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22 14:38:58
이처럼 Preußen의 근대화는 Napoleon이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전파한다는 명분하에 각 패전국들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근대적 개혁들은 역설적으로 각 패전국들의 급속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초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당시 장원영주의 구속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게 된 독일의 농노들은 도시로, 도시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는데, 이렇게 Preußen의 각 도시에 갑자기 대거 몰려든 저임의 노동인력들은 때마침 독일땅에 상륙한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엄청난 양의 공산품들을 제조하게끔 만들어, Preußen자본가들의 자본축적을 돕고 나아가 Preußen경제의 성장까지도 불러오게 되었다. 또한 농노해방과 신분제폐지 등에 힘입어 당시 Preußen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실현된 국민개병제는 Preußen의 육군병력을 무려 12만명으로까지 증강시켜, Preußen이 예전 그 어느때보다도 더 막강한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혁으로 Preußen 내에서 귀족의 특권이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다는 점에 있었다. 다시 말해 귀족자제들이나 일반평민자제들이나 똑같은 군복 입고 똑같은 연병장에서 똑같이 뛰고 구르며 군사훈련을 받는 시대가 오고야 말았으니, 그야말로 Napoleon덕분에 그 구닥다리 같던 촌뜨기들의 나라 Preußen에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여러 변화들이 이루어지게 된 셈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당시 Preußen의 교육부장관이었던 Humboldt가 추진하였던 보통교육제도는 여태껏 귀족집안이나 부르주아집안의 자제들만이 비싼 과외선생을 고용하고서야 받을 수 있었던 인문교육들을 Preußen 전국민이 받을 수 있게 만들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Preußen의 수도 Berlin에 1810년 설립된 국립 Berlin대학(오늘날의 Humboldt대학. 캠퍼스도 예전 거의 그대로다)은 그러한 교육개혁의 상징이자 총화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미 군정청의 감시하에 대한민국의 건국에 필요한 신진엘리트 양성의 기치를 걸고 개교한 국립 서울대학교가 한국 최고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남한 전국 각대학의 유명교수들을 거의 다 싹쓸이했던 것처럼, 프랑스에 대패한 이후 독일의 부흥을 책임져나갈 최고의 국가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Berlin대학 역시도 그 당시 독일 전역에서 좀 이름있고 실력있다 하는 교수들은 다 끌어다 모아 명실상부한 독일 최고대학으로서의 위상을 세우려 하였으니, 이러한 Berlin대학의 초창기를 빛내기 위해 달려온 교수들 가운데 유명했던 사람들로서는 초대 총장이었던 Fichte와 신학자 Schleiermacher 등을 들 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Fichte는 계몽주의자인 Kant의 제자답게 프랑스혁명을 원래 열렬히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Napoleon의 군대에 의해 너무나도 처참하게 짓밟힌 독일민족의 현실을 보고서 자신의 생각을 바꿔 1808년에 "독일민족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이라는 연설을 통해 독일민중들에게 민족의식 고취 및 단결과 통일의 필요성을 주창하기도 하였으니, 이러한 Fichte는 사실 국립 Berlin대학의 초대 총장으로서 아주 적임자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Hegel 역시도 원래는 Preußen에 대해 매우 시큰둥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1813년 Preußen이 프랑스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급기야 Leipzig전투에서 Napoleon의 군대를 쳐부숴버리기까지 하자, 점차 프랑스에 대한 동경심을 버리고 그 대신 Preußen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이 같은 아시아국가인 일본보다는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서구의 국가들에게 더 큰 동경심을 갖고 있다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버리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대동단결'을 꿈꾸게 되었던 것처럼 Hegel 역시도 자신이 Württemberg출신이라는 것을 잊고 그 대신 'Preußen을 중심으로 한 독일민족의 대동단결'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당시의 Preußen은 농노해방 등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여러 이념들을 제도적으로 착실하게 정착시켜나가고 있던 상태였으며,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1814~1815년 Metternich가 주도한 Wien회의에 수상 Hardenberg가 참여한 이후의 Preußen왕국은 다시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시작하고 혁명적 교사들을 추방하며 각 대학 학생회를 폐지하고 학원감시를 재개하는 등 보수반동의 길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극좌 공포정치의 극단을 달리다가 Napoleon식 군부독재정치마저 실패한 이후 점차 어정쩡한 입헌군주정으로 타락하고 있던 당시 프랑스의 정치상황에 깊이 실망해버린 Hegel은 나날이 상승하는 Preußen의 국운에 큰 감화를 받아, '우리 독일민족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프랑스민족에게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의 저서 '논리학'이 독일어권의 수많은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 것을 본 Hegel은 독일인들에 대한 여태까지의 삐딱한 시선까지도 점차 거두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자기를 위대한 철학자로 알아주다니 독일민족도 생각했던 것보단 제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특히나 1818년 Preußen왕국이 이제는 그 나라 최고대학인 Berlin대학의 정교수, 그것도 초대 총장이었던 Johann Gottlieb Fichte의 후임교수로 자기를 초빙하기에 이르자, 옛말에도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몸을 가꾸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했다고, 이제 Hegel은 명실상부한 독일민족의 선도국가인 Preußen의 열렬한 예찬론자이자 철학적 나팔수로서의 소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프랑스와 Napoleon에 대해 오래오래 품어왔던 친밀감과 애착심을 집어던져버리고 이제는 'Preußen을 중심으로 한 독일민족의 완전한 통일과 점진적 민주화'를 향해 일로매진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에 Hegel이 전적으로 지지하고 동조하였던 정치가로서는 Napoleon에의 패전 이후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Preußen의 급속한 부흥을 이끌어낸 Preußen의 수상 Hardenberg후작과 Humboldt의 뒤를 이어 Preußen의 교육부장관 자리에 오른 Altenstein남작 등을 들 수가 있었다. 이들은 원래 Württemberg출신이었던 Hegel이 Preußen의 Berlin대학에 교수로 취임할 수 있도록 열심히 후원해준 인물들이기도 했는데, 이들의 정치적 이상은 봉건적인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Preußen의회의 의석을 보다 각 신분계급에 골고루 배분하며 Preußen 국왕의 권력을 축소하는 것에 있었고, 그들의 우두머리격인 Hardenberg후작이 1810년부터 1822년까지 12년간 Preußen의 수상직을 담당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당시 Preußen에서 상당한 세력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집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Preußen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던 정치그룹은 내무부장관이었던 Friedrich von Schuckmann남작과 황태자 Friedrich Wilhelm 4세 등을 비롯한 다수의 보수파 정치가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태자 Friedrich Wilhelm 4세는 사석에서도 괄괄하고 오만한 성질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뭇 정치가들과 학자들을 적잖이 위협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귀족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 역시도 대다수는 보수파들로 채워져 있어서 개혁파 정객들의 정치적 이상 실현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그들 보수파와 개혁파 정치인들 간에는 생각보다 정치적 견해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수파나 개혁파나 투철한 국가주의에 입각하여 Preußen의 정치적 안정과 강성대국화에 대해 뜻을 같이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권력상으로도 서로 요직을 나눠가지고 있던 이상 상대를 전혀 무시할 수가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과격한 학생운동이나 민중운동, 사회주의적 운동에 대해서는 똑같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여러가지로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보수파의 우두머리격이었던 황태자 Friedrich Wilhelm 4세는 1840년 즉위 이후 뜻밖에도 일련의 자유주의적 개혁(출판검열의 완화와 분방의회 소집 등)을 실현했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느 정도는 Preußen왕국의 자유개혁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개혁파의 우두머리였던 Herdenberg후작 역시도 1819년에 Karlsbader결의를 통과시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현실적으로는 반동정치에 협조한 적도 많았던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그들 개혁파 정치가와 보수파 정치가들 간의 차이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차이보다 더 작은 차이 정도에 불과했다는 얘기이다.
