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은 독일에서 가장 전통있는 정당으로, 1863년 당창건 이래 무려 135년이나 되는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자민련' 정도가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볼 때 정말 부럽도록 오랜 전통을 가진 정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처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좌익정당인 사민당은 그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노선변화도 심했던 편이었다.

사민당의 뿌리는 창건 이전에도 1848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냥 연도만 말하면 감이 잘 안 잡힐 것이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때는 영국 노동자들의 차티스트 운동이 막바지에 달하던 때이고, 프랑스에서는 2월혁명이 일어나 루이필립의 제한선거왕정과 함께 비인 체제가 붕괴하던 시기였다. 당시 독일(프로이센)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산업화를 막 시작한 데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빈곤과 사회혼란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뒤늦게나마 싹 트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가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막상 대답할 말이 없다는 분들이 많지만, 이 당시 사회주의란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모순과 병폐들을 자본주의 특유의 개인주의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고, 이런 '각자 알아서 하자'주의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 1820년대 중반경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더불어 살자'주의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오웬, 생시몽, 푸리에 등에 의해 이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었지만, 독일은 이를 영국 프랑스보다 20년 정도 늦게 받아들인 셈이었다.

물론 이제 막 싹튼 사회주의세력이 혁명의 주도권을 온전히 잡을 수는 없었다. 1848년 3월 빈과 베를린 등에서 일어난 혁명은 독일에 드디어 자유주의 내각을 출범시키고 국왕으로부터 헌법제정과 의회수립을 약속받는 데 이르렀지만, 이는 자유주의자들만의 승리였을 뿐 노동자들의 승리는 아니었다. 이때 독일에는 조직적 노동운동의 흐름이 이제 막 형성되는 단계였는데, 이 흐름은 베를린, 작센 등의 경우 슈테판 본이 주도했고, 서프로이센의 경우에는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주도했다(공산당 선언이 1848년 2월에 나왔다).

맑스 등이 내세우는 주장이 자기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과격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자유주의 부르조아들은 혁명을 배반하고 전제권력과 타협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자계급이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반혁명이 일어나 의회는 해산되었고, 노동운동조직 역시 와해되었다. 슈바벤과 헝가리 지역에서 저항이 계속되었지만, 1849년 프로이센 군대에 의해 모두 진압되고 말았다. 이로써 자유주의내각은 붕괴하였으며, 맑스는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1850년대는 반동의 시대였다. 하지만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독일제국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분위기는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에 의해 다시 완화되었다. 이 틈을 타 페르디난드 라쌀레는 1863년 라이프찌히에서 '전 독일 노동자동맹'을 창립하였다(이때 맑스는 아직 런던 망명중이었다). 맑스를 사민당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라쌀레는 사민당의 어머니라고 한다. 이 정도로 사민당 초기에서 둘의 영향력은 대단했다(공교롭게도 둘다 유대인에 헤겔좌파 출신이다). 하지만 1864년의 제1 인터내셔널에서 과학적 국제사회주의자인 맑스와 관념적 국가사회주의자인 라쌀레는 대립했고, 얼마후 라쌀레는 여자문제로 결투를 벌이다 패해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만다.

어쨌든 맑스, 프루동, 바쿠닌 등이 활약한 제1 인터내셔널의 결과, 각국에서는 사회주의 정당들이 속속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후 1867년 함부르크에서는 맑스의 '자본론'이 드디어 전세계 최초로 발간되었다. 이어 1869년에는 아우구스트 베벨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아이제나흐에서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을 창립하였다. 이 정당은 '전 독일 노동자동맹'과 달리 라쌀레주의가 아닌 맑스주의를 따르는 것이었다.

