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gel에 관한 정리 (6)
2003-09-27 17:08:18


- 이하의 글은 2003년 7월 11일부터 2003년 9월 29일까지 저의 "개인낙서장"에 일곱편으로 나누어 게재했던 저의 Hegel에 관한 잡글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법철학원리'를 출간한 이후 Hegel은 이제 그에게 최고의 영광과 권위를 부여해준 Berlin대학에서 연구 및 강의활동에 전념하면서 우수한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열과 성을 다 바치기 시작한다. 그 결과, 당시 Berlin대학에서는 Hegel만큼이나 아주 유명한 철학자였던 Schopenhauer도 한창 열강을 하고 있었지만, Hegel의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와서 강의실이 미어터질 정도였던 반면 Schopenhauer의 강의실에는 수강생이 거의 없어 파리를 날려야 했다고 할 정도로, 당시 Hegel의 인기와 영향력은 Berlin 및 독일 전체를 압도하게 되었다.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무명의 고등학교 교장선생에 불과했던 어느 늦깎이 신진 철학교수가 정말이지 눈깜짝할 사이에 독일 철학계를 사실상 평정해버린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밑에서 그의 연구활동을 보조하거나 그의 연구지도로 박사학위논문을 쓴 수많은 제자들이 그 이상 극진할 수 없을 정도로 존경심 가득한 찬사를 Hegel 그에게 경쟁적으로 바쳤으며, 나중에 스승으로부터 독립해서 다른 대학에 교수로 자리를 잡은 뒤로도 그 제자들이 스승 Hegel에게 최고의 경의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는 생각보다 인품도 후덕했고 제자들한테도 꽤 대접이 좋은 스승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실 우리의 경험에 비춰볼 때, 비록 학자가 아무리 실력이 좋고 수완이 좋다 하더라도 자기 제자들이나 후배들한테 불친절하고 야박하게 굴면 사회적으로 별로 높은 존경을 못 얻게 돼있는 반면에, 아무리 이념, 행태면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 학자라 하더라도 자기 제자들이나 아랫사람들에게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너그럽게 대해주고 하면 사회적으로 대단한 존경과 인망을 얻게 되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볼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 왜 옛날에 서울시장하고 한나라당 총재하던 조순씨를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던가? 노인네가 생각보다 인품은 아주 좋았거나 제자들한테는 잘해줬던 모양이라고... -_-;;)

그러나 이렇게 국가와 국민 양자 모두로부터 폭넓은 후원과 사랑을 받게 돼버린 Hegel은 그렇게 이뤄낸 자기 성취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그렇게 눈부시게 출세해버린 자기 인생이 너무나 행복한 것으로 느껴지게 된 때문인지, 아니면 '이렇게 과격하게 강의해도 내 강의실에 계속 사람이 들어차나 보자'하는 궁금증이 발동했기 때문인지, 이제는 자기 강의 속에서 오버에 오버를 거듭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그의 숭배자들로만 가득 둘러싸인 Berlin대학 강의실에서 그가 강의했던 여러 내용들은 나중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 '역사철학강의' '미학강의' '종교철학강의' '철학사강의'라는 제목의 책들로 인쇄, 출판되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전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과 파급력을 행사했던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라는 책은 Hegel이 말년에 그의 강의 속에서 얼마나 오버를 거듭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까지 일컬을 수가 있을 정도다.

어떤 사람들은 Hegel의 '강의'시리즈가 Hegel의 직접저서가 아닌 Hegel 제자들에 의한 간접문헌이라는 이유로 제자들에 의해 왜곡과 윤색이 많이 개입되었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이 '역사철학강의' 책이 Hegel철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다른 책들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있는 편인데,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먼저 읽어봤던 Hegel의 저서가 바로 이 '역사철학강의'이기에, 이 '역사철학강의'가 내 개인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런지도 모를 일이겠다. (내 고교생시절 우리 집에는 나의 아버지께서 사놓으신 두꺼운 철학전집류의 책들이 꽤 많이 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전집류 철학서들 가운데에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었던 Hegel의 저서가 바로 이 '역사철학강의'라는 책이었다).

사실 이 '역사철학강의'라는 책은 Hegel 특유의 난삽한 문체가 아니라 그의 수재형 제자들이 갈고 닦아놓은 유려한 문체로 기록되어있는 책이라서 그런지 나같은 문외한들에게조차도 이해가 쏙쏙 잘되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경우 우리는 그 제자들의 명료한 문체덕분에 Hegel철학의 결점을 더욱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실제로 이 책에서 우리 눈에 번쩍 뜨일만한 여러 문장들을 예로 들자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r stirbt nicht bloß natürlichen Todes, denn er ist nicht bloß einzelnes Individuum, sondern geistiges, allgemeines Leben; ... Der Grund, warum dies verschieden ist vom einzelnen, natürlichen Individuum, ist, weil der Volksgeist als eine Gattung existiert, daher das Negative seiner in ihm selbst, in seiner Allgemeinheit zur Existenz kommt." (민족정신은 단순히 자연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족정신은 단순한 개별적 개체가 아니라 정신적, 일반적 생명이기 때문이다. ... 왜 민족정신이 개별적, 자연적인 개인과 다른가 하는 이유는 민족정신이 하나의 종으로 존재함으로써 그 부정적인 것이 그 자신 속에서, 그의 일반성 속에서 존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100-101

"In der Weltgeschichte kann nur von Voelkern die Rede sein, welche einen Staat bilden. ... Der Staat ist die goettliche Idee, wie sie auf Erden vorhanden ist. ... nur der Wille, der dem Gesetze gehorcht, ist frei, denn er gehorcht sich selbst und ist bei sich selbst und frei." (세계사에서는 하나의 국가를 건립한 민족들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 ... 그 국가는 신적인 이념이며 그 이념이 지상에 어떻게 존재하느냐이다. 의지는 그 법률에 복종할 때에만 자유롭다. 왜냐하면 그 의지는 자기 스스로에게 복종하며 스스로의 곁에 있어 자유롭기 때문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6-57

"Die Religion ist der Ort, wo ein Volk sich die Definition dessen gibt, was es für das Wahre hält. ... Die Vorstellung von Gott macht somit die allgemeine Grundlage eines Volkes aus. ... Deswegen ist es, dass der Staat auf Religion beruht." (종교는 한 민족이 진리를 규정하는 장소이다. 신의 관념은 그로써 민족의 일반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70

