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gel에 관한 정리 (7)
2003-09-29 04:01:54


- 이하의 글은 2003년 7월 11일부터 2003년 9월 29일까지 저의 "개인낙서장"에 일곱편으로 나누어 게재했던 저의 Hegel에 관한 잡글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Hegel은 이제 본격적으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France인들의 후진적 민족성을 조롱해대는가 하면, 절대군주에 의한 군국적 독재정치를 옹호하는 등의 명백한 보수반동주의적 경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제야말로 Hegel이 Nazi의 사상적 원조로서 자기가 갖게 될 본색을 화끈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으실 여러분들을 위해 이에 해당하는 '역사철학강의'의 원문들을 아래에서 직접 인용해본다면 대충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Platon in seiner Republik setzt alles auf die Regierung und macht die Gesinnung zum Prinzip, weshalb er denn das Hauptgewicht auf die Erziehung legt. Ganz dem entgegengesetzt ist die moderne Theorie, welche alle dem individuellen Willen anheimstellt. Dabei ist aber keine Garantie, dass dieser Wille auch die rechte Gesinnung habe, bei der der Staat bestehen kann." (플라톤은 그의 공화국에서 모든 것을 정부에다 걸었고 그 신념을 원칙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는 주된 무게를 교육에다 두어야 했다. 그에 전적으로 반하여 근대적 이론들은 모든 것을 개인의 의사에다 둔다. 그러나 이러한 의사들이 그 안에서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옳은 신념을 담고 있는지는 보장되지 못한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1

"der reine Wille ist sich sein Gegenstand und sein eigener Inhalt, der keiner ist. So überhaupt ist er nur der formelle Wille. ... Nur kann hier gleich bemerkt werden, dass dasselbe Prinzip theoretisch in Deutschland durch die Kantische Philosophie ist aufgestellt worden. ... warum sind die Franzosen sogleich vom Theoretischen zum Praktischen übergegangen, wogegen die Deutschen bei der theoretischen Abstraktion stehenbleiben, so könnte man sagen: die Franzosen sind Hitzköpfe ... der Grund liegt aber tiefer. Dem formellen Prinzip der Philosophie in Deutschland nämlich steht die konkrete Welt und Wirklichkeit mit innerlich befriedigtem Bedürfnis des Geistes und mit beruhigtem Gewissen gegenüber. ... In Deutschland war in Ansehung der Weltlichkeit schon alles durch die Reformation gebessert worden..." (순수의지는 스스로에게 그의 대상이며 그의 고유한 내용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내용이다. 따라서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의사일 뿐이다. ... 여기서 단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원칙이 독일에서는 이론적으로 칸트의 철학을 통해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 왜 독일인은 그러한 이론적인 추상에 머물러 있을 동안 프랑스인이 먼저 그러한 이론적인 것으로부터 실제적인 것으로 이행했는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다혈질들이라고. 그러나 그 이유는 좀 더 깊은 곳에 존재한다. 독일에서는 철학의 형식적인 원칙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만족된 정신의 요구 및 안정된 양심과 함께 구체적인 세계와 현실성도 중요했다. ... 독일에서는 그 속세성을 고려해볼 때 벌써 모든 것이 종교개혁을 통해서 개선되어 있었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25-526

"Napoleon richtete sie als Militärgewalt auf und stellte sich dann wieder als ein individueller Wille an die Spitze des Staates; er wusste zu herrschen und wurde im Inneren bald fertig. Was von Advokaten, Ideologen und Prinzipienmännern noch da war, jagte er auseinander, und es herrschte nun nicht mehr Mißtrauen, sondern Respekt und Furcht. ... Keine größeren Siege sind je gesiegt, keine genievolleren Züge je ausgeführt worden; aber auch nie ist die Ohnmacht des Sieges in einem helleren Lichte erschienen als damals. Die Gesinnung der Völker, d. h. ihre religiöse und die ihrer Nationalität, hat endlich diesen Koloß gestürzt, und in Frankreich ist wiederum eine konstitutionelle Monarchie, mit der Charte zu ihrer Grundlage, errichtet worden." (나폴레옹은 정부의 권력을 군사력으로 일으켜세웠고 그 후에 개인적인 의사로서의 자기자신을 국가의 정상에 올려세웠다. 그는 지배하는 법을 알았고 내부적으로 금방 그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대변인들이나 이념가들이나 원칙주의자 따위의 주장들을 그는 몰아내어버렸고, 그로써 이제 프랑스에서는 더이상 불신이 아니라 존경과 경외심이 지배하게 되었다. ... 그 어떤 승리도 나폴레옹의 승리만큼 위대하지는 않았으며, 그 어떤 행보도 나폴레옹의 행보만큼 천재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에도 나폴레옹의 시대만큼 승리의 혼수상태가 환한 빛 속에서 나타나지는 않았었다. 프랑스민족의 성향, 다시 말해 카톨릭이라는 종교와 그 다혈질적 민족성은 마침내 이러한 거인을 쓰러뜨리고 말았으며, 프랑스에서는 결국 입헌군주제가 수립되었다. 물론 그 원리에 대한 헌장이 있긴 했지만.)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3-534