한편 1870년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3세가 지배하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당시 대부분 프루동주의를 신봉하고 있던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1871년 시민 노동자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세계최초의 노동자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정부군이 프로이센군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3만의 파리시민이 학살당한 가운데 파리코뮨은 붕괴되었다. 그래도 당시 세계최대의 도시였던 파리가 한때나마 사회주의자들의 손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전세계 보수세력은 깜짝 놀랐다. 그로 인해 프로이센에서도 '프랑스꼴이 나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심상찮은 분위기에 맑스주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은 라쌀레주의 '전 독일 노동자동맹'과 연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결국 1875년 고타의회에 의해 양당은 하나로 합쳐졌다. 새로 출범된 당의 명칭은 '독일 사회민주당'이 아닌 '독일 사회주의노동당'이었지만, 역사가들은 사민당 역사를 대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민당 출범과 동시에 발표된 고타강령은 라쌀레주의와 맑스주의의 무원칙한 절충으로 인해, 맑스의 통렬한 비판(이론적으로 모순이며 정치적으로도 일관성이 결여돼있다는 식)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비스마르크는 1878년 제국의회에서 '사회주의자법'을 통과시켜, 독일내 모든 사회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노조운동을 금지하였다. 이 결과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조국을 상실하게 되었고, 출범 3년째인 사민당 역시 크나큰 시련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12년간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암흑기였다. 맑스 역시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1883년 런던에서 세상을 뜨고야 말았다.

하지만 산업화가 지속되는 한 노동자들의 수도 점점 불어날 수밖에 없는 일. 사회주의자법에도 불구하고 점점 커져가는 노동계급의 지원을 받으며 사회주의자들은 몰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마침내 사회주의자법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아우구스트 베벨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를 중심으로 한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1890년 드디어 '독일 사회민주주의당(SPD)'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얻은 표는 19.7%로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특히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를 비롯한 독일 사민주의자들은 1889년 프랑스대혁명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에서 열린 제2 인터내셔널에서 전세계 사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때부터 맑스주의는 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의 주류적 사상이 되었고, 이후 10년간 전유럽에는 노동운동이 확대되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895년 이후 조르쥬 소렐의 생디칼리즘이 풍미하여 사보타쥬, 보이콧, 스트라이크 등 노조의 직접행동이 자본주의를 위협하였고, 1894년에는 드레퓌스사건이 일어나 '정의, 진실, 인권옹호'를 모토로 프랑스내 모든 좌익세력이 결집되었다.

한편 1891년 에어푸어트 전당대회에서 사민당은 그 이념으로서 맑시즘을 지향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칼 카우츠키가 기초한 '에어푸어트 계획'은 그 이론적 부분에 있어서 맑스와 엥겔스의 사회분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아마 사민당이 이론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성향을 보인 때가 이때였을 것이다. 이 강령 아래에서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는 갈수록 제국주의화되어가는 독일 지배계급에 대해 끝없이 투쟁할 것을 선언했지만, 이미 사민당은 극단적인 투쟁을 펴기에는 너무 덩치가 큰 대중정당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이다. 베른슈타인은 1899년부터 의회주의의 입장에서 점진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을 제창하여 당내에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칼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이에 대해 부르주아 선거정치를 부정하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사민당의 주류는 보다 온건한 현실주의 성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민당은 착실히 발전하여 1912년에는 34.8%의 득표율로, 제국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사민당과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던 독일노조 역시 1895년 이후 꾸준히 조직적 성장을 지속했다.

이러한 가운데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당시 독일은 모로코 진출이 영국 프랑스에 의해 좌절되고, 자기 세력하에 있던 투르크 영토는 발칸전쟁후 러시아 세력하에 있던 세르비아에게 빼앗겨,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의해 국제진출이 벽에 부딪친 고립적 상황에 놓여있었다. 자본가고 노동자고를 떠나 독일의 이와 같은 억울한 상황은 독일인의 분노를 촉발시키기 충분했고, 불타는 애국심이 독일인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제2 인터내셔널은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이러한 입장을 따랐지만, 사민당을 비롯, 당시 유럽 사회주의 정당의 대부분은 노동자들 사이에 광범하게 번져있는 민족감정의 회오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먼저 사민당이 독일정부를 도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고, 이어 프랑스의 생디칼리스트들도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전쟁협력으로 전환하고 말았다. 이로써 제2 인터내셔널은 붕괴되었고, 이때부터 민족과 국가문제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물론 사민당 내에서도 친볼셰비키 분자들(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전쟁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스파르타쿠스단이라는 이름으로 1917년에 사민당으로부터 독립하여 반정부운동을 펼쳤다. 중도파였던 칼 카우츠키와 그 추종자들 역시 독립사민당으로 당을 가르고 나갔다. 하지만 사민당 다수파라고 해서 전쟁에 무작정 찬성한 것만은 아니었다. 1차대전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자 사민당 다수파는 제정을 쓰러뜨리고 재빨리 전쟁을 종결짓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사민당 다수파의 프리드리히 에베어트와 독립사민당의 칼 카우츠키, 스파르타쿠스단의 칼 리프크네히트가 독일 최초의 공화국을 이끌어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공허한 계급투쟁만을 주장하는 독립사민당이나 스파르타쿠스단보다는 전쟁기간중 독일의 국민적 단결을 호소하고, 상호이해를 통한 평화를 주장하며, 군부의 요구에도 동시에 맞서는 중도적 노력을 보였던 사민당 다수파가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프리드리히 에베어트가 이끄는 사민당 다수파가 패전후 독일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에베어트는 전형적인 노동자 출신(말 안장 제조공)으로 노조 활동부터 시작해 사민당 당수로까지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이었는데, 초기 바이마르 공화국을 이끌며 독일에 처음으로 보통선거와 평등선거제도를 도입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에 힘입어 1919년에는 처음으로 독일의회에 여성이 진출하였고, 노동조합은 마침내 경영자단체로부터 단체협약의 대상자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 속에서 37.9%의 득표율로 사민당의 총선승리를 이끈 프리드리히 에베어트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칼 카우츠키의 독립사민당은 7.6% 득표에 그쳤다.