"Dieses Gute, diese Vernunft in ihrer konkretesten Vorstellung ist Gott. Gott regiert die Welt, der Inhalt seiner Regierung, die Vollführung seines Plans ist die Weltgeschichte. Diesen will die Philosophie erfassen... Vor dem reinen Licht dieser goettlichen Idee, die kein bloßes Ideal ist, verschwindet der Schein, als ob die Welt ein verrücktes, toerichtes Geschehen sei. Die Philosophie will den Inhalt, die Wirklichkeit der goettlichen Idee erkennen und die verschmähte Wirklichkeit rechtfertigen. Denn die Vernunft ist das Vernehmen des goettlichen Werkes." (그 구체적인 상상 속에서 이러한 미덕, 이러한 이성은 바로 신이다. 신은 세계를 통치한다. 신의 통치의 내용, 신의 계획의 수행은 바로 세계사이다. 이것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철학이다. ... 단순한 이상이 아닌 이러한 신적인 이념의 순수한 빛 앞에서, 가상은 사라져버린다. 마치 세계가 광기 어린, 어리석은 현상인 것처럼. 철학은 그 내용, 신적인 이념의 현실성을 인식하려 하고, 그 거부된 현실성을 정당화하려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신의 작품을 지각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

"Der Geist aber hat sich ein ausdrückliches Bewusstsein davon zu geben, und der Mittelpunkt dieses Wissens ist die Religion. Kunst und Wissenschaft sind nur verschiedene Seiten und Formen ebendessen Inhalts." (정신은 그러나 그에 관한 명백한 인식을 얻는다. 이러한 인식의 중점은 종교이다. 예술과 학문은 단지 바로 그 내용의 여러가지 측면이고 형식일 뿐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69

여기서 보듯 Hegel은 민족 - 국가 - 신 - 철학을 거의 신비적인 단정으로써 무리하게 엮어놓고서 이성 - 학문 - 예술 등을 그 아래에다 종속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뒤집고 다시 읽어보더라도 그러한 주장들 아래에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신'의 실재성 여부 같은 것은 골치 아프니까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민족'이란 것이 과연 실재하는 개념인가를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공통된 문화공간이나 언어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떤 인적 집단 같은 것만을 어렴풋하게 떠올릴 뿐이고, 거기에 일정정도의 현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긴 하면서도 거기에 어떤 절대적인 의미까지 부여하지는 않으려 할텐데, Hegel은 너무나도 단정적으로 '민족' 뿐만 아니라 '민족정신(Volksgeist)'까지 언급하면서 거기에 개인보다 우월한 고차원적 실체로서의 절대적인 지위까지도 가차 없이 부여해버린다. 한마디로 단일한 혈통과 조상, 언어의 통일성에 입각한 어떤 군집적 문화현상으로서의 민족개념을 완전히 신성불가침의 종교적 개념 비슷하게 격상시켜버린 것이다.

거기다 Hegel은 민족과 국가를 하나로 결합하면서, 국가를 건립하지 못한 민족(예를 들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소수민족들)에게는 - 아무리 그들도 나름대로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 지극히 하등한 지위만을 인정하려 한다. 다시 말해 민족간에도 국가를 만들었느냐, 만들지 못했느냐에 따라 각 민족의 격(格)이 있고 수준차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김민웅 목사나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 같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Hegel도 신비로운 절대주체로서의 '민족이성' 내지 '국가이성'을 운운하고, 개인은 이러한 민족, 국가와 온전한 유기적 동일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이러한 민족, 국가의 법률에 복종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복종하는 것으로서, 이는 그 개인에게 예속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유가 된다는 궤변을 Hegel은 늘어놓기에 이른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파업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제한당한 노동자들, 학자들, 예술가들의 경우 국가와 자기 자신이 한몸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고서, 국가를 위해 자기 개인들의 기본적 권리인 파업의 자유, 학문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할 때에야, 그럴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진정으로 국가와 함께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주장을 Hegel은 편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개인이 국가를 위해 교수형을 당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은 본래 국가와 일체이기 때문에 그러한 죽음으로써 그는 더욱 더 자유로워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된다. 사람이 애국심만 갖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그렇다면 예를 들어 국가와 일체가 될 수 없는 그 개인의 다른 부분들은 어떻게 하는가? 가족과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독창적인 예술욕구 기타 등등은 졸지에 애국심보다 낮은 가치로 전락되고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Hegel은 민족을 신성시할 뿐 아니라 이제는 민족을 종교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마치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처럼 '하나님 아버쥐씨여, 우리 민~족을 구원하쏘~셔! 우리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신~앙의 길로 이끌어주쏘~셔!'하는 설교까지 늘어놓기 시작한다. 물론 Hegel은 나름대로 이에 대해 여러가지 고상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종교가 없는 모든 민족(예를 들면 대다수의 동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흑인 등)은 자기 민족의 진리를 그 어느 곳에서도 밝게 규정할 수가 없고, 우리의 이성(Vernunft) 역시도 종교 내지 변증법적인 통일의 원리와 결합되지 않는 한 단순한 오성(Verstand)에 지나지 않는, 모든 사물을 분리, 고립시키고 해체시키는 화근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그러한 이성 또는 오성에 너무 의지하지는 말아야 하며, 그때문에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질서인 신의 질서에 이러한 이성을 복속시킴으로써 변증법적인 발전과 함께 존재의 근원인 영성, 신에 도달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결국 Hegel의 입장에서 이성이란 신앙과 결합할 수 있을 때에만 최고의 인간주체능력으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과학이나 예술 역시도 종교 앞에 복종할 수 있을 때에만 이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구실을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니, 과학적 인식과 예술적 미감은 이제 Hegel에 의해 단순히 종교적인 엄숙함 밑의 부수적인 지위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철학도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을 이끌어갈 수 있을 때에만 최고의 학문이자 만학의 제왕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가 있게 되는데, 나는 이렇게 Hegel처럼 인간의 지적 욕구나 심미적 욕구를 종교적 통합이나 국가적 통합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야말로 권력지향적이며 목적지향적인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어떤 통일적인 권력에 동화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수많은 다양한 특수성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특수성과 개별성에 연결된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심미적 능력은 더 이상 자기유지나 자기를 확대한 어떤 '큰 자신' '큰 가족'의 굴레에 얽매여있지 않고, 오히려 그로부터 벗어나서 자기에게 낯선 바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며 그로써 자신에게 열린 세계를 꾸준히 개척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고 싶은 게 내 입장이긴 하지만, 이 세계에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 못지 않게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역시도 무척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 종교라는 게 마치 종교 아닌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Hegel식의 이러한 사고는 내게 지나친 동일성의 억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나같은 무신론자에게 있어서 종교란 것은 흔히 지양되어야 할 환상에 불과할 뿐이며, 종교가 인간 또는 자연보다 더 우선시될 수는 없는 것이고, 특히나 종교로 인해 인간이 자기현실의 비참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것은 진보적이긴커녕 퇴행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소 진부하지만 이에 관한 Marx와 Nietzsche의 원문을 직접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Das Fundament der irreligioesen Kritik ist: Der Mensch macht die Religion, die Religion macht nicht den Menschen. Und zwar ist die Religion das Selbstbewusstsein und das Selbstgefühl des Menschen, der sich selbst entweder noch nicht erworben oder schon wieder verloren hat. ... Die Religion ist die allgemeine Theorie dieser Welt, ihr enzyklopädisches Kompendium, ihre Logik in populärer Form, ihr spiritualistischer Point-d'honneur, ihr Enthusiasmus, ihre moralische Sanktion, ihre feierliche Ergänzung, ihr allgemeiner Trost- und Rechtfertigungsgrund." (종교에 대한 비판의 기초는 다음과 같은 사실 위에 있다 :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지, 종교가 인간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획득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미 자기 자신을 다시 상실해 버린 인간의 자기의식이고 자기감정이다. ... 종교는 이 세계의 일반이론이요, 이 세계의 백과사전적 개요이며, 통속적 형태를 띤 이 세계의 논리학이요, 이 세계 유심론의 명예지점이며, 이 세계의 열광이요, 이 세계의 도덕적 제재이며, 이 세계의 장엄한 보충이요, 이 세계의 일반적 위안근거이자 정당화근거이다.)
* Marx/ Engels,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Karl) Dietz Verlag, Berlin, Band 1, 1976, S. 203