"Nicht zufrieden, dass vernünftige Rechte, Freiheit der Person und des Eigentums gelten, ... dass die Verständigen Einfluß haben im Volke und Zutrauen in demselben herrscht, setzt der Liberalismus allem diesen das Prinzip der Atome, der Einzelwillen entgegen. ... Der Wille der Vielen stürzt das Ministerium, und die bisherige Opposition tritt nunmehr ein; aber diese, insofern sie jetzt Regierung ist, hat wieder die Vielen gegen sich. So geht die Bewegung und Unruhe fort. Diese Kollision, dieser Knoten, dieses Problem ist es, an dem die Geschichte steht und den sie in künftigen Zeiten zu lösen hat." (자유주의는 이성적인 권리, 인간의 자유, 소유권의 보장, 이성적인 것의 민족에 대한 영향력 그리고 그 민족 안에서의 신뢰 ... 등의 모든 것에 대해 원자의 원칙, 개인의사의 원칙만을 불만족스럽게 대응시킬 뿐이다. ... 다수의 의사는 내각을 교체시키고, 여태까지의 야당이 내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야당 역시도 여당이 되고 나면 다시 다수에 맞서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운동과 불안정이 계속된다. 이러한 충돌, 이러한 분규, 이러한 문제는 역사와 함께 하는 문제이고 역사가 미래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4-535

"namentlich hat der Liberalismus alle romantischen Nationen, nämlich die römisch-katholische Welt, Frankreich, Italien, Spanien, beherrscht. Aber allenthalben hat er bankrott gemacht, zuerst die große Firma desselben in Frankreich, dann in Spanien, in Italien." (자유주의는 특히 모든 로마-카톨릭세계,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자유주의는 파산하고 있는데, 우선 프랑스에서의 대기업이 그렇고, 그 다음에는 스페인에서, 그 다음에서는 이태리에서 자유주의는 파산하고 있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5

"Deutschland wurde von den siegreichen französischen Heeren durchzogen, aber die deutsche Nationalität schüttelte diesen Druck ab. ... Die Regierung rueht in der Beamtenwelt, und die persönliche Entscheidung des Monarchen steht an der Spitze, denn eine letzte Entscheidung ist, wie früher bemerkt worden, schlechthin notwendig." (독일은 프랑스군대의 침략을 받았지만, 독일의 민족성은 이러한 압력을 금방 떨쳐내었다. ... 지금 독일의 정부는 관료계 안에서 안정되어 있고, 군주의 개인적인 결정은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시피 하나의 최종적인 결정은 전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1986, S. 535