반면에 당시 Preußen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던 정치그룹은 개혁파 그룹이 아니라 사실 '게르만애국민주주의' 그룹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주축은 Berlin대학의 신학교수 Schleiermacher와 Jena대학의 철학교수 Fries 및 그들을 따르던 운동권 학생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Hegel 같은 중도개혁파 철학자가 '위로부터의' 개혁이나 '외세에 의한' 개혁 같은 것도 이상적인 진보의 수단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던 반면에, 이들 '게르만애국주의자'그룹들은 오직 '아래로부터의, 독일민족에 의한 혁명'만이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던 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상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그룹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이성과 논리, 분석과 논증, 법률이나 규칙보다 따뜻한 마음, 감수성과 자발성 그리고 낭만적 정열에 의한 혁명정치를 선호했다. 그러니 그들 '게르만애국주의자' 그룹과 확고한 이성주의자이며 법치주의자였던 Hegel간의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흡수하여 그것을 자기 체계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려는 입장이었던 Hegel에게 이들의 확고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꽤 강렬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으니, 실제로 Hegel이 그의 저서 '법철학원리'에서나 말년에 그의 강의 속에서 민족신비주의적인 경향으로 상당히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그 여파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Berlin대학 교수에 취임한 Hegel은 계속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면서 자칫 그에게 버거울 수도 있었던 Berlin대학 교수자리에 충분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니, 단순히 적응한 정도가 아니라 얼마되지 않아서 그는 Berlin대학교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교수이자 Berlin대학을 대표하는 교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그의 휘하에는 독일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수재들이 그의 제자로서 포진하기 시작했는데, 물론 그 제자들(예를 들어 Leopold Dorotheus von Henning과 Eduard Gans 등)은 독일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철학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Hegel의 연구업적을 도와주고 계승발전시키는 데 나름대로 큰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혹자는 그렇게 우수한 Hegel의 직속 제자들 중에 Nietzsche, Jaspers, Heidegger 만큼의 역사적 비중을 가진 대가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최고대학의 수재들이 가진 전형적 한계라는 게 결국 이런 것이다. 남의 밑에 들어가서 보조역할을 하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지만 자신이 새로운 뭔가를 도전해서 창조해내는 데는 별로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천재는 결코 꼭대기그룹에서는 태어나지 않게 돼있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일본에서도 서열 1위인 도꾜대 출신보다 서열 2위인 교또대 출신들이 노벨상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타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서 Hegel은 1821년에 그의 네번째 대작인 '법철학원리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를 출간한다. 이 책은 Hegel의 후원자인 Alpenstein남작 등으로부터 당연히 호평을 받았고,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 되었는데, 이 책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나 극단적인 민중주의자가 아니라면 대다수의 독일국민들이 대체로 공감하고 호응할 수 있을만한 온건하고 종합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Hegel은 스스로를 아예 '국민철학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Hegel을 전형적인 국가주의자로 알고 있지만, Hegel의 '법철학원리'를 언뜻 읽어보면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그럴듯하게 여겨질 만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게 된다. 무엇보다 Hegel은 그의 법철학이론을 프랑스혁명의 3대 이념 가운데 첫번째인 자유(Freiheit)의 이념 위에다 구축하였는데, 여기서 Hegel은 이러한 자유를 법과 법률이 결코 제한할 수 없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했으니, 얼핏 보면 Hegel은 모든 구습과 권위주의적 도그마들로부터 벗어난 개인적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공동체와 국가의 공권력이 항상 노력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식의 자유주의적인 세계관을 보여준 것처럼 느껴진다:
"Der Boden des Rechts ist überhaupt das Geistige, und seine nähere Stelle und Ausgangspunkt der Wille, welcher frei ist, so dass die Freiheit seine Substanz und Bestimmung ausmacht, und das Rechtssystem das Reich der verwirklichten Freiheit, die Welt des Geistes aus ihm selbst hervorgebracht, als eine zweite Natur ist. (법의 토대는 전적으로 정신적인 것이다. 법의 가장 가까운 장소이자 출발점은 자유의사이며, 여기서 자유는 법의 실체와 사명을 이룬다. 법체계는 실현된 자유의 왕국이며, 정신의 세계는 그 법으로부터 2차적인 성질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Der Staat ist die Wirklichkeit der konkreten Freiheit; (국가는 구체적인 자유의 현실성이다.)"
"Der nur erst an sich freie Wille ist der unmittelbare oder natürliche Wille. Die Bestimmungen des Unterschieds, welchen der sich selbst bestimmende Begriff im Willen setzt, erschienen im unmittelbaren Willen als ein unmittelbar vorhandener Inhalt, - es sind die Triebe, Begierden, Neigungen, durch die sich der Wille von Natur bestimmt findet. (단지 즉자적인 자유의지는 직접적이거나 자연적인 의지이다. 스스로 규정짓는 개념이 의지 속에 정립시키는 그 차이의 규정들은 직접적인 의지 속에서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내용들로서 드러나는데 그것들은 충동, 욕망, 취향과 같은 것으로서, 이것들을 통하여 자연의 의지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Die Freiheit des Willens ist nach dieser Bestimmung Willkür - in welcher dies beides enthalten ist, die freie von allem abstrahierende Reflexion und die Abhängigkeit von dem innerlich oder äußerlich gegebenen Inhalte und Stoffe. Weil dieser an sich als Zweck notwendige Inhalt zugleich gegen jene Reflexion als Möglicher bestimmt ist, so ist die Willkür die Zufälligkeit, wie sie als Wille ist. (그 의지의 자유는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자의이다. 그 속에 이들 양자 - 자유롭고 모든 것을 도외시하는 반성과 내부적으로 또는 외부적으로 주어진 내용과 재료들의 의존성 - 는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즉자적이고 목적으로서 필요한 내용은 동시에 저러한 반성에 대하여 가능한 것으로서 규정되기 때문에, 자의는 마치 그것이 의지로서 그러한 것처럼 우연적이다.)"
"Die Wahrheit aber dieser formellen, für sich unbestimmten und ihre Bestimmtheit an jenem Stoffe vorfindenden Allgemeinheit, ist die sich selbst bestimmende Allgemeinheit, der Wille, die Freiheit. Indem er die Allgemeinheit, sich selbst, als die unendliche Form zu seinem Inhalte, Gegenstande und Zweck hat, ist er nicht nur der an sich, sondern ebenso der für sich freie Wille - die wahrhafte Idee.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대자적으로 불특정된 그리고 그 특정성을 저러한 재료에 대하여 발견하는 일반성의 진실은 스스로 규정되는 일반성이며, 의지이며, 자유이다. 그것이 일반성을 스스로, 그의 내용들과 대상들과 목적에 대한 무한한 형식으로서 갖고 있는 한, 그것은 즉자적일 뿐만 아니라, 대자적이기도 한 자유의지 - 진정한 이념이다.)"
"die konkrete Freiheit aber besteht darin, dass die persönliche Einzelnheit und deren besondere Interessen sowohl ihre vollständige Entwicklung und die Anerkennung ihres Rechts für sich ... haben, als sie durch sich selbst in das Interesse des Allgemeinen teil übergehen, ... (구체적인 자유는 그러나 각각의 개인들과 그 특수한 이해들이 스스로 일반의 이익으로 이행하면서 그를 완전히 발현하고 그 권리를 대자적으로 승인받는 것 속에 존재한다.)"