"Die Kritik hat die imaginären Blumen an der Kette zerpflückt, nicht damit der Mensch die phantasielose, trostlose Kette trage, sondern damit er die Kette abwerfe und die lebendige Blume breche. Die Kritik der Religion enttäuscht den Menschen, damit er denke, handle, seine Wirklichkeit gestalte wie ein enttäuschter, zu Verstand gekommener Mensch, damit er sich um sich selbst und damit um seine wirkliche Sonne bewege. (종교에 대한 비판은 사슬에 붙어 있는 가상의 꽃들을 뜯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없는 사슬을 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던져버리고 살아있는 꽃을 우리가 꺾어 가지기 위해서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인간을 미몽에서 깨워 일으킨다. 이는 인간이 각성된, 분별 있는 인간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자신의 현실을 형성해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그리고 그의 현실적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Marx/ Engels,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Karl) Dietz Verlag, Berlin, Band 1, 1976, S. 204

"Man kann es von vornherein als wahrscheinlich ansetzen, dass von Zeit zu Zeit an bestimmten Stellen der Erde fast notwendig ein physiologisches Hemmungsgefühl über breite Maßen Herr werden muss, welches aber, aus Mangel an physiologischem Wissen, nicht als solches ins Bewusstsein tritt, so dass dessen ≫Ursache≪, dessen Remedur auch nur psychologisch-moralisch gesucht und versucht werden kann - dies nämlich ist meine allgemeinste Formel für das, was gemeinhin eine ≫Religion≪ genannt wird.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이 세상의 어떤 곳에서 거의 필수적으로 생리적인 억압의 감정이 광범한 대중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 그러나 그 감정은 그에 관한 생리적 지식의 결여로 인해 그 자체로 의식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원인과 치료는 심리적-도덕적으로 모색되고 시도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대개 '종교'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공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 Nietzsche, Zur Genealogie der Moral, Nietzsche-W Bd. 2, S. 871

"noch nie hat eine Religion, weder mittelbar noch unmittelbar, weder als Dogma noch als Gleichnis, eine Wahrheit enthalten. Denn aus der Angst und dem Bedürfnis ist eine jede geboren, auf Irrgängen der Vernunft hat sie sich ins Dasein geschlichen; (그 어느 때에도 종교는 간접적이건 직접적이건, 교리로서건 비유로서건 진리를 담아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공포와 욕구로부터 탄생하며, 이성의 잘못된 헤맴 속에서 현존재로 빠져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 Nietzsche,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Nietzsche-W Bd. 1, S. 519

"typisch und unwandelbar sind Religion und Glaube, und da dieser alles beherrschte, alles in sein Gebiet hineinzieht, alles sich selbst assimiliert, so muss der gleiche typische Charakter notwendig auf alles sich erstrecken. Wie weit ist von jenem Geiste der unsrige abgewichen! Wie unfähig ist er eben deshalb, jenen zu erfassen! Daher die Missgeburten der modernen Historie. In ein Sieb kann man kein Wasser fassen... (전형적이고 고정불변적인 것이 종교와 신앙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자기 영역 속에 포함하며, 모든 것을 동화시키는 것으로서, 그와 같은 것의 전형적인 성격은 필수적으로 모든 것에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신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멀리 벗어나게 되었는가! 얼마나 그 정신은 바로 그때문에 우리의 정신을 파악하는 데 무능하게 된 것이란 말인가! 따라서 이것은 근대적 역사의 잘못된 탄생이다. 체로 물을 아무리 걸러봤자 물은 잡히지 않게 돼있는 것이다...)"
* Curt Paul Janz, Nietzches Biographie: III. Der engere Basler Kollegenkreis, München, 1978, S. 21.


