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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復讐するは我にあり)
2025-06-07 21:48:38
2025-06-07 21:48:38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1979년작 영화 『복수는 나의 것(復讐するは我にあり)』을 보았다.
남자주인공 에노키즈의 사기와 연쇄살인 행각을 두고,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쪽에도 감정이입하지 않으며, 그 원인을 파헤치지도 않고 오직 과정과 결과만을 대단히 건조하게 묘사한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인상적인 영화였다.
도덕적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으며, 처음엔 가벼운 잡범 수준에 불과했던 에노키즈. 그는 애초에 갱생이 불가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갑자기 악마와 같은 연쇄살인범으로 폭주하게 되었을까.
에노키즈가 수감 중일 때 그의 아내와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올곧게 사는 듯하지만, 실상은 아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 한 것처럼 보인 아버지의 위선이 에노키즈를 극도의 분노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사실 에노키즈의 내면은 이미 그보다 훨씬 어린 시절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가 일본군 장교에게 어선을 빼앗기고 구타당하며,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까지 해야 했던 굴욕적인 장면을 목격한 에노키즈는 그렇게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비겁하게 현실과 타협했던 아버지가,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한 도덕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노키즈는 위선과 모순을 느꼈고, 아버지로 대표되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키워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에노키즈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노키즈는 언제나 당당한 자세로 살아간다. 가정 바깥의 사람에게 언제나 굽실굽실하는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정직한 노동으로 성실하게 돈을 벌어 건전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와는 달리, 에노키즈는 철저히 거짓과 폭력으로 자신의 당당함을 뒷받침한다. 힘센 권력 앞에 머리를 숙였던 아버지에 실망했던 에노키즈였지만, 에노키즈의 사기와 폭력은 철저히 자기보다 약한 사람, 자기를 사랑하거나 믿어줬던 사람에게만 향한다. 그러한 에노키즈의 한계를 간파한 아버지는 최후의 순간 아들 에노키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침을 뱉는다: "원한도 없는 사람들밖에 못 죽이면서!(うらみのねえ人間ばっかり殺しやがって！)"
하지만 에노키즈에게는, 선하고 약한 사람들을 지키며 정의롭게 살아가는 삶조차 역겹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런 삶도 결국에는 거짓 긍정과 환상 위에 세워진 위선일 뿐이라는 냉소가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탓이다.
어차피 그에게 도덕은 무의미하고 인생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다가 일찍 죽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복수라고 믿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 어떤 대상을 향한 복수이든, 그 어떤 방식의 복수이든, 그것을 결정하는 권한은 온전히 자기한테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듯 그에게 복수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자기만의 완전성이었다. 그리고 그 복수의 궁극적 대상은, 역시나 그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올바른 것이었던 듯하다.