또한 어떤 노동자집단이 단지 자신과 자기 가족들만의 생계를 걱정하고 체불임금을 즉각 지급하라며 사업장에서 파업투쟁을 벌였다고 하자. 이에 대해 그 파업의 국가 전체적 파급을 고려할 수 있는 관료들이 이들 노동자집단 전원을 체포하고 이들의 전재산을 손배가압류해버렸을 때 이것은 자유(Freiheit)의 제한일까, 아니면 자의(Willkür)의 제한일까? 물론 이것도 Hegel의 입장에서 보면 자의(Willkür)의 제한일 뿐이고, 자유(Freiheit)의 제한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 무식한 노동자들이 자기 생존문제만 알았을 뿐이지, 국가경제의 전체적인 면, 예를 들어 하루빨리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여 배달민족의 영광을 세계에 재현해야 된다는 숭고한 민족사적 사명이나, 양보하고 희생하며 모든 것을 제탓으로 여겨야 사회가 제대로 유지된다는 겸허한 종교적 세계관 같은 것까지 다 고려하고서 그런 싸가지 없는 파업투쟁을 벌였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흡연의 자유나 음주의 자유 같은 것도 Hegel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자의(Willkür)일 뿐이지 자유(Freiheit)가 될 수는 없으며, 직업선택의 자유나 배우자선택의 자유 같은 것도 Hegel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자의(Willkür)가 될 뿐이지 자유(Freiheit)가 될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국가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는 않으며, 어느 누구도 일반적, 전체적인 것에 대한 충분한 도덕적, 윤리적 고려를 거쳐가면서까지 자기 배우자나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가다 보면 자기 직업이나 배우자를 선택한 이유가 불타는 애국심이나 드높은 정치의식때문이나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더라만~). 하여튼 이런 식으로 따져가다 보면 이 세상에 진정으로 자유(Freiheit)라 불리울 만한 개인의 의사나 욕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자유란 것을 주장할 만한 자격을 지닌 개인도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자유를 엄격하게 해석함에도 불구하고 Hegel은 사적 소유권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Hegel은 사적 소유란 것이 인간의 자유에 현존재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러면서도 Hegel은 이러한 사적 소유의 구체적인 측면들에 대해 이는 자유(Freiheit)가 아닌 자의(Willkür)의 문제라고 하면서, 사적 소유권보다는 국가나 공동단체의 요구가 더 우선한다고 말하고 있다:
"Die Person muss sich eine äußere Sphäre ihrer Freiheit geben, um als Idee zu sein. Weil die Person der an und für sich seiende unendliche Wille in dieser ersten noch ganz abstrakten Bestimmung ist, so ist dies von ihm Unterschiedene, was die Sphäre seiner Freiheit ausmachen kann, gleichfalls als das von ihm unmittelbar Verschiedene und Trennbare bestimmt. (인간은 이념으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그의 자유의 외부적인 범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최초의 추상적인 규정 속에서 인간은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무한한 의사이기 때문에, 그의 자유의 영역을 만드는 그로부터 구별되는 이것 - 소유 - 은 동시에 그로부터 직접적으로는 떨어져 있고 분리가능한 것으로서 규정된다.)"
"Im Verhältnisse zu äußerlichen Dingen ist das Vernünftige, dass Ich Eigentum besitze; die Seite des Besonderen aber begreift die subjektiven Zwecke, Bedürfnisse, die Willkür, die Talente, äußere Umstände u.s.f. (§ 45); hiervon hängt der Besitz bloß als solcher ab, aber diese besondere Seite ist in dieser Sphäre der abstrakten Persönlichkeit noch nicht identisch mit der Freiheit gesetzt. Was und wieviel Ich besitze, ist daher eine rechtliche Zufälligkeit. (외부적 물질들에 대한 관계에서 이성적인 것은, 내가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것의 측면은 주관적인 목적들, 욕구들, 자의, 재능, 외부적인 사정들이다 (45장). 재산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자체로서 여기에 의존하지만, 이러한 특별한 측면은 추상적인 인격의 범위에서 자유와 등치되지는 않는다. 내가 무엇을 갖고 얼마나 갖는가는 따라서 법적으로 우연한 것이다.)"
"Die agrarischen Gesetze in Rom enthalten einen Kampf zwischen Gemeinsamkeit und Privateigentümlichkeit des Grundbesitzes; die letztere musste als das vernünftigere Moment, obgleich auf Kosten anderen Rechts, die Oberhand behalten. ... Aber die Bestimmungen, die das Privateigentum betreffen, können höheren Sphären des Rechts, einem Gemeinwesen, dem Staate, untergeordnet werden müssen... (로마에서의 농업법은 토지점유의 공동성과 사유성 간의 투쟁을 담고 있다. 그런데 더 이성적인 동기로서 후자(사유성)는, 비록 다른 권리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 그러나 사적 소유에 관련된 규정들은 권리의 더 높은 범위에, 공동단체에, 국가에 종속되어야 할 수 있다...)"
"Gegen die Sphären des Privatrechts und Privatwohls, der Familie und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ist der Staat einerseits eine äußerliche Notwendigkeit und ihre höhere Macht, deren Natur ihre Gesetze, sowie ihre Interessen untergeordnet und davon abhängig sind; aber andererseits ist er ihr immanenter Zweck und hat seine Stärke in der Einheit seines allgemeinen Endzwecks und des besonderen Interesses der Individuen, darin, dass sie insofern Pflichten gegen ihn haben, als sie zugleich Rechte haben. (사법과 사적 복리, 가족과 시민사회의 영역에 반하여 국가는 한편으로 외부적인 필요성과 내부적으로 더 높은 권력이다. 그러한 성질에 그의 법률들과 그의 이익들은 종속되고 거기에 의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가는 그러한 것들의 내재적인 목적이며, 그의 강점을 그의 일반적인 최종목적과 개인의 특수한 이해들의 통일 속에서, 그들이 그로써 국가에 대해 의무를 갖고 동시에 권리를 갖는다는 점 속에서 갖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Hegel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본 것은 나름대로의 중용을 모색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당시의 독일은 물론이고 지금 우리나라의 법학자들조차도 상당수가 수긍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적 소유권에 대해서는 비단 공산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시장주의자, 자본주의자들 역시도 약간의 제한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며, 요즘 전북 부안 같은 데만 가보더라도 주민들이 자기들의 사적 소유권침해에 대해 반대를 하건 말건 국가가 핵폐기장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고, 옛날 박정희 정권시절 수많은 수몰지역 주민들의 토지소유권을 국가가 강제로 수용하고 댐건설을 강행했던 예를 보더라도, 아직 우리에게 있어서 개인의 권리나 지역주민의 권리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나 권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음은 거의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사적 소유권이 국가에 의해 어느정도 제한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당연한 원칙이 아니라 그 원칙이 통용되는 범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과 국가 사이에 이해의 충돌이 발생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우선권을 가지며 그 이익의 비교형량에 있어서 어느만큼의 비율을 각각 인정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Hegel은 '국가와 개인 모두가 중요하다'는 지당하신 말씀을 일단 내놓으면서도, 은근히 국가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혐의가 매우 짙어보인다. 당시 Friedrich Wilhelm 3세 치하 Preußen의 국가체제는 사적 소유권은 물론이고, 개인의 자유에서 아주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조차도 거의 인정해주지 않던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국가체제가 아닐 수 없었는데, 이런 급박한 상황 앞에서 '국가와 개인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당연히 둘 다 중요하다. 아니, 국가와 개인은 서로 떨어진 별개가 아니라 불가분의 유기체이며 똑같은 한몸이다'라고 주장하는 Hegel의 태도는, 당시의 상황을 보든 Hegel이 펼친 법철학논리의 내용을 보든, 뭔가 개인의 보호에 미흡하다는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Hegel은 오늘날 독일(기본법 제4조)과 우리나라(헌법 제19조)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Gewissensfreiheit)에 대해서도 매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에 관한 Hegel의 원문을 직접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Der Staat kann deswegen das Gewissen in seiner eigentümlichen Form, d. i. als subjektives Wissen nicht anerkennen, so wenig als in der Wissenschaft die subjektive Meinung... (국가는 따라서 양심을 그의 특유한 형식, 다시 말해 주관적인 지식으로서 승인할 수 없다. 마치 학문에서 주관적인 견해를 승인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Hegel은 양심을 즉자대자적인 어떤 선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면서도, 그것이 주관적인 형식을 취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국가는 이러한 양심을 승인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면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대다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국가권력의 진정한 원천이며 국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개인이 자기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면 국가는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해선 안되며, 다만 국가는 다른 병역의무 이행자들과의 형평성을 위해서 이들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을 대체하는 다른 사회적 봉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에 반하여 Hegelian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국가가 승인해선 안되며 법에 따라 이들은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게 된다.