물론 나는 Marxist도 아니고, Nietzschean도 아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문헌들을 인용하면서 내가 최소한 주장하고 싶은 것도 결국은 종교를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는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그냥 다음과 같은 소박한 정도의 주장에 그치게 될 뿐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Hegel이 그토록 신주단지처럼 생각하는 종교의 강압적 동일성에 대해 솔직히 이렇게 만만찮은 반대적 움직임들도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들도 각 개체가 자기 나름대로의 동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유의지로서 존중이 되어야 하는 만큼, Hegelian들은 설령 자신이 종교에 확신을 갖고 있고 그러한 신앙을 정당화하는 자신들의 철학에 추호의 의심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 아닌 다른 것들과 공존할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종교 아닌 것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통일을 강압할 것이 아니라 열린 자세를 가져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Hegel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해서도 나는 마찬가지의 비판을 하고 싶다. Hegel은 마치 민족(Volk, Nation)이 먼저 생겨나고 그 여러 민족 중에 선진민족들에 의해서 국가(Staat)가 생겨난 것처럼 말을 했지만, 이것은 사실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민족이나 국가보다 부족(Stamm)이나 씨족(Geschlecht) 같은 원시적 혈연집단들이 더 먼저 생겨났고, 그 중에 마치 깡패집단이나 조폭집단처럼 싸움 잘하고 단결 잘하는 몇몇 부족이나 씨족들이 다른 부족이나 씨족들을 - 마치 김태촌이가 자기 동생 및 의형제들을 여럿 데리고서 목포에서 서울로 원정 나와 강남 및 종로의 여러 주먹패들을 싸그리 쓸어버리고서 '서방파'의 새 시대를 열었듯 - 잔인한 폭력으로 짓밟아버리고서 그 후에 다른 부족들로부터 효율적으로 '삥'을 뜯기 위해 국가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며, 그 국가조직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다른 여러 씨족들을 자기 지배권력 내부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뭔가 그럴 듯한 허구의 개념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민족'이라는 개념인 만큼, 사실 민족이 국가보다 먼저라고 생각하거나 민족이 뭐 그렇게 신성한 정신적 개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그냥 착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대개는 주사파 NL들이지만 PD들 중에서도 진중권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함)은 민족과 국가를 명백히 구분해야 하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국가주의는 극우보수에 해당하지만, 민족주의는 진보좌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민족적 사대적 국가주의는 극우보수이고, 반사대적(반미적) 민족적 국가주의는 진보좌파가 되므로, 이회창이나 최병렬처럼 국가주의를 친미사대주의에 결합시키거나 그런 정치집단에 동조한 철학자가 있다면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극우주의자라고 봐야 하겠지만, 김구 선생이나 장준하 또는 저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국가주의를 반외세 민족주의와 결합시키거나 그러한 민족적 정치집단과 연대해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는 진보좌파라고 봐야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Hegel 선생께서는 사대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이신 만큼(?), 위대한 진보좌파일 뿐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정치현실을 이념적으로 설명하는 데에도 매우 유효한 가르침을 주시는 철학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보기에 이러한 지배적 (한국적) 좌파이론은 비교적 그럴듯하긴 하지만 역시 완전한 착오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고? 우선 이러한 견해는 이회창이나 최병렬을 반민족적 사대적 국가주의자로 몰아가고 있지만, 나는 이회창이나 최병렬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민족적인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권계급에 속한 사람들로서 상당히 '반서민적'이거나 '반노동계급적'인 사람들이었을지는 몰라도 '반민족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친미필요론도 나름대로 그들이 우리 민족(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상층부)의 이익을 생각하여 주장한 것이었지, 미국에 굴종하고 아부하기 위해서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고, 다시 말해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기층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자기들의 호의호식 기타의 특권을 누리려 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으며, 거기에 '민족'이나 '국가'를 그럴 듯한 자기지배의 명분으로 사용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박정희의 '민족중흥론'이나 조갑제의 '유목민족 세계제패론', 김일성의 '민족해방론', 김정일의 '민족령도론' 등을 함께 상기해보자.)

사실 많은 분들께서는 민족과 국가가 마치 확연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들을 하시는 것이 보통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나도 정말 어느 정도까지 설득하고 논박을 해드려야할지 참 막막하기가 이를 데 없을 지경이다. 물론 민족과 국가가 개념적으로 분리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미국같은 다민족국가, 우리 한민족같은 2국가1민족의 경우 (물론 법적으로는 '대한민국'만이 우리에게 합법적인 국가이므로 한민족은 1국가1민족인 경우가 된다), '민족=국가'의 공식은 현실적으로 엄연히 부정되는 것이 사실이며, 이런 점에서 민족과 국가를 개념적, 현실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일단 수긍할 만한 시도로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민족과 국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 뒤 바로 몇초, 몇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러한 민족과 국가는 하나로 결합되어야 한다는("우리는 한겨레다" "조썬은 하나의 조국~" "때~한민국" 등등의) 주장을 해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있어서 민족과 국가는 분리되면서도 분리되지 않는 기묘한 관계를 갖게 되는 셈인데, 이런 점에서 민족과 국가의 분리문제는 사실적 차원과 규범적 차원을 한데 묶어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가 되건만, 이들은 사실적 차원과 규범적 차원을 자기들 멋대로 분리한 후 상대방이 규범적 차원과 사실적 차원을 종합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이를 오직 사실적 차원으로만 맞받아치는 반칙을 저지르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민족=국가'의 Hegel주의적 일치 필요성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소련, 중국 같은 다민족국가가 필연적으로 패권적 제국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한민족의 경우 국가가 둘이다 보니까 극심한 왜곡과 균열, 희생과 소모를 정치, 사회상황에서 감수해야 했던 것만 보더라도, 뿔뿔이 흩어졌던 하나의 민족이 단 하나의 국가로 다시 통일되거나, 수많은 민족들을 집어삼켰던 여러 제국주의 대국들이 각 민족별로 다시 작게 나뉘어지면서 각 민족의 자결에 따라 세계질서를 재편하자는 민족주의적 사고, 다시 말해 김구 선생님스러운 사고는 심지어 세계의 평화와 진보에 공헌하리라고 볼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믿음이 현실에 적합한 것일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내가 보기에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데 문제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세계의 민족들 가운데는 앵글로색슨족, 게르만족, 왜족(일본인), 러시아족들처럼 전세계에 분포된 인구가 1억을 거뜬히 넘어가는 대형 민족들도 매우 많으므로 (심지어 앞으로 우리나라의 안보를 미국 이상으로 다시 위협할 것처럼 보이는 중국의 한족은 현재로서도 인구가 10억을 훨씬 넘어가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사고는 우리의 자존을 지켜주기 보다 그러한 대형 민족들의 패권주의를 정당화해주는 고리로서 악용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우리 민족도 인구를 더 불리든가... -_-;;)

