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2년 5월 17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올렸던 장난 비슷한 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번 주 Stern지 표지 그림를 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요즘 독일수상 Schröder와 SPD의 꼴이 진짜 말이 아니다. Helmut Kohl의 비자금스캔들로 CDU가 풍비박산나고 Angela Merkel의 지리멸렬한 리더쉽으로 CDU가 이렇다할 정책다운 정책을 내세우지 못하던 작년까지만 해도 SPD의 재집권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올해 들어 CDU/CSU가 Edmund Stoiber를 수상후보로 내세우고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SPD의 총선패배가 갑작스럽게 SPD의 눈 앞에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경제문제, 그것도 실업문제에 있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올해 독일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예측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독일경제는 아직 회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독일내엔 402만 4천명의 실업자가 있는데, 이는 Helmut Kohl시절보다 그리 줄어든 숫자가 아니며, 4년전 Schröder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했던 숫자보다도 무려 50만명이나 더 많은 숫자다. 거기다 설상가상격으로 얼마전부터 개시된 독일금속노조총연맹의 파업은 다가오는 독일의 호경기에 대한 일말의 기대에마저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거기다 얼마전 Koeln에서 터진 기부금영수증스캔들사건은 적어도 청렴성에 있어서만큼은 CDU/CSU보다 점수를 더 따고 있던 SPD정치가들의 도덕성에 먹칠을 해버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내무부장관 Schill은 NPD금지절차에서 물의를 일으켰고, 작년 Hamburg에 이어 최근 Sachsen-Anhalt에서의 지방선거 참패는 SPD 당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앗아가고도 남을만큼 충격적인 패배였다.

계속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SPD의 지지율은 30%선에 머물고 있다. 올해초부터 줄곧 CDU/CSU에게 뒤지고 있는 것이다. 4년전 Schröder의 SPD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57%만이 이번 총선에서 SPD에 투표할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는 당내부에서조차도 이번 총선에서 SPD가 승리하여 적녹연정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사민당 이상으로 녹색당도 지리멸렬하고 있으며, 사민당이 설령 제1당이 된다고 해봤자 아주 근소한 차로 CDU/CSU에 앞설 것인 이상 사민당으로서는 녹색당 대신 FDP와 연정을 구성해야 겨우 정권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FDP가 CDU/CSU가 아닌 사민당과의 연정에 동의를 해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작년 Hamburg지방선거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FDP가 차라리 CDU/CSU와의 연정을 더 선호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CDU/CSU에게 지지율에서 몇% 차이로 뒤져있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당원들이 열심히 뛰고 선거전략만 확실히 서있다면 단숨에 역전할 수 있는 정도의 격차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SPD 당원들의 사기는 잔뜩 죽어있는 상태이며 선거전략을 짜는 것도 여의치 않은 지경이다.한마디로 지난 4년간 Schröder는 재정개혁과 세제개혁, 연금개혁과 같이 국민들의 인기를 얻지 못할 개혁은 너무 앞당겨서 빨리 수행했던 반면, 노동시장개혁이나 의료제도개혁과 같이 경제를 살리거나 국민들에게 당장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개혁은 너무 소홀히 했다. 4년전 Kohl수상의 실정으로 국가재정이 파탄위기에 처해 모든 국민들이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Schröder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했다.

특히 Schröder는 세제개혁의 과정에서 SPD의 정당강령에 근본적으로 어긋날만한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양도소득이나 주식양도차익을 세금대상에서 제외시켜준 것은 사민당의 기본가치를 몰각시킬만한 결정적 실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Schröder는 이를 강행했고, 대다수 좌파들과 노동자들의 분노를 샀다. 이런 식의 정책을 편다고 해서 대자본세력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SPD를 새삼스럽게 지지해줄 리는 만무한 일이었지만, 이런 정책을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SPD 당원들은 일선에서 온갖 궂은 비난을 도맡아 들어야 했다.

심지어는 CDU/CSU의 수상후보 Edmund Stoiber까지 대기업의 부동산이나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릴 것을 심각하게 검토한다고 말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Schröder 자신의 친누이까지도 현재의 세금제도가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편모가정에 불리하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에서, 과연 어느 SPD당원들이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Saarland-SPD의 당의장 Heiko Maas가 이번 총선의 선거전략을 보다 철저히 SPD의 기본가치인 '사회적 정의'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리 힘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당수뇌부에 전달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강력하게 이런 주장을 제기하여 Schröder를 몰아붙일 수 있는 사람인 전 SPD당수 Oskar Lafontaine은 성급하게도 이미 정계를 은퇴해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4년간 SPD의 치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적어도 이민법개혁, 세제개혁, 연금개혁, 원자력발전시설의 해체 등에 있어서는 적녹연정이 꽤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치적들이 독일 국민들에게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전수상 Helmut Kohl은 독일연방통일과 같은 짜릿한 치적을 이끌어내고서도 총선에서 참패했던 바가 있었다.