생각해보면 Hegel이 이토록 개인 대 국가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국가의 손을 더 들어주고 있는 근거는 결국 그가 갖고 있는 온전한 객관성, 일반성, 전체성의 믿음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과연 개인과 국가 양자 가운데서 국가가 더 인식과 사고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인지, 온전한 객관성이나 온전한 일반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Hegel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다종다양한 개인의 여러 취향이나 의견, 가치관들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옳은지는 국가가 아무리 변증법, 일반성, 전체성 등을 다 동원해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잘 알아내기는 힘들 것이며, 이러한 여러 개인적 의견들과 이해관계들은 국가가 억지로 통합하려 하기 보다 그 다양한 것들을 그냥 그 자체로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것이 더 현명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본다면, 어떤 사람은 군대 가는 것이 소원이지만, 어떤 사람은 군대 가기를 죽는 것보다도 더 싫어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지만,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한다거나 가정을 이루며 사는 일 등을 독신으로 외롭게 사는 일보다도 더 끔찍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지독한 일벌레이지만, 어떤 사람은 아예 일하는 것 자체를 완전히 싫어할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도 누군가에게 절을 한다거나 기도한다거나 사랑 또는 충성을 맹세한다거나 하는 등의 닭살 돋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런 닭살 돋는 일들을 아주 좋아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일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성보다 동성을 더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유난히 담배나 술을 좋아할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동성을 싫어할 수도 있고, 담배연기나 술냄새를 아주 싫어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야한 것만 보면 분통을 터뜨리는 성적 엄숙성이나 결벽증을 갖고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유난히 색을 밝혀서 단 하루도 야한 사진이나 에로영화를 보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상한 버릇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취향들에 대해 국가가 과연 어느것이 더 '옳다'거나 '틀렸다'거나 하는 판단을 일방적으로 내리고서 그 '틀린' 취향을 처벌하거나 '옳은' 취향을 강요하거나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국가의 판단이 옳다는 보장만 있다면 그런 일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테지만, 국가의 판단이 언제나 더 전체적이고 일반적이고 즉자대자적이라는 보장이 과연 있을 것인가? 아니 어떤 판단이 더 전체적이고 일반적이라고 해서 그 판단이 부분적이고 특수한 판단보다 더 옳다는 보장이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의문들에 아랑곳 않고 Hegel은 이 '법철학원리' 책 속에서 가족과 국가의 절대적 가치를 옹호한다든가, 군주제를 옹호한다든가 하는 등의 보수반동적인 주장들만을 계속 늘어놓고 있다. 물론 그 당시 독일의 분위기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Hegel의 견해는 당시 대다수 독일 중상류층 성인들이 평균적으로 갖고 있을 가치관들을 충실히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오늘날의 기준에 놓고 봤을 때 Hegel의 이러한 주장들은 너무 구닥다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 구체적 예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Die Ehe, und wesentlich die Monogamie, ist eines der absoluten Prinzipien, worauf die Sittlichkeit eines Gemeinwesens beruht; die Stiftung der Ehe wird daher als eines der Momente der göttlichen oder heroischen Gründung der Staaten aufgefürht. (결혼, 그리고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는 절대적 원리들의 하나로서, 공동체의 양속에 근거가 된다. 결혼의 장려는 따라서 국가의 신적이거나 영웅적인 건립의 동기 중 하나로서 행해진다.)"
"Die Erweiterung der Familie als übergehen derselben in ein anderes Prinzip ist in der Existenz teils die ruhige Erweiterung derselben zu einem Volke, - einer Nation, die somit einen gemeinschaftlichen natürlichen Ursprung hat, teils die Versammlung zerstreuter Familiengemeinden... (가족을 다른 원칙으로 이행하는 것으로서 확장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와 같은 것을 조용히 민족으로, 공동체적, 자연적인 근원을 갖는 민족에로 확장하는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흩어져있는 가족공동체들을 집결시키는 것이다.)"
"Wenn der Staat mit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verwechselt und seine Bestimmung in die Sicherheit und den Schutz des Eigentums und der persönlichen Freiheit gesetzt wird, so ist das Interesse der Einzelnen als solcher der letzte Zweck, zu welchem sie vereinigt sind, und es folgt hieraus ebenso, dass es etwas Beliebiges ist, Mitglied des Staates zu sein. - Er hat aber ein ganz anderes Verhältnis zum Individuum; indem er objektiver Geist ist, so hat das Individuum selbst nur Objektivität, Wahrheit und Sittlichkeit, als es ein Glied desselben ist. (국가가 시민사회와 혼동되고 그의 사명이 소유권과 개인적 자유의 안전이나 보호로 정해진다면, 개인들의 이해는 그 자체로서 그들이 연합하는 최종목적이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임의적인 어떤 것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국가는 전혀 다른 관계를 개인에 대해 갖는 것이다. 국가는 객관적인 정신이므로, 개인은 스스로 단지 국가의 구성원일 때에만 객관성, 진정성 그리고 양속성을 갖는 것이다.)"
"Die Persönlichkeit des Staates ist nur als eine Person, der Monarch, wirklich. (국가는 단지 한 사람, 군주로서만 현실적인 인격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요즘 한국국적을 버리고서 외국에 이민 가서 그곳에서 새로운 국적 얻고 그곳 사회에 완전히 동화돼서 잘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현상인가?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외국에 유학 나간 다음에 그곳 남자들과 사랑하고 결혼해서 그 나라 국적 취득한 후 그 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되는데, 그 사람들에게 갑자기 Hegel의 '법철학원리'를 들이밀면서 반도덕적이고, 반양속적이며, 반국가적인 삶을 반성해야 한다고 호통을 칠 수 있겠는가?
또한 결혼이나 가족에 대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학문에 헌신한다든가 예술에 헌신한다든가 하는 와중에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구성하지 않은 채 별 불편 없이 독신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들에 대해 우리가 반도덕적이고, 반양속적이며, 반국가적인 삶을 반성하시라고 호통을 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나름대로 자유로운 개인의사결정에 따라 그런 삶을 꾸려가고 있을 뿐인데, 문선명의 통일교도 아니고 그들에게 막무가내로 결혼을 통한 사회로의 통합과 공동체로의 통합을 강요할 수가 있겠는가?
