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 이슬람 정육점
2017-10-07 04:39:58

손홍규의 2010년작 '이슬람 정육점'을 이제야 읽었다. 줄거리 전개가 느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 자기 주변인물들의 과거 기억과 상처를 파고들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인공의 잡상으로 얘기가 흘러가는 소설이었다. 예전에 부르디외의 책에서인가, 중세인들은 사건에 무관심했고 오히려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관심이 많았던 반면, 근현대인들은 오로지 긴박감 넘치는 사건에만 열광하며 스포츠, 드라마 등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반전의 묘미만 즐기려 한다는 구절을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한 점에서 시종일관 사건의 극적 전개에 무관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의미만을 천착하는 이 책은, 지독히 반근대적인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싶었다. (일단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부터가 근대의 전형적 인물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느 고아 소년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몸에는 끔찍한 흉터가 잔뜩 나있는 아이이다. 고아원 원장과 그 부인은 이러한 소년을 보고 낄낄거린다. "애가 얼마나 극성스러웠으면 부모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했을까." "이 정도 흉터면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당연히 소년은 고아원에서 문제아였다.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학교를 워낙 혐오했기 때문에(그러한 혐오가 단순한 저항심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온다는 점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을 훨씬 능가할 정도임), 매일 열한시마다 이승복 동상의 팔을 떼어버린다든가 화단에 오줌을 눈다는 등의 기행을 저질러 학교에서 쫓겨난다. 어느날 고아원 원장의 반지가 도둑을 맞아서 원장이 모든 원생들에게 단체기합을 내리자 소년은 자기가 훔쳤다고 거짓말을 하여 가혹한 체벌을 받기 직전에 이른다. 그때 어느 터키인이 고아원에 갑자기 나타나서 소년을 입양해간다.

터키인은 이름이 '하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그대로 눌러살게 된 남자였다. 그는 이슬람 교도이면서도 어느 가난한 동네 (미로처럼 골목이 갈라지고 이어진, 낡고 후락한 산동네)에서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족도 친척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고 가진 것도 거의 없으며,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한국인들에게 차별과 공포의 대상이 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왜 이 낯선 땅을 떠나지 못하고 수십 년을 머물러야 했는지,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늙어 이토록 쓸쓸하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충남식당이라는 허름한 식당을 운영하는 안나 아주머니, 하산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그대로 눌러살게 된 그리스인 야모스, 연탄가게 부부와 그의 말더듬이 아들 유정, 수전증이 심하며 밤낮 "코끼리" "분홍색 코끼리" "지나가고 있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주정뱅이, 너무나 병약하여 부모가 방치한 까닭에 매일마다 평상에 앉아 요설만 지껄이는 맹랑한 녀석, 다락방에 혼자 살며 음탕한 농지거리나 해대는 대머리, 입에 개XX 등의 욕을 달고 살며 저울눈금을 속이거나 쌀에 이물질을 집어넣어 돈을 버는 쌀집 김씨 등이 살고 있었다. 이 동네는 너무나 낙후되고 더러운 동네였다. 그 예로 이곳의 공중화장실은 여섯 가구의 물경 서른 명이 공동으로 사용했으며, 지어진 이래 단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듯했고 발효되는 배설물들이 내뿜는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였다.

이곳에서 주인공 소년은 수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맺는다. 이 동네에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무례하고 무식하기 이를데 없으며, 거짓말과 욕설을 밥 먹듯이 하고 자기모순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예를 들어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는 하루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맨날 큰소리만 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는 인간이다. 대머리 아저씨는 새벽마다 동네 사람들이 잠도 못 자도록 고래고래 군가를 불러대고, 빨갱이 때려잡자는 태극기 집회 같은 데 맨날 나가는 인간이다. 그런데 거기서 노병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무용담을 주고받다가 거짓말이 탄로 나서 두들겨 맞고 오곤 한다. 안나 아줌마는 남편과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쳐 온 과거를 갖고 있다. 하산 아저씨는 한국전쟁 때에 사람의 살점을 씹어먹은 기억을 갖고 있다.

이렇듯 본받을 구석이나 내세울 구석이라곤 별로 없어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따뜻하게 서로를 도우며 어울린다. 쌀집 김씨가 하산의 돼지고기에서 돼지콜레라가 전염되었다고 모함한 것에 맞서, 주인공 소년이 양아버지 하산의 돼지고기를 날것으로 삼켰다가 토하고 앓아 눕자 안나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간호해주기도 하고, 맹랑한 녀석의 병약함을 고쳐주기 위해 대머리는 군사훈련을 시켜준다며 맹랑한 녀석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 유정의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주인공 소년은 유정과 함께 며칠동안 동네를 함께 돌아다녀준다. 가짜 군인으로 오해 받은 대머리가 사실은 기억상실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맹랑한 녀석은 대머리의 옛날 물건을 태우는 충격요법으로 대머리의 옛 기억을 되살려주려 하기도 한다. 쌀집 김씨의 둘째 딸이 아빠의 학대를 못이겨 가출했다 며칠만에 돌아오자 안나 아주머니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하고 밥을 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보금자리는 도시재개발사업때문에 파괴되고 만다. 건물주가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멀쩡한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안나 아주머니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너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냥 여기는 자본주의라는 곳이야. 자본주의란 녀석은 한마디로 버릇이 없단다. 너도 자본주의한테 예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상처받는 건 너일테니까."