물론 내가 보더라도 Hegel의 주장은 약간의 일리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개인의 의사는 국가의 존립 같은 것에 원래부터 별로 관심이 없고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보장해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개인들이 애국애족심에 불타 올라 '민족자주(또는 민족중흥)와 대단결의 기치를 애국애족의 봉화로 높이 치켜들자'라거나 '장군님(또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훈을 이어받아 우리 모두 숭고한 애국의 위업을 달성하고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위하여 새 역사를 창조하자' 등의 닭살 돋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뱉어댄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개인들도 국가에 내야 할 세금액수가 너무나 많은 것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또한번 군복무를 해야 한다거나 명예퇴직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국가에 해가 될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자기 친척이나 동문이나 애인, 술집마담 등을 위해, 또는 자기 개인사업을 위해 슬쩍슬쩍 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저지르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그러한 '자유주의적 원리'에 따라 개인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이익을 추구하며 자기 뜻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Hegel에 따르면 매우 위험천만한 사고가 아닐 수 없게 된다. Hegel이 말했던 바 그대로 원래 이 국가라는 것은 Napoleon처럼 위대하고 천재적인 군주나 지도자가 나타나서 모든 개별적인 것들을 다 헤아린 다음 다른 자질구레한 반대의견들을 다 무릅쓰고서 자기 재량껏 모든 것을 다 결정하도록 해야 (옛날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비룡그룹 회장 김형곤의 표현에 따르자면, '여러분들의 모~든 중지를 모아서, 내맘대루! 결정하겠어~요' '여러분 어~때~요~' '좋~습니다' -_-;;) 비로소 진보와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개인들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의사란 것은 국가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옳은 신념을 담고 있지도 않는 것이고, 심지어는 국가를 원자처럼 쪼개버리기까지 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개별적 의사들을 통합하고 최종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어떤 고차원적인 존재 앞에 이러한 개인적 의사들은 복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논리라면 한국 같은 나라가 1960~1970년대에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나 일삼는 야당 나부랭이들에게 조금도 휘둘리지 않은 채 모든 국가권력을 박정희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주고 그에게 최후의 역사적 결단을 그때그때 내리게 해주었기에 그런 경제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라는 얘기도 정당화될 수 있게 된다. 1980년대에 한국이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전대협 용사들이 모든 학생운동의 결정권을 전대협 의장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서 '의장님께 충성을' 다 바쳤기 때문에 그런 위업이 가능했던 것이라는 말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2000년대 초반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 분위기를 통해 전세계에 코리아의 평화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도 김대중이라는 한 위대한 지도자에게 진보진영과 모든 호남주민들이 똘똘 뭉쳐 커다란 힘을 몰아줬기 때문이라는 말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위업에 딴지를 걸었던 나약한 지식인들은 역사정신과 시대정신을 알지 못했던, 낮은 단계의 어린애들, 철없는 자유주의자들, 종파분자들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는 '국민소득 2만달러, 선진국 진입' 및 '민족자주와 남북통일'이라는 국가적 장기전략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러한 목표달성을 위하여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 노무현 한 사람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관심과 권력을 몰아줘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를 융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러한 국가적 발전을 걱정하고 국가에 희생하는 마음들 속에서 각 개인들 역시도 진정으로 성숙하고 자유로워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민교육헌장'식 표현을 따르자면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여야 한다고나 할까? -_-;;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현재의 대통령인 노무현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논리이며, 오늘날 이런 종류의 권위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가정 하나조차도 제대로 이끌어갈 수가 없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애국의 열정, 봉사의 열정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추상화된 전체를 위한 일치단결된 희생이란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그 전체 안의 다수집단(주류집단)에게만 이득이 돌아가게끔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거나, 아니면 옛날 김영삼때처럼 지도자 한사람의 잘못된 결정이나 무능함이 민족 전체에 큰 피해를 불러오게 되거나, 아니면 민족내 다수결에서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는 내부소수집단(외국인,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빈민, 가난한 예술가, 전라도주민, 왼손잡이 등등)의 