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에 관한 정리
2019-08-28 18:33:56

지난 2년간 '예약'에 관해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연구를 해왔다. 여전히 미진하긴 하지만, 이제는 '예약' 연구를 슬슬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지금까지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 예약은 우리나라에서 계약체결희망자가 본계약체결 전에 잠시 머무는 중간단계를 위한 제도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일방예약이든 쌍무예약이든 예약자가 예약을 위반한 때 기본적으로 신뢰이익 배상책임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의 오랜 연구결과를 보면, 예약은 본계약내용의 중요부분에 관한 교섭과 합의가 이미 완료된 것을 전제로 하는, 상당히 강한 구속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약은 본계약체결 전의 중간단계가 아니라 거의 본계약체결에 버금가는 단계라고 이해해야 한다. 예약위반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 모두 이행이익 배상책임만이 아니라 심지어 이행강제까지 인정함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본계약상의 급부의무가 일신전속적인 ‘하는 채무’인 경우 본계약상 급부의무의 이행강제 효과는 부정될 수 있고, 본계약이 어차피 불능계약이었던 경우 예약이 위반되었다 하더라도 신뢰손해 배상책임만이 인정될 수도 있다.

② 독일과 프랑스의 예약제도 역사를 보건대, ‘쌍무예약’은 다름 아닌 요식계약이나 요물계약의 경직성을 당사자가 자유롭게 완화할 필요에서 이용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요식계약이나 요물계약의 경우 계약성립시기 및 그에 따른 당사자 구속의 시기가 너무 늦춰지기 때문에, 그 전에 당사자를 구속할 현실적 필요를 전제로 ‘쌍무예약’이 활용되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계약이 낙성ㆍ불요식계약이지만, 예를 들어 계약금계약은 요물계약이다. 그러므로, 가령 계약금이 교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가 계약금 액수를 정하고 해제권유보의 합의 등을 하면, 계약금계약의 쌍무예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쌍무예약’ 역시 ‘예약’의 일종으로서 그 위반의 효과는 강력하므로, 장차 법적으로 크게 다투어질 소지가 있다.

③ 다만 요식계약에서 요구되는 방식이 당사자 일방의 보호를 위한 방식이라면, 이러한 방식이 안 갖춰진 채 체결된 쌍무예약의 구속력은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연대보증계약의 서면방식은 보증인 될 사람의 보호를 위한 것이므로, 서면을 갖추지 않고 연대보증계약의 예약을 한다면, 이 예약은 구속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④ 독일과 프랑스의 예를 보더라도, 예약 가운데서 ‘편무예약’이나 ‘쌍방예약’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편무예약’은 본계약이 편무계약이면서 요식계약이거나 요물계약인 때 이용될 수 있는데, 그 위반 효과에 있어서 ‘쌍무예약’과 차별성이 전혀 없으므로, 독자적으로 논의할 실익이 거의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일방예약’이나 ‘쌍무예약’만 논의될 뿐, ‘편무예약’이나 ‘쌍방예약’은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우리나라 모든 교과서가 한결같이 ‘편무예약’이나 ‘쌍방예약’의 개념을 소개함은 불필요한 서술을 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⑤ 예약 가운데서도 ‘일방예약’은 전형적인 ‘예약’이라기보다 상대방에게 계약체결의 결정권을 일정 기간 유보한 형태라고 봐야 한다. 계약체결희망자 사이에 이해관계의 절박함 등에서 힘의 불균형이 발생할 때, 좀 더 절박한 일방이 상대방의 본계약체결을 유인할 의도로 이용하는 법적 수단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청약의 구속력을 전제로 한다면, ‘일방예약’은 ‘쌍무예약’이나 ‘편무예약’보다 오히려 계약의 ‘청약’에 더 가까움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방예약’을 할 때 그 구속력이 더 오래 유지되고 그 위반의 효과도 더 크지만, 사실상 계약의 청약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방예약’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일방예약’은 그 쓰임새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이러한 ‘일방예약’을 ‘옵션계약’이라 부르며, 시험매매나 재매매의 예약 등 매우 한정된 사안에서만 이를 이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물론 프랑스법은 오랫동안 청약의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일방예약’의 독자적 존재의의가 컸고, 그래서 ‘일방예약’이 널리 활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프랑스법이 청약 구속의 원칙으로 선회한 이상, ‘일방예약’의 존재의의는 이제 프랑스에서도 그다지 크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⑥ 일반적으로 예약은 조건부 계약과 그 개념과 기능을 달리한다. 조건부 계약은 본계약을 일단 성립시키되,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의 성부에 본계약의 효력발생 여부를 연동시킬 필요에서 체결하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다만 ‘쌍무예약’을 체결하는 사례 대부분에 있어서 ‘쌍무예약’ 대신에 정지조건부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무방하고,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법리는 더 간단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방예약’은 그 성질상 예약이 아니라 정지조건부 계약으로 보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다. 독일에서도 옵션계약을 조건부 계약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방예약’을 조건부 계약과 구별하나, 이는 프랑스법이 정지조건성취에 소급효를 인정함에 기인한 것이므로, 우리 법에 이러한 프랑스법이론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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