내가 볼 때 김구, 장준하, 백기완, 문익환 목사 같은 사람들은 다같이 '민족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로서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에 대해 국가를 더 우선시하는 데에 있어서는 박정희, 조갑제 같은 극우주의자들과 별 차이를 갖지 않으셨던 분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을 추종하는 대학생들은 '우리도 빨리 핵미사일을 개발하여 미제의 심장에 불벼락을 내리치자'는 선동문구를 '민족정신의 회복'을 위해 외치고 다니기도 했고, 미군을 살인하고 파묻는 플래쉬 무비를 만들어 '애국심' '민족자주' 등의 명목으로 인터넷공간에 배포하기도 했으며,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서도 - 물론 그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 외국인노동자들의 불법입국을 막음으로써 우리 민족의 청년실업을 더 우선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등은 원래 모두 중국대륙에 수도를 갖고 있었고, 일본열도 역시 원래는 우리 식민지였으며, 심지어는 만주땅, 몽고땅 뿐만 아니라 대만, 홍콩, 마카오, 상하이, 뻬이징, 산동반도 등도 모두 몇백년전까지는 우리땅(백제유민의 땅)이었으니, 군사력을 키워서 이러한 고토를 시급히 수복해야 한다고까지 주장들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들 민족주의자들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친미사대주의세력이나 친일사대주의세력을 처단하자는 그들의 주장이 그 자체로서 크게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친미주의자나 친일파가 나쁘다는 이유는 그들이 '민족'의 자존을 저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인간에게 억압이나 착취행위 등을 저질렀거나 그러한 나쁜 일이 저질러지도록 방조한 잘못을 저질렀던 것에 더 있다고 우리는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꼭 Hegel식의 '민족'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편적인 인륜에 비추어서 충분히 선악판단을 할 수 있는 일이지, Hegel식의 민족주의가 거기에 꼭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Hegel은 이 민족이라는 관념을 종교에까지도 결합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민족주의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NL진영 사람들이 들으면 아주 코웃음칠 말이기도 하려니와 (NL 주사파들의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다른 정파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는 기독교의 본질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예수가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의 손에 붙잡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었겠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유대민족은 예수에 대해서 로마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그들 유대민족을 구원해줄 민족영웅이나 Messiah로서의 역할을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그들의 민족주의적 요구에 대해 예수가 '선지자 Elisa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Elisa는 그 중에 단 한 사람의 병도 고쳐주지 않고 오직 시리아 사람 Naaman의 문둥병만을 고쳐주었느니라'하고 말하며 민족주의 노선을 거부했었기에, 바로 그때문에 유대민족의 친로마 기득권자들(예를 들면 조용기, 박찬성 목사 같은 사람들)과 유대 민족주의자들(예를 들면 문익환, 김민웅 목사 같은 사람들) 모두에게 예수가 정치적으로 포위되어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된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Hegelian들이 스스로를 진정 기독교도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라도 민족주의는 거부해야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도무지 성경, 그 중에서도 특히 신약성경을 되풀이 읽어야 하는 기독교도들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영적인 나라를 자기 신앙 속에서 만들어가는 데 민족이 무슨 소용이고, 국가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가 보편적 세계종교여야 할 기독교에서 남달리 신앙적인 민족이 어디에 있으며, 남달리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거나 하느님의 사명을 독점적으로 떠맡아야 하는 국가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기독교도들의 상투적 표현에 따르면 '이단'이고 '사이비'이며 성서를 왜곡하는 '마귀의 미혹'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민족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이면서도 기독교신자임을 자처하는, 그래서 기독교신앙을 그런 비신앙적 가치(민족, 국가)에 외람되게 갖다붙이는 Hegel은 마치 낮에는 목사, 밤에는 올빼미로 변하는 마술사와도 같이, 겉으로는 기독교 신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이 아니라 계명성(Lucifer)을 숭배하는 Satanist이며, 마치 Satan 역시도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Messiah)로 상징된다고 Ezekiel서에 나와있듯, Hegel 역시도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다워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성산에 올라서는 자격까지 얻었으나, 자기의 지혜로움과 아름다움을 보고 교만해져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배역하고 민족의 주문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악마의 사제장이 된 것이라고까지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물론 이런 말을 듣고 Hegel주의자들은 격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를 비롯한 우리 민족구성원 대부분은 기독교신앙이 있고 없고를 불문하고 '악마'란 말에 별로 거부감들이 없는 사람들이니 Hegel주의자 여러분들께서는 제발 진정하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난 사실 작년 월드컵때 붉은'악마' 회원의 절반 가까이가 기독교신자라는 말을 듣고 순간 아찔해지면서 '야~ 우리나라 기독교도들 정말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전세계 기독교신학자들이 모두 모여서 한번 우리나라 기독교도들에 대해 연구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웃었던 기억도 나는데, 만약 다음 독일월드컵때 우리나라 4천만 국민 모두가 '붉은 헤겔악마' 회원이 되어 위에는 뻘건 옷 입고 머리에는 악마뿔 달고서 가슴에는 Hegel사진이나 올빼미 그림 붙이고서 '때~한민국' 외치며 펄쩍펄쩍 뛰고 환호하면, 우리나라 Hegel주의자들, 기독교신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절대이성, 역사정신이며, 민족정신의 변증법적 통일이다!'하고 흐뭇해할 확률이 높다고 나는 보고 있을 정도이다. ^^)

사실 위에서는 나도 좀 과격하게 Hegel을 비판하긴 했지만, 설령 백번 양보해서 Hegel의 민족주의가 그 자체로 진보적이고 (예를 들면 반미자주나 남북통일을 위해서 민족주의가 진보적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Hegel의 주장처럼 민족주의가 종교와도 온전히 결합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Hegel의 민족주의를 여전히 찬성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왜? 그 이유는 Hegel의 민족주의가 너무나 유럽중심적이고, 독일중심적이며, 타문화, 타사상, 타종교에 대한 편견과 무시, 몰이해로 가득하고, 심지어는 같은 기독교내에서도 특히 천주교에 대한 과도한 공격을 담고 있어서, 서양인종이나 서양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우리나라 내부의 천주교/개신교간 종교적 평화를 깨뜨릴 가능성까지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Völker von trübem Bewusstsein oder deren trübe Geschichte ist nicht Gegenstand, wenigstens nicht der philosophischen Weltgeschichte..." (혼탁한 의식을 가진 민족들 또는 그 혼탁한 역사들은 세계사, 최소한 철학적인 세계사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45