소외를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Hegel처럼 다당제를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까지 부정해가면서, 위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민족주의의 미래를 열망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거의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고까지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Hegel처럼 다당제와 의회민주주의에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는 것은 결국 Hitler나 Kemal Atatürk식의 전체주의적 일당독재(박정희의 유신독재나 장개석의 총통독재도 여기에 해당한다)나 Lenin, Stalin식의 Proletariat일당독재(김일성, 김정일의 공산독재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를 지향하겠다는 얘기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독재정치는 상호견제가 미비하고 지도자의 독선을 유발하여, 거의 필연적으로 부패와 광기, 그리고 폭력과 몰락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Martin Luther가 최초의 독일어성경을 쓰고 종교개혁을 하던 16세기 중반 시절부터, 이승만과 서재필이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근대화운동을 하던 19세기 후반 시절까지는 아무리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전제군주정치나 파쇼정권을 수단으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바로 Hegel식의 이 '민족'개념 하나만 붙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럭저럭 진보를 이뤄낼 수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민족(Volk)'이란 개념의 진짜 주체는 바로 라틴어나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무식한 독일인, 중국어나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무식한 조선민중 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라틴어, 한자 기타 다른 나라 말들로 교묘히 사기를 치는 귀족계급들, 지식계급들에게 놀아나지 않도록 하려면 모든 정치, 경제, 문화행위를 각 민족의 언어로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 교황이나 천자, 천황 같은 자들로부터 벗어나 각 나라의 무식한 민족지도자, 선동적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각 나라의 고유어를 쓰는 민족국가들을 수립해야 한다는 당위가 성립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각 나라의 언어나 문화들이 충분히 번역이 되었고 충분히 뒤섞이게 되어버렸다. 이제 민중들은 사전을 뒤져봐야 겨우 알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들(예를 들면 '달망지다' '비사치다' '서부렁하다' 등등)보다는 외래어나 외국어표현들(예를 들면 '라디오' '텔레비젼' '오케이' '아이스크림' 등등)에 더 익숙하게 되어버렸으며, 오늘날의 억압과 착취는 결코 신비로운 외래어(예를 들면 '신드롬' '판타스틱' '컬트' 등의 단어)나 외래문화(예를 들면 팝송이나 살사댄스, 테니스경기 등), 외래종교(대표적으로 기독교) 등을 통해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국가내부의 집중된 권력(예를 들면 서울강남에 집중된 부와 정보, 서울대에 집중된 학문권력 등)과 생산수단의 독점 또는 과점에 의해서 대부분의 억압과 착취는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무원나리들의 권력, 대기업집단의 횡포 등). 따라서 Hegel처럼 German민족의 숭고한 역사적 사명이나 특정한 역사발전주체의 독재에 의한 총체적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권력을 국가기구(또는 당기구)와 그 정점에 서있는 지도자에게 민주집중제 형식으로 몰아주는 것보다는, 그 권력을 가급적 사회 각분야로 흩어주면서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게끔 맡기는 자유주의적 사고, 지방자치적 사고가 더 유효한 개혁의 수단으로 떠오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고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Hegel처럼 거부감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사회적 약자의 희생 위에 각 재벌그룹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면서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심화하게 될 것이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원리에 따라 거칠고 천박하고 말초적인 상업문화들이 이 세계를 순식간에 장악하게 될 것이며, 외국자본들의 침입에 따라 약소국가의 영세자본들은 아무런 배려도 얻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가 정말 Hegel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단순한 '완전방임주의' 정도로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John Locke나 John Stuart Mill, Alexis De Tocqueville과 같은 초기자유주의자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정한 자유주의는 오히려 '반독점주의'와 '반권위주의' '반폭력주의'에 그 핵을 갖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 어떤 자유라도 그 자신의 자유는 물론 다른 사람의 자유까지도 심각하게 제한하려 하는 자유라면 이러한 자유는 금지해야 하는 것이, 그로써 모든 사람이 갖는 자유의 기본적 조건들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 본래 자유주의의 원형이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민법학자들이 여러가지 극단적인 자유계약, 이를테면 평생 노예로 살겠다거나 평생 섹스파트너가 되어주겠다는 계약, 일생동안 독신으로 살겠다거나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는 계약, 자기 영업의 자유나 기타의 거래활동을 영구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계약, 자기가 장차 취득하게 될 전재산을 양도하겠다는 계약 등을 무효로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자유가 자유주의자들에게 지상가치라고 하더라도 자유의 이름으로 그 자유를 이용하여 누군가의 자유를 말살하도록 하는 자유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이 