사실 이 세상에는 가족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족의 굴레를 일정정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수많은 개인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조국에 대해서는 전혀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조국과 별로 궁합이 맞지 않는 개인들 역시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혜린(고현정 분)의 경우, 그녀는 아버지 윤회장(박근형 분)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거나 아버지와 화해함으로써 가족의 굴레에 편안하게 머물기 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고서 안락한 가정을 떠나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자기만의 독립된 자아를 실현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우리가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도덕적 비난을 가할 수가 있겠는가? 가정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본질적인 자아실현에 가족이 굴레로서 작용한다면, 개인은 가정을 버릴 수도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프랑스의 화가 Gauguin 같은 경우 문명의 때에 찌들어버린 자기 조국 프랑스 사람들보다 Tahiti라는 이국땅에 사는 밝고 순수하고 소박한 흑인들에게서 더 강한 친밀감과 안락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를 보고 우리가 그를 반민족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솔직히 프랑스의 시인 Charles Baudelaire가 썼던 걸작시 '이방인(L'Etranger)'을 만약 엄숙한 보수주의자 Hegel이 읽어봤다면 얼마나 혀를 차댔을지 궁금해지곤 하는데, 가족이나 국가나 종교와 같은 관념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있는 그 시 '이방인(L'Etranger)'의 내용을 여기서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Qui aimes-tu le mieux, homme énigmatique, dis? ton père, ta mère, ta soeur ou ton frère?
"Das Volk als Staat ist der Geist in seiner substantiellen Vernünftigkeit und unmittelbaren Wirklichkeit, daher die absolute Macht auf Erden; ein Staat ist folglich gegen den anderen in souveräner Selbständigkeit. (국가로서의 민족은 그의 실체적인 이성과 직접적인 현실성 속에서 그 정신이며, 따라서 지상에서의 절대적인 권력이다. 하나의 국가는 그러므로 다른 것들에 대해서 주권적인 독자성을 갖는다.)"
"Es gibt keinen Praetor, höchstens Schiedsrichter und Vermittler zwischen Staaten, und auch diese nur zufälligerweise, d. i. nach besonderen Willen. Die Kantische Vorstellung eines ewigen Friedens durch einen Staatenbund, ... setzt die Einstimmung der Staaten voraus, welche auf moralischen, religiösen oder welchen Gründen und Rücksichten, überhaupt immer auf besonderen souveränen Willen beruhte und dadurch mit Zufälligkeiten behaftet bliebe. (국가들 간에는 그 어떤 법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심판이나 중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연적이며, 특수한 의사에 따른 것이다. 국가연합을 통한 영구평화라는 Kant의 상상은 ... 국가들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데, 이러한 동의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거나 특수한 주권적 의사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므로 우연성에 부착된 것으로 남을 것이다.)"
"Der Streit der Staaten kann deswegen, insofern die besonderen Willen keine Übereinkunft finden, nur durch Krieg entschieden werden. Welche Verletzungen aber, ... als bestimmter Bruch der Traktate oder Verletzung der Anerkennung und Ehre anzusehen seien, bleibt ein an sich Unbestimmbares... (국가들간의 분쟁은 따라서, 그 특수한 의사들이 그 어떤 일치점도 찾을 수 없는 이상,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판결되어야 한다. 어떤 침해가 조약의 특정한 위반이나 승인의 침해 그리고 명예의 손상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인가는 즉자적으로 불분명한 것으로서 남는다.)"
물론 Hegel주의자들은 이러한 Hegel의 전쟁옹호론에 대해 여러가지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Hegel시절에는 핵폭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아직 발명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전쟁이 그리 끔찍하지 않았다는 둥, Hegel이 '법철학원리'를 집필하던 시절에는 Preußen, 오스트리아, 러시아황제들이 신성동맹(Heilige Allianz)을 체결하고서 Kant의 영구평화론을 원용하며 보수적인 구체제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는 이 역겨운 평화체제에 맞서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Hegel의 행동이 더 진보적일 수 있었다는 둥, Hegel은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 인류역사에서 중단될 수 없는 이 전쟁의 현실에 대해 Kant처럼 공허하게 도덕적 평화주의의 원칙만을 천명하고서 무책임하게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 아니라 그 비통한 전쟁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직시하면서 더 나은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보려 한 것이라는 둥 하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먼저 Hegel시절에는 전쟁이 그리 끔찍하지 않았는가부터 따져본다면, 나로서는 정말 코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구석기시절 크로마뇽인들이 전쟁을 벌여 네안데르탈인들을 이 지구상에서 아주 거의 다 몰살해버렸던 사건 이래, 인류역사에 그 어떤 시대에도 전쟁이 끔찍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미 13세기에 몽고족들은 중앙아시아, 러시아, 폴란드 등의 수많은 나라들을 휩쓸면서 그 나라 도시들의 모든 건물과 문화유적들을 약탈하고 짓밟으며 그곳의 전주민들을 강간, 학살하기 일쑤였는데, 여기서 보듯 옛날에는 전쟁이 끔찍하지 않고 낭만적이었느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또한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내에서 벌어졌던 30년전쟁의 경우 독일인구의 3분의 1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20세기에 가장 끔찍한 전쟁 중의 하나였던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독일인구의 10분의 1, 한국인구의 20분의 1, 베트남인구의 50분의 1 정도만이 목숨을 잃었던 것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Hegel 당시의 전쟁이 더 끔찍했다는 추측을 자아내게 할 정도이다. 대량살상무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그만큼 의술도 더 발달해서 오늘날의 전쟁이 Hegel시절의 전쟁보다 더 인명의 희생이 적을 수도 있을 터이므로, 당시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Hegel의 전쟁옹호론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은 그리 설득력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Hegel의 전쟁옹호가 당시 Preußen, 오스트리아, 러시아황제들의 신성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거나 전쟁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거나 하는 주장 역시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Hegel은 반인권적인 범죄집단을 응징하기 위해서나, 르완다나 보스니아 같은 곳에서 '인종청소'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와 같이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인도적으로 전쟁을 허용해야 한다는 식의 그런 주장을 한 것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Hegel은 전쟁 그 자체를 아주 일반적으로 옹호하면서, 심지어는 이 세계의 정신사를 궁극적인 완성태로 이끌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 이른바 '주인민족(Herrenvolk)'이 다른 노예민족들을 굴복시키고 세계정신사의 발전적 자기전개과정을 실현해내기 위한 필연적인 수단으로까지 이 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 '법철학원리'책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시는 분들께서는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러한 Hegel의 주장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Nazi의 흔적까지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실 많은 분들을 위하여 직접 Hegel의 원문을 아래에 인용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Dem Volke, dem solches Moment als natürliches Prinzip zukommt, ist die Vollstreckung desselben in dem Fortgange des sich entwickelnden Selbstbewusstseins des Weltgeistes übertragen. Dieses Volk ist in der Weltgeschichte, für diese Epoche ... das herrschende. Gegen dies sein absolutes Recht, Träger der gegenwärtigen Entwickelungsstufe des Weltgeistes zu sein, sind die Geister der anderen Völker rechtlos... (그러한 동기가 자연적 원칙으로서 부합되는 민족은 세계정신의 스스로 발전하는 자기의식의 진행과정 속에서 그와 같은 것을 집행해야 하게 된다. 이러한 민족은 세계정신사 속에서, 이러한 시대를 위하여 지배하는 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그의 이러한 절대적인 권리, 세계정신의 현재적 발달단계의 담지자가 될 수 있는 그 민족의 절대적인 권리 앞에 다른 민족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다.)"