하지만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등 소비에트 추종적인 생각을 가진 세력들은 독일공산당(KPD)을 결성하여 사민당 주류의 이러한 의회민주주의에 맞섰다. 그들은 독립사민당 일부세력까지 흡수한 후 소련의 조종을 받아 1919년 1월 베를린에서 볼셰비키식의 무장봉기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는데, 그 결과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는 체포되었고, 고문을 받던 끝에 살해유기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대표적 여성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과거 사민당 연수원에서 강의를 담당하던 박사급 지식인으로서 평화주의 및 의회진출을 주장하던 온건주의자였지만, 사민당의 수정주의에 반대하려다 그만 무장투쟁세력에 합류해버리게 되어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48년의 생애동안 무수히 투옥당하는 고초를 겪었고 마침내 국경요새의 도랑에서 물에 퉁퉁 불은 시체로 발견된 그녀의 인생은 점진적 사회개혁에 대한 거부와 소비에트 혁명에의 복무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급진적이고 모험적인 혁명방식에 대해서는 독립사민당 칼 카우츠키의 비판이 가해졌다. 1881년 런던에서 맑스와 엥겔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34년간 제2 인터내셔널 기관지 '신세기'를 이끌어오며 맑스의 또다른 적자로 활동해온 카우츠키는 1917년 11월 볼셰비키가 무자비한 폭력혁명을 일으키며, 1918년 이후 소련에서 잔악한 일당독재를 펼치는 것을 보고, 러시아혁명은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카우츠키는 이에 반대해 레닌과 치열한 논전을 벌였고, 결국 1922년 독립사민당과 다수사민당을 하나로 합쳐 사민당의 재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사민당이 새롭게 통일되면서 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별이 확고해졌다. 사민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은 얼핏 보기에 타협성과 선명성,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인 것 같지만, 실제로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민주주의와 폭력주의였다. 공산당은 당시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탄압하며 직접 폭력에 입각하는 무제한의 권력정치를 지향했다. 하지만 사민주의자들은 이러한 폭력적이고도 비민주적인 방식을 비판하며, 의회주의적이고도 평화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하에서 사민당은 노동법과 사회정책 등에서 괄목할만한 개혁을 이루었다. 역사가들은 이때 사민당이 최초로 근대적 의미의 사회국가를 만들어나갔다고 평가한다. 사민당은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배적인 정당이었고, 효과적인 경제정책과 미국자본의 도입을 통해 패전의 상처를 단시일내에 극복해냈다. 때마침 국민차 폭스바겐의 성공은 독일경제 전체를 다시 일으키는 데 견인차역할을 해주었다. 1925년에는 카우츠키에 의해 '하이델베르그 강령'이 만들어져 '에어푸어트 강령'을 혁명이 아닌 개혁으로 실현한다는 사민당의 평화주의적, 의회주의적 지침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1925년 대통령임기 만료직전 에베어트가 사망하면서, 사민당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고 만다. 에베어트의 대통령 자리는 전쟁영웅 힌덴부르크가 보수파의 지지를 얻어 차지했고, 독일은 급격한 좌우분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마침 1929년 이후의 전세계적인 대공황은 독일경제에 천문학적인 인플레이션과 함께 대규모의 실업을 안겨다 주었다. 의회를 무시한 대통령의 긴급권 남용 등의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나약한 개혁지향의 사민당을 비판하며 국가의 폭력적 개조를 주장하는 공산당의 세력이 다시 급속히 확대되었다.