갖고 있던 의지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아가 자유주의자들이 덤핑행위, 카르텔행위 등을 불공정행위로서 제재하고, 폭력과 사기와 같은 영업수단에 대해 가차없는 처벌을 가하며, 공공재(특정개인들에게만 공급할 수 없어서 한번 일부시민들에게 공급되면 다른 시민들도 무임승차하여 자동으로 혜택을 누리게 되는, 치안, 국방, 환경, 사회간접자본, 기초교육 등의 재화들)에 대해서는 개인주의나 시장의 원리에 맡기지 않고 정부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는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입으로 딸X이를 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그 자유의 가능성이 어느 일방에게만 주어지도록 작위적으로 조건을 만드는, 다시 말해 '독점'을 지향하고 '강제'를 구조화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단호히 철퇴를 내리치겠다는 사고방식이 원래 자유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모순들은 각 개인들이 총체적 사고를 통해 민족단위, 계급단위로 힘을 뭉치지 않아서 발생한다기 보다, 각 개인들이 민족단위, 계급단위로 너무 뭉쳐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모순들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 지배계급이 외국어로 자꾸 거짓말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들이 국민들의 귀를 막고서 바깥나라, 외국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고 그것을 빌미로 국민들을 착취하려고 들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며, 피지배계급이 너무 단결하지 않아서 지배계급이 착취를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이 너무나 한곳으로 뭉쳐버렸기 때문에, 너무나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배계급이 그렇게 단결한 피지배계급을 손쉽게 억누르거나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자. 모든 힘은 한 곳, 또는 극히 소수의 곳에만 집중되고 독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정학적인 권력은 서울(특히 강남)과 영남이 독점하고 있고, 학문권력은 서울대(특히 법대와 의대)가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으며, 경제권력은 소수재벌들(특히 삼성, LG, SK, 현대그룹)이 독점하고 있고, 언론권력은 보수언론(특히 조중동)이 독점하고 있으며, 행정권력은 검찰, 재정경제원, 국세청을 비롯한 몇몇 힘센 부서의 관료들에게 거의 독점되어 있고, 성적인 권력은 오직 남성들(그것도 출세한 남성)에게만 뚜렷하게 몰려 있다. 물론 그에 버금가는 2류들(예를 들면 대전이나 광주같은 도시, 고대와 연대, 코오롱이나 태광산업이나 동양, 삼양 따위 군소재벌들, 한경대 등의 2류언론들, 과기처나 해양부 같은 2류부서 관료들, 사회적으로 적당히 출세한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독점적 권력이 정점을 차지하는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적인 피라미드구조 아래에서 한낱 들러리들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독점적 권력들을 제한하기 위해 이들보다 더 강대한 절대권력을 천재적 지도자, 이른바 '시대정신(Zeitgeist)'에게 통째로 부여하는 것이 과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수단일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노무현 같은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모든 힘을 몰아주기만 하면, 그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육성하여 재벌들을 해체하게 한다든지,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을 육성하여 조중동에 대항하게 한다든지, 지방대학들을 육성하여 서울대 등의 명문대들을 해체시킨다든지, 여성지도자들을 발탁하여 남성차별주의를 완화한다든지 하는 등의 혁신적인 사업들을 추진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미국의 Bush와 같은 외세,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을 할 수가 있게 되며, 민족의 자존을 지킬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기존의 독점적 권력이 붕괴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에 있다. 붕괴되고 해체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끼리 더욱 단결해서 저항하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타협을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이 기존의 독점적 권력들을 억지로 해체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가장 큰 권력이 몰려 있는 한 그 지도자는 부패하거나 독선에 빠질 수밖에 없게 돼있다. 어차피 그 지도자 혼자 국가내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할 수는 없는 이상 그도 자기 권력을 아래에 있는 자기 심복들에게 조금씩 나눠줄 수밖에 없게 되므로, 결국엔 새로운 권력의 피라미드, 새로운 권위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돼있다. 그런 식으로 권력은 새롭게 독점되고 집중되며, 마치 개성이 경주를 대체하고, 서울이 개성을 대체하듯이, 나폴레옹황실이 루이왕가를 대체하고, 스탈린독재가 짜르독재를 대체하듯이, 지배계급의 인적 구성만 달라질 뿐, 억압과 착취의 물적 구조는 똑같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더군다나 한 사람의 지도자가 '역사이성'이자 '시대정신'으로서 모든 것을 다 강제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사회적으로 강제와 폭력의 도미노를 이끌어내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러한 도미노는 단순히 국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강제적 에너지가 넘쳐나다 보면 국외로까지 그 강제의 대상이 확장될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혁명의 열정'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그 결과는 대개 야만적 폭력에 의한 파괴 및 옛날의 것과 비슷한 것들의 거듭된 출현에 머무를 뿐이며, 뭉쳐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뭉치게끔 만들려다가 서로가 파괴되어 부서지는 공멸의 연속을 이끌어내게 된다.