"In ähnlichem Sinne ist chinesische Philosophie, insofern sie das Eine zugrunde legt, für dasselbe ausgegeben worden, was später als eleatische Philosophie und als spinozistisches System erschienen sei; ... Beispiele von Tapferkeit, ausharrendem Mute, Züge des Edelmuts, der Selbstverleugnung und Selbstaufopferung, die sich unter den wildesten wie unter den schwachmütigsten Nationen finden, werden für hinreichend angesehen, um dafürzuhalten, dass in denselben ebensosehr und leicht auch mehr Sittlichkeit und Moralität sich finde als in den gebildetesten christlichen Staaten, usf. ... die Weltgeschichte bewegt sich auf einem höheren Boden, als der ist, auf dem die Moralität ihre eigentliche Stätte hat, welche die Privatgesinnung, das Gewissen der Individuen, ihr eigentümlicher Wille und ihre Handlungsweise ist. (비슷한 의미에서 중국철학은, 그것이 단일자만을 기초로 하고 있는 한, 엘레아철학이나 스피노자체계와 같은 것이다. ... 용기, 인내심, 의리, 몰아와 자기희생과 같은 예는 가장 난폭한 민족에서 뿐만 아니라 가장 소심한 민족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이는 그런 덕목 속에서 인문교양 있는 기독교국가들에서보다도 더 많은 양속과 도덕이 쉽게 발견된다는 인식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가 더 높은 차원으로 운동하는 것은, 도덕이 사적인 신념, 개인의 양심, 그 특유의 의사 그리고 행위방식 같은 고유의 소재지를 가질 때부터 가능한 것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90-91

"dass die Orientalen nur gewusst haben, dass Einer frei, die griechische und römische Welt aber, dass einige frei sind, dass wir aber wissen, alle Menschen an sich, das heißt der Mensch als Mensch sei frei, ist auch zugleich die Einteilung der Weltgeschichte... (동양인들이 단지 한 사람의 자유만을 알았고, 그리스세계와 로마세계는 단지 몇몇사람의 자유만을 알았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들이 즉자적으로, 다시 말해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동시에 세계역사의 분류이기도 하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32

"Die Weltgeschichte geht von Osten nach Westen, denn Europa ist schlechthin das Ende der Weltgeschichte, Asien der Anfang." (세계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한다. 왜냐하면 유럽은 전적으로 세계사의 결말이며, 아시아는 그 시작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134

"Hierhin tritt dann das Germanische Reich, das vierte Moment der Weltgeschichte ein: dieses entspräche nun in der Vergleichung mit den Menschenaltern dem Greisenalter. Das natürliche Greisenalter ist Schwäche, das Greisenalter des Geistes aber ist seine vollkommene Reife, in welcher er zurückgeht zur Einheit, aber als Geist." (여기서 세계사의 네번째 시점인 게르만제국이 등장한다. 게르만제국은 인간의 나이로 치면 백발의 시기에 상응한다. 자연적인 백발의 노령기는 약함을 의미하지만, 정신의 노령기는 정신이 정신으로서 통일로 수렴하는 그의 완전한 성숙을 의미한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140

"Luther hatte die geistige Freiheit und die konkrete Versöhnung erworben, er hat siegreich festgestellt, was die ewige Bestimmung des Menschen sei, müsse in ihm selber vorgehen." (루터는 정신적인 자유와 구체적인 화해를 획득했다. 그는 인간의 영원한 규정이 바로 인간 자신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그의 성공과 함께 분명히 했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23

"Hier muss nun schlechthin ausgesprochen werden, dass mit der katholischen Religion keine vernünftige Verfassung möglich ist; denn Regierung und Volk müssen gegenseitig diese letzte Garantie der Gesinnung haben und können sie nur haben in einer Religion, die der vernünftigen Staatsverfassung nicht entgegengesetzt ist." (여기서 전적으로 말해져야 하는 것은 카톨릭이라는 종교와 이성적인 헌법이 함께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부와 민족은 서로 헌법이라는 최종적 담보를 가져야 하고, 그러한 담보는 오직 이성적인 국가헌법에 반하지 않는 종교 안에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1


우선 Hegel은 여기서 불교는 물론이고 같은 기독교내에서도 Katholik교회보다 Protestant교회가 더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교회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많은 사람들은 Katholik이나 Protestant나 둘 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두지 않을 수 없다. Katholik교회건 Protestant교회건 둘 다 교회들인데 무슨 큰 차이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으며, Hegel식의 변증법적인 세계진보에 Katholik교회보다 Protestant교회가 더 적합한지 여부, 그런 것을 Hegel이 자기 강의 속에서 굳이 밝혀야 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나로서는 선뜻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Katholik교회는 진보적이라기 보다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도무지 교황(Papst), 추기경(Kardinal), 대주교(Erzbischof), 주교(Bischof), 신부(Priester), 평신도로 내려오는 피라미드적 위계를 만들어놓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Katholik교회는 혁신적 사고나 평등적 사고에 대해 문을 닫아걸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Katholik의 성모 Maria숭배나 성자숭배(Heiligenvereherung) 같은 것도 도무지 불완전자들일 뿐인 이들 인간들을 마치 완전자인 신처럼 우상숭배하자고 하는 것 같아서 혼란이 느껴지고, 성찬식(Sakrament)에 쓰인 빵과 포도주를 사제가 축복하면 이것이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된다고 믿는 Katholik 특유의 성체변화(Transsubstantiation) 교리 역시도 그저 내게는 황당하게만 여겨질 뿐이다. 미신이나 물신숭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Katholik이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러한 Katholik이 여성들에게 신부(Priester)나 부제(Diakon)가 될 자격을 전혀 부여하지 않는, 지극히 성차별적인 전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주려고 해도 이러한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성차별적인 Katholik의 전통들은 근대의 자유로운 정신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므로, 이런 점에서 Katholik교회보다 Protestant교회에 더 이성적인 교회로서의 지위를 부여한 Hegel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가져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Protestant들이 Katholik들보다 무조건 더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내 생각에는 절대 그렇지가 않으며 Protestant들도 Katholik만큼 비이성적이거나 보수적인 면모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데, 내가 Hegel의 Protestant중심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가 존재한다. 그 예를 들어볼까?