하지만 Hegel의 '법철학'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면 우리나라 민족주의자들의 이러한 순진한 기대는 너무나 비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가 없게 된다. Hegel은 이 세계 역사의 전개과정을 '직접적인 계시(unmittelbare Offenbarung)', '도덕적인 개인성(sittliche Individualität)' '추상적인 일반성(abstrakte Allgemeinheit)' '절대적 진리의 실현(Realisierung der absoluten Wahrheit)'이라는 4단계의 원리로 요약한 후 이렇게 각 단계의 원리별로 주어진 세계사적 사명을 지구상의 여러 문명을 대표하는 각 인종들에게 각 수준에 맞게 부여하고 있는데, 그 인종들은 저차원의 단계부터 차례로 열거할 경우 아시아인종-슬라브인종-라틴인종-게르만인종의 순으로서, 우리 배달민족은 거기서도 아시아인종에 포함되는 이상, 가장 원시적인 단계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세계사의 주무대에서 금방 퇴장해야 하는 (실제로는 이미 퇴장한지 오래된) 존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Nach diesen vier Prinzipien sind der welthistorischen Reiche die viere: 1. das orientalische, 2. das griechische, 3. das römische, 4. das germanische. (이러한 네가지 원리에 따른다면 세계역사의 제국들은 다음의 네가지이다: 첫번째는 오리엔트 제국, 두번째는 그리스 제국, 세번째는 로마 제국, 그리고 네번째는 게르만 제국이다.)
오히려 Hegel은 당시 온 겨레가 크건 작건 민족주의의 신열에 들떠서 다 같이 흥분하고 있던 독일인들의 관심을 한데 모으고 그로써 각 정파의 분열상을 극복하면서 민족의 온전한 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해 은근히 위의 네 제국을 언급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오리엔트제국은 아시아(또는 아랍)인종을, 그리스제국은 그리스정교를 믿는 슬라브인종을, 로마제국은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에 거주하는 라틴인종을, 그리고 게르만제국은 말 그대로 게르만인종(독일민족)을 가리키는 것처럼 은근히 암시함으로써 독일민족에게 민족적인 자부심과 역사적인 사명의식을 고취하려고 그런 글을 썼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물론 게르만인종에는 스칸디나비아인이나 앵글로색슨족 등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게르만(German)'이란 단어를 가장 즐겨 썼던 민족이 독일민족이고 (사실 스칸디나비아인은 German족이라기 보다는 노르만족, 영국인은 켈트족이라고 봐야 옳지 않을까?), 위대한 영웅신들이 반지 같은 보물을 사이에 두고 피가 분수처럼 튀며 강물처럼 흐르는 상호투쟁을 벌이는 저 유장한 German신화가 유난히 독일민족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German제국'은 당연히 그 어느 민족도 아닌 독일민족의 나라를 가리킨다고 봐야 옳지 않을까 싶다. 사실, 독일의 영어식 국명 역시도 'Germany'가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Hegel의 철학은 워낙에 애매모호하고 관조적인 성격을 갖는 철학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우려하는 바와 같은 그러한 폭력적 위험성은 쉽게 끌어내기가 힘들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Hegel은 이 '법철학원리'책의 서문 말미에서 저 유명한 Minerva의 올빼미 이야기를 화두처럼 던짐으로써, 수많은 철학도들에게 마치 노자 도덕경의 '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해버리면, 이미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주는 바와 같은 심오한 정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고도 있다. 여기서 그 원문을 발췌해 옮겨본다면 바로 다음과 같다:
"Um noch über das Belehren, wie die Welt sein soll, ein Wort zu sagen, so kommt dazu ohnehin die Philosophie immer zu spät. Als der Gedanke der Welt erscheint sie erst in der Zeit, nachdem die Wirklichkeit ihren Bildungsprozess vollendet und sich fertig gemacht hat. ... Wenn die Philosophie ihr Grau in Grau malt, dann ist eine Gestalt des Lebens alt geworden, und mit Grau in Grau lässt sie sich nicht verjüngen, sondern nur erkennen;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 (세계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가르침에 관해 우리가 한마디를 하고자 한다면, 어쨌든 항상 너무 늦게 다가오는 것이 철학이다. 세계의 사고로서 철학은 현실성이 그의 형성과정을 완결하고 완성한 후의 시기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 철학이 그의 회색빛을 회색빛 속에서 그릴 때, 삶의 형상은 이미 낡아버린 것이 되고, 회색 속의 회색으로 철학은 그 스스로를 젊어지게 만들지 못하며 단지 인식하기만 할 뿐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에야 그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Louis Althusser가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Hegel을 아주 제대로 꿰뚫어봤다고 보고 있는 편이다. 일단 Hegel의 얼굴 인상만 보더라도 음침한 올빼미의 인상을 빼닮았으며 -_-;;, Hegel 같은 야심만만한 수완가가 느닷없이 자기 철학서 속에서 자기체념이나 자기비하의 푸념을 늘어놓을 리도 없고, Hegel 같이 평소 정신이나 영성 같은 것을 중시하던 관념론자, 이론가 나으리께서 갑자기 '실천의 우위성'을 주장할 리도 없다고 나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나의 솔직한 취향을 말하자면 난 이 올빼미란 밤의 맹금(猛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가끔 가다 이 올빼미란 영물녀석이 - 그 독일어 이름 Eule가 주는 우아한 느낌 그대로 - 갑자기 예쁘고도 영리하며 신비스러운 여성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내 품에 안긴다든가 하는 야릇한 상상을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_-;;, 기본적으로 난 이 올빼미란 동물이 음흉하고도 위선적인 Hegel철학이나 기타 비겁한 관조자들의 철학을 상징하는 한 아이콘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뭔가 제대로 된 철학, 제대로 된 학문을 상징하는 동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철학의 상징동물은 낮동안 사생(私生)의 지신(知神) Minerva에게 자기 모든 정신과 육체의 자유를 떠넘기고서 그 확고한 권력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편안히 졸고 있다가, 모두가 잠든 밤 시각에야 비로소 어두운 산정 위에 날아올라가 이미 권력이 맘대로 바꿔버린 이 세상을 자기맘대로 체계화시키고 질서지우기만 하면서 유유히 속세를 향해 날아내려오는 저 올빼미 같은 동물이 되어서는 절대 아니될 듯하다.
그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같은 이 세상 위에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서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뙤약볕과도 같은 저 속인들의 따가운 눈초리 아래 자기 온몸을 내던진 채 실험하고 도전하며 끝없이 방랑하는 낙타와도 같은 동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무거운 인습의 수압을 기꺼이 무릅쓰고서 고통으로 가득한 자신의 거대한 육체를 이끈 채 저 바다 밑 깊은 곳으로 끝없이 잠수해 들어가는 고래 같은 동물들이 우리의 상징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인데, 그것은 내가 언제나 좋아하며 외우는 Nietzsche의 다음과 같은 책구절들이 내 마음을 언제나 강하게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Ich bin zu heiß und verbrannt von eigenen Gedanken: oft will es mir den Atem nehmen. Da muss ich ins Freie und weg aus allen verstaubten Stuben. Aber sie sitzen kühl in kühlem Schatten: sie wollen in allem nur Zuschauer sein und hüten sich, dort zu sitzen, wo die Sonne auf die Stufen brennt. (나는 너무나 뜨겁고 내 자신의 사상으로 불타오른다. 그것은 종종 내 숨까지 막아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먼지 낀 방들을 나와 자유로운 곳을 향해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차가운 그늘 속에 차갑게 앉아만 있는다. 그들은 매사에 있어 단지 구경꾼으로만 남아있으려고 하며, 태양이 계단 위에서 불타오르는 곳엔 앉지 않도록 조심한다.)"