특히나 Hegel처럼 전쟁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자기 민족의 절대적 우수성을 확신하거나 하는 생각들이 그러한 강제적 에너지의 중심 속으로 파고들게 되면 이러한 움직임은 Faschismus의 틀을 넘어 Nazismus로까지 타락하게 돼버린다. 열등민족을 해방시키고 세계사의 진보를 이룩해야 할 신성한 민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괜히 약한 나라에 무단침공하고, 외국인들을 학살하며, '우량종출생'을 위해 자국 여성들의 결혼과 임신과 출산을 강요하고, 전사회적으로 긴밀한 감시망과 서열조직을 구축하며, 전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러한 하나의 생각에 혼자서 딴지 거는 인간들을 보면 집단린치를 가하며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버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볼 때 모든 권력을 전체성과 총체적 이성의 이름 하에 하나로 집중하기 보다 오히려 모든 권력을 사방팔방으로 분산시키고, 모든 기성의 권위들을 해체하며, 각자 개인들이 갖는 기본영역들을 확실하게 보장해주고, 그 사적인 기본영역들에는 어느 누구도 간섭을 할 수 없게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이 더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지금의 노무현이 하는 것처럼 당정을 분리하고, 수도를 지방으로 이전하며,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국정원의 민간사찰업무를 대폭 줄이며, 기득권정당인 한나라당을 해체해버리긴커녕 먼저 자신이 속한 집권여당부터 해체하면서 대통령인 자신이 스스로 가져야할 가부장적 권위부터 파격적으로 깨기 시작하는 등의 개혁이 그것이다. Habermas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Habermas의 표현을 약간 빌자면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elle Rationalität)이 생활세계(Lebenswelt)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다시 말해 생활세계가 체계적인 통합메커니즘(systematische Integrationsmechanismen)에 식민지화(Kolonialisierung)되지 않도록 하는, 반체계적이고 반권위적인 방향의 개혁이 더 적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 물론 나는 Habermas가 말하고 있는 의사소통적 합리성(kommunikative Rationalität) 역시도 매우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 속한다. 그가 갖고 있는 만능적이고 자신감에 차있으며 훈육적인 이성은 인간이 갖고 있는 충동이나 쾌락, 아집, 그리고 생존의 욕구와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단순히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억압하고 있을 뿐인데, 내가 볼 때 이러한 욕망과 물질적 이해관계까지도 합의와 의사소통이라는, 단지 언어적으로 세련되기만 했을 뿐인 암묵적 폭력도구들로써 관념적으로 통합하려 하는 Habermas의 이론은 결국 물질적 강자들을 위한 관념적 정당화수단이자 그들의 이니셔티브에 복무하는 기만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나의 눈엔 Hegel이나 Habermas나 둘 다 같은 종류의 철학자들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Habermas가 Hegel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순화된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지금 상황에서는 Hegel보다 Habermas적 사고의 틀을 더 지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라고 여겨지긴 하지만... -_-;;}