당시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소련 공산세력의 성공적 근대화과정은 영국,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끔찍한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독일에서도 소련식의 혁명을 꿈꾸는 일단의 공산주의자들이 독일내에 테러리즘을 확산시키면서 보수반동세력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독일 노조가 사민당 지지와 공산당 지지로 나뉘어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히틀러의 나찌세력은 남독일의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빠르게 힘을 얻어갔다.

1933년 1월말 히틀러는 힌덴부르크에 의해 독일제국의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사민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대해 단호한 선제적 테러를 감행했다. 나중에는 시민운동세력에까지 참혹한 테러를 자행했다. 하지만 독일국민들은 대규모 군수, 토목사업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민족공동체의 실현, 강대한 독일의 재건 등을 주장하는 히틀러에게 열광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나찌의 세력은 공황이 끝난 뒤로도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급기야 제국의회가 수권법을 승인함에 따라 히틀러는 무소불위의 권력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민당원들은 모조리 수용소에 끌려들어가거나 살해되어야 했다. 운좋게 체포되지 않은 이들도 망명길에 올라야 하게 되었다(카우츠키는 망명도중 사망하였다).

사민당은 이제 독일내에서 금지된 정당이 되었다.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민주의자들은 강제수용되어 무려 10년간 강제노동과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망명에 성공한 사민주의자들은 런던의 임시당사를 중심으로 꾸준히 반나찌활동을 조직화하면서, 1934년 프라하선언을 통해 반나찌세력의 결집을 시도했지만, 나찌는 반공을 명분으로 서구사회의 양해를 얻어 1935년 이후로도 계속 군비를 확장하고, 사민주의자들을 잡아들였다. 영국, 프랑스 정부는 독일의 히틀러가 뚜렷한 반공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여, 독일 사민주의자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였다.

급기야 1939년 9월 1일 나찌는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300여 년 간 유럽세계를 지배해 온 근대 민족국가 체제가 유럽의 분열과 전쟁의 지속, 미국의 헤게모니와 소련식 공산주의의 확산만을 가져왔을 뿐이라 비판하면서, 유럽정치와 시장의 통합은 가장 우월한 민족인 게르만민족의 패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 하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에 사민주의자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워낙에 나찌가 사민주의자들이라면 이미 씨를 다 말려놓다시피 한 상황이었으므로 그 규모는 미미한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43년 1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전 이후 전유럽을 제압하던 나찌의 힘도 쇠퇴하여, 결국 히틀러 정권은 패망에 이르게 되었다. 1945년 5월 8일 나찌는 연합군에게 무조건항복하였다. 이후 폐허가 된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분할점령 당하게 된다. 이는 사민당 역시 동서분할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빌리 브란트를 비롯, 해외에 망명해있던 사민주의자들은 속속 귀국을 하기 시작했지만, 사민당은 동독과 서독에서 각각 따로 재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독지역의 사민당은 1946년 소련의 지시로 공산당에 강제 통합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명목상의 통합정당인 통일사회당(SED)이 탄생하였는데, 여기서 사민주의자들은 과거 소련정권을 비난했던 원죄로 인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단적으로 5,000명의 사민주의자가 체포되었고, 1,000명이 서독으로 망명해야 했다. 이로써 동독지역엔 통일사회당의 일당독재가 이루어졌다. 동독 지역의 사민당 성향 노조 역시 통일사회당의 지도 밑으로 들어가 그 자율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서독지역에서도 노조는 서방연합군의 감시하에서야 재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노조들은 이후 정치적인 분열상을 빠르게 극복하고 1949년 독일노총(DGB)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독일노총은 사민당과 그 목적을 공유하며 동지적 연대관계에 서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사민당으로부터 엄연히 독립적인 단체였고, 국민정당인 사민당에 가끔씩 압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1949년에는 서독과 동독이 각각 연합군의 지배를 벗어나 건국을 선포했다. 서독 기본법의 기초작업에는 카를로 슈미트를 비롯한 사민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분단후 처음으로 치러진 서독 의회선거에서 사민당은 29.2%의 표를 획득하는 데 그쳐, 간발의 차로 신생정당인 기민련(CDU)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기민련은 바이마르시대 가톨릭 중앙당이었던 무리들이 개신교도들과 연합하여 만든 정당으로, 보수적 농민층과 중상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당의 자금은 친미 거대자본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건설적인 야당'으로서 사민당은 많은 도시와 자치주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때 사민당을 이끌었던 쿠어트 슈마허는, 1차대전 참전중 오른팔을 잃고, 나찌치하에서는 11년간 강제노동수용소생활을 하다가 나찌패망으로 비로소 '돌아온 외팔이'로서, 당시 수상인 기민련의 아데나워에게는 만만찮은 호적수였다. 사실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서독 경제부흥의 주역 아데나워였지만, 나찌전력자를 정부요직에 기용한 데다 반공에 대해 지나치게 완고한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데나워의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데나워의 친미 서방화외교정책에 대해, 사민당은 외교적으로 동독과의 통일정책을 더 우선하라고 주장하는 등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는 것이 당연했다.