"Alles dies Schwerste nimmt der tragsame Geist auf sich: dem Kamele gleich, das beladen in die Wüste eilt, also eilt er in seine Wüste. (이러한 모든 무거운 것들은 인내심 강한 정신이 떠맡게 돼있다. 마치 짐을 지고서 사막을 바삐 가는 낙타가 그러하듯이, 그러한 정신은 그 사막을 바쁘게 여행한다.)
"Man nennt den einen Freigeist, welcher anders denkt, als man von ihm auf Grund seiner Herkunft, Umgebung, seines Standes und Amtes oder auf Grund der herrschenden Zeitansichten erwartet. Er ist die Ausnahme, die gebundenen Geister sind die Regel; ... übrigens gehört es nicht zum Wesen des Freigeistes, dass er richtigere Ansichten hat, sondern vielmehr, dass er sich von dem Herkömmlichen gelöst hat, sei es mit Glück oder mit einem Mißerfolg. (그의 유래, 환경, 그의 지위와 직무 또는 지배적인 시대적 견해에 근거하여 기대되는 것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자를 우리는 자유정신이라 부른다. 그는 예외적 인간이며, 그에 반해 다른 통례적인 인간들은 얽매인 정신들이다. ... 자유정신의 본질에 속하는 것은 그가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인습에서 자신을 해방시켰다는 사실이 자유정신의 본질이다.)"
"ich stieg in die Tiefe, ich bohrte in den Grund, ich begann ein altes Vertrauen zu untersuchen und anzugraben, auf dem wir Philosophen seit ein paar Jahrtausenden wie auf dem sichersten Grunde zu bauen pflegten, ... (나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나는 바닥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나는 우리 철학자들이 수천년 동안 가장 확실한 토대라고 생각하여 그 위에 건축하고는 했던 낡은 신뢰를 조사하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Erst der große Schmerz, jener lange langsame Schmerz, der sich Zeit nimmt, in dem wir gleichsam wie mit grünem Holze verbrannt werden, zwingt uns Philosophen, in unsre letzte Tiefe zu steigen und alles Vertrauen, alles Gutmütige, Verschleiernde, Milde, Mittlere, wohinein wir vielleicht vordem unsre Menschlichkeit gesetzt haben, von uns zu tun. (오직 그 거대한 고통, 오래고 오래되며 시간을 끌대로 끄는 그 고통, 마치 생나무 장작들과 함께 태워지는 듯한 그 고통, 이런 고통들만이 우리 철학자들을 최후의 깊이로 내려가도록, 그리고 모든 신뢰, 온유함, 베일로 가리는 것, 온유한 것, 적당한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던 모든 것들을 비로소 우리들에게서 떼어낼 수 있도록 우리를 강제하게 될 것이다.)"
하여튼 이렇게 문제 많은 저서 '법철학원리'로 인해 Hegel은 독일최고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당대최고의 철학자로서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Hegel이 당시 하루가 다르게 국운이 상승하던 Preußen왕국을 명실공히 대표하던 철학자였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법철학원리'라는 책 자체가 갖고 있던 내용적, 형식적인 장점이 작용한 바도 컸다고 보여진다. 다시 말해 당시 전세계를 풍미하던 여러가지 사상적, 정치적 조류, 예를 들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등의 여러 새로운 조류들을 다 자기 체계내에 조금씩 수용하면서 자기만의 독창적 방법으로 이를 절묘하게 통합해버리는 그의 철학방법론이 내용적으로도 심오했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미학적 품위를 갖추고 있었으며, 체계면에서도 '철학백과사전' 등의 전작과 연결되어 방대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던 데다가, 당시 시대상황에도 얼핏 들어맞아, 정견과 정파를 초월하고 모든 학생들이 - 설령 그들이 Hegel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 그의 저서를 탐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Hegel을 따르는 사람은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까지도 그 숫자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당시 독일에서 가장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있던 많은 학생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숭배하며 그의 밑에 구름처럼 모여들게 되었으니, 그로 인해 Hegel 그는 5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벌써 자기 학파를 거느린 철학자로까지 군림할 수가 있게 되었다. 대개의 경우 죽어 관 속에 묻힌 다음에야 조금 명성을 얻을까 말까 하고, 사회적 출세와는 예나 지금이나 완전히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되어있는 대다수 철학자들과 비교해본다면, Hegel 그는 정말로 그 재주가 - 올빼미처럼 -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학자였으며, 그런 점에서 Hegel 그가 자기 철학에 대해 이성과 현실 모두를 통합했다고 자부심을 가진 것 역시 당연하다는 생각까지도 내게는 들 정도라고나 할까? ...
2003. 9. 22.
- 이하의 글은 2003년 7월 11일부터 2003년 9월 29일까지 저의 "개인낙서장"에 일곱편으로 나누어 게재했던 저의 Hegel에 관한 잡글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그렇게 Hegel이 마흔여덟살의 나이로 Heidelberg대학 철학과 교수에서 Berlin대학 철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을 당시 (1818년) Preußen왕국은 Napoleon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1813년까지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점차 강한 나라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해가고 있었다. 1807년 Jena와 Auerstedt의 동시전투에서 Napoleon의 군대에게 세계전쟁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참패를 당하고서 영토의 절반 이상을 잃는 치욕을 겪었던 소위 '병정들의 나라' Preußen왕국은 Napoleon의 강제적 요구에 의해 수많은 민주적 개혁을 억지로 추진당해야 했는데, 무엇보다도 1807년에 Preußen은 그들의 오랜 봉건성을 상징하던 농노제를 폐지해야 했으며 직업조합의 구속도 폐지해야 했으니, 이러한 자유주의적 개혁은 Preußen 뿐만 아니라 전 독일사회를 충격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도 남을만했던 것이었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4, S. 28.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260, S. 214.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Hegel의 '자유(Freiheit)'가 현상학적으로 다르게 재구성된 자유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Hegel은 인간의 일반적 의사능력을 가리키는 자연적 의사(natürliches Willen)와 개인의 취향 및 이해관계, 애착에 근거한 물질적 욕구를 가리키는 자의(Willkür)를 먼저 기본개념으로 제시한 다음에, 이러한 자연적 의사와 자의가 서로를 지양하면서 도덕적, 양속적 의사로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그렇게 해서 보다 즉자대자적으로 고양된 자유의지만을 자유(Freiheit)로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유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자유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10, S. 35.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15, S. 37.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21, S. 40.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260, S. 214-215.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예술가가 그냥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여성의 누드화를 그렸다고 하자. 그런데 이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도덕관념과 자라나는 어린 세대의 건전한 성윤리 등 여러가지 사정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그 누드화를 불에 태우고 누드화를 그린 예술가를 감옥에 집어넣어버린다면 이것은 자유(Freiheit)의 제한일까, 아니면 자의(Willkür)의 제한일까? 물론 Hegel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자의(Willkür)의 제한일 뿐이고, 자유(Freiheit)의 제한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 예술가가 국가와 민족과 세계사와 절대정신에 대한 이성적이고 즉자대자적이고 전체적인 사유를 거쳐서 그 여성누드화를 그린 것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41, S. 55.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46, S. 60.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46, S. 58.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261, S. 215.
