되는 건지......
김치독님은 여성들이 김기덕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이 홈페이지 주인장님께서 김기덕 영화를 칭찬하시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면 어떻게 반박하실 건지......
'모나리자' 같은 그림 보면서 어떤 사람이 "난 저 그림 속의 여자가 눈썹이 없어서 싫어!"라고 한다면 물론 그 사람이 싫어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는 거지만, 그건 생각이 짧은 사람의 언행인 게 사실 맞는 말이죠.
법대 교수라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해야 되는가?
여대 교수라면 모든 여성들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해야 되는가?
김치독님은 주인장님의 작문능력과 사고능력이 수준이하라고 하셨는데, 뭐 근거도 뭣도 없고......
제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이 홈페이지 주인장님의 문장력은 대학교수님들 가운데서도 거의 특A급에 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_-
14:20:09

이런 영화를 대단한 예술영화인 것처럼 칭찬하는 주인장님의 의도가 순진한 선의가 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뒤틀린 의식에 있다는 것을 다들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에요. 주인장님의 윗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분노하는 것에 완벽히 공감하고 있는 대다수 여성 네티즌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아예 귀를 닫고 있다는 점에서 주인장님의 가증스러운 본성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여성의 절대다수가 김기덕의 영화를 증오하고 이번 수상에 대해서도 다들 하나같이 어이없어 하는데, 그 이유가 주인장님 말대로 단지 생각이 짧아서가 아님을 아는 건 저 한 사람뿐만이 아닐 거에요.
주인장님은 21세기초 대한민국사회에서 지나친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로 인해 시민들의 심성이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를 말하시는군요. 근데, 심성이 왜곡되고 있는 것은 김기덕과 그를 옹호하는 꼴통마초들(주인장님 포함)일 뿐입니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가 아무리 대한민국땅을 휩쓸어도 그로 인해 여성들의 심성이 왜곡되지는 않았다는 거에요, 전혀.
하류계급 남성들은 자기들이 누구에게 착취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적은 상류계급 남성들이고 그들에게 복수해야 하는데, 자기들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는 상류계급 남성들에게는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종로에서 맞은 뺨 한강에서 분풀이하듯이' 만만한 상류계급 여성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함으로써 앙갚음을 하는 게 이른바 대한민국 하류계급 남성들의 왜곡된 심성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실업자가 됐으면 자기를 실업자로 만든 남성 자본가계급에 무기를 조준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화살을 돌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과 명문대학을 다니는 여성들과 상류층 여성들에게 죄를 덮어 씌우며, 어쩌면 자기들보다 훨씬 더 착취당하고 차별받고 있는 이 여성들을 강간하거나 살해하거나 창녀로 만드는 상상을 하면서 변태적 쾌감을 느끼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억눌린 콤플렉스.....
이걸 누구보다도 반기는 것이 바로 상류계급 남성들인 건 당연한 이치지요. 이건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현상이기 때문에, 김기덕 영화가 서구 남성 평론가들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유통업자들로부터 그렇게 높이 평가받고, 상도 받고 그러는 거에요. 하지만, 그 진정한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죠. 특히 여성 관객들과 여성 평론가들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김기덕 영화가 파리를 날릴 수 있게 했던 건, 우리나라 영화계에 진보적인 성향의 여성평론가들과 여성제작자들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영화계에 여성들의 파워가 유난히 더 강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관객들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건 잘 알고 계시죠? 우리 대한민국 여성들이 세계최고수준의 당참과 똑똑함을 갖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도 무슨 세계 3대 영화제 대상수상이니 뭐니 하며, 선진국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이렇게 알아주는데 김기덕을 왜 욕하냐고 마초들이 떠들어대는 것은 한마디로 개짖는 소리에 불과한 겁니다. 무식한 마초들이 그러면 그런갑다 하고 무시하면 되는데, 소위 명문여대 교수인 숙명여대 교수라는 인간이 김기덕 영화를 찬양하는 망발을 늘어놓으니까 다들 이렇게 열받아서 난리가 난 거에요. 이 글이 왜 수백군데의 사이트에 링크되었는지는 알기나 하시나요? 春龍님과 김치독님의 글을 갖고 악플이니 뭐니 하는데, 저는 대체 그 댓글이 왜 악플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그 누구보다도 속 후련한 말씀을 써주셨던데...
저는 주인장 같은 마초교수한테 숙대생들이 사임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이해가 안 갑니다. 주인장이 여대 교수이면서 감히 김기덕 같은 쓰레기 마초를 찬양했는데도, 겨우 이것밖에 욕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저는 정말 이해가 잘 안 가더군요....
15:25:12

어쨌든 님께서 "김기덕 영화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가학적 폭력빼곤 남는 게 없다는 게 상식 아닌가요?"라고 하신 말부터 저를 정말 스팀 받게 하더군요. 어쩌다 그 지경이 되셨는지... 이 세상 그 어떤 사회적 대립갈등구도보다도 여성과 남성의 대립구도가 더 우선하는 것으로만 이 세상을 바라보시고, 이런 자기 신념에 반하면 그게 예술작품이든 학문적 분석이든 극단적이고 살벌한 언어로 매도해버리시던데, 도대체 이 세상을 왜 그렇게 편협하게 사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물론 제 말에 단 1%도 동의를 못하시겠죠? 저도 님을 설득할 생각일랑은 포기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네요. -_-;
21:31:16

페미니스트들에게 매우 칭찬받는 여성주의적 영화들, 예를 들면 '안토니아스 라인' 같은 영화를 보면 여자의 나신은 영화 정면의 중심에 놓여도 남자의 나신이 영화 정면의 중심에 놓이지는 않던데... 여자가 강간당하는 장면은 나와도 남자가 강간당하는 장면은 안 나오던데... 그러면 '안토니아스 라인' 같은 유명한 페미니즘 영화도 쓰레기영화가 되는 건가요?
Betty님의 기준에 따르면 이 세상에 최고로 좋은 영화는 권선징악의 이념을 아주 확실하게 전파하는 미국 헐리웃영화가 되겠네요. 절대로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마초 액션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그런 거... -_-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거에요!"라는 님의 명제에 가장 충실한 영화는 바로 그런 중딩 수준의 영화들일 것 같은데요... -_-
15:12:20

김기덕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주인장님께서는 평론가들의 조직적 왕따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유럽처럼 사회복지가 그나마 좀 잘 돼있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더 잘 돼있는 나라에서는 사회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면의식 같은 것보다 약간은 몽환적이고 형이상학인 분위기의 영화가 좀 더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하지요. 그들에겐 사회현실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치열한 문제가 아닐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현실은 별로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살벌한 현실에서는 일단 리얼리즘이 바탕이 된 영화가 아니면 관객들의 사랑을 받기가 어렵고 공감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김기덕 영화를 보면서 왜 이렇게 영화가 붕~ 떠 있지 하는 느낌을 항상 받습니다.
김기덕 영화 같은 영화도 물론 좋은 영화일 수는 있겠지요. 암튼, 서구의 영화평론가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무작정 김기덕 영화를 몰라주는 우리 관객과 평론가들을 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사대주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5: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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