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공부 30년을 기념하려는 내 친구들에게 바치는 글
2019-09-03 17:59:51

친구들이 입학 30주년 문집을 만든다고 재촉을 해대서 얼떨결에 써보았습니다.

우리가 공부한 학문은 오래된 학문이었다. 오래된 뾰족지붕과 고딕식 탑, 그리고 아치형 행랑이 가득한 학교에서, 우리는 저 먼 옛날 로마제국 사립 법학원,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 국립 법률학교, 중세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구한말 보성전문학교에서 가르치던 지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식을 배웠다. 우리가 공부한 책은 대부분 양장(洋裝)으로 덮여 있었고, 한자와 독일어와 라틴어가 가득했다.

우리는 청소년기의 짧은 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순식간에 엘리트의 자격을 얻은 듯한 흥분상태로 대학에 들어섰다. 다른 친구들은 정치판이나 연예계의 비밀 얘기, 당구장과 디스코텍의 클랩 소리와 신디사이저 소리, 그리고 고교 시절까지 공상 속에서만 그려오던 아름다운 이성과의 연애 등에 빠져들며 젊음을 만끽하곤 했지만, 우리는 그런 모든 환락과 낭만을 등 뒤로 한 채 골방과 도서관에 틀어박혀 법서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낡은 외투와 구멍 난 양말, 다 떨어진 신발로 배회하는 삶이었지만, 갈색 가죽 위에 금박 글씨가 새겨진, 두꺼운 법전만 손에 들고 있으면 우리는 마치 이 세상 모두를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한 학문은, 모든 오래된 것들이 그러하듯이, 그 안에 깊은 슬픔과 모순의 그늘을 숨겨두고 있었다. “pacta sunt servanda”의 원칙은 돈이 되기만 하면 사람의 뼈로 카지노 토큰이라도 만들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고, “nulla poena sine lege”의 원칙은 유독 부자나 권력가 앞에서만 녹이 슬어 힘을 못 쓰는 강철 수갑의 나약함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이 세상 모든 법조문이 부조리하다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세상은 썩은 악취를 풍기는 곳이고, 타락하지 않은 자는 출세하지 못하며, 공부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주위의 냉소에 반박하지 못한 채 몸을 떨곤 하였다.

하지만 그때 우리의 청춘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푸르렀다. 우리는 무지한 자들에게 굴복하거나 아첨하며 사는 삶을 살기 싫었다. 가장 고통스럽지만 가장 깨끗한 방법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고귀하고 성스럽게 공부해서, 오로지 공부의 힘만으로 저 눈 덮인 산 위에 올라가고 싶었다.

물론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황무지의 우마 같은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시절 교정의 잣나무에 뾰족뾰족 돋아나 있던 저 은록색 이파리 같던 우리의 젊음만큼은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그 잣나무 위로 높이 펼쳐져 있던, 저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만큼은 영원히 순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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