설령 이러한 치적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SPD는 이를 잘 포장하는 데 실패하였다. 예를 들어 육아보조와 같은 문제는 SPD로서 매우 좋은 주제였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게야 발굴되었고, 연방재정의 적자를 줄여 자라나는 신세대들의 부담을 가볍게 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도 있었던 재무부장관 Hans Eichel은 식당종업원의 팁에까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부질없이 '구두쇠(Knauser)'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국방부장관 Rudolf Scharping을 비롯한 몇몇 당원들이 '옛날 SPD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보다 많은 분배정책, 예를 들어 재산세의 부활과 상속세율 인상 등의 정책을 건의하기도 했지만, Schröder는 이를 일언지하에 묵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그는 동독지역에 연방정부투자를 확대하거나 파산상태에 빠진 Bundesliga를 살림으로써 일시적인 표심을 획득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런 선심 베풀기 정책은 기껏 적자를 줄여나가고 있는 연방정부재정을 감안해볼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한 SPD 당원들은 이번 총선을 아예 포기하고서 그 대신에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머리 속에 그려보고 있는 중이다. 첫째는 이번 연방총선에서 참패를 하면 수상 Schröder를 몰아낼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상 Schröder만이 아니라, 사무총장 Müntefering이나 연방의회의장 Thierse를 비롯한 모든 60대 늙다리들을 이번 기회에 당핵심에서 싸그리 몰아낼 수도 있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그들을 몰아내고 나면? 그 자리를 차지할 애들은 보나마나 Baden-Würtemberg의 여걸 Ute Vogt나 Saarland의 맹렬좌파 Heiko Maas, 그리고 Hamburg의 똑똑한 숏다리 Olaf Scholz 같은 애들일 테지만, 이들은 아직 중앙정치의 매운 맛을 보기에는 너무 어려보이는 애송이들이다. 중앙정치는 지방정치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사기와 협잡이 판을 치며 황당한 음모공작도 드문 일이 아닌데, 과연 이들이 그런 모든 비난과 모욕을 견뎌낼 수 있을만큼 능글맞은 애들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배하기까지 한 애들이다.

물론 Niedersachsen의 주지사 Siegmar Gabriel이나 Berlin시장 Wobereit 같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애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이 올린 득표율은? Schröder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던 Siegmar Gabriel은 올해 2월의 선거에서 지난 1998년 Schröder가 Niedersachsen에서 기록했던 놀랄만한 득표율을 오히려 까먹고 말았다. 동성애자로 유명한 Wobereit가 작년에 Berlin에서 확보한 SPD의 득표율도 Gregor Gysi의 PDS가 이루어낸 놀랄만한 도약에 비하면 그저 초라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현재의 늙은 중진들 체제로 계속 가기 위해 CDU/CSU의 대연정에 동참한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계속 남는다. 연방수상을 Edmund Stoiber가 결국 먹는다고 하면 그 밑에 부수상으로는 누가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Schröder가 Edmund Stoiber 밑에서 부수상을 하나? 말도 안된다! 그럼 Hans Eichel이?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시나리오가 다 우스꽝스럽기만 할 뿐이다.

물론 원내총무 Peter Struck은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유로도입 이후 독일의 경제여건이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는 만큼, 경기호황은 찾아오게 될 것이며, 그러면 SPD는 총선에서 자연스럽게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dmund Stoiber가 대부분의 독일인들에게 외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Bayern의 주총리라는 점도 희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옛날 Helmut Schmidt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Bayern출신의 Josef Strauss를 꺾어눌렀던 것처럼, 남달리 국민들에게 동정심을 끌어모으는 재능이 있는 Schröder는 잘난체하는 Bayern 촌뜨기 Edmund Stoiber를 결국 압도적인 표차로 꺾어누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독일의 유권자들은 이제 인물중심의 투표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11%의 유권자만이 수상후보를 기준으로 총선투표를 할 뿐, 나머지는 정책중심의 투표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Edmund Stoiber는 4년전 Schröder가 썼던 선거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중도파의 지위를 먼저 장악'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인정책을 제외하면 모든 정책에서 중도적인 정책을 SPD보다 더 먼저 선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SPD의 정책들이 많은 유권자들에게 좌파편향적인 정책으로 몰리게 되면, 선거의 법칙이란 것이 항상 그렇듯 SPD는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Schröder가 벌인 실정, 특히 Schröder가 실업문제 극복이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기존의 지지자들이 갖고 있는 실망감이란 것은 거의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따라서 아무리 SPD의 사무총장 Muentefering이 우파 Edmund Stoiber의 그러한 기만적 선거전략에 속지 말자고 유권자들에게 경고한다 하더라도, 유권자들은 차라리 Schröder보다 Bayern 촌뜨기 Edmund Stoiber를 더 믿으려 할 것이 뻔한 상황이다.

물론 SPD 사무총장 Müntefering은 아직도 총선승리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육아보조를 확대하고 뒤늦게나마 노동시장유연화정책을 시행하며, 그로써 조금이라도 경제호황을 이끌어내기만 한다면, SPD의 총선승리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9월 연방총선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여름 동안에 무슨 돌발사태가 일어나 선거상황이 일변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선거는 처음에 한번 짜여진 판도를 뒤집기가 매우 힘들게 되어있는 법이다. 한번 판도가 정해지면 그 뒤로는 양측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전략과 전술을 짜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처음 판도를 바꾸기가 매우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판이 처음 짜였을 때 우위를 보였던 쪽은 어느 쪽이었나? 유감스럽게도 연초부터 CDU/CSU는 SPD에 확고한 우위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불쌍한 Schröder는 다급한 김에 "경제호황은 이미 찾아왔다"고 뻥을 치고 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는 않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Schröder가 이번 9월에 자기 정치인생을 끝맺을 가능성, 그래서 완전히 홀딱 벗은 벌거숭이로 수상관저를 떠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도 부인못할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2002.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