사실 Hegel이 생산수단이나 토지의 국가점유보다 개인의 사적 소유를 더 이성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본주의를 원칙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따져본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것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개인에게 사적 소유권을 부여하지 않고 국가나 정부기구가 모든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독점해버린다면,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될 것이므로 엄청난 경제적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137, S. 122.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167, S. 155.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181, S. 164.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258, S. 208.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279, S. 243.
비단 군주제를 옹호함으로써 세습의 신분제를 사실상 옹호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Hegel이 갖고 있는 가족관, 국가관만 보더라도 우리는 Hegel의 정치사상이 진보적이긴커녕 오히려 매우 심각한 보수주의임을, 오늘날의 독일정당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CDU(기독교민주연합)나 CSU(기독교사회연합)류의 보수정당들이 갖고 있는 정강정책에 매우 적합한 가족관, 국가관이 아닐 수 없음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국왕의 존재필요성 같은 구닥다리 관념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결혼이나 일부일처제조차도 결코 절대적 원리로 보고 있지는 않으며, 가족이 민족공동체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식의 Nazi적 발상이나, 국적은 개인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식의 Fascho적 사고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코웃음을 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여, 말하여보라. 그대는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가? 그대의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누이인가, 아니면 형제인가?)
- Je n'ai ni père, ni mère, ni soeur, ni frère.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 Tes amis?
(친구들인가?)
- Vous vous servez là d'une parole dont le sens m'est resté jusqu'à ce jour inconnu.
(당신이 지금 한 말의 뜻을 난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
- Ta patrie?
(조국인가?)
- J'ignore sous quelle latitude elle est située.
(난 모르겠다. 그것이 어느 위도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 La beauté?
(아름다운 여인인가?)
- Je l'aimerais volontiers, déesse et immortelle?
(만약 그녀가 불사의 여신이라면 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텐데!)
- L'or?
(황금인가?)
- Je le hais comme vous haïssez Dieu.
(난 그것을 싫어한다. 마치 당신이 신을 싫어하듯이.)
- Eh! qu'aimes-tu donc, extraordinaire étranger?
(그래!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가장 사랑한단 말인가? 그대 기괴한 이방인이여!)
- J'aime les nuages... les nuages qui passent... là-bas... là-bas... les merveilleux nuages!
(난 구름을 사랑한다... 저기 흘러가는... 저 구름을... 저기 아름답고 신기한, 저 구름을!)
하지만 Hegel철학에서 여태까지의 국가주의적 요소는 사실 약과에 불과하다. Hegel은 심지어 국가에 대해 그 국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국민들에게는 절대로 주어져본 적이 없는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면서, 그러한 국가보다 상위에서 이러한 국가간의 이해를 조정하거나 구속할 수 있는 그 어떤 고차원적인 존재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이러한 국가간의 분쟁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군국주의적인 주장을 그의 '법철학원리'책 속에서 피력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Hegel의 아름답고 고상한 변증법의 논리가 갑자기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폭력적인 전쟁의 예찬논리로 타락하는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내 말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으신다는 분들을 위하여 그 구체적인 원문들을 예시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331, S. 284.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333, S. 285-286.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334, S. 286.
어떤가? 개인은 보다 상위적 전체인 국가에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반면에, 국가는 그 어떤 상위적 전체에도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모순이 갖는 논리적 문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일단 Hegel의 전쟁긍정론이 갖는 그 폭력적인 성격이 (좋게 말하자면 서프 김동렬식의 '박력'이) 사람을 정말 으시시하게 만들지 않는가?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347, S. 291.
물론 이에 대해서는 Hegel이 인종주의나 반유대주의를 옹호한 것이 아닌 이상 그의 민족주의적 논리와 전쟁옹호적 논리를 Nazi의 정치철학과 완전히 등치시킬 수는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수많은 민족주의자 여러분들 중에서는 조만간 우리 배달겨레가 남북통일을 이룬 후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올라 일본 동경의 심장부에 핵폭탄을 떨구어 일본열도를 가라앉히고, 중국의 분열을 틈타서 만주벌판과 중국대륙 북부지역 전체를 다 병합한 다음에 (원래 우리의 동족이었던 '몽골전사'들도 이때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함), 미국과 유럽 등을 제치고 세계최강국으로 발돋움하여 전세계에 물질문명보다 정신문화가 더 우선시되는 '후천개벽' 내지 '다물'의 대동세상을 이루고서, 그로써 먼 옛날 고조선시대 단군왕검이나 고구려시대 광개토대제 시절에 이루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광을 전세계에 다시 실현할 것이라고 믿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의 사고에 따르면 Hegel철학은 우리 민족에게 해롭긴커녕 너무나 도움이 되는 철학이 아닐 수 없게 된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 354, S. 294.
어떤 분들께서는 이에 대해 Hegel이 인종주의까지 주장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리엔트와 그리스, 로마와 게르만은 그냥 그 시절의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문명과 에게-그리스문명, 로마문명과 - 게르만족 침입 이후의 - 중세문명 정도로 생각해야지, 그 이상의 비약은 곤란하다고 말씀하실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Hegel이 그냥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일시적으로 흥륭했던 몇몇 문명들과 그 지나간 역할들만을 설명하기 위해 위와 같은 네개의 제국들을 자기 '법철학원리'책의 대단원에 열거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Aufl., 1955, Hamburg, Vorrede, S. 17.
사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이미 수십수백가지의 해석이 쏟아져나와 다투는 상태라서 나도 어떤 해석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힘이 든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의 경우 Marx-Lenin을 신봉하면서 그 철학적 원조로서의 Hegel까지 경배해마지 않는 정통좌파 지식인들(예를 들면 내 고려대학교 선후배, 동기들)은 이 구절에서 Hegel이 '실천의 우선성'을 강조했다고 받아들이고 자신은 낮에는 용감한 호랑이, 밤에는 영리한 올빼미라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게 보통이지만 (우읍! 토할 것 같애~ -_-), 이에 반해 Herbert Marcuse는 이 구절에서 어느 늙은 철학자의 자기체념을 읽어내기도 했고, Louis Althusser는 오히려 이 구절에서 Hegel이 종래 모든 철학자들의 단순형이상학적 사고와 그 우매함, 무기력함을 비웃으면서 변증법에 의한 전지전능으로 모든 지상의 것(예를 들면 법이나 국가와 같은 것)을 다 파악해버린 다음에야 여유있게 날개를 펴고 유유히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철학자 이상의 철학자로서의 자기자신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과 자아도취적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Minerva의 올빼미는 Hegel 자신이라는 것이다.
*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Nietzsche-W Bd. 2, Von den Gelehrten, S. 380-381
*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Nietzsche-W Bd. 2, Von den drei Verwandlungen, S. 293.
* Nietzsche,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Erster Band, Nietzsche-W Bd. 1, § 225, S. 584-585
* Nietzsche, Morgenröte, Vorrede, Nietzsche-W Bd. 1, § 2, S. 1012.
* Nietzsche, Die fröhliche Wissenschaft, Vorrede zur zweiten Ausgabe, Nietzsche-W Bd. 2, § 3, S. 13.
- 원래는 이번 회로서 Hegel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으나, 예기치 않게 '법철학원리'에 관한 설명의 분량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용을 나눠서 다음 6회에서 Hegel에 관한 정리를 마쳐야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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