예를 들면 Katholik들은 지난날 종교재판 등의 과오를 인정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비인간적인 사형제도에 대하여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침례교도(Baptist)들을 비롯한 많은 Protestant들은 아직까지도 사형제도를 지지하고 있으며 (죠지 부씨도 침례교도다 -_-;;), 그로써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것에 대해 찬성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또한 Katholik들은 창세기(Genesis)에 나오는 천지창조(Schöpfung)의 신화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그 대신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화론(Evolutionstheorie) 등을 수용하면서 오늘날의 세계관과 적절한 조화를 모색해나가고 있는 반면에, Protestant들은 아직도 창세기의 천지창조신화를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심지어 미국의 몇몇 연방주들 같은 경우는 공립학교 생물교과서에서 진화론에 관한 부분들을 아예 삭제해버리기도 했었다. 또한 Katholische Kirche에서 아직도 성직을 여성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Protestantische Kirche측에서는 맹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Protestantische Kirche에서도 여성목사들을 발견하기는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아니, Protestantische Kirche에서 여성들에게 성직을 개방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상당히 많은 Protestant들은 '네이~, 믿썹네다~'하는 식의 단순한 믿음만으로도 그냥 인간의 모든 구원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간편한 생각을 갖거나, 자기 감정을 노골적으로, 무절제하게 드러내는 성령세례, 성령대부흥회 같은 데에 참가하여 신비롭고도 이상한 방언(보다 근원적인 언어의 형식?)들을 '아갈갈갈갈갈갈~'하고 지껄여대는 군중제의 같은 것에 환호하거나 열광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Protestant들끼리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광적인 대중행사들이 정말로 짜릿하고 후련한 체험이 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같은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Protestant들의 모습들이 어쩐지 Katholik보다도 더 무서운 동일성의 폭력으로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개신교의 그러한 광적인 요소들이 유난히 극성스럽고 무절제한 감정폭발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에는 너무나 잘 들어맞아서, 한국개신교가 그토록 단기간내에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겠다.)

반면에 Katholik들은 그렇게 시끌벅적하지 않으며, 구원이란 게 주관적 확신이나 믿음만으로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식의, 제법 냉철하거나 신중한 신앙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실 Luther교건 성공회건 장로교건 뭐건 간에 Protestant교파들의 성립 및 발전배경들을 들여다보면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큰 몫을 차지했던 점을 부인할 수가 없고, 특히 불같이 타올랐던 근대의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고려해본다면 '교회는 전세계에 단 하나'라는 기치 아래 세계보편주의적 원칙을 고수했던 Katholik교회는 아무래도 근대의 새로운 국가주의적 분위기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성공회나 Luther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Protestant교파들은 절대군주들이나 지방영주들이 교황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민족국가를 확립하려 하던 시점에 잘 맞춰서 자기 교파를 성립시키고 발전시킬 수가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인 Hegel이 Katholik교회보다 Protestant교회를 훨씬 더 높이 추켜세웠던 것도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당연한 사실일 수가 있게 된다는 얘기이다.

