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on Messina, 'Faux départ'
2020-03-12 21:48:19

이 소설의 주인공 Aurélie Lejeune은 Grenoble의 어느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공부를 상당히 잘 하는 편이었지만 재정적 뒷받침을 기대할 수 없었던 그녀는 Paris 대학으로 유학 가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음에도 이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고향 Grenoble 대학에 입학해서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합니다. 문학보다는 법학을 공부하는 게 취업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법과대학 'magistral' 과정에 첫발을 내딛고 청소부 알바로 자기 주거비를 해결하면서 법률가의 꿈을 키워갑니다. 동시에 콜롬비아 출신의 유학생인 Alejandro를 만나 그의 품 안에서 따뜻한 평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짜릿한 극치감과 육체적 고통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남녀 간의 연애에도 사회적, 성적 폭력이 작용한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합니다: "환상이 너무 길어지면,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고 끝도 없어지는 거야.(une chose si longtemps fantasmée puisse être aussi insipide, inutile et interminable.)"

그 후 그녀가 대학 1학년을 마칠 즈음에 남자친구 Alejandro는 이제 자유롭고 싶다며 그녀의 곁을 떠납니다. 그에 따른 충격과 전공인 법학에 대한 실망을 견디지 못한 Aurélie는 결국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 또는 부끄러운 노동자 가정 출신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 '위대함과 일자리의 상징(symbole de grandeur, de travail)'인 대도시 Paris로 이주합니다.

Paris에서 그녀는 영세 파견업체에 의해 여기저기 투입되는 시간제 노동자로 일합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은 그녀의 복장, 자세 등의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고, 그녀를 전혀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월세가 너무 비싸, 그녀는 독립된 방도 없이 여러 명이 같이 쓰는 유스호스텔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합니다. 물론 학업은 계속 미뤄집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Franck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그는 Aurélie가 잠시 파견직원으로 일했던 어느 회사의 재무팀장이었는데,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가난에 지친 그녀는 그의 물질적 도움을 얻고자 그와 사귑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옛 남자친구 Alejandro를 우연히 다시 만나서 동거하는데, 예전과 같은 사랑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자와의 연애란 짜증나는 갈등과 타협, 또는 포르노그라피의 연속일 뿐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좌절한 그녀는 결국 고향 Grenoble로 돌아오고 맙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살. 하지만 그 나이는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le plus bel âge de la vie)'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간직해온 그녀의 꿈이 단지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거나 유행 쫓기에 불과했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게 주인공이 직업적으로나 실존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갇힌 상태에서 이 소설은 끝납니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프랑스 대학의 모습은 그저 허울만 대학일 뿐 교육대중화와 무상화로 인해 부실함의 극치를 달리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극소수의 엘리트만 들어갈 수 있는 Grandes école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대다수 프랑스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전문교육시스템에서 내팽개쳐지고 무시당하고 방치되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명색이 대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주변 사람 어느 누구로부터도 직업적 가능성을 인정 받지 못합니다.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지는 미래의 삶은 가정주부 겸 청소부, 식당점원으로 천대 받으며 살아가는 그녀의 어머니, 할머니의 삶과 같은 삶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대학입학은 이 소설에서 결국 '잘못된 출발(Faux départ)'에 다름 아니게 됩니다.

게다가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대도시 파리의 모습은 사랑 낭만과 거리가 먼 것으로 묘사됩니다. 파리는 가진 자들에게만 살기 좋은 도시일 뿐이고, 가진 자들만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도시일 뿐입니다. 대다수 파리 거주자들은 힘든 노동과 좁은 단체방, 냄새나는 지하철 사이를 오가며 피폐한 삶만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지방 출신의 Aurélie에게는 파리에서 이렇게 단기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이로써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평등(l’égalité des chances)'을 믿게 하는 프랑스 사회 시스템의 숨은 결함을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아울러 양극화의 위기에 빠진 유럽 사회에서 방황하고 고통 받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게 묘사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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