한편 동독지역에서는 1953년 6월 17일 일단의 사민주의자와 노동자들이 통일사회당정권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소련군에 의해 이 반란은 유혈진압되고 말았다. 이후 1961년까지 동독정권은 동서독 분계선에 장벽을 둘러치는 작업을 완료했다. 이는 물리적으로도 분단상황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으며, 통일사회당 일당독재도 그로 인해 더욱 확고해졌다.

그 사이 서독지역의 사민당은 중요한 이론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우선 1951년 7월 2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세계 사회주의 정당들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고, 좌우익의 모든 독재로부터 결별할 것을 천명했다. 물론 당시 유럽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히틀러 타도에 1등 공로자이며, 현실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하고, 초강대국 미국에 대항해 사회주의의 강력한 헤게모니축을 형성한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사민당은 이미 이러한 독재적 폭력주의에 대해서는 선을 확실히 긋는 정당이었다. 그러한 사민당이 여타 유럽 사회주의 정당과 함께 스탈린과 인연을 끊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소련과 동구권도 나름대로의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민당은 이러한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그 자신이 표방하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배반하였다고 단정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사유자본주의를 국가자본주의로 바꾸어놓았을 뿐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강조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의 본질을 휴머니즘적 전통에서 재검토하고 특히 개인과 국가, 개인과 국유화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이 국가와 국유화산업의 우위를 강조한 반면, 사민주의자들은 개인인 시민의 기본적 권리와 민주주의적 자유시장경제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사실상 자유주의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소련 공산당과의 차이점을 분명히 한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그강령을 통해 드디어 맑시즘과 계급투쟁으로부터의 절연을 선언하고 기독교정신까지 받아들여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중도의 위치를 선점하고 지지층을 계속 확산시킨 사민당은 마침내 1966년 기민련과의 대연정을 통해 정권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사민당 당수로서 외무부장관에 취임한 빌리 브란트는 동구권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밀어붙이며 당시 수상인 기민련의 키싱어를 오히려 압도했다. 독일 최대의 자치주인 노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지배를 장악하게 된 것도 1966년이 처음이다. 물론 그 당시 남부지방의 많은 서독 국민들은 보수와 안정을 희구하며 기민련과 기사련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북독일의 거의 전지역은 이때 이미 사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68년에는 '성과 정치의 자유, 그리고 일상생활의 민주화' 등을 주제로 한 대규모의 학생운동이 서독과 프랑스를 비롯, 전 서구사회를 휩쓸었다. 그 혁신적 움직임 속에서 그간 보수적 서구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기존의 모든 가치들은 비판적으로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또한 반핵, 평화, 환경, 여성 등 다양한 이슈들이 나타나 제도정치의 경직된 틀을 변화시켰다. 그 덕분에 이제껏 '배부른 소리'나 해대는 '비현실적 몽상주의자' 집단으로 의심받거나 '개량주의자' '사이비좌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타협하려는 개혁우파' 등으로 비난받고 있던 사민당 역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던 서독 젊은이들에 의해 새로운 힘을 얻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68운동의 주역들은 대부분 사민당을 '의회주의자'나 '기회주의자 집단'이라 비난했지만, 이들 적군파, 극좌파 운동가들의 과격한 주장은 논외로 치기로 하자.)