이때문에 정육점 일체를 처분해야 했던 하산 아저씨는 폐렴에 걸려 앓다가 죽고만다. 죽어가는 하산 아저씨는 주인공 소년에게 소년의 쇄골 아래 흉터가 총상으로 인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주인공 소년이 자신과 부모를 쏜 사람에 대해 복수하겠다고 하자, 하산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복수하기도 전에 세월이 그를 용서해버릴 거다. 세월은 잔인한 구석이 있거든." 그리고 하산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부족해. 난 늘 목이 말랐다. 갈증때문에 가슴이 타는 것 같았어. 지금도 그렇구나. 아들아. 내게 입 맞춰주렴. ...... 그래, 그렇게. ....... 사랑한다." 그리고 이때껏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주인공 소년은 답한다. "저도 사랑해요." 그리고 그에 대해 대답이 없는 하산 아저씨에게 주인공 소년은 외친다. "제 말 들으셨어요? 사랑해요. ...... 사랑한다구요!"

하산 아저씨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주인공 소년을 의심하지 않고 거두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산 아저씨가 죽는 순간, 주인공 소년은 자기 몸속으로 이슬람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것을 느낀다. 그리고 소년은 의붓아버지를 대신하여 모스크를 찾아 기도를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첫 문장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이 소설은 이른바 '민족주의'에 대해 상당한 조소를 퍼붓는다는 점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민족문학 작가회의' 이래로 반미, 반외세 민족주의의 전통이 굳건하였던 우리 문학계 진보진영에 2008년의 '완득이'에 이어, 2010년의 '이슬람 정육점' 같은 소설이 나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만시지탄이라고도 여겨진다. '태백산맥'의 염상진이나 김범우 같은 근대적 남성 리더들이 민족해방과 민족주체성을 위해 외세, 매판자본과 맞서 영웅적 투쟁을 벌이던 소설의 시대는 1990년대 이후 이미 지났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신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사진을 잘라서 스크랩북에 모아 놓는다. 그리고 그 얼굴들로 지도를 만드는데, 지도의 얼굴만 놓고 보면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주인공이 보기에 늙음과 가난은 인종과 민족의 구분 자체를 거의 무의미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국적과 고향에 상관없이 현세에 대해 지독히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꿈이나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인이든 터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다르지 않다. 그리고 주인공 소년은 자신이 한국인의 피가 아닌 터키인의 피를 이어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프게 가슴을 찌른 문장은 이것이었다. "고아들이 할 수 있는 별난 행동이란 대부분 자해였다. 계단에서 일부러 발을 헛딛고 굴러서 혹은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어 싸워서 어딘가에 상처를 냈다. 그러면 그들(연말에 고아원을 찾아온 자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삶이 헛된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비열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최후의 보루다. 세상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다 지친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그렇게 사랑하다 지쳐서 더는 사랑할 게 없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럴 때 위안이 되어주는 말이다. 나는 하산 아저씨에게 당부하고 싶었다. 이제 스스로를 사랑해도 된다고. 아저씨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럴 자격이 없는 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사랑에 대해 말해왔다고. 그럴 자격이 없는 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자기애를 왜곡해왔다고."

이 책을 읽고나서 우리 모두의 정신 어딘가 그늘 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아소년이 자기 어두운 기억을 조금이라도 옅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기 몸의 흉터는 지울 수 없더라도, 자기 마음 속의 아픈 상처는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었으면... 그 상처가 주변의 냉혹한 차별로 말미암은 것이든, 무지한 공포로 말미암은 것이든 간에.





울울알
교수님이 소개하신 '이슬람 정육점'은 다문화주의의 명목으로 이슬람의 여혐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차단할 수 있는 위험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한남 수준이나 이슬람 수준이나 그게 그거지만, 이슬람과 관련된 소설을 소개하면서, 조혼, 할례, 일부다처, 명예살인 등 끔찍한 성차별을 자행하는 이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안 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여대 교수로서 할 짓인지 자문해보셨으면 합니다.
2017-10-12
17:04:50




박미르끼
헐... 여대에서 여학생들 준 돈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인간이 개슬람 찬양 글이라니...
2017-10-18
17: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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