하여튼 이렇게 당시의 민족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전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는 역사철학강의와 법철학강의로 거대한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나가던 Hegel은 그러다가 1831년 11월 14일, 61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너무나 허무한 죽음을 맞이해버리고 만다. 어떻게 죽었냐 하면, 1831년 콜레라가 전유럽을 휩쓸었을 때 Berlin집을 비우고 가족들과 함께 잠시 시골에 피해있던 이 국민철학자는 콜레라가 다 지나갔을 무렵 겨울학기 시작에 맞춰 Berlin집에 혼자 귀환했다가 그만 이 전염병의 마지막 유탄에 맞아, 이렇다 할 의학적 치료를 받아볼 겨를도 없이 단 하룻만에 쉽게 숨을 거둬버리고 만 것이었다.

사실 그의 죽음은 그의 수면중에 아주 조용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생애 대부분이 그러했듯 그의 죽음 역시도 매우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었지만 (예를 들어 암에 걸려 머리털이 다 빠지도록 항암제의 고통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가 죽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아직 61세의 창창한 나이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염병으로 이승을 하직해버린 Hegel의 죽음은 거의 교통사고에 의한 비명횡사나 마찬가지 죽음으로서, 그의 아내나 자식들이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라 할 것이었다.

이후 Hegel의 장례식은 무척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참석했고, 그의 사체는 Berlin의 Dorotheenstädtischer Friedhof에 묻혔는데, 이 묘지는 내가 Berlin에 네번째 방문했을 때 혼자 157번 버스 타고 가서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직접 가서 보니 Hegel의 묘소는 생전에 그가 누렸던 그 숱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명인사들(예를 들면 Fichte나 Brecht 같은 사람들)의 묘소에 비해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는 편이었으며, 그 흔한 꽃 한다발조차도 묘석 앞에 놓여져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꽃 한다발은커녕 돌맹이 하나조차도 Hegel의 묘비 앞에다 갖다놓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한때는 유럽과 미국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들 대부분이 Hegelian이었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떨쳤던 Hegel의 철학이었지만, 오늘날 Hegel철학은 거의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국민들(특히 기독교도들이나 옛 운동권 출신의 지식인들)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만큼 Hegel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약간 의외가 아닐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오늘날 Hegel처럼 전체로서의 존재와 그것이 개인에 대해 갖는 우위, 그리고 그 정신에 대해 형이상학적 사유를 함으로써 현실세계 전체까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식의 철학은 거의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은 물론 독일의 대학가만 둘러보더라도 Hegel에 심취해 있는 대학생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며, 특히 독일내 좌파학생들(그 중에서도 녹색당계열이나 사민당계열의 학생들)에게 Hegel은 단순히 "ein konservativer, theistischer, verrückter und abgeschmeckter Philosoph (어느 보수적이고 인격신론적이고 광적이며 밥맛 떨어지는 철학자)"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렇게 된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내가 보기에 그 원인은 Hegel이 갖고 있던 과도한 동일성의 원리, 다시 말해 개념과 현실의 궁극적인 일치가능성과 완전한 인식가능성에 대한 Hegel의 극단적인 확신에 모든 원인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확신은 필연적으로 주체의 오만과 비타협적 독선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과도한 통합과 집중원리와 행동규제, 일탈방지의 빈틈없는 메커니즘을 불러왔고, 그로 인해 환경파괴, 개인억압, 폭력 및 전쟁을 유발했을 뿐 아니라, 그 오만과 독선은 심지어 변증법 자체까지 타락시켜, 자기 이상은 변증법이 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불러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볼 때 그러한 변질된 변증법으로부터 가장 나쁜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Hegel좌파의 일원이며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Karl Marx였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Hegel과 Marx와 Lenin의 이념을 정치적으로 계승한 Stalin, 마오쩌뚱, 김일성, Polpot 아래에서 숱하게 숙청되고 굶어죽은 수천만의 민중들을 생각하면 Hegel은 이미 자신의 철학으로 간접적이나마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까지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러한 극좌파쪽에 미친 영향만이 아니라 '법철학원리' '역사철학강의'에서 보여준 민족위계적, 민족투쟁적 사고로써 Hitler와 같은 극우파들에게까지 미친 Hegel철학의 영향력을 생각해볼 경우 Hegel의 잘못된 철학으로 인해 골로 가야 했던 죄없는 인명의 수는 더욱 더 늘어나게 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Hegel철학을 변증법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인 측면에서까지도 거의 완전히 모방한 철학에 불과했음을 감안해볼 때, 그리고 박정희의 관제민족주의, 국가지상주의적 사고 역시도 따지고 보면 Hegel철학의 극우적인 버젼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해볼 때, Hegel은 비단 독일인이나 유태인들 뿐 아니라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큰 상처를 남긴 철학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물론 Hegel의 변증법은 얼핏 보면 매우 그럴 듯해보이는 측면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정-반-합'만을 공허하게 중얼댄 Fichte의 변증법에 비한다면 Hegel의 변증법은 정말 그 차원 자체가 다르다고 할 정도의 체계적 완결성과 내적 충실성을 과시하고 있었고, Kant처럼 물자체와 같은 주관적 사고구성물에 도덕적인 의무의 근거를 부여하고 이러한 여백의 벌충으로서의 불가해한 이상신(理想神)에 윤리법칙의 근원을 구하고자 했던 억지스러운 도덕형이상학에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대다수의 법학도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Hegel의 역동적이고 스케일 큰 변증법이 Kant의 정태적이고 소극적인 형이상학보다 훨씬 더 매력의 우위를 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Hegel식의 사고, 다시 말해 변증법적인 모순이 궁극적으로 더 높은 차원의 종합 및 총체성으로 지양되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진화발전한다는 사고가 정말로 옳다는 보장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한 사고는 심지어 옳기는커녕, 각 개체간의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그 폭력적 강요경향과 자연파괴적 경향의 위험성이 이미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검증이 되었다고 우리는 보아야 할 것이며, 오늘날의 진보주의자가 해나가야 할 과업은 그러한 총체적인 발전상과 완전성들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기 보다 오히려 이미 절대적인 권위로 변해가고 있는 그러한 총체적 가상들을 재검토하고 다시 하나하나 해체해서 그러한 통합과정 속에 일방적으로 억압당하고 희생당해왔던 소수적 가치, 비주류적 가치들을 복원해나가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만약 그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Hegel 변증법을 영원히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면, 이제 Hegel의 변증법에 놓여져야 할 중점은 그 동일성보다도 오히려 그 반대인 비동일성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어떠한 관점도 미리 정해놓지 않은 채 서로의 차이점을 아주 미세한 것까지 철저히 확인해나가면서, 이제는 서로를 무턱대고 통합하려 하기 보다 서로에게 존재하는 크고 작은 차이와 모순들의 긴장을 계속 늦추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작업들이 변증법의 새로운 본령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시도는 원자적 사고도 아니고, 파편화적 분리도 아니며, 고정화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메두사의 눈과도 같이 두렵고 끔찍하긴 하지만 결코 신성하거나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세상 진리의 실상들과 허상들을 똑바로, 그렇지만 냉정하게 쳐다볼 수 있는 용기, 그러한 진리의 허상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고난 후 남게 되는 그 불가지(不可知)의 심연들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사고라고 명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허무주의적 인식 위에서 우리는 기존의 인습들이 덮고 있던 베일들을 과감히 벗겨내야 할 것이며, 그로써 더욱 불가해져버리는 이 세상의 소용돌이 앞에서 우리는 각자가 자유로운 개인이 되어, 그 어떤 불투명한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동안 총체적 이성의 폭력과 착취에 고통받아왔던 자연환경과 지구생태계 구성인자들의 개체적이고 자율적이며 비결정적인 생존능력, 자정능력 속에 미학적으로 잠겨들면서 나름대로의 즐거운 유희를 벌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Nietzsche의 유명한 어록을 지나간 독선과 광기의 시대에 대한 고별사로서 덧붙이는 것도 좋은 결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Wir glauben nicht mehr daran, dass Wahrheit noch Wahrheit bleibt, wenn man ihr die Schleier abzieht; wir haben genug gelebt, um dies zu glauben. Heute gilt es uns als eine Sache der Schicklichkeit, dass man nicht alles nackt sehn, nicht bei allem dabei sein, nicht alles verstehn und ≫wissen≪ wolle. ... Man sollte die Scham besser in Ehren halten, mit der sich die Natur hinter Rätsel und bunte Ungewissheiten versteckt hat. Vielleicht ist die Wahrheit ein Weib, das Gründe hat, ihre Gründe nicht sehen zu lassen? ... Oh diese Griechen! ... Diese Griechen waren oberflächlich - aus Tiefe! ... Sind wir nicht eben darin - Griechen? Anbeter der Formen, der Töne, der Worte? Eben darum - Künstler?