이런 분위기의 도움으로 1969년의 총선에서 약진한 사민당은 기민련에서 자민당(FDP)으로 연정파트너를 바꾸어 정권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로써 20년동안 이어지던 기민련 정권은 종식되었고, 사민주의와 자유주의는 더욱 현실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하였다. 빌리 브란트가 전후 최초의 사민당 출신 수상으로 선출되었으며, 이어 구스타프 하이네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써 사민당은 대통령과 수상을 모두 배출하게 되었다.

신임 수상으로 선출된 빌리 브란트는 요즘 우리나라의 '햇볕정책'의 모델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 '동방정책'을 펼쳐나가 당시 전세계를 지배하던 냉전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와 조약을 맺은 데 이어, 동독과 기본조약을 맺고 제한적이나마 상호교류를 하기 시작한 게 그 내용이다. 폴란드의 유태인 묘역 앞에서 서독 수상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 역사적인 장면도 이때에 연출되었다(일본은 언제 이 정도가 될까?). 세계는 독일내 좌파정권의 출범이 가져온 빛나는 성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공로로 빌리 브란트는 197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아마도 사민당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할 빌리 브란트 시절, 사민당은 거의 모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정당이었다. 차도에 나가보면 지나가는 수많은 자동차 유리창에 사민당 지지 스티커가 붙어있었으며, 선거 때면 청소년들은 너도 나도 자기가 사민당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하겠다고 앞다투며 거리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사민당 정치인들이 거리에 나타나면 시민들은 너도나도 악수를 청하고 박수를 보내주었던 반면, 이 시절 기민련이나 기사련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뭇사람들로부터 '수구꼴통'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빌리 브란트는 유럽의 경제적 거인이면서 이제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세계최고의 모범국가로 커나가던 '새로운 독일'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지지율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1972년의 총선에서 압승(사민당 45.9% 득표)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1974년 수상 보좌관 중에 동독 스파이가 발견됨으로써 빌리 브란트는 수상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빌리 브란트의 복잡한 여성편력이 실제 이유라는 뒷말도 없지 않았다.) 반공 보수세력의 대반격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사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던 독일 대다수 시민들은 사민당에 대한 지지를 쉽게 철회하지 않았다. 빌리 브란트의 수상직은 당시 재무장관이던 헬무트 슈미트(사민당 소속)가 이어받았으므로, 사민당의 집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