문제는 Hegel이 자기 강의에서 천주교를 깔아뭉개고 개신교 전도사업을 폈건 어쨌건, 라틴인종보다 게르만인종이 더 우월한 인종이라고 주장했건 어쨌건, 그건 어차피 서양애들 자기네들끼리의 문제이니까 우리들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Hegel이 거기서 더 나아가 동양을 천시하고 서양의 동양에 대한 우월성을 공격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이 오직 1인의 자유만을 알았을 뿐 개인의 인권개념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동양은 서양보다 역사적으로 더 낮은 단계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 Hegel의 주장인데,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 솔직히 'Hegel은 서양인이니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하는 생각이 들긴 들면서도, '과연 서양이 그 당시 동양보다 그렇게 앞서가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문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Hegel이 살았던 그 시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조임금 시기 정도라고 볼 수가 있을 터인데, 과연 그당시 우리나라가 오직 파라오 한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집트의 람세스왕시절이나 오직 천자 한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중국의 진시황시절 같은, 미개한 고대왕국 정도의 모습만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라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역사지식은 무척 짧지만, 그래도 이에 관한 내 의견을 말해본다면, 그 당시 동양은 물질문명, 특히 건축술이나 전쟁술 등에 있어서 서양에 비해 많이 뒤쳐진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 자유의 측면에서만 살펴본다면, 나름대로 활기차고 풍부한 정신문화들을 발전시키면서, 비단 왕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각 고을의 양반지주들 역시도 각지방에 지배계급으로서 광범위하게 자리잡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자유를 어느정도는 충분히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생각이 된다. 그들 양반들은 이따금 왕에게 찍히더라도 잠시 귀양이나 갔다가 다시 관직에 복귀하든지, 아니면 고향에서 소작이나 계속 치든지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으므로, 수틀리면 왕에게 소신껏 상소문 올려서 자기 하고 싶은 말 다할 수도 있었고, 중인, 평민, 그리고 밑바닥 계급인 노비나 백정, 무당 같은 천민들도 나름대로는 자기 재산도 모으고 하면서 건강한 자기고유의 문화(예를 들면 판소리나 광대놀이 등의 서민문화)를 창출하고 살아가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Hegel의 생각처럼 당시 우리나라나 기타 동양사람들이 뭐 그렇게 '내 목숨은 상감마마의 것'이라느니 하는 식의 미개한 생각만을 갖고 살지는 않았으며, Hegel이 살아있던 당시 동양의 시대상이란 것도 왕이 죽으면 신하와 궁녀 등을 함께 순장시켜버리곤 하던 저 먼 옛날 고조선시절, 부여시절에나 통하던 시대상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당시의 동양은 나름대로의 사회적 발전을 꾸준히 이루어서 적어도 서양의 중세말기 정도의 사회발전단계까지는 착실히 밟아왔다고 봐야 옳게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Hegel 당시의 독일이 개인의 인권을 과연 얼마나 보장해주고 있었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라는 사정까지 우리가 감안해본다면, Hegel은 그 점에서 동양을 너무 (약 2천년 정도는 더) 얕잡아보고 있었다는 말을 우리는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동양철학, 다시 말해 중국철학이 개인의 해방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이었다는 Hegel의 주장 역시도 나로서는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은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동양철학은 만물을 인간적 의미로 윤색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과학적 이치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이 사물의 여러 이치들을 추상화, 논리화, 보편화시켜서 수학적, 논리적 이성으로 가다듬고 거기서 어떤 통일적인 원칙과 체계, 본질, 본성들을 끌어내는 데 유리한 요소들을 가졌던 반면, 동양철학은 이런 부분에서 사실상 무기력했음을 나는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철학이 거기에서 더 나아가 과연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철학이었다고까지 우리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있는 것일까? 내가 볼 때 Hegel의 철학 역시도 개인의 자유를 말로만 인정해줄 뿐이지,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공동체, 국가의 목적이 갖는 우위에 개인을 복종시킨 철학이었음을 감안해본다면, Hegel이 그토록 경멸하던 동양철학(특히 유가철학, 법가철학)이나 Hegel 자신의 철학이나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특히나 Hegel은 동양철학이 오직 단일자만을 기초로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펴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가 Hegel식의 유기체주의, 조직체주의가 Spinoza식의 단일체주의에 대해서 절대적 우월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는 편이지만, 설령 Hegel식의 그러한 유기체적 사고가 Spinoza식의 단일체적 사고보다 더 우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러한 유기체적 요소가 왜 동양철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Hegel은 단정지어버렸던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동양철학 가운데서도 불교철학이나 노장철학, 음양오행가의 철학, 그리고 동양철학의 뿌리를 이루는 '주역' 같은 책들을 읽어보면 우리는 그 유기체적이고 생태학적인 세계관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어지는데, 왜 Hegel은 이러한 동양철학 모두를 싸잡아서 단일체적인 철학으로 몰아붙여버리고, 따라서 동양철학에 의해서는 결코 제대로 된 개인의 해방이나 사회의 진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식의 과격발언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볼 때 동양사회가 오늘날 유난히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로 흘러가게 된 원인은, 근세 이후 민주화운동의 정체나 세습왕정의 오랜 존속으로 인하여, 유가철학이 동양사회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사정 등에 그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하지, 이를 두고 동양철학 전체에 어떤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Hegel처럼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Hegel이 유럽, 특히 German제국에 '세계사의 결말(Ende der Weltgeschichte)'이라는 종국적 지위를 부여하고 그 이상의 변증법적 발전은 세계사에 다시 없는 것으로 못박아버린 것은, Hegel 스스로가 자기 변증법적 발전의 논리를 배신해버린 것으로서, 유럽문명과 German민족에 대한 Hegel의 환상적 자만이 이 경우에는 도를 지나쳤다는 비판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이는 Marx가 공산주의사회를 변증법적 역사발전의 최후단계로 설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뛰어넘는 역사발전의 가능성을 차단시켜버리는 폐쇄적 사고를 보여준 것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Hegel의 역사철학에서 우리는 기독교적인 종말론이나 천년왕국론에 부합하는, 어떤 기묘한 신비주의나 문화적, 종교적 자기중심주의를 읽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Hegel이나 그의 추종자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Hegel은 German제국을 더이상 모순될 것도 지양될 것도 없는, 역사단계에서 완전한, 최종적인 실체로 규정지을 수가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German제국은 Hegel의 역사철학 속에서 별안간 모든 변증법들을 다 중단시켜버리는, 변증법적 발전운동의 최종적 먹이사슬로서 떠오를 수가 있었단 말인가? 오직 German제국만이 인간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그런 세계사적 사명과 역할을 유독 German제국만이 담당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도무지 어떻게 Hegel은 그러한 역사적 과정 전체를 예언할 수 있었으며, 왜 그러면서도 Hegel은 자기 철학 속에서 인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는 식의, 모순된 주장을 늘어놓을 수가 있었단 말인가? 사실 Hegel의 말대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인 게 사실이라면, 역사의 경로는 예정된 궤적일 수가 없는 것이며,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가능성과 변칙의 집합들을 가진 개방된 경로의 체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또한 Hegel은 German제국에 역사적인 노령기, 정신적인 완숙기의 연령을 부여하면서, 그 이전의 여러 제국들은 유아기나 청소년기 정도의 역사적 단계밖에 안되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나는 이러한 Hegel의 비유에서 자기 나이 많다고 헛기침해대며, 어린 아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케케묵은 훈계 늘어놓기를 즐겨대는, 아주 재미없고 권위적인 노인네들의 꽉 막힌 모습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 German제국은 노년이고 Asia제국은 유년이라니, 이것이 설령 각 민족의 평균적 정신연령을 산출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체 인간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사상의 경화나 감각의 둔화, 이성의 화석화 이외에 과연 어떤 정신적인 무언가를 필연적으로 선사해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드물지 않게 10~20대 시절에는 아주 창의적이고 도덕적으로 빛나던 개인의 탁월성이 30~40대를 넘어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버려 그 개인을 매우 추해지고 평범해지게끔 만드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기도 했거니와, 오히려 영원한 동심으로 새롭게 회귀하거나 순수한 상상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자세야말로 모든 게 때묻고 겉늙어버린 이 세상에서 더 희귀한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가져보게 된다. 영어식으로 말하자면 'Ageism'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연령서열적 사고는 사실 노인을 공경하자는 아름다운 의도라기 보다 오히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해 순전히 공짜로 나이대접을 받으려 하는 '공짜심리'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인데, 사실 이런 생각과 함께 내 머리에 떠오르는 철학자 Nietzsche의 말들을 여기에 적어본다면, 이는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 하겠다:

"warum sollte man nicht wie die Kinder reden? (어째서 인간은 어린 아이처럼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Nietzsche-W Bd. 2, S. 300

"Im echten Manne ist ein Kind versteckt: das will spielen. (진정한 남자에게는 하나의 아이가 숨겨져 있다. 그것도 놀고자 하는 아이가.)"
*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Nietzsche-W Bd. 2, S. 329

"Unschuld ist das Kind und Vergessen, ein Neubeginnen, ein Spiel, ein aus sich rollendes Rad, eine erste Bewegung, ein heiliges Ja-sagen. (아이는 순진무구이고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하나의 놀이, 그리고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 신성한 긍정이다.)"
*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Nietzsche-W Bd. 2, S. 294

"Dass der Schaffende selber das Kind sei, das neu geboren werde, dazu muss er auch die Gebärerin sein wollen und der Schmerz der Gebärerin." (창조주는 그 자신이 새로 태어난 아이이다. 거기에 그는 그 산모가 되려고 해야 하며, 그 산모의 고통이 되려고 해야 한다.)
*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Nietzsche-W Bd. 2, S. 345


-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자릅니다. -

200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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