(우리는 진리가 그 베일을 벗을 때에도 계속 진리로 머무른다는 것을 더이상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믿기에는 이미 충분히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유효한 것은 어떤 예의바름의 과제로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벌거벗은 형태로 보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 모든 것에 함께 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 부끄러움은 그 본질을 수수께끼와 알록달록한 불확실성 속에 숨기는 명예 속에 유지된다. 어쩌면 진리는 그렇게 자신들의 이유를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갖는 여자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 오오 이러한 그리스인들! 이러한 그리스인들은 피상적이었다 - 심연으로부터! ... 그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리스인이 아닌가? 형식, 말투, 언어의 숭배자? 바로 그때문에 예술가?)"

* Nietzsche, Die fröhliche Wissenschaft, Vorrede zur zweiten Ausgabe, Nietzsche-W Bd. 2, S. 14-15

2003. 9. 29.


t-left wrote:
당신의 마지막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당신이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의도도 읽어내지 못하겠소.
당신의 철학은 그러니까 낭만적 소시민주의 아니면 환상적 개인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거요?
당신의 본질은 그러니까 냉혹한 회의주의자요? 아니면 소피스트적으로 논쟁만 하는 궤변가인 거요?
당신의 글을 읽음으로써 거꾸로 헤겔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소. 헤겔의 절반만큼도 혁명적이지 않은 역겨운 프티법학도여...
헤겔의 변증법을 목졸라 죽이고서 무슨 진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건지...

고래 wrote:
저는 Hegel변증법의 독선적 폐해를 비판할 뿐이지 진보를 부정하지도 않고 변증법을 목졸라 죽일 생각도 없습니다.
진리발견의 유용한 방법 중 하나로서 변증법이 갖는 의의는 여전히 상대적으로나마 유효합니다. 그러나 Hegel변증법이 실제로 진행된 방향은 역사적으로 매우 문제가 많은 것이었습니다.


다음글
  2003/12/29

이전글
  200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