함부르크 출신으로 제 2차 세계대전 후 혼란기에 독일 사회주의 학생동맹위원장으로서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경력의 소유자 헬무트 슈미트는 빌리 브란트의 뜻을 이어받아 사회복지국가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군축과 평화유지를 위해 진력했으며, 1976년과 1980년 두차례의 선거를 모두 사민당의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헬무트 슈미트는 빌리 브란트와 여러모로 성향이 다른 사람이었다. 빌리 브란트가 온화하고 인자한 표정과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쉽고 따뜻한 연설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이었다면, 헬무트 슈미트는 치밀한 논리력과 정확한 상황판단력, 그리고 호랑이처럼 표효하는 연설능력과 완벽한 실무능력 등으로 사람들을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브란트를 가리켜 '비젼가'라 부르고, 슈미트에 대해서는 '실천가'라 부르기를 즐겼다. 실제로 두 사람은 각자 당총재와 수상으로서, 브란트는 사민당을, 슈미트는 연립내각을 이끌면서, 최고의 역할분담과 콤비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브란트-슈미트때만큼 사민당의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잘 돌아간 시절도 드물다고 말들을 한다. 바야흐로 사민당에게 있어서는 '황금 투톱의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슈미트는 전임자인 브란트에 비해서 훨씬 안 좋은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브란트가 이미 인기위주의 정책을 마음껏 펼쳐놓은 상황에서, 슈미트는 이러한 정책들이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 당내 좌파 및 야당 양쪽의 협공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악역을 담당해야 했고, 때마침 준동하던 극좌 테러리스트 적군파 집단의 테러행위에 대해서도 슈미트는 당내외 좌파세력들의 반발을 무릎쓰며 단호히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민련과 기사련은 슈미트의 이러한 중도적 리더쉽을 지원해줘야 했지만, 그들은 반대만 일삼는 데 바빠서, 슈미트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거기다 이미 전세계에는 암울한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두차례의 석유위기가 지나간 후의 각국은 여태까지의 팽창적인 적자재정과 반시장경제적 정책이 세계경기침체의 근본원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1979년 영국에는 대처의 보수당정권이 들어섰다. 1980년 미국에는 레이건의 공화당정권이 들어서 과감한 사유화와 구조조정, 복지삭감에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원래부터 철저히 자유주의적이고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입장이었던 슈미트는 독일에서도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필요함을 깨닫고 국영사업의 민영화와 복지삭감을 추진하려 하였는데, 이는 사민당내 좌파그룹들로부터 큰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밖에 슈미트 수상은 1981년 12월 11일 역사적인 동 서독 정상회담을 주도하여 통일의 길을 반석같이 닦아놓았지만, 그 과정에서 슈미트는 미국과 너무 가까운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이러한 친미적 태도도 당내 반미좌파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특히 사민당내 좌파들의 시장개입요구, 국채발행 및 통화팽창으로 투자를 확대하여 경기를 활성화시키라는 요구를 슈미트가 단호히 거절한 것은 슈미트의 당내 리더쉽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오고 말았다. 슈미트의 당내 리더쉽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야당인 기민련과 기사련은 정권에 대한 악선전에 열을 올렸고, 사민당내 좌파들은 "정권을 잃어도 좋으니 슈미트는 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히 슈미트에 대들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자민당이 1982년 10월 1일 연정으로부터 탈퇴하면서, 13년간 이어지던 사민당-자민당 연립내각은 붕괴되었고, 정권은 보수주의 정당인 기민련의 손에 다시 넘어가게 되고 말았다. (이때에 자민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자유주의-보수주의의 결합에 반대하여 자민당을 탈당하고 사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기민련의 헬무트 콜 정권은 기사련, 자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서독을 이끌었지만, 국가재정을 지속적으로 팽창시킨 데다가, 경제적 약자를 상대적으로 소외시키고,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소란을 막지 않아 독일의 쇠퇴를 불러왔다. 1980년대에는 서독 전역에 신나찌들이 창궐하여 외국인들을 폭행하였고, 1989년 10월 동독에 대규모 시위사태가 벌어지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사회당 정권이 붕괴하자, 콜 정권은 사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흡수통합을 무리하게 강행해, 동독주민들의 대규모 실업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했다.

한편 1989년 12월 동독 통일사회당의 일당독재체제가 붕괴하자 마쿠스 멕켈, 마틴 굿짜이트 등이 동독사민당을 재건해냈다. 서독사민당의 형제당인 동독사민당은 곧 1990년 서독사민당과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로써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지역적 범위를 되찾은 사민당은 콜 정권을 시종일관 압박하여 독일의 서민복지수준을 더이상 떨어뜨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콜 정권은 무리하게 추진한 흡수통일의 후유증으로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부담하면서 점차 위기상황에 빠져들었다.

1995년 이후에는 라퐁텐이 사민당의 지도자로 나섰다. 그는 콜 정권의 실정을 공격하고 연구집약적 미래산업의 육성을 통해 독일경제를 다가오는 신지식, 정보화사회에 대비케 하자는 등의 주장을 내세우며 사민당의 당세를 크게 신장시켰다. 마침 영국, 프랑스, 이태리에 모두 좌파정권이 출범하면서, 세계는 새로운 좌파의 시대가 열렸고, 독일 역시 좌파집권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드디어 사민당은 녹색당과 힘을 합쳐 1998년 10월 27일의 총선에서 승리, 16년만에 기민련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였다. 수상직은 니더작센주의 주지사이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맡게 되었다. 사민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게 된 녹색당 역시 좌파 정당이었으므로, 독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순수한 좌파 정당만으로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특히 정치인들간의 협상을 통한 것이 아닌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이번이 처음이었으므로, 슈뢰더 정권은 유럽내 모든 좌파들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수상 슈뢰더와 당수 라퐁텐 간의 정치적 견해대립은 당수 라퐁텐으로 하여금 정계를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고, 그간 독일을 대표해오던 자동차 등의 거대장치산업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하며, 갈수록 난폭해지는 초국가적 금융자본의 투기활동에 대해 국제적인 제재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라퐁텐의 주장을 슈뢰더가 묵살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999년 4월 12일 이후 사민당의 당수직은 수상인 슈뢰더가 겸직하게 되었으며, 사민당의 노선에 관한 당내분쟁은 아직